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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조시 초청 세일링 후기(돌아오는길)
9/4 (일)
아침이 휠씬 지난 것 같은데도 시계가 없어서 도무지 몇시 인지 모르겠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후라 일어나기도 싫고 해서 계속 누워 있었다. 박에서 웅성웅성 하며 분명 나를 찾는 것 같다. 일어나 문을 여니 광섭이와 범진이 윤일이등이 나를 한참 찾았다고 한다. 자기들은 벌써 아침 먹고 밖에 구경 간단다. 시간을 물어 보니 9시 30분이 넘었단다.
부랴부랴 씻고 옷 입고 김선장님 방에 들렀더니 김선장님도 할일 없이 방에 계신다. 밖에 나간다고 했더니 김선장님도 같이 가잔다. 김선장님과 중국 요트 클럽에서 만든 요트하버를 둘러보며 우리의 현실을 한탄했다. 해금강호텔로 돌아와 인터넷부스를 찾으니 업어서 호텔보이에게 인터넷 할 수 있는 곳을 물으니 자기 직원 방에 있다고 잠깐 하라고 해서 김선장님과 같이 날씨와 기상정보등 점검하고 점심 먹으로 식당으로...
12시에 점심을 대장금식당에서 먹고 버스를 대여하여 노산관광하기로 하였다. 17인승의 렌탈 버스는 비교적 세차 였으며, 노산까지는 약 30-40분 정도 소요 됐다. 가는 길에 노산입장하기위한 버스입산허가 같은 것을 받았으며, 노산입구에서도 입장료를 지불하고 입장했다.
노산의 앞쪽 주차장에 도착하여 우리의 가이드 미영양이 케이블카를 알아보았으나 태풍나비의 영향으로(바람이 세서) 케이블카를 운항하지 못한단다. 노산의 후면에 있는 케이블카는 운행한다고 하여 다시 버스를 타고 노산후면의 케이블카에 몸을 실고 산행을 시작했다.
중국 내에서도 명산으로 통하는 노산은 1982년 중국 국무원이 중국최초로 발표한 국가풍경명승지 이며 국가지정 관광지로서 [해상명산제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주봉인 거봉의 높이는 해발 1132m이고 중국의 해안선에 위치해 있는 산들 중에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산동반도의 동서부에 위치해 있고, 황해에 인접해 있으며, 총 면적은 1,133 ㎢이다. 특히 노산의 도교 사원은 매우 유명하다. 그 옛날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할 목적으로 노산에 사절단을 파견했는데, 산의 곳곳에 남아 있는 비문들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준다.
케이블카는 우리의 스키장 리프트 였으며 두 사람씩 타게 되어 있었고, 올라가는 중턱쯤에서 내리고 또 탈 있게 시설이 되어있었으며 케이블카 끝까지 약 1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리프트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 올라 가다보니 손전등을 파는 곳이 여러 곳 이었다. 아마도 동굴이 있나보다 예상하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 올라가니 역시나 동굴 같은 것이 앞을 가로 막는다.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어두워서 갈수가 없다. 나는 다행히 카메라 후뢰시를 튀겨가며 들어가니, 나중에는 다시 박으로 나오는 길이어서, 후미 일행들에게 올라오라고 신호하고, 선두에서 올라가며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잠시 후 일행이 모두 올라와서 오이와 수박등 간단한 먹거리 등을 파는 곳 옆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바위에 걸터앉아 아일랜드 한선장님이 수박과 오이를 쏘셔서 한쪽씩 나누어 먹으며 바라보는 바다는 푸르고 아름다웠다(한국쪽).
입산금지 표시 있는데 까지 올라갔다 다시 옆길로 돌아 하산을 하고나니 중국에서 사업하시는 최부회장님의 선배님께서 저녁을 초대하셔서 노산 옆에 있는 산장으로 가서 양고기 샤브샤브를 대접 받았다. 처음 먹어보는 양고기 샤브는 부드럽고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그 선배님께 감사를 드린다.)
저녁 식사후 돌아오는 길에 그 선배님의 샾에 들러 쇼핑을 하고 8명이서 발 맛사지 집으로 직행했다. 10인 단체권(200원-우리 돈으로 이만 칠천원정도. 1인권은 40원) 티켓을 사서 맛 사지 받고 호텔로 돌아 왔다. 작년에 왔을 때는 조금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올해는 별로 덤덤하였다.
젊은 친구들이 나이트 가자고 조르는 것을 참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9월 5일(월) 7시에 기상하여 샤워후에 돌아다니며 기상하라고 문을 두들기고 잠시 기다리니 모두 일어나 아침 먹으로 길 건너 요트클럽하우스 옆 중국식당으로 같으나 문이 잠겨 있어서, 다시 돌아와 호텔 보이에게 따졌더니 9시에 식사 준비 된다고 기다리란다.
다시 각방에 들어가 쉬다가 9시 되어서 식당으로 가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각자 자유시간 갖기로 하고, 나는 한선장님과 찌모루 짝퉁시장에 가서 선물등 구경하기로 했다. 한선장님 다기 셑트를 밀고 댕기고 열심이 흥정 하신다. 가격이 맘에 안들면 가는 척 해가지고, 다시 부르면 또 가서 깍고, 하기를 여러번 드디어 월래 부른 가격의 1/4이 되셨는지 흥정이 끝난다.
오후에는 일조시로 돌아가기로 했음으로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서 점심을 해금강에서 먹고, 젊은 친구들이 전신 맛사지 끝나고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2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
2시 반에 버스가 출발하여 중간에 까르프 들러서 돌아갈 때 식량과 준비물등을 쇼핑하기로 하고 까르프에 들렀으나 우리팀(아일랜드)은 과일종류와 빵등 행동식만 준비하기로 했다. 돌아갈 크루도 3명 뿐이고 하여, 밥해먹고 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다.
쇼핑이 끝나고 바로 출발하여 일조시 요트 하버에 18시에 도착하여 짐을 배에 옴기고 링하이호텔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제 내일 돌아갈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서 최사장님과 최사장님 후배님등 여럿이서 호텔로비의 바에서 맥주를 12시까지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9월 6일(화) 07:30 분에 기상하여 08:00에 호텔조식을 먹고, 김선장님과 최부회장님 그리고 한선장님이 모여서 출항회의를 간단히 하였다. 김선장님은 밥먹고 나가서 수속하고 바로 가자는 쪽이시고, 한선장님은 가급적이면 바다에서 한밤이라도 덜 자게 내일 새벽에 떠나자고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팀(아일랜드)이 크루가 3명 뿐이라 야간항해에 부담이 많이 되는 까닭이다. 김영호 선장님도 바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한선장님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 내일새벽 일찍이 떠나기로 합의하고 여장을 정리하여, 체크아웃하고 호텔을 나와 요트로 이동했다.
요트에 도착하여 물도 가득 체우고 기름도 주유하고 배도 손보는 등 출항준비를 하며, 점심은 마지막 남은 감자를 삶아서 먹었다.
이번 일조시 행사 관계자께서 너무 대접을 잘못했다며 오후에 잠깐 접견하자는 전갈이 와서 14시에 대회본부사무실로 김영호선장님 최상락부회장님 한용섭선장님 그리고 저와 우리의 통역 최미영양이 함께 갔다. 사무실에는 세계요트연맹회장(네덜란드인)과 또 다른 유럽쪽 여자임원이 있었으며, 중국 측은 일조시 요트협회 관계자 두 사람과 통역원 이렇게 하여, 영어 통역과 한국어 통역, 중국어 통역 등이 참석하여 말로만 듣던 다중 통역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일조시 당국의 이번행사에 와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말이 있었고, 우리 측에서도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서로 오갔으며, 일조시측에서 앞으로 매년 이런 행사를 일조시 아니면 청도시에서 할 예정이니 참석해 달라는 말과 함께, 서로 방문 협약(안) 같은 것을 만들어서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서로 유대관계를 갖자는 제의가 있었으나, 우리 측에서 앞으로 초청해 주면 언제든 올 것이며, 서로간의 협약이나 그런 것은 차차 준비하기로 이야기 하였다.
마지막으로 일조시 측에서 우리에게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하여, 일조시 요트하버를 유명한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위에, 세계요트연맹회장등 관계자들이 싸인을 한 족자 걸게 그림을 선물 받고, 기념사진 촬영 후 돌아 왔다.
15:30분에 출국수속(C.I.Q)을 하고 저녁은 모처럼 요트하버에서 오션아가시와 아일랜드가 함께하기로 하고 각자 저녁준비에 들어갔다. 19시에 오션아가씨 옆 하버에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밥이 꼬두밥이 되어서 낭패였다. 작은 압력밥솥에 너무 많은 인원의 밥을 한꺼번에 하다보니 물 조절을 잘못한 것이다.
찌게는 아가시 쪽이나 우리쪽이나 모두 김치 찌게 였으나, 넣은 재로가 달라서 오션아가시쪽은 돼고기와 꽁치를 우리쪽은 꽁치만 넣어서 서로 다른 맛이 났다. 여기에 곁들여 한국에서부터 가지고온 앉은뱅이 술 이라고 하는 한산소곡주까지 한잔 곁들이니 천하가 부럽지 않았다. 내일 새벽 기상을 위하여 일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돌아다니다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9/7(수) 05:50 기상. 밖의 소리를 듣고 주섬주섬 일어나 출항 준비를 했다. 아침이라 바람도 차갑게 트껴져 등산용 쟈켓을 입고 밖을 보니 날이 많이 밝아 졌다. 오션아가시가 먼저 밧줄을 풀고 나간다. 그런데 중국 일조시 당국에서 에스코트해준다고 기다리란다. 06:30분이 지나서야 중국의 안내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빨리 준비하고 나오지 않은 중국에 짜증이 낫지만 마중해 준다는데 참을 수박에...
07시쯤 중국 안내선 돌아가고 우리는 침로 70도로 하고 우리 아일랜드가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07:30짚세일 올리니 속도 7노트 정도 나온다. 햇빛가리는 천막을 쳐서 햇볕을 차단하니 너무 좋다.
무료하여 루어 낙시를 준비하여 끄심바리를 설치해두었다.
오션아가씨가 계속 뒤쳐지더니 9시에 완전히 시야에서 안 보인다. 오늘 점심은 어제 먹다 남은 감자와 사과로 해결 했다. 태풍 나비가 지나간 뒤라 그런지 너울은 있는데 바람은 별로 없다. 심심하여 끄심바리를 잡아당겨 보니 고기는 없고 고기의 아가미만 시뻘건 큼지막 한게 걸려있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하랴. 그렇다고 속도를 늦추어 낚시하며 갈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19:00 해가 지기 시작한다. 범진이와 둘이서 어제 저녁에 한 꼬두밥을 찌게와 함께 데워서 먹으니 별미다. 태풍나비가 지나간 뒤의 일몰이라 그런지 너무도 아름다운 황혼이다.
9/8(목) 01:00 범진이와 교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일 없이 잘 가기를 바라며... 06:40에 눈을 떠 밖으로 나왓다. 주변에 중국 쌍끌이 어선이 많다. 아침은 식은 밥에 찌게 남은거 데워서 먹었다. 그래도 너무 맛있다. 쌍끌이 어선에 신경쓰며 탄도를 향해 고~ 고~.
14시에 중식은 컵라면으로 하고 후식은 사과로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석식은 한선장님의 복음밥 요리를 맞보았다. 밤이 되자 한국 오징어 선단의 환한 불빛이 우리를 인도한다... 계속되는 항해에 조금 힘들어 22:00시에 잠자리에 먼저 들었다.
9일(금) 01:00에 기상하여 초롱초롱한 별들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드디어 오늘 탄도항에 입항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힘이 난다. 끝없는 바다에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머릿속을 맴도는 노래가 있다.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
슬픔만 남아 요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 까지/
지난겨울 눈 내리던
창가에 앉아서
단둘이 나눈 영원한 약속
잊을 수가 없어 요/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별은 나의별 저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 까지/
한참을 흥얼대며 노래를 했더니 목이 많이 잠기고 밤의 참 기운에 감기가 온 것 같다. 05:00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밖이 소란스럽다. 오션 아가씨 쪽에서 문제가 있나보다. 일어나야 하는데 하면서도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07시가 되서야 일어났다.
아침은 한선장님께서 쌀을 싯어 밥을 짓고 긴 요트 여정의 마지막 밥을 준비 하여 맛있게 먹었다.
10시가 조금 넘으니 풍도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12시 풍도를 돌아 탄도 항으로 우리는 직행하고
아가시호는 풍도 뒤에서 새벽에 걸린 그물 등을 제거하기로 하여 우리가 먼저 탄도로 향했다.
풍도와 탄도 중간쯤오니 회장님 배와 E2 박선장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중국으로 갈 때도 마중 나오신 두 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14:30 앙카링하고 컵라면으로 간다하게 중식을 해결하고 인천으로 가서 입국신고 하고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이번 일조시의 항해에 함께해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청도의 김진수사장님과 최미영양에게 감사드리며,
김영호부회장님, 최상락부회장님, 한용섭선장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