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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클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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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음악 - 정화의 시간 스크랩 뜻도 모르고 부르는 노래 <동심초>는?
이재운1045 추천 0 조회 107 16.10.03 14: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설도의 시 춘망사(春望詞)가 있다.

이 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친일 시인, 월북 시인인 안서 김억이 번안하고, 작곡가 김성태 씨가 작곡하여 가곡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 안서 김억 : 종종 김안서라고 부르는 이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안서는 그의 호이다. 성과 호를 붙여 부르면 안된다. 미당 서정주라고 해야지 서미당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과 같다.


설도는 서안(당시 장안) 출신인데 어린 시절에 귀양가는 아버지(하급관리)를 따라 성도로 이사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성도는 강원도 정선쯤 되는 먼먼 시골이다.

이사한 지 얼마 안되어 설도 나이 14세에 아버지가 죽자 모녀는 가난한 삶을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설도가 악기(樂妓)가 되었다. 노래하며 악기를 다루는 기생이다.

그런데 타고난 음률 감각과 뛰어난 시재로 당대 시인 문사들을 두루 사귄 모양이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편지지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당나라 사람들은 흰종이에 편지를 쓰는 것은 불길하다고 여겼는데, 설도에게는 편지지를 아릅답게 물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색종이 혹은 꽃무늬를 놓은 편지지를 시전(詩箋)이라고 한다. 설도가 만든 시전은 송화지(松花紙), 소채지(小彩紙) 등의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설도의 시전은 워낙 유명해서 이를 설도전(薛濤箋), 완화전(浣花箋)이라고 따로 불렀다.


이때 사귄 남자 가운데 사천감찰어사로 성도에 온, 설도보다 10살이나 어린 원진(元鎭)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아내가 있던 원진은 설도와 며칠을 함께 지낸 후, 배를 타고 떠난 후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설도는 평생동안 독신으로 지냈다고 한다. 이 원진은 당대의 바람둥이었지만 설도는 몰랐던 것같다. (원진 얘기는 설도가 불쌍해지고 시맛이 떨어지니 생략. 사랑이라는 다 그렇지 뭐.)


나이가 들은 뒤로는 시성 두보가 만년을 보낸 성도의 서교(西郊)에 있는 완화계(일명 백화담) 근처 만리교로 은퇴하였다. 이 지역은 좋은 종이 재료가 나는 곳이라 편지지 만들기를 좋아하는 설도에게 안성마춤인 곳이었다. 설도는 시 500편을 지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88수만 전해온다.


춘망사(春望詞)


花開 不同賞 꽃이 피건만 바라볼 이가 없고 

花落 不同悲 꽃이 지건만 그 슬픔을 나눌 이가 없네 

欲問 相思處 묻노라, 나의 그리움은 대체 어디로 향하는지

花開 花落時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다 때가 있거늘... 


攬草 結同心 풀잎 편지에 우리 마음 한 마음인양 엮어  

將以 遺知音 님에게 보내려 망서리다가 

春愁 正斷絶 봄날이 다 하여 그리움도 잦아드는데 

春鳥 復哀吟 봄에 우는 새가 다시 와서 애달피 우네 


風花 日將老 꽃잎이 질 때마다 세월만 하염없이 흐르고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佳期 猶渺渺 다시 오겠다는 달콤한 약조는 날로 아득해지네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不結 同心人 끝내 그대와 한 마음으로 엮지 못하고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空結 同心草 한갓되이 빈 편지지만 만지작거리네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오른쪽 붉은글씨는 안서 김억의 번역. 김성태가 작곡한 동심초의 가사가 된다.

* 동심초 가곡 가사는 아래서 다시 언급.

* 동심초를 편지지라고 번역한 것은, 설도가 유명한 편지지 제작자였고, 草는 그가 편지지를 만드는 데 쓴 주요 재료이며, 흔히 글의 초안을 草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설도는 흰 종이에 꽃이나 풀잎으로 무늬를 놓아 자기만의 편지지인 설도전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풀잎을 맺는다(結草)'는 건, 사랑하는 사람 원진과 애정이 담뿍 담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말하는데, 결국 연인 원진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고, 설도 역시 편지를 부칠 수도 없어 편지지만 만지작거리는 정황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那堪 花滿枝 어쩌나, 가지마다 다닥다닥 피어난 저 꽃들 

作 兩相思 꽃잎이 나를 때마다 우리 그리움도 변하는 것을 

玉箸 垂朝鏡 흐르는 눈물은 아침마다 거울에 비치고

春風 知不知 봄바람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김안서는 춘망사 3연 번역을 모두 4차례에 거쳐 손질했다. 

그가 매우 애정을 갖고 손질했음이 분명하다.


- 중외일보, 1930. 9. 4 

꽃잎은 하욤업시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업네 
서로서로 맘과맘 맺지 못하고 
얽나니 풀잎사귀 쓸데잇는고 

학등, 1934. 6. 6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ㅎ다 기약이 없네. 
무심ㅎ다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가피의 풀잎만 뭐라 맺는고. 


망우초, 1934. 9. 10 
꽃잎은 하욤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동심초, 1943. 12. 31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닢만 맺으랴는고. 


그런 다음에 김성태가 작곡할 때는 가사를 1943년 최종 번역본이 아닌 1934년 본으로 만들었는데

이때 반복되는 2절에는 2행만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로 전혀 다른 내용이 들어간다.


이 가사를 설도의 시 춘망사에 맞게 제대로 개사하면 다음과 같다.

앞서 내가 번역한 내용을 가사에 맞춰 본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 꽃잎이 질 때마다 세월만 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 그날의 약속 끝내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한갓되이 편지만 쥐고있는가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한갓되이 편지만 쥐고있는가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 돌아온단 약속은 뜬구름 되었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설도와 원진이 나눈 '덧없는' 사랑의 시


설도 / 원앙초(鴛鴦草)

 

綠英 滿香砦 싱그러운 꽃봉오리 섬돌까지 향이 오르고

兩兩 鴛鴦小 짝짝으로 어울린 어린 원앙이어라

但娛 春日長 오직 긴 봄날을 즐길 뿐이니

不管 秋風早 가을바람이야 걱정할 일 없도다

 

원진 / 사랑하는 설도에게 


錦江 滑賦 娥眉秀 매끄러운 금강과 수려한 아미산이  

幻出文君 與 薛濤 탁문군과 설도로 변하였구나

言語巧 愉 鸚鵡舌 말씨는 앵무새의 혀처러 능란하고

文章 分得 鳳皇毛 문장은 봉황의 깃털처럼 화려하네

紛紛 辭客 多停筆 시인들이 부끄러워 붓을 멈추고 

個個 分卿 欲夢刀 관리들은 꿈에라도 만나려 애쓰고

別後 相思 隔煙水 헤어져 그리운데 아득한 강 저편이라

菖蒲 花發 五雲高 창포꽃은 피는데 오색 구름만 높구나


- 원진 / 그대를 떠나면서(離思) * 성도를 떠날 때 시인 듯


曾經 滄海 難爲水 바다를 보고나면 세상의 강이 다 대수롭지 않고

除却 巫山 不是雲 무산을 보고나면 구름조차 높질 않다지

取次 花叢 懶回顧 내가 아름다운 꽃을 봐도 즐겁지 않은 까닭은  

半緣 修道 半緣君 반은 공부 때문이고 반은 님을 그리기 때문이라네

 

아래는 동심초를 부르는 가수들의 동영상이다. 설도가 여자인만큼 남성 가수의 동영상은 옮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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