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예외없이 유듀브 촬영을 위해 최소인원의 제작팀이 사찰로 갔으나
동서남북 사찰로 통하는 모든 문은 온통 샤터 및 잠금장치로 봉쇄되어 있다.
이토록 문을 차단한 상태라면 수문장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사찰 건물 뱅뱅, 어느곳을 돌아봐도 말 한마디 전할 종무원 하나 없다.
어쩔수 없이 수석부회장님, 보성화 부회장님이 종무소로 전화 통화를 하였으나
여전히 문을 열어 줄 수 없다는 답변 뿐, 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니 답답한 마음은
이루말 할 수 없다.
점심 공양하시러 나오셨던 스님 한 분도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비하려
머리에 손을 올리시고 사찰로 들어가시려 동분서주 출입구를 찾으러 다니시나,
촬영팀 때문에 열리지 않는 사찰 출입구는 스님조차 들어가지 못하시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했다.
반야원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거사님들께서 반야원으로 들어가 문의하신다.
1시 제사 시간은 도래하였으나 기도처로 들어갈 수 없는 제사 손님들이 반야원 주변,
사찰 입구에서 웅성웅성.
그 틈에 스님도 함께 문을 열도록 출입문 앞에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계신다.
그래도 열리지 않는 사찰 문.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광 신도로써 제사 손님들께 너무 미안하여,
촬영팀이 들어가지 않을테니 제사 지내실 분들은 들여보내라고 간청하였으나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그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스님께, 저희가 다른 곳으로 갈테니 제사손님들 모시고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리니
'감사합니다' 하시던 스님 말씀을 귓전에 담고, 사찰을 떠나 다른 장소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제 2116호 불기 2564년 9월 13일 법회지
오늘 우리의 상황은 열악하지만 법(法)을 설하실 스님이 계시고,
법문을 들을 불광 형제들이 있는 한, 불광 법회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처한 장소가 어디든지 그곳이 법당인지라
현진거사님의 예불 소리가 온 누리를 맑히고 밝힌다.
"코로나 19확산으로 많은 어려움에 당면해있습니다.
더구나 법회를 앞장서서 열어야 할 스님들이 법회를 열지못하도록 방해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법회는 멈춰서는 안된다는 간절한 염원으로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영상으로 법회를 준비하였습니다."
오늘따라 혜안거사님의 인사 말씀이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법문: 혜담스님, 사회:혜안거사님, 인례:현진거사님
금주의 법사:혜담스님.
금주의 법어: 반야바라밀은 일체 불법의 지도원리며 동시에 불법 그 자체다.
불광 형제여러분,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이 법회를 함께하고 계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형제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이 코로나 때문에 굉장히 힘들고, 복잡하고, 심란한 상태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마음을 평정하셔서 모두가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형제여러분의 가정도 항상 그런 속에서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으로 부터 전해질 때는 원래는 불교라는 말보다는 불법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불교라는 말이 가르침이기는 하지만 왕의 교시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불법이라는 것은 그 자체는 진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불교라는 말 자체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보다는 법 자체는
진리라는 의미가 더 강하고 그것은 반야바라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은 일체 불법의 지도 원리이고, 동시에 바로 진리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진리가 가지고 있는 무한의 공덕, 무한의 지혜 무한의 위신력이
우리 모두의 생명이라는 그 사실을 부처님께서는 가르쳐주신 것이다. 불법은 개인의 고뇌를
해결해주는 개인의 궁극적인 생사의 해결, 개인의 진리로서 완성,개인의 해탈 이것이 출발이 되고
모두가 깨닫는 진리로서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더 나아가면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서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성취, 진리의 완성으로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불전(佛典)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이 있다. 흘러가는 물을 보는데도 네가지의 견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지 물로 보게되고, 물고기가 물을 볼 때는 집이라 보며 아귀는 피가 흐르는 것으로 보고,
천상의 천인들은 보물고 장식된 땅으로 본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우리도 경우가 다르면 견해도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서로 간에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입장에서밖에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생각한 것은 무조건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이것은 올바른 견해, 즉 정견(正見)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반야바라밀에 대한 견해에서도 마찬가지다. 불광 형제들은 반야바라밀에 대해서 광덕 큰스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염송하고,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가르침을 펴고 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일체
모든 불법의 지도원리라고 바로 인식하고 있지만 일반 불자은이 바라밀을 육바라밀 중의 하나로서만
인식하여 그것이 담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간과하고 있어서 반야바라밀이 바로 불교인 것을 놓치고 있다.
『대품반야경』<조명품 제 40>에서 반야바라밀을 다른 다섯가지 바라밀의 지도원리(指導原理)라고 간주하여 설하고 있다.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바라밀보다 수승한 것은,
비유컨대 태어나면서 눈이 먼 사람은 가령 수 백천명이 있다고 해도,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능히 길을 나서서 성(城)에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다. 다섯 가지 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을
여의면, 맹인이 안내 없이 길을 나설 수 없는 것처럼 일체지(一切智)를 얻을 수 없다.만약 다섯 가지 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라는인도자를 얻으면, 비로서 다섯 가지 바라밀을 이름하여 눈이 있다(有眼)라고 한다.
반야바라밀이라는 인도자가 바라밀(波羅密)의 이름을 얻게 하는 것이다."
또한<밥칭품 제 37>에서는 "마땅히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반야바라밀이 바로 부처님이다.
반야발밀은 부처님과 다르지 않고 부처님은반야바라밀과 다르지 않다"고설하여 반야바라밀이
그대로 정각.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고 부처님이다. 여기에서 반야바라밀은 비로소 반야경에서
설하는 최초의 일보를 내딛게 된다. 왜냐하면 정각이 있을 때만이 반야바라밀은그본래의 청정성에
있어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의 그 자체 이외에 무엇인가 목적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반야바라밀은 또한 반야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고, 순수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이
부처님이라는 것에 의해서 비로소 본래의 목적이 돌아가는 것이 된다,
바라밀은 완성의 의미이다.
바라밀이 붙지 않을 때는 업(業)이라는 상태에서 머물게 되고
바라밀이 붙었을 때 비로소 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게되는 상태에 도달하는것이다.
반야바라밀이 나타나는 그 자리에 갔을때 내 생명이 부처님이고, 산하대지가 현진광이라는
진리의 모습 그 자리에 도달할 때 하루하루가 즐거워지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이 일체 불법 지도 원리란 그 위치에 갔을 때 반야바라밀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고
바로 염송하게 되는 것이다.
불광형제들은 반야바라밀 법을 들었고, 매일 매일 염송하여 깨달음 자체를 보게 될 때
하루 하루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 부처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오게 될것이다.
부디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염송하여 산하대지 현진광의 상태에서 날마다 좋은날이 되라는
말씀으로 법문을 마치셨다.
발원문 낭독: 송파 2구 명등 원모행 보살님
수석부회장님의 주간 현안 보고
법당을 떠나 다른 곳에서 유튜브 촬영을 하면서 사찰의 모습을 그리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전법도량 불광사' 일주문 현판에 멋드러지게 새겨진 '전법도량'
그리고 신축하며 일주문 옆에 모셔진 '비로자나 부처님'
전법(轉法)은 법을 굴린다는 것이니, 부처님이 설법하시어 세상에 법이 퍼져 가므로
(그것을) ‘굴리다.’라고 하나니, 설법하는 것을 전법이라 하느니라.
용어의 뜻을 찾아도 그것이요, 불광법회 본래의 뜻을 본다 해도 세상에 법을 널리
퍼져가게 하는 그것이다.
'비로자나부처님'께서는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함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시는 부처님이 아니시던가?
중창불사를 하면서 스님들께서는
이 모든 의미를 아시기에 그 뜻을 세우시고 새로 건축된 터전에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또한 현판엔 '전법도량'이라 새기어 놓으신 것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지금 불광의 현실은 이 거룩한 뜻에 어긋나 있음을 실감합니다.
불광 바라밀 행자들의 유일한 염원은,
이 거룩한 전법도량에서 법이 널리 퍼져 나아가게 하는 법회가 여법하게 열리고,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이 시기에 모두가 행복하게 살게 되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그것뿐이라는 것을......
마하반야야바라밀.
우리 모두 정법호지 발원에 동참하여 빛나는 한국불교의 새 길을 닦습니다.
첫댓글 다음주에는 보광당에서 실시간 유튜브 방송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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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영상으로 불광법회 이뤄주신 모든 불광 보현행자님들께 감사합니다
혜담스님이 계셔서 불광법회가 이뤄지네요 스님께도 감사합니다..()()()...
잘 정리해주신 마음님 덕분에 유튜브법회가
한층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성전을
쇠사슬로 꽁꽁 묶을수록
마하반야바라밀의 진리광명은
더욱더 밝게 영원히 빛날것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