요약 099010허인지
1989년 6월4일에 일어난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개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5•4운동의 목표는 오늘 날 중국에서 실현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새삼 인식할 수 있다. 중국 영화의 황금기라고 일컬어지던 1930년대는 여성에 관한 영화들이 유독 많이 만들어졌고 문화대혁명 이후 등장한 5세대 감독들 중 일부도 여성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1990년대에 세계인의 주목을 끈 장이머우의 <홍등(大紅燈籠高高掛)>(1991)에는 수천년간 지속되어온 가부장적 사회제도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여성들이 기존 사회의 관습과 충돌하여 좌절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1920~1930년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화 속의 여성은 직업을 가진 여성이든 전업주부든 대부분 성과 계급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그러한 억압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식하는 여성도 있고 그저 기존의 권력구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여성도 있다. 거의 한세기 전 여성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시절에 제기된 문제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이미 해결이 된 문제일까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1. <신녀>창녀와 모성 사이에서
중국영화는 1930년대 이르러 상하이에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당시 상하이에는 중국 자본으로 세워진 영화사가 40여개나 생겨났고, 1928~1931년에 영화가 400여 편이나 만들어졌다. 영화 전문 상영관만 마흔 곳, 하루 관객 수는 100만명, 루쉰(魯迅)이 교외에서 택시를 대절해 영화를 보러 다녔다고 하는 다광밍(大光明) 극장은 타석 수 2000석에 냉난방 시설이 갖춰진 초호화 시설이었다. 상하이는 그야말로 영화의 도시였다.
우융강(吳永剛)의 무성영화 <신녀>는 1934년에 제작된 많은 영화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은 이 멜로 드라마에서 사회 비판적 태도와 애정어린 시선으로 도시 매춘부들의 삶을 그렸다. <신녀>는 도시사회의 최하층인 기녀의 기구한 운명을 보여준다. 젊은 여성인 롼싸오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몸을 팔아 생계를 꾸려간다. 그녀는 어느 날 밤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다 장(章)두목의 집으로 잘못 들어가고 이때부터 장두목이 그녀를 차지한다. 그녀는 장두목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지만 장두목이 그녀의 아이를 볼모로 잡고 협박하여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롼싸오는 아이에게 정상적인 교육을 시키려고 학교에 보내며 몰래 돈을 모으는데, 학교 이사들이 자신의 직업을 문제 삼아 받아들이지 않자, 아이와 함께 그곳을 떠나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려 하지만 담벼락에 난 구멍에 감춰진 종이 봉지를 열어보고서야 그녀는 장두목이 그 피눈물 같은 돈을 가져다가 도박을 한 사실을 알게 되고 도박장에 달려가 격분과 절망 속에서 술병을 집어 들어 장두목을 내리친다. 장두목은 죽고 그녀는 감옥에 잡혀 들어 간다.
도시의 한 모퉁이를 표현한 영화 <신녀>는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꾸밈없는 진실이였다. 다시 말해, 당시 대다수 여성들이 파산한 농촌에서 도시로 오고 또 공장이 파산하면 기녀로 몰락해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2.신여성: '모던걸'의 꿈과 절망
1934년 차이추성(蔡楚生) 감독이 제작한 <신여성>은 주인공 웨이밍(韋明)은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자유연애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딸을 낳았으나 곧 버림받고 음악교사가 된다. 학교 이사장 왕박사는 그녀를 마음에 두나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작품 출판 관계로 웨이밍은 출판사 편집자인 위하이타오(余海濤)를 알게 되어 흠모하는 마음을 품지만 과거의 고통 때문에 그와의 결혼은 원치 않는다. 웨이밍은 왕박사의 음모로 사직서를 낸다. 실직한 웨이밍은 소설을 썼지만 원고료를 받을 수 없고 여섯살 난 딸은 폐렴에 걸려 병은 깊어만 간다. 아이를 위해 그녀는 결국 하룻밤만 몸을 팔기로 한다. 그런데 그 고객이 뜻밖에도 왕박사였다. 분노에 찬 그녀는 왕박사의 따귀를 올려 붙이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실업의 고통, 딸아이의 병, 사람들에게 받는 오해 등을 견딜 수 없던 그녀는 마침내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게 되지만 위하이타오가 웨이밍을 병원에 보내 응급처리를 하여 깨여난다. 이를 알게 된 신문기자가 이 소식을 당일 석간에 발표한다. 분노에 찬 그녀는 “살아서 복수하고 말겠어”하고 다짐하지만 심장쇠약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영화의 내용은 실제로 당대 영화 스타인 아이샤의 일생을 모델로 한 것이다. 아이샤는 진보적이고 재능 있는 여성으로 베이핑(北平)에 있는 여고를 졸업한 후 사촌오빠와 연애 한 끝에 아이를 낳았으나 봉건적인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자 집을 떠나 상하이에 도착한 후 진보적인 희극영화 활동에 무대에서나 은막에서나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으며 여가 시간에는 글을 쓰는 등 전도가 양양한 문예가였다. 그러나 그녀는 감정의 포로가 되어 심신을 지탱하지 못하자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녀가 죽은 후 신문사가 죽은 사람을 통해 판매 부수를 더 올리고자 이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한다. 이런 행태에 분노한 영화계 인사들이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듦으로써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선량하고 정직하며 광명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여주인공은 연약한 성격 때문에 경제적 압력과 사회적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로써 현실에서 도피하고 만다.
3. <홍등>: 봉건적 가부장제와 신여성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중국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인 장이머우의 <홍등>은 수퉁(蘇童)의 소설 ‘처와 첩들(妻妾成群)’을 각색한 이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중국이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풋풋한 학생복 차림의 쑹롄이 커다란 짐 가방을 들고 천씨 집안으로 들어선다. 마당은 물론 집안 여기 저기에 걸려 있는 등이 눈에 들어온다. 쑹롄이 오기 전부터 이미 본부인과 두 첩을 데리고 사는 천쭤첸(陳佐千), 즉 천 나리는 그날그날 등에 불을 밝히라고 명령 한 방의 여인과 동침한다. 천나리와 함께 밤을 보내도록 낙점을 받은 부인은 하녀가 베풀어주는 발 안마와 다음 날 아침 요리를 마음대로 주문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 처첩들간의 시기와 질투, 경쟁 속에 몸을 맡긴 쑹롄에게서 더는 대학을 중퇴한 신여성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천씨 집안 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표상인, 폐쇄된 공간에서 철저하게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천쭤첸의 총애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는 임신한 것처럼 가장하여 천 나리를 방에 붙들어둠으로써 정말 임신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거짓말이 신분상승을 꿈꾸는 계집종 옌얼에 의하여 탄로나서 그녀의 홍등엔 검은 보자기가 씌워진다.
천나리의 뜻을 거스르는 순간, 모든 특권과 우세가 사라져버린다. 쑹롄은 대학교육을 받았지만 그 점이 이 집안에서 그녀의 입지를 조금도 넓혀주지 못한다. 다만, 자신의 삶이 비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어 비극성을 더해 줄 뿐이다.
<홍등>에서 장이머우는 중국 문화와 사회에 대한 깊은 심리적 통찰을 보여준다. 1920년대 중국의 모습은 역사적이고 현대적이며 정신사적인 지평을 배경으로, 전통적 권력구조는 물론이고 현재의 권력구조로도 읽힌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1990년대에 만들어진 <홍등>은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이 봉건 대가족 제도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상실해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신녀>, <신여성>에 등장하는 여성들 역시 교사든 작가든 창녀든 상층 부르주아 계층의 주부든,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들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단지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남성이 전통적으로 여성을 통제하고 착취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타자를 지배하고 착취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 4대 미녀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침어의 아름다움을 지닌 서시는 오나라에 패망한 월왕 구천의 충신인 범려가 서시를 데려다가, 호색가인 오왕 부차에게 바치고,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부차를 멸망시킨다. 낙연의 아름다움을 지닌 왕소군은 화친을 위해 흉노에게 시집을 간다. 폐월의 아름다움을 지닌 초선은 연환계를 펼쳐 여포와 동탁의 사이를 이간질 하는데 성공한다. 양귀비는 수화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현종이 그녀에게 빠져 정치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렇듯 경국지색을 지닌 그녀들이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이와같이 역사 사실로 보아도 여자는 주도권도 없었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 되어왔다. 현재 사회는 남녀평등을 주장하지만 불평등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여성의 선택이 자유로워 졌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승진 기회의 불균등, 능력이 아닌 성별에 의한 연봉차이 등…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할 지금 아직도 이런 사례들을 보면 개선해야 될 부분들이 있지만 불평등을 없애려고 하기 보단 여성이 잘 할 수 있는 점과 남성이 잘 할 수 있는 점을 서로 배워가며 win-win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남성도 남성만의 특권이 있듯이 여성도 여성만의 특권이 있으니까.
첫댓글 미인계 도구로 사용된 미녀들. 양성평등, 특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