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인은 우리 사회의 '도서관'이다 /임종수
황혼재취업 원하는 우수인력 급증 추세…경험·지혜 활용하는 사회 여건 만들어야
• 국제신문
• 2012-11-07T20:28+01:00
최근 부산진구노인회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에서 발간한 '2011년도 노인취업 우수사례집'을 보았다. 시간이나 때우려는 생각에 몇 장을 훑어보다가 그 속에 절절히 담긴 노인들의 취업 욕구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일흔여덟에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한 할아버지는 "이 나이에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곳이 있다는 게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고 내 여생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어서 혼신을 다해 일하고 있다"며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웠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오다 인생 말년에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는 70대 할머니는 취업 그 자체에 고마워했다. "지금 청소 일을 하고 있지만 내 또래와 함께 일하는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많지 않은 월급, 좋지 못한 근무환경은 경력도 없고 나이도 많은 내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무슨 일이든 땀 흘리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하는 요즘 황혼 재취업을 원하는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노인 인적 자원 역시 과거와는 달리 우수하다. 올해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60세 이상 실버 사원 2000명 모집에는 60∼80대 노인 1만8000여 명이 몰렸다. 하루 5시간씩 임대아파트 단지를 돌며 입주자 상담, 시설점검 등을 하고 월 60만 원을 받는 8개월짜리 임시직인데도 합격자들의 이력은 화려했다.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4명 중 1명꼴인 538명, 대학원 이상도 40명이나 됐다. 앞서 2월 초 56∼60세 시니어 사원을 채용한 롯데마트에도 계산대 업무 등 단순 직종이었지만 역시 석·박사 소지자 70명, 대기업 간부·은행 지점장급 이상 경력자 400명이나 몰렸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의 질은 터무니없이 낮다. 부산진구노인회 노인취업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노인 400여 명이 일자리를 원했고, 그 중 4분의 1 정도가 취업했다. 경비 52%, 청소 28%로 취업 노인의 80%가 단순 노무직을 얻었다. 월 급여는 직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86만 원에 그쳤다. 대다수 노인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려고 하나, 이들을 고용하려는 기업의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구직 노인들의 스펙이 어떻든 간에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나 빌딩 청소가 고작이다. 부산시 노인취업교육센터의 교육 과목만 봐도 경비·주차, 배달, 설문조사 등 단순직종이 전부다. 석·박사나 임원 출신의 '고(高) 스펙' 노인도 오로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스펙을 갖춘, 이른바 '베이비부머 노인'들이 직접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어르신 대상 건강교육 및 건강증진 캠페인을 목적으로 설립된 부산시 비영리 민간단체인 부산건강대학이 '일자리 사업단'을 구성해 사회적기업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들의 목적은 고학력 노인의 일자리를 만들고, 그에 따른 수익금은 장애인 등 노동 취약계층에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교사, 교수, 고위 공무원, 금융인, 기업인 등 소위 고 스펙의 노인 회원들을 둔 부산건강대학 사업단은 이미 몇몇 병의원, 학교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건강·진로지도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위탁하기로 하는 등 사회적기업으로서의 틀을 갖췄다. 앞으로 소상공인 자문사업 등에도 뛰어들어 그들의 높은 경륜을 사회에 재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유럽 등 다른 지역과 달리 갓난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고 한다. 노인들은 많은 경험을 쌓아 부족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갓난아이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현자 아마두 함파테 바는 1962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이렇게 외쳤다. "아프리카에서 한 노인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노인의 죽음으로 끊어지는 전통문화와 토착 지식 등 정신적 자산의 가치는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인구 5000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500만 명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대화 콘텐츠가 '도서관'처럼 풍부한 베이비부머 노인들의 경륜과 지혜가 절실하다.
온종합병원 행정원장
첫댓글 좋은 글 까지 읽어 보았습니다.좋은 정보에 감사 드립니다.
너무나 현실에 적절한 표현이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맞는 말씀^^
옳은 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