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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유원지 |
바람은 언제나 미래 쪽에서 불어온다. 부는 바람에 등 떠밀려 속절없이 사라져갈 풍경을 바라보면 애잔해서 눈물 난다. 나는 지금 개발의 물살에 떠밀리는 화원유원지 강가에 나와 있다. 가끔씩 화원동산을 드나드는 차들만 눈에 띌 뿐 이미 퇴락해버린 식당가는 가을볕에 적막하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에도 끈질기게 버텨오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기에 둘러보러 나선 참이다. 한때 이곳 유원지는 흥겨운 노랫소리 끊이지 않았었다. 줄지어 선 식당마다 강에서 낚아 올린 민물고기 매운탕이 끓어 넘치고 삶의 작은 위안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한 시절을 건너오는 동안 우리들 부모, 형제의 추억이 오롯이 스민 곳이다. 그렇듯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이제 허물어지려 하고 있다. 골목 끝 제일식당 응달진 담벼락 아래 저 혼자 핀 구절초가 안쓰럽다. 다가가 덥석 손잡아주고 싶다. 허허로운 마음에 눈길을 돌린다. 강물은 제 빛깔을 잃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거슬러 올라가니 낙동과 금호의 물길이 만나 빚어놓은 하중도 아랫자락에 개발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날 상화대에서 바라보는 이 곳 두물머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옛 임금이 행궁을 짓고 경관을 완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편리라는 명분으로 두물머리 아래 다리가 놓이면서 인정도 함께 실어 나르든 나룻배는 흔적도 없어졌다. 강 둔덕에 오도카니 자리를 틀고 막걸리 잔에 인심을 얹어주던 주막집이 자취를 감춘 것도 그 무렵이었으리라. 사문나루터 사공의 입이 귀에 걸리는 때가 있었다. 여름땡볕이 기세를 떨치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낙네들이 나루터로 몰려들었다. 예부터 유원지 건너 넓은 백사장은 삼복에 하는 모래찜질이 유명했었다. 삼베적삼에 속바지만 입고 잘 달구어진 모래에 구멍을 파고 누우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신경통은 한결 좋아졌다. 흠뻑 땀을 뺀 후 제가끔 싸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 나누어 먹노라면 강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입안에서 버적거리며 씹혔다. 시집 흉에 남편 흉을 보며 모처럼의 여가를 즐기는 사이 할머니나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들은 두꺼비집을 짓고 모래성을 쌓았다 허물며 이해 못할 어른들을 지켜보았다. 모래에 묻어둔 날계란이 익기를 기다리는 일도 지겹기는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은 결국엔 울음을 터트리고는 했다. 아낙네들은 행복한 여름 한때를 그렇듯 오래 강가에서 머물렀다. 사문진 다리아래 휑한 공터에 바람이 분다. 흙먼지가 일어 버들식당 지나 손톱만큼 남은 숲으로 간다. 자지러질듯 바람을 타던 은사시나무, 책갈피에 끼우느라 주우러 다니던 은행나무, 잎 넓은 후박나무와 갈참나무, 새침한 잣나무가 한데 어울려 끝도 없이 이어지던 빽빽한 숲은 어디로 갔을까.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사춘기 아이들의 끝없는 재재거림을 너른 품으로 받아주던 그 숲은 어디로 갔을까. 아늑한 가을 숲에 들어서면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우리들 어깨 위에서 눈부시게 미끄러지고 발아래는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푹신했다. 학우들과 온 종일 숲 사이를 헤매고 나면 몸에서는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 숲에서의 소풍은 어린 우리들 마음의 키를 성큼 자라게 해 주었었다. 숲은 어른들이 ‘희추’를 하는 살가운 모임 장소이기도 했다. 봄꽃이 피면 풍물과 솥단지를 이고지고 유원지 숲을 찾아 하루를 즐겼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또래의 부부가 함께 어우러지는 화합 마당은 흥겨웠다. 풍물놀이에 싫증이 나면 우르르 몰려가 유람선을 타는 기쁨도 누렸다. 뱃전에선 어김없이 두만강 푸른 물이 흘러나오고 얼근하게 술이 오른 사람들은 흥얼흥얼 노랫가락을 따라 불렀다. 화원유원지는 많은 이들의 삶을 위무하던 장소였다.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잠시 짬을 내어 기대러 오던 어머니의 품이었고 누이의 그늘이었다. 대구도심에 놀이공원이 생기면서 서서히 제 모습을 잃어버린 유원지에 미래의 바람이 분다. 나는 눈을 감고 상상한다. 크루즈호 선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눈부시리라. 하지만 우리들이 말갛게 숨 쉬던 숲은 복원의 길을 걸어 울창해지기를, 습지에서 들리는 섶비빔질 소리 여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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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모습을 잃어가는 유원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선배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
어릴 적 추억이 스민 곳이 사라져 가는 걸 바라보는 건 더욱 애잔하지요. 화원동산은 모습이 변하긴 했지만 건재할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에요. 그곳에 종친 모임 따라갔다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네를 탄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사라진 구닥다리 놀이기구지요. 무서워서 눈물나는데 내릴 수도 없고. 그때 생각하면 아찔한데. 벌써 한 세기는 지난 것처럼 아득하네요.
사라지는 모든것은 아름답지요 ~ 변화의 바람은 또 얼마나 쓰린눈짓을 비벼야할지..그래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는것 또 한 그만큼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생겨나겠지 하는 위안을 삼아봅니다
그러게요. 인위적이고 새로운 것들이 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을 훔쳐가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관심 고맙습니다.
아, 화원유원지 가까이 살면서도 누리지 못했던 그곳 풍경을 이렇게 박 작가의 글로 보니 더 아름답고 애잔합니다. 숲은 우리 아이들의 희망이기도 하고 지구를 젊게 지키는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인데 이를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월배 선,후배님 혹은 동기들은 화원유원지에 얽힌 추억들이 얼마나 많은지 밤을 새워도 모자랄거에요. 저는 고등학교때 강 건너 백사장에서 동아리 모임 단합대회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한 녀석이 절 더러 노래 디기 잘 한다고 해서 저를 설레게 하더니 삼십 년 가까이 지나 초등 동창모임에서 만났더니 취미로 색소폰을 불더라구요. 인물도 잘 생긴 놈이 더 멋있어졌어요. 진즉에 어떻게 해 볼걸~^^ 아마 숲은 예전처럼 울창해 지겠지요. 선배님!!
거의 십여년만인 지난 3월에 강가가 보이는 언덕을 오르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바닷가의 등대지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학교때 버스타고 봄소풍을 갔었고 아이들 어릴 때는 종종 도시락 싸들고 놀러가면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이었는데...
정애선님도 어디 유원지 가까이 사셨나 봅니다. 우리 주변에 해지는 풍광이 아름답고 숲이 울창하고 나룻배 떠 다니는 그런 곳 하나 있다는 건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