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내재율
한현수
딱따구리가 떼구르르------
큰 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내는 건
찢겨진 나뭇가지를 골라 두드리는 것이어서
나무가 딱딱한 몸을 세워
울림통이 되어 주는 것이어서
떼구르르, 그 소리는 사실 나무가 하는 말
상처를 수직으로 대면하는 건
그건 딱따구리의 운지법이어서
수직의 소리가 잠자리날개처럼 수평이 되어
내려앉은 것이어서
실선도 아닌 점선도 아닌 바람이란
오선지에 파문의 선율로 조율되고 있는 것이어서
소리가 멀리 멀리 갈 수 있는 건
찢긴 나뭇가지마다 아직 꽃이란 내재율이 있어
상처의 울림을 더 크게 해주는 것이어서
고요 위에 떨어지는 말이
굴러가기 좋게
고요가 함께 출렁거리는 것이어서
「나무-내재율 전문」
-한현수 시집『기다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발견, 2015
한 연이 6행으로 구성된 3연 18행의 시입니다. 연마다 '것이어서' 라는 시어가 두 번씩 반복되는 리듬(내재율)을 가지고 있어 시가 전체적으로 리드미칼하게 읽혀집니다. 리듬이 뛰어난 시라는 것이지요. 나무라는 식물성 이미지에 딱따구리, 잠자리와 같은 동물성 이미지가 결합되어 수직과 수평으로 조화를 이루며 '고요가 함께 출렁이며 굴러간다' 는 멋진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무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건 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자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것입니다. 혹한의 시련을 헤쳐온 나무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깁니다. 자연의 세계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힘이 있습니다. 나무의 연약한 부분, 즉 상처 난 곳을 찾아 딱따구리는 나무를 두드립니다. '상처를 수직으로 대면하는 건/그건 딱따구리의 운지법이어서', '떼구르르, 그 소리는 사실 나무가 하는 말' 의 구절처럼 소리는 말입니다. 말은 언어이고 언어는 사실 너무 작은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에 담으면 뜻이 작아지게 마련입니다. 기형도 시인은 '소리의 뼈가 침묵이다'고 했습니다. 고요 위에 떨어지는 침묵이 휠씬 더 많은 말을 하고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가 더위를 이깁니다. 맑고 고요한 것이 천하의 모습이다(靜勝躁 寒勝熱 淸靜 爲天下正)"는 노자의 사상이 스며있는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시입니다.
시인의 나무에 대한 탁월한 사유와 감각은 시집 1부에 실린 나무 연작을 통하여 우리 삶의 비애, 고통, 운명 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령 '찢긴 나뭇가지마다 아직 꽃이란 내재율이 있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상처(찢긴 나뭇가지=생의 비애)를 통해 꽃(희망)의 내재율을 발견하는 놀라운 시인의 통찰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의사시인회」에서 저자와 함께 활동하는 한현수
시인의 아름다운 시집『기다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을 꼭 읽어보시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시도 절창이고
해설도 명품입니다...
에공, 감사합니다^^
시에서 딱따구리 소리가 나요...감사
떼구르르------소리가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