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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여행 이야기 (06.10.18-10.23간)
(인천공항 출국장 : 10월18일 아침)
10.18일 아침 07시15분경에 인천공항 3층 출국장 K-25 화물탁송처 앞에 집사람과 함께 도착해보니 같이 갈 공로연수 일행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했다.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약속시간인 07:10분보다 약 5분이 늦었는데 그 5분이 늦었다고 이 사람들이 딴 곳으로 가버렸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동행 가이드인 금성관광 직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출국 대기자들과 섞여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등잔밑이 어둡다거나 업은 애기 찾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보안검색대,출입국심사대를 거친 뒤 태국항공사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곳인 32번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다가 탑승했더니 09시40분경에 비행기는 활주로를 이동하기 시작했다.비행기 뒤쪽 창가인 a석에 앉은 덕분에 비행기 이륙시 주날개가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비행기 주날개의 앞부분은 고정되어 있지만 주날개의 뒤부분은 조정석 조종사의 조작에 의해서 상하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륙시 400명이상이 탄 이 거대한 비행기가 사뿐히 활주로를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는 힘은 비행기 주날개 뒷부분을 상하로 조정할 때 생기는 양력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인데 이 양력이란 힘이 이렇데 거대한 비행기가 땅어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이 조그만 주날개의 뒤부분에서 발생하는 양력이 어떻게 이 거대한 비행기 동체의 무게를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힘이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 관찰해 보니 주날개 뒷부분의 움직이는 정도가 크지도 않고 약간 벌어지는 정도인데 이 거대한 비행기 동체를 어떻게 하늘로 날아오르게하는 힘이 생긴다는 것인가.......
(한반도 상공에서 내려다본 풍경 : 10월18일)
인천공항을 이륙한 태국항공기는 기내 안내 화면을 보니 충남 당진 상공,전북 군산 상공,전남 무안 상공과 제주도 상공을 지나는 것으로 표시되었다.그러나 비행기 차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지상의 구조물은 도로,강,촌락,도시의 집들인데 그것을 보고서는 충남 상공인가 전북 또는 전남 상공인가를 구별할 수가 전혀 없었지만 제주도 상공을 지날 때는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과 서귀포 시가지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백록담은 마치 푹 패인 국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 저것이 한라산 백록담인구나 하고 금방 알아 볼 수가 있었다.제주도의 한라산 남쪽으로 보이는 서귀포 시가지는 마치 군데 군데 널빤지를 깔아 놓은 것 같았고 제주도 남쪽 해안선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공해상의 상공에서 내려다본 풍경 : 10월18일)
제주도를 지나 공해상을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많은 구름들은 마치 산봉우리 같은 구름도 있고,솜털 같은 구름도 있으며, 눈송이 같은 구름도 있는데 구름의 형태는 비행기가 지나가는 위치따라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조각작품들처럼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비행기가 동지나해의 구름이 없는 상공을 지날 때는 널다란 망망대해가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보였다.바닷가 해변을 산책할 때 해변으로 몰려들었다가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 바다는 마치 용틀임하는 괴물을 연상시키지만 남지해 상공의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망망대해는 한없이 온순하고 잔잔한 호수 그 자체였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면서 선상에서 보면 하늘과 바다를 명확히 구별하는 수평선이 한없이 아름다워보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동지나해 상공을 날면서 기내 차창 밖으로 동지나해를 내려다보니 어느 게 하늘이고 어느 게 바다인지 전혀 구별되지 않고 온통 모두가 푸른 하늘같이 하나로 연결되어 보였다.
(항공기내 분위기 : 10월18일)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던 날인 10월18일 07시10분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잠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기내에서 잠을 좀 자려고 잠을 청해 보지만 기내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간식 제공, 커피 제공, 점심 제공 그리고 다시 빈 그릇 회수해 가느라고 뻔질나게 들라날락하는 바람에 진득하게 잠을 청할 기회도 없었다.
(방콕 공항 화장실에서 생긴 일 : 10월18일)
방콕 공항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자 화장실 수도꼭지 앞에 서서 물이 나오도록 하는 버튼을 아무리 찾아도 버튼을 찾을 수가 없었다.이상하다 분명히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 나오도록 하기도 하고 다 사용한 뒤에는 물을 잠그는 수도꼭지 버튼이 있을텐데 이 버튼을 찾을 수 없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이것 저것을 만져보고 두둘겨 보고 확인해도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질 않했다.나중에 보니 수도꼭지 하단 전면에 조그맣고 시커머케 표시된 것에 손을 대고 약 5초 정도 기다리니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한참 동안을 얼마나 당황해 했던지를 생각하면 몹시 쑥스럽기도 했다.
(방콕에서 캄보디아 씨엠리앱 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 10월18일)
방콕 공항에서 다시 프로펠러 여객기로 갈아타고 캄보디아의 씨엠리앱 국제공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집사람은 창가로 앉고 나는 통로쪽으로 앉았는데 비행기 차창밖을 구경하던 집사람이 갑자기 내 귀에다 대고 귀속말로 “여보 당신이 이렇게 살아 있어서 같이 여행을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간경화로 죽어야 할 남편인 내가 이렇게 살아서 같이 해외여행를 하고 있으니 무척 행복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이렇게 행복해 하는 집사람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감에 젖었다.
방콕-캄보디아의 씨엠리앱간 비행기 속에서 기내 차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캄보디아 땅은 온통 홍수로 범람한 들녘이 끝이 없어 보였다.아무래도 이상해서 기내 승무원을 불러서 기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저것이 물이냐 즉 강물이 범람한 것이냐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것이었다.나중에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캄보디아는 관개시설이 미비해서 이렇게 홍수가 범람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며 그렇다보니 단위면적당 쌀의 생산량은 태국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이었다.저렇게 커다란 들녘이 온통 홍수로 범람한 상태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온 나라가 온통 난리일텐데 캄보디아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일이라니.......
(캄보디아 씨엠리앱 국제공항 도착 : 10월 18일)
캄보디아의 씨엠리앱(siem reap) 국제공항에서 캄보디아 당국의 입국검사대를 통과하니 이곳 시간은 10.18일 오후 16시20분이었다(한국시간 오후 18시20분).국제공항 치고는 너무나 한산하고 초라했다.비행장에 대기하고 있는 프로펠라 비행기 한 대와 우리가 타고온 프로펠라 비행기 한 대가 전부였다.공항 입국심사대의 캄보디아 출입국사무소 여직원들의 얼굴은 거무잡잡하고 나이도 많이 들어 보였지만 그들 앞에 놓인 컴퓨터는 최신형 컴퓨터로 보였다.공항 대기실 한쪽에는 “angkor world heritage site welcomes you(앙코르 세계 문화유산 지역을 찾아온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라는 영문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캄보디아 씨렘리앱 국제공항에서 엠푸리스 호텔까지 이동 : 10월18일)
캄보디아의 씨엠리앱 국제공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씨엠리앱 엠푸리스 호텔로 이동중에 현지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당부했다.첫째 여권을 분실하지 않도록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여권을 분실하면 분실된 여권은 중국인들에게 매매가 되어 나쁜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나중에 그 피해가 분실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둘째 물은 아무것이나 절대 먹지 말고 꼭 여행사 측에서 사서 공급해 주는 물만 마시라고 당부했다.셋째 관광지에는 한국말을 한 두 마디씩 잘 하는 잡상인들이 많으니 함부로 물건을 사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캄보디아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두가 태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며 심지어 전기까지 태국에서 수입하니 전기세가 비싸서 전기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동차용 밧데리 전기를 일반 가정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씨엠리앱이라는 도시는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크메르 대제국 때의 수도였고 이 도시에 앙코르라는 유적지가 있다고 했다.크메르 대제국 때의 수도 씨엠리앱은 인구가 일백만이 넘었는데 그 시대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인구 50만명을 넘은 곳이 없었으니 번성기의 씨엠리앱 시가 얼마나 화려했겠느냐고 상상해 보라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 앙코르 파워 뷔페 식당에서 저녁식사 : 10월18일)
씨엠리앱 시내 엠푸리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간 쉬었다가 시내에 있는 앙코르 파워(angkor power)라는 뷔페 식당으로 이동해서 저녁식사를 먹으면서 압살라 무희 공연을 감상했다.압살라는 천상이라는 뜻이고 압살라 무희는 천상의 무희란 뜻으로서 캄보디아의 전통 민속 무희였다.무대 오른쪽에서 대여섯명의 남녀 집단이 전통악기를 켜면서 노래를 불러주면 그 가락에 맞추어 남녀 무희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무대 중앙에서 느릿 느릿한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여기에 출연하는 남녀 무희들은 나이가 10대쯤 들어 보이는 데 정말 깜찍하고 예뻐보였다.시종일관 강약없이 평범하고 독특한 음정에 맞추어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춤을 추면서 빙빙도는 전통 민속 춤이었다.
현지 가이드는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캄보디아 인사말을 몇마디 가르쳐 주었는데 캄보디아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구별없이 만나거 헤어질 때 자주 사용하는 “안녕하십니까”에 해당하는 말이 “섭섭 하이”라고 하며, 우리말의 “감사합니다”나 영어의 “땡큐”에 해당하는 말은 “옷끈 지란”이라고 하면서 캄보디아 현지인에게는 가급적 캄보디아 말을 사용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의 앙코르 톰 관광 : 10월 19일)
10.19일 오전 08시30분경에 일행은 버스를 타고 “앙코르 톰”이라는 크메르 대제국의 왕이 살았던 도성을 돌아보았다.현지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앙코르는 도심이란 뜻이고 톰은 거대한이란 뜻이니 앙코르 톰은 거대한 도심의 도성이란 뜻이라고 했다.앙코르 톰이라는 도성은 동서남북 4개의 문과 승리문이라는 1개의 문을 포함해서 모두 5개의 큰 문이 도성 안팎으로 연결되는데 우리 일행은 그래도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남문으로 들어갔다가 승리문으로 나왔다.
일행은 앙코르 톰이라는 도성 안에 있는 바이욘 사원을 돌아봤다.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건축자재용 돌에는 유럽에서 사용했던 것이 석회암이고 이곳 크메르 대제국인들이 사용했던 돌은 사암이며 우리나라에서 사용했던 돌은 화강암인데 화강암으로 조각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었다.크메르 대제국인들이 축조했다는 바이욘 사원 벽에는 수많은 당대의 생활상과 전투장면의 조각들이 각인되어 있는데 문제는 이 조각들을 먼저 각각의 돌에 각인을 해서 그 조각품이 각인된 돌들을 벽에 붙였느냐 아니면 먼저 수 많는 돌들을 벽에 붙인 뒤에 그 위에서 각각의 조각들을 각인했느냐가 오늘날 후세인들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아직도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그리고 이 바이욘 사원을 축조하는데 사용된 많은 돌들을 어디서 어떻게 운반해 왔느냐도 후세인들의 관심사라는 것이었다.이 바이욘 사원을 중심으로 반경 45킬로미터 이내에는 산이 없는데 어디서 이런 돌들을 운반해 왔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앙코르 톰내의 바이욘 사원은 캄보디아 왕국역사에 나오는 자이야 바르만 7세 왕이 건립한 사원인데, 자이야 바르만 7세 왕은 캄보디아의 똔레샵 호수(캄보디아 최대의 자연 호수)에서 참족들(베트남인과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참족이라함)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두었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국교인 흰두교를 대승불교로 바꾼 왕이며, 자신이 문둥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는데 병치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 왕이었기 때문에 경내에는 문둥병상이 조각되어 있기도 했다.그리고 이 사원의 건축물 군데군데에 연꽃 무늬 조각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사원을 건립할 당시에 자아야 바르만 7세 왕이 이미 국교를 힌두교에서 대승불료로 바꾸었기 때문에 권력의 힘에 의해서 이 사원을 불교 사원으로 지었지만 종교라는 것이 칼로 자르듯이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흰두교의 생활습관들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훌룡한 유적지가 전혀 보존 관리되지 않고 많이 훼손되어 버렸다는 점이었다.현재의 이러한 관광유적지 관리업무도 캄보디아인들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베트남 회사에 위탁해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는 1953년에 독립해서 시아누크 왕의 왕정이 계속되다가 론놀 장군의 쿠데타로 왕정이 붕괴된 뒤 다시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 대학살 및 그후 각정파간의 내전을 겪으면서 이렇게 빈곤한 국가로 전락되었다고 했다.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잔재의 대표적인 것이 캄보디아 어디를 가나 자주 눈에 띠는 바게뜨 빵집이라고 했다.
론놀장군에 의해서 축출된 시아시아누크 왕은 한때 북한 땅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시아누크 왕실이 복원되었지만 왕에게는 실권이 없고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는 입헌군주제 정체를 가진 the kingdom of cambodia 가 정식 국호라는 것이었다.캄보디아는 인구가 약 300만명으로 추산되고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200달러 수준이며 현재의 왕은 아직 여자와 결혼을 하지 않은 호모인데 이곳 동남아인들은 호모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의 디프롬 사원 관광 : 10월 19일)
앙코르 톰을 구경한 뒤 일행은 캄보디아에서는 저주받은 사원으로 명명되는 디프롬 사원으로 이동했다.이 디프롬 사원도 폐허가 된 사원인데 앙코르 톰 도성을 구축한 자이야 바르만 7세 왕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서 건립한 사원이라 했다.그런데 이 사원의 석재 축성은 나무뿌리들이 파고 들어 붕괴된 곳도 있고 붕괴될 위험이 있는 곳도 군데군데 눈에 띠었다.지금 시점에서 이 나무를 제거하면 축성이 당장 붕괴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방치해 두고 있다고 했다.이렇게 나무 뿌리가 사원 건축물을 휘어감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캄보디아인들은 이 사원이 신의 저주를 받은 사원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이 사원의 뒤쪽에는 통곡의 방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방에서 자기 가슴을 두드리면 한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슴에서 큰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내가 이 방에서 내 가슴을 두드려보니 상당히 큰 소리가 나는 것이 나도 한이 많았던 사람인가 싶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의 앙코르 왓트 사원 관광 : 10월 19일)
다음에는 그 유명한 앙코르 왓트 사원 유적지로 이동했다.앙코르 왓트 사원 입구에서 호수를 건너는 약 30미터 폭과 길이가 약 100미터 정도되는 다리가 있고 이 다리를 보도로 건너서 앙코르 사원으로 들어 갔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방문자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 일행은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오른손 주먹을 쥐고 땅바닥에 세 번을 쳐 박는 의식을 치르고 앙코르 왓트 사원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넜다.다리의 좌우측으로는 커다란 호수 물이 가득히 담겨 있지만 이 다리 아래있는 호수 물은 다리밑에서 서로 교차해서 좌우측으로 흐르지 않도록 막혀 있다고 했다.
앙코르는 도심이라는 뜻이고 왓트는 사원이라는 뜻이니 앙코르 왓트란 도심속의 사원이라는 뜻으로서 세계의 불가사의가 되고 있는 것은 이 사원의 건립 과정에 대한 기록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이 앙코르 왓트 사원을 방문한 사람은 불치병으로 죽는다는 전설 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어서 수백년 동안 숲속에 묻혀버렸는데 후에 프랑스인 헨리 모호가 지금의 앙코르 왓트 사원을 발견해서 세상에 알리면서부터 세인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앙코르 왓트 사원을 발견해서 세상에 알린 프랑스인 헨리 모호씨도 의문의 병을 앓다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앙코르 왓트 사원의 규모는 가로 1.5킬로미터 세로 1.3킬로미터의 평방 구역안에 67미터 높이의 탑과 사원을 만들었다. 이 사원의 외곽으로는 사방을 뺑뺑 돌면서 폭이 100미터가 넘는 호수를 파서 이 호수에는 항상 물이 담겨 있도록 만들었다. 이 호수 속에 물고기도 많이 살지만 낚시를 좋아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 호수를 경건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호수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당대의 캄보디아인들은 이 사원의 외곽으로 만들어진 호수가 신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장벽으로 여겼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불가사의는 이 앙코르 왓트 사원을 건립한 왕은 수이아바르만 2세 왕이었고 이 왕의 재위기간은 35년이었는데 이 사원을 건립하는데 32년이 걸렸다고 했다.그런데 이 사원을 설계해서 건립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약52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것이 일본 학자들의 판단이기 때문에 이렇게 단기간에 거대한 사원을 어떻게 건립할 수 있었는가와 설계도가 있었는가 설계도가 없었는가 라는 점이고, 두 번째 불가사의는 이 사원을 축조하는 데 사용한 돌들을 어디서 어떻게 운반해 왔는가 하는 점이라고 했다.이 사원을 중심으로 반경 45킬로미터이내에는 돌을 공급할만한 산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세 번째 불가사의는 이 사원의 중심부에는 67미터 높이의 탑이 있는데 이 탑을 어떻게 쌓아 올렸는가 하는 점이라고 했다.현지 가이드는 이 탑은 사람이 만든 건물이 아니고 신이 만든 건물이라고 결론짓기도 했다.
앙코르 왓트 사원의 용도는 수이야바르만 2세 왕이 생존시에는 사원으로 사용했다가 이 왕이 죽은 뒤에는 흰두교 사원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된다고 했다.이 사원의 사면 회랑중에서 제1면의 왼쪽 회랑에는 라마야나 전설의 대서사시 내용을 조각했고,제1면의 우측 회랑에는 사촌 형제간이 왕위를 놓고 서로 쟁탈전을 벌인 전투장면의 조각상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제2면 회랑 벽면에는 수이야바르만 2세 왕에게 충성하는 부하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제3면 회랑 벽면에는 지옥과 천당 세계의 생활상이 조각되어 있고 ,제4면 회랑에는 악신과 선신의 영생불노의 조각상들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이 조각상들은 무척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 했다.
사원 내부 1층은 미물계를 상징했고 2층은 평상계를 상징했으며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해서 만들었는데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무척 가파른데 그 각도가 약 80도 정도의 가파른 층계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것은 천상 세계란 일반 사람들이 쉽게 올라 갈 수 없는 세계임을 상정해서 이와같이 가파른 계단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이 3층의 천상계에서 제일 높은 탑이 지상에서 67미터이고 이것은 사람이 손으로는 만들 수 없는 건축물이라 것이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의 상황버섯 가게 관광 : 10월 19일)
앙코르 왓트 사원을 둘러본 뒤에는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 상황버섯 가게에 들려서 암세포전이 예방에는 상황버섯이 좋고 캄보디아산 상황버섯은 한국산 상황버섯과 효능이 비슷하다고 해서 한국사람들이 많이들 사간다고 했으며 우리 일행중에서도 두 분이 1킬로그램에 20만원씩 하는 캄보디아산 상황버섯을 사기도 했다.
일행은 다시 프놈바켄으로 이동했다.프놈은 캄보디아 말로 산이란 뜻이니 프놈 바켄은 바켄산이란 뜻이라고 했다.프놈바켄으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현지 가이드는 자기가 가이드 하면서 현지에서 경험한 캄보디아와 태국에서 사는 교민들의 나쁜 속성을 소개했는데 우리 한국 교민들에게는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원칙은 절대 성립될 수 없고 오직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원칙만 보편화된 속성이라고 했다.같은 한국 교민이면서도 이미 잘 된 사람은 다른 교민이 자기처럼 잘 되는 꼴을 거의 참지 못하는 것을 여러번 경험하고 내린 결론이라고 단정지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 바켄산 일몰 관광 : 10월 19일)
캄보디아 지평선으로 지는 일몰을 구경하기 위해서 지상 67미터 높이의 바켄산(프놈 바켄)을 걸어서 올라갔다.일몰을 보기 위해서 씨엠리앱 시내 앙코르 왓트 유적지를 찾아온 모든 관광객들은 거의 같은 시간대에 몰려들기 때문에 관광객들과 그들이 타고온 차량들이 무척 북쩍됐다.관광지마다 가서 보는 풍경은 이제 나이가 다섯 살 내외나 열 살 내외의 남녀 어린이들이 팔찌나 부채, 앙코르 왓트 관광 안내 책자를 내밀서“한 개 원 달러”“한 개 오 달러”라며 맨발의 처량한 눈빛으로 애원하듯이 사달라고 따라 붙는 광경이 부지기수였다.
바켄산으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현지 가이드는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를 한번 자세히 보라는 것이었다. 그 승용차 앞 뒤에는 번호판이 붙어 있지 않는 무적차량이었다.캄보디아에서는 이렇게 무적차량도 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경찰에게 적발되었을 때는 돈 몇푼을 집어주면 무사히 통과되기 때문에 저런 무적 차량도 캄보디아에서는 운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바켄산 정상과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무슨 제단이었던 석물 유적들이 널려 있는데 이것을 설명해주는 안내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정상에 올라 서니 사방이 온통 지평선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동쪽으로는 똘레삽 호수 물이 하얗게 보였고 남쪽으로는 앙코르 사원 건물 탑과 그 주변을 에워싼 호수 물의 일부가 아득하게 보였다.석양의 태양이 붉게 물들어 지평선상으로 조금씩 내려 오더니 지평선 넘어로 꺼지기 바로 직전에 구름에 휩씨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의 평양 랭면집 관광 : 10월 19일)
바켄산 구경을 마친 일행은 다시 버스로 씨엠리앱 시내의 “평양 랭면”집으로 이동했다.이 평양랭면집은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식당안에 들어서니 붉은 색 원피스에 “차명희, DPKR ”등의 명찰을 달고 시중을 드는 예쁜 아가씨들이 일곱명 쯤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그리고 나이는 모두 열일곱에서 열아홉쯤 들어보이는 아주 앳띤 얼굴이었다.무표정한 표정으로 잽싸게 음식을 날랐다.나중에는 이 아가씨들이 가수와 무희로 변했다.제일 먼저 한 아가씨가 무대에 올라서더니 “반갑습니다”라는 북한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댔다.이어서 무대 앞 공간에서는 다섯명의 아가씨는 춤을 추고 두 명의 아가씨는 단상에서 노래와 풍금을 켜면서 춤과 노래를 구성지고 경쾌하게 불러대면서 흥겹게 춤을 추었다.이때 춤추는 아가씨들의 표정은 살짝 미소짓는 표정으로 상냥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손님들에게 써빙할 때는 춤추거나 노래할 때의 상냥하고 미소짓는 표정은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다시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처한 상황에 따라 감정의 흐름이 단절적이고,또 이 무희들의 행동이 하나같이 일사분란했다.노래와 집단무용과 가야금 켜기 등의 과정에서 일곱명 쯤 되어 보이는 이 아가씨들은 철저하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이러한 일사 분란성과 감정의 단절성 속에서 우리가 은연중에 느끼는 비애는 이런 식당 종업원들에게 까지 북한 당국의 정치성과 집단성 같은 것이 철저하게 세뇌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 근교의 똘레샵 호수 관광 : 10월 20일)
10.20일 오전 9시30분경에는 아시아에서 러시아 바이칼호 다음으로 크다는 캄보디아 내륙의 똘레샵 호수 관광에 나섰다.이 똘레샵 호수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해면 수량이 불어나는 우기 때는 그 넓이가 우리나라의 경상남도 만큼이 커지는데 호수라기 보다는 바다라는 느낌이 들고 건기와 우기 때의 수량 차이는 약 3배 가량 나는 데 지금은 수량이 많아서 훨씬더 관광에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이렇게 큰 호수에 담기는 물은 어디에서 유입되는가 하면 라오스와 베트남 및 캄보디아 3개국을 경유해서 흐르는 메콩강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이곳 똘레샵 호수의 물도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는데 비가 많이 오는 우기 때는 메콩강물이 역류해서 이 똘레샵 호수의 수량이 엄청나게 불어난다는 것이었다.
똘레샵 호수가에서 배를 타고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는 뱃길의 좌측과 우측 수면에는 수상가옥들이 즐비해 있었다.수상 가옥들은 하나같이 남루하고 허름해 보이는 집들이었다.이곳 주민들이 이용하는 교회도 학교도 또한 수상 가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아무리 가난해도 습도가 많고 통행이 불편한 수상 생활보다는 내륙 생활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선상에서 보는 수평선은 끝이 없어 보였고 뱃길이 아닌 곳에는 수초들도 많았다.이 똘레삽 호수에 사는 수상족들은 캄보디아인들도 있고 베트남인들고 있는데 이들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배를 타고 호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선상에 떠 있는 선착장이 있고 이 선착장에는 관광객용 전망대와 기념품점과 음식점도 있었다.음식점에서는 이 호수에서 잡은 듯한 삶은 새우를 접시에 담아 무료로 술안주를 내놓기도 했다.일행은 이 삶은 새우를 안주로 해서 캔맥주 몇캔씩을 사서 마셨다. 또 이 호수에서 잡은 듯한 수십마리의 악어들을 물속에 가두어둔 창고도 있었다.크기가 약 1미터 이내로 보이는 이 악어들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죽은 듯이 꿈쩍도 하지 아니했다.이 호수위에 떠있는 선착창 주변에는 구걸하는 수상족들이 조그만 배에 벌거 벗은 어린애를 태우고 “원 달러,원 달러”하면서 허름한 옷 차림에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 모습이 처량하다 못해 애처롭게 보였다.똑 같이 한 세상을 살아 가면서 저렇게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인생도 있다는 게 지구촌의 모순이 아닌가 싶었다.
이곳에 사는 열 살 미만의 어린이는 웃통벗은 채로 고무 다라 같은 물통을 타고 막대기 하나로 노를 저으면서 선착장 주변을 잽싸게 돌아다니면서 웃음짓는 밝은 표정으로 관광객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고 무엇이라도 달라고 구걸하기도 했다.어떤 관광객이 1달러 짜리 지폐를 똘똘 말아서 물위에 던지자 그것을 서로 먼저 줍기 위해서 자기들 끼리 물위에서 노젓기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실은 쾌속정은 꼬리를 물고 계속 들어가는 배와 구경을 마치고 나가는 배가 줄을 이었다.
똘렛삽 호수상에 떠있는 선착장 구경을 마치고 다시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와 타고온 버스를 탑승하려고 하니 버스 앞에는 기념품을 사라고 몰려든 어린이들이 약 10여명은 되어보였다.이 어린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관광객 개개인들의 얼굴 사진이 각인된 쟁반접시였다.우리 일행이 똘레삽 호수 입구 선착장에 도착한 후 관광버스에서 내려 쾌속정을 타고 호수 깊숙한 물속에 떠있는 선착장에 들렸다가 똘레삽 호수를 구경하고 다시 버스로 돌아온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인데 그 사이에 우리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을 몰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서 이것을 재빠르게 현상인화까지 하여 사기로 된 쟁반 접시 중앙에 관광객 개개인 얼굴 사진을 각인시켜서 기념품 쟁반 접시로 만들었다.그리고 이 기념품 사기 쟁반 접시를 들고나와 자기 얼굴이 찍혀 각인된 관광객들에게 내보이면서 “3달러,3달러”를 외치는 것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내 얼굴이 각인된 하얀 쟁반접시를 들어 보이는 어린이가 눈에 띠어서 다시 버스에서 내려가 그 어린이로부터 3달러를 주고 쟁반접시를 샀다.이렇게 자기 얼굴이 각인된 쟁반 접시를 산 일행들은 상당히 많았다.비록 캄보디아가 현재는 이렇게 가난한 나라이지만 이들에게도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버는 디지털 카메라 사진기술과 도자기에 재빠르게 그 사진을 각인시켜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기민성과 기술의 정교함 등에서 무한한 가능성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비록 그 사진의 품질이 어느정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디지털 카메라로 관광객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서 이것을 재빠르게 사진첩으로 만들어 얼굴이 찍힌 관광객 본인들에게 되파는 상술은 태국 파타야에서도 낙하산 타기와 코키리 트렉킹 장에서 두 번이나 경험했다.이것은 동남아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발달한 일반화된 상술같았다.그러나 태국은 도자기에 각인해서 파는 것이 아니고 사진첩으로 팔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사기그릇 쟁반에 얼굴 사진을 각인시켜서 기념품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그 기술이 조금 더 발달한 것으로 보였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의 왓트바이 위령탑 관광 : 10월 20일)
똘레삽 호수 관광을 마친 일행은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에 있는 왓트바이 위령탑으로 이동했다.허름하고 조그만 위령탑은 폴포트 정권에 의해서 이곳 씨엠리앱 시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유골과 뼈를 탑 내부에 쌓아서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더 큰 위령탑은 프놈펜에 있고 이곳 씨엠리앱 시내에 있는 위령탑은 간이 위령탑이라고 했다.밖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그 유골과 뼈들을 볼 수가 있었다.동서남북 사면을 통해서 내부에 쌓아 놓은 유골과 뼈들을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관찰할 수가 있었다.폴포트 정권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희생된 인구가 적게는 약 1백만명으로 추산하기도 하고 많게는 2백5십만까지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시아누크의 캄보디아 왕정이 론놀장군의 쿠데타로 붕괴된 후 론놀정권이 미국과 합심해 북부 산악지방의 크메르 루즈 군을 너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민심이 론놀정권으로부터 이탈했고 이렇게 이탈된 민심을 기반으로 크메르 루즈 군이 정권을 잡게 되었는데, 이 크메르 루즈 정권 실세인 폴포트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데 지식인들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모든 지식 계급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으며 이때 이곳 씨엠리앱시에서 희생된 희생자 유골을 이 위령탑에 전시한 것이라고 했다.폴 포트 정권의 이런 만행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킬링필드이니 한국에 가면 이 영화를 꼭 한번 비디오로 사서 관람할 것을 현지 가이드는 우리 일행에게 권유하기도 했다.
그후 크메르 루즈의 정권 실세였던 폴포트는 베트남과의 국경분쟁을 자주 일으켜 베트남군에 의해서 추방된 뒤 캄보디아 내 4개 정파인 폴포트,시아누크,훈센,손장군 등이 연합하여 베트남군을 철수시키고, 4개 정파간에 내전을 혹독하게 치루고 난 현재는 캄보디아 국민당의 훈센이 실권을 쥐고 있으며 이 훈센 정권은 우리 한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한 시대를 움직이는 정권 실세의 영향을 받는 국민은 정권실세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 있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싶고 한 집단이나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발전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 건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 지뢰 전시장 관광 : 10월 20일)
캄보디아의 씨엠리앱 시내 간이 위령탑을 구경한 일행은 다시 내전을 겪으면서 수집된 지뢰와 무기들을 전시한 지뢰전시장으로 이동했다.전시장이라기 보다는 허름하고 낡은 집 창고였다.창고 여기 저기에 무질서하게 진열해 놓은 부비트랩과 수리탄 대전차지뢰 각종 포탄들을 보면서 전쟁과 내전을 경험한 캄보디아의 슬픔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전시장 입구에는 폴포트 정권 당시에 학살을 집행한 폴포트 군인들의 복장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소녀가 그당시 군인들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머리에는 캡을 썼고 목에는 붉은 색 목도리를 걸쳤으며 상하는 검은색 군복이었다.그 당시 학살을 집행한 군인들의 나이는 모두가 10대 군인들이었다고 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시내 근교의 버레이 저수지 관광 : 10월 20일)
다음은 캄보디아 출국 비행기 탑승시간까지는 시간이 약간 남아서 일행은 버스로 씨엠리엡 시에서 약간 떨어진 버레이라고 하는 인공호수를 찾아갔다. 이 인공호수는 11세기 중반에 건설된 가로 8킬로미터 세로 2.2킬로미터의 저수지로서 깨끗한 물의 저장고이며 인근의 쌀과 목초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물의 공급지라는 안내간판이 붙어있었다.강뚝에는 과일 파는 가게와 술집 등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일종의 유원지 같기도 했다.강뚝에 서서 바라보니 끝이 안보이는 저수지였으며 저수지 중앙에는 수초가 번성한 숲이 있었고 강가에는 조그만 배들도 묶여 있고 수문을 열어서 인근 들녘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로에는 물이 가득차 흐르고 있었다.이 호수가 어떤 호수이며 캄보디아 지도상에서 어디쯤에 있는가 하고 우리가 타고온 관광버스 안에 걸린 지도상에서 찾아보니 씨엠리앱 시의 동쪽에 있는 저수지이고 그 저수지 남쪽으로 똘레삽 호수가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아 똘레삽 호수 북쪽에 위치한 또 다른 인공 호수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캄보디아 씨엠리앱 국제공항 출국장 : 10월 20일)
캄보디아의 씨엠리앱 국제공항에서 10.20일 밤 7시30분 비행기를 타고 다시 방콕 국제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씨엠리앱 국제공항 출국장에 들어서니 캄보디아 씨엠리엡 국제공항은 입국할 때의 한산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출국장은 출국하려는 관광객들로 굉장히 번잡하고 분주했다.관광객들 중에는 서양인들도 많이 보였다.서양인과 동양인들이 반반씩 섞여 있는 것 같았다.캄보디아의 씨엠리앱 시에 있는 앙코르 유적지를 찾아보는 서양인들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캄보디아 당국의 출국심사를 마치고 비행기 계류장으로 들어서니 비행장에는 대기중인 제트 여객기들만도 대여섯대가 넘어 보였다.
캄보디아의 씨엠리앱 국제공항에서 우리 일행이 탄 비행기는 태국 국적의 bangkok airway라는 항공사 소속 제트 여객기였다.10.18일날 방콕에서 캄보디아의 씨엠리앱 국제공항으로 입국할 때는 bangkok airway 항공사 소속의 프로펠라 여객기였지만 거꾸로 출국할 때는 제트여객기였다.따라서 입국할 때 방콕에서 씨엠리앱까지 걸린 비행시간은 약 1시간 30분이었는데 출국할 때 씨엠리앱 공항에서 방콕 공항까지 걸린 비행시간은 30분이었다.프로펠라 여객기와 제트여객기는 비행 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방콕에서 육로를 이용해서 버스로 오는 데는 약 6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도로는 아직까지 비포장 도로이며 이 도로가 이렇게 비포장 도로인 것은 bangkok airway 항공사의 섭외 공작으로 도로 포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만약에 도로가 포장되면 항공기 이용 손님이 대폭 감소할 것을 우려해서 bangkok airway 항공사가 도로 포장을 방해하는 섭외공작을 캄보디아 정부 상대로 치열하게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사람 사는 곳은 어디를 가나 이렇게 경제적 이해 관계를 따라 물고 물리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캄보디아의 씨엠리앱 국제공항에서 10.20일 저녁 7시30분에 이륙한 bangkok airway 항공사 소속의 제트 여객기는 저녁 8시경에 방콕 상공에 도착했는데 저녁 8시경의 방콕 상공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방곡 시내의 야경은 정말 장관이었다.끝이 없는 전기불 야경이 어떤 곳은 도로변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동서남북으로 쭉쭉 뻗어 있는 모습과 그 사이 사이에는 무질서하게 사방에 뿌려진 전기불들이 서로 뒤엉켜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태국 방콕 비행장에서 파타야로 이동 : 10.20일 밤-10.21아침)
방콕 수바나붐 국제공항에서 태국 관광버스에 옮겨 타고 일행은 파타야로 이동했다.밤이라서 바깥 풍경은 전혀 구경할 수가 없었다. 파타야의 롱비치 호텔에는 밤11시경에 호실배정을 받아 투숙했다.10.21일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밖으로 파타야 시내를 내려다 보니 아침 햇살을 받은 파타야 시내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특히 해안선을 끼고 바다와 고층 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장관이었다.
(태국 파타야의 오전 : 10.21일 오전)
태국 파타야 시내 롱비치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일행은 호텔 바로 앞에 있는 해안가 해수욕장으로 나와 파타야시 앞 바다에 있는 산호섬으로 들어가는 쾌속정을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호텔과 파타야 해안가 해수욕장은 약 직선거리로 10미터정도쯤 떨어진 곳이었다.그 사이에는 호텔 영내 수영장이 있고 그 주변에는 일광욕 침대의자가 즐비해 있고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일광욕 침대의자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비키니 차림의 남녀들이 군데 군데 눈에 띠었다.롱비치 호텔 영내 수영장에 가득 찬 푸른 물빛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아보였다.
일행이 파타야시 앞 바다에 있는 산호섬에 들어가기 위해서 롱비치 호텔 해안선에서 쾌속정을 타고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 뒤로 돌아서서 바라보는 파타야 시내 전경은 정말로 한폭의 그림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수십층 짜리 호텔 건물과 우거진 숲과 해안선 및 바닷물이 조화를 이루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태국 파타야 앞바다에서 낙하산 타기 : 10.21일)
롱비치 호텔 해안선을 출발한 쾌속정은 파타야 앞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선착장에 도착하자 일행들은 쾌속정에서 내려 이 선착장 올라섰다.선착장 절반은 화장실과 대기실 의자가 준비되어 있고 선착장의 나머지 절반은 낙하산 타기를 즐기는 운동장이었다.일행들은 먼저 대기실 의자에 앉아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는데 ,이렇게 한번씩 낙하산을 타는 데 한 사람당 20달러씩 낸다고 해서 낙하산을 탈 사람의 신청을 받아 현지 안내인이 명단을 작성했다.한 사람씩 모자와 신발을 벗어놓고 앞으로 나가 현지 안내원들의 도움으로 낙하산에 매달리면 바다에 떠있는 쾌속정 보트가 이 낙한산 줄을 매달고 바다 위를 질주하자 낙하산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 오르니 낙하산에 매달린 우리 일행들은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쾌속정이 속도를 죽이면 낙하산을 탄 일행의 몸체가 바다위로 떨어져 발끝이 바닷물에 잠겨서 물 장구를 치자 쾌속정 보트가 다시 속도를 올리니 낙하산은 다시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이렇게 바다위를 몇 바퀴 돌고나니 쾌속정 보트가 낙하산을 선착장 운동장에 낙하산이 하강하도록 유도하자 선착장위의 현지 안내원들이 붙잡아 낙하산 고리를 풀어서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약싹 바른 현지 디지털 카메라맨은 낙하산을 타는 일행 하나 하나의 모습을 촬영했는데 처음에는 사진을 촬영하는 목적을 일행은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장사속으로 사진을 열심히 찍어 댔었다.산호섬을 빠져 나왔을 때 사진첩을 만들어 사진첩 한 개당 3달씩에 사라고 권유하자 대부분의 일행은 자기 사진이 들어있는 사진첩을 사지 않는 분이 거의 없었다.
(태국 파타야의 산호섬 해수욕장 : 10.21일)
다시 일행들은 낙하산을 탓던 바다위에 떠있는 선착장에서 쾌속정으로 옮겨타고 파타야 앞 바다에 있는 산호섬을 향해서 달렸다.넓은 바다위으로 쾌속정이 질주하자 일행중 어떤 여성분은 얼마나 행복했는지“내 배는 살 같이 바다를 달린다,산타루치아 ..... ”라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일행이 탄 쾌속정 배가 산호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수심이 너무 낮아 쾌속정 배 밑바닥이 모래밭에 닿기 때문에 일행들은 물속으로 내려서 무릎까지 빠지면서 산호섬 뭍으로 올라갔다.산호섬 뭍의 해변가를 따라 햇빛을 가린 천막이 길게 처져 있었고,그 천막 밑에는 의자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이 의자에 큰 타올을 깔고 우리 일행은 진을 치고 앉았다.
이곳 산호섬 해수욕장은 첫째 모래가 가느다란 떡모래라서 발이 모래속으로 전혀 빠지지 않했다.둘째 해수욕장의 경사도가 약 5도 정도나 될까 말까 할 정도로 편편해서 제트 보트처럼 가벼운 쾌속정 배도 해변가 가장자리까지 들어올 수가 없고 배를 타거나 내릴 때는 발을 물에 적셔야만 배를 탈 수가 있었다.셋째 바닷물이 무척 맑고 깨끗해서 수심 1미터 속 모래알까지 유리알처럼 들여다 보였다.넷째 기온은 한참 여름 기온이었다.이러한 조건 때문에 이곳 파타야 앞에 있는 산호섬은 천혜의 해수욕장 조건을 갖춘 곳이 아닌가 싶었다.
수영할 사람은 수영장으로 갔고 바닷속 체험을 할 사람은 바닷속 체험장으로 이동했으며 나와 우리 집사람은 제트 스키 보트를 탔다.제트 스키 보트를 타는 것은 한 사람당 20달러씩이어서 나와 우리 집사람이 제트 스키 보트를 타겠다고 신청했더니 그곳 안내인이 명단에 이름을 체크하고 제트 스키 보트 타는 곳으로 안내했다.제트 스키 보트에는 태국인 한 사람이 같이 동승해서 해수욕장 입구를 빠져 나갈 때와 돌아올 때는 태국인 동승자가 제트 스키 보트를 운전했고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내가 직접 제트 스키 보트를 운전했다.자동차 엑셀러레이터에 해당하는 버튼이 오른쪽 핸들에 달려 있는데 이것을 크게 누르면 엄청나게 제트 스키 보트가 가속되었고 가볍게 누르면 속도가 감속되어 속도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제트 스키 보트의 방향은 자전거 운전하듯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주면 그 방향으로 제트 스키 보트가 달려 나갔다.그런데 제트 스키 보트가 파도와 부딪치면서 생기는 충격이 엄청나게 크게 손으로 전달되어 왔다.그 충격과 함께 파도와 부딪치면서 생기는 물결이 운전석으로 달려들어 온몸이 바닷물에 흠뻑 적시어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파도와 부딪칠 때 생기는 충격파와 파도가 부서지면서 튀어 들어오는 바닷물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어째튼 제트 스키 보트를 운전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태국 파타야에서의 전신 맛사지 : 10.21일)
이렇게 낙하산 타기와 산호섬에서 해수욕을 체험한 일행은 태국에서 전신 마사지를 체험하기 위해서 파타야 시내에 있는 전신 마사지 장으로 이동했다.전신 마사지 장은 가운데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침상과 메트리스가 깔리고 그 위에 누우면 약 30대쯤의 나이가 들어보이는 태국 여자 맛사지사들이 들어와서 맛사지를 해 주었다.한쪽 침상에는 우리 일행중 여자들이 누었고 반대쪽 침상에는 우리 일행중 남자들이 누었다.맛사지는 약 2시간동안 계속되었다.현지 가이드는 맛사지 받는 동안은 절대 잠을 자지 말라고 당부했고 너무 아프게 주무르면 “살살”이라고, 너무 약하게 주무르면 “세게 세게”라고 말하라는 당부도 했다.맛사지를 받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현지 가이드의 당부대로 맛사지가 끝나자 우리 일행은 맛사지사들에게 3달러씩의 팁을 개별적으로 지급했다.입실할 때 여행사 측에서 일인당 얼마씩을 계산해서 맛사지집 주인에게 지급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일행은 약 3천원의 팁을 주고 2시간 동안 맛사지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우리 한국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태국 파타야에서 유명한 샤브샤브 요리집에서 점심식사 :10.21일)
전신 맛사지 서비스를 받은 일행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 로터스라는 영국계 체인점 편의시설내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태국식 야채 샤부샤브 요리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그런데 식당의 종업원의 서비스와 유니폼이 아주 독특했다.종업원들은 모두 10대쯤의 나이가 들어 보였고 영어로 말하는 내용을 금방 알아들었으며 유니폼의 색깔과 디자인이 아주 멋있어 보였다.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도 아주 멋있게 디자인되었고 치마와 상의 유니폼 디자인도 아주 멋있어 보였으며 유니폼의 색깔도 짙은 초록색인 것이 아주 멋있어 보였다.그리고 옆에 차고 있는 주머니 같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PDA였다.이곳 종업원들은 그 PDA를 이용해서 손님들의 주문과 계산을 하는 것 같았다.우리나라도 종업원들에게 PDA까지 지급해서 써빙하는 음식점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농룩 빌리지 관광 : 10.21일)
점심을 먹은 일행은 관광버스로 농룩 빌리지라는 태국 최대의 개인 농장을 찾았다.정문 입입구에는 영어로 “tropical garden and resort ”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좌우측 도로변에는 열대성 관상식물과 조각품들이 장관이었다.이곳은 우리나라 거제도 외도처럼 개인이 가꾸고 관리하는 조경단지인데 내부 깊숙한 곳에는 태국 전통민속 극장과 코끼리 쇼장을 만들어서 태국을 찾는 관광객들은 거의 모두가 태국의 전통민속예술 공연을 관람하려고 이곳을 찾는 다는 것이었다.하루 입장료 수입만도 2500만원에 이른다고 했다.관광객들이 타고 온 버스가 몹시 혼잡했다.극장안으로 들어가니 공연은 이미 시작되어 한참 진행중이었다.
공연 순서는 킥복싱,무사들의 칼 싸움,격투장면 등의 순서로 이어졌는데 이곳에서 진행되는 민속공연에는 무사들의 격투장면이 2번이나 공연되는 것을 보면서 태국에서는 무인문화를 중시했던 전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그러한 무인문화 중시 풍조가 결과적으로 태국의 주권을 지키는데 음양으로 공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태국이 외침을 받지 않고 정치적으로 독립을 유지해 왔던 것은 이런 전통적 맥락으로 보았을 때 거져 얻은 것이 아니었구 싶었다.
태국의 전통 민속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바로 민속공연 무대 뒤편에 있는 코끼리 묘기 대행진 쇼장으로 이동해서 코끼리 묘기 대행진 쇼를 관람했다. 코끼리들이 코로 화살을 쏘아 풍선터뜨리기,두 마리의 코끼리가 코로 아가씨들을 옮겨 나르기,골대에 골 집어넣기,농구대에 농구공 집어넣기,볼링하기 등을 하면서 성공시켰을 때는 사람들의 갈채를 받고 신이 나서 좋다고 춤을 추지만 성공시키지 못하면 시무룩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짐승에게도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농룩빌리지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현지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태국어 몇마디를 가르쳐 주었다.“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은 태국어로 “사와디 캅(남자가 말할 때),사와디 카(여자가 말 할 때)”라고 하고,“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태국어로 “코 큰 캅(남자가 말할 때),코 큰 카(여자가 말 할 때)”라고 말 하는 데 어떤 한국인은 “코 큰 캅”을 거꾸로 “큰 코 캅”이라고 말하기도 해서 태국인들을 당황시키기도 한다고 해서 일행은 한바탕 웃기도 했다.
(보석 전시장 :10.21일)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태국내 보석전시장을 들렸다.현지 가이드는 꼭 사시라고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니고 한번 둘러보시고 구경하시라고 간다는 천편일률적인 말을 반복했다.태국은 옛날부터 보석이 유명했으며 보석 가공사들의 핸드메이드 제품은 고가이기 마련인데 인건비가 싼 태국의 제품과 경쟁해서 이길만한 외국산 보석은 거의 없으니 기왕에 사는 보석이라면 태국에서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었다.수 많은 보석들이 진열장에 무수히 진열되어 있었지만 몸에 치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눈에는 욕심나는 보석이 하나도 없었다.집사람이 진주 목걸이에 탐을 내면서 5-6만원 주고 하나를 샀는데 집사람이 자기 돈으로 굳이 사겠다고 하니 모른체 하고 묵인하는 수밖에 없었다.예쁜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운동으로 몸매관리 잘 해서 건강한 신체를 가진다면 그것이 보석보다 몇 배가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알카자 쇼 구경 /alcazar show : 10:21일)
일행은 알카자 쇼를 하는 극장으로 찾아갔다.게이들의 쇼를 알카자 쇼라고 했다.남성으로서 여성이 되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했거나 여성이 되기 위해서 여성 홀몬제 주사를 맞고 여성화된 사람들을 게이라고 했다.동남아 국가중에서 태국만이 게이들이 가장 많은 국가인데 왜 태국에서만 이렇게 게이들이 많은 지 그 이유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으며 이런 게이들을 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없다는 것이었다.알카자 쇼에는 여자로 분장한 사람도 많고 남자로 분장한 사람도 많이 있는데 여자로 분장한 사람들은 외모로 봐서는 틀림없는 젊은 여성인데 이 여성들이 남자라는 사실은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알카자 쇼를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이 쇼 프로그램중에는 한국 아리랑 노래 장면이 1막 들어있는 것을 보면서 태국 관광사업의 손님 유치술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카자 쇼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자 극장 밖에는 방금전에 쇼단에서 화려한 무희를 펼쳤던 게이들이 “ 1 shutter for 40 baht”라는 피케트를 들고 자신들과 사진찍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관광객이 1200원을 내면 이 게이들이 같이 사진을 찍도록 포즈를 취해 준다는 것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 식사 파티 : 10.21일 밤)
알카자 쇼를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온 일행은 롱비치 호텔 별관 식당을 통째로 빌려서 저녁식사를 했다.중앙공무원 교육원측이 정부를 대표해서 60세로 공무원직을 퇴직하는 우리 일행들에게 합동 환갑잔치 파티를 겸한 저녁식사였다.특별히 준비한 환갑잔치 케이크와 삼페인까지 마련해서 간단한 합동환갑잔치 행사를 치룬 뒤에는 호텔측에서 준비한 노래방 기기를 이용해서 일행 21명은 흥겹게 노래와 춤으로 친목과 화합을 다지기도 했다.
(라텍스 매장 구경 : 10.22일 )
롱비치 호텔에서 이틀밤을 잔 일행은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 뒤 관광버스로 나머지 관광지를 둘러봤는데 제일 먼저 들린 곳이 라텍스 매장이었다.현지 가이드가 “라텍스 매장,라텍스 매장”해서 라텍스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침대위에 까는 매트리스를 라텍스라고 했다.라텍스 매장에 가면서도 현지 가이드의 똑같은 말은 “어르신들께서 꼭 사시라고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구경이나 한번 하시라고 들리는 것입니다”였다.이곳에서 파는 라텍스는 고무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고무제품이며 집진드기를 예방하고 쿠션이 좋으며 매트리스 규격이 5센티미터 두께로 싱글용은 약 432,000원이며 더불용은 1,080,000원이라고 했다.한국 백화점에서 파는 제품과 이곳에서 파는 제품의 다른 점과 가격 비교 등에 대해서 제품 설명자의 설명이 어찌나 그럴듯한지 이곳에서도 이 제품을 구입하는 일행도 있었다.
(코끼리 트레킹 : 10.22일 )
일행들의 건의로 이번에는 일정을 바꾸어 코끼리 트레킹 장을 찾았다. 관광객들이 코끼리를 타고 들판을 한바퀴 산책하는 곳이었다.코끼리 등에는 말을 탈 때 안장을 얹듯이 코끼리 등에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안장이 만들어져 있고 코끼리 머리위에는 코끼리를 통제하는 안내원이 앉았다.뙤약빛 아래라서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양산도 안장위에 준비되어 있어서 그 양산으로 햇볕을 가릴 수가 있었다.코끼리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 건물위에 올라가서 대기하고 있는 코끼리 안장에 앉으니 안내원의 신호에 따라 코끼리는 터벅터벅 걸었다.코끼리가 다리를 옮겨 놓을 때마다 안장을 통해서 엉덩이에는 상당히 큰 충격이 전달되었다.여기에서 관광객 트레킹에 동원된 코끼리는 10여마리였다.코끼리가 관광객을 태우고 승강장을 출발해서 들판으로 들어가자 들판 입구에서는 잽싸게 디카를 이용해서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댔다.트레킹을 마치고 휴게실 의자에 앉으니 트레킹 때 코끼리 타고 찍은 사진을 사진첩으로 만들어 3불씩을 받고 관광객들에게 팔았다.코끼리 타고 찍힌 자기 사진을 보고 사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이렇게 관광객에게 돈을 쓰도록 하는 곳이 태국과 캄보디아였다.휴게소 주변에는 생전에 보지도 못한 열대성 과일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이동 : 10.22일)
일행이 코끼리 트레킹을 마친 다음에는 파타야에서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이동했다.방콕에서 파타야로 들어올 때는 밤 11시경에 이동했기 때문에 고속도로변의 주변 환경을 구경할 수가 없었다. 반대로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이동할 때는 주간이동이라서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변의 태국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위에 서 있는 야자수 나무 바나나 나무 파인애플 농장 등 열대성 식물이 눈에 지겹도록 이어졌다.이런 지평선이 끝나고 산들이 나타나면 방콕이 가까워지는 것으로 알면 된다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말이었다.
고속도로변 한 곳에는 수 많은 무덤이 조성된 공동묘지가 나타났다.태국인들은 대부분 불교신자라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처리 하기 때문에 무덤이 없지만 저기 보이는 무덤은 태국인들의 무덤이 아니고 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공동묘지라는 것이었다.그래서 명절 때면 화교들의 무덤 참배 차량들 때문에 이 도로가 주차장이 된다고 했다.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되었다.도로변의 전신주를 보라고 했다.우리나라에서는 전신주가 모두 둥근 기둥인데 태국의 전신주는 모두 4각형 기둥이라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줄 아느냐고 물었다.전신주를 둥근 기둥으로 세우면 뱀이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 전선줄을 끊어버리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뱀이 전신주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4각형 기둥의 전신주를 세운다는 것이었다.
도로변에 자주 눈에 띠는 태국의 국기는 상하에 있는 2개의 붉은 줄은 국민들의 피와 땀을 상징하고 그 안쪽에 있는 2개의 희색줄은 태국 국민들을 상징하며 한 가운데 있는 푸른색으로 된 넓은 1개의 줄은 태국 국왕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따라서 태국은 국민들의 피와 땀과 국민 및 국왕이 한데로 뭉쳐진 국가라는 뜻을 의미하며, 태국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은 대단하며 현재 나이가 79세인 국왕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쾌유를 기원하는 국민이 80% 이상이라는 것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이러한 현지 가이드의 말을 입증할 만한 물증들로서는 방콕 시내나 국제공항 여기 저기에는 광고판처럼 걸어놓은 국왕의 사진과 “LONG LIVE THE KING(국왕 장수 기원) ”이라는 표말이 아닌가 싶었다.
계속되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태국은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을 모방해서 “수바나붐”방콕 국제공항을 새로 건립해서 2005.11월에 개장했는데 이 공항을 만들면서 큰 실수를 범한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그것은 태국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이 입국장을 경유해서 공항을 빠져 나올 때 이 사람들을 마중하기 위해서 나온 환영객이 입국자를 맞이하는 장소가 너무 협소해서 마중객들에게 큰 불편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점이라고 현지 가이드는 불평을 털어 놓기도 했다.
(파타야-방콕 간 고속도로 상의 약방 쇼핑 : 10.22일 )
태국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들어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잠간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들린 곳이 있었다.이곳에 들릴 때도 현지 가이드는 “어르신들이 꼭 사시라고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휴식 겸해서 구경 한번 하시라고 들리는 것입니다.”라는 상투적인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들린 곳이었다.재태국 한인회에서 운영하는 가게로서 이익금은 재태국한인회의 발전을 위해서 쓰고 가게 점원도 재태국한인회 부인들이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운영한다는 것이었다.가게 내부에는 화장품,무좀약,마른 과자류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가게측의 제품 설명을 듣고 무좀약 등을 구매하는 분들도 상당수가 있었다.일행은 화장실도 이용하고 차도 한 잔씩 얻어 먹고 잠간 쉬었다가 방콕을 향해서 다시 출발했다.
(방콕 시내의 태국 왕궁과 차우배야 강 관광 : 10.22일)
방콕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시내에 있는 태국 왕궁 관광에 나섰다.태국 왕궁 관광은 한국인 현지 가이드가 안내할 수 없고 반드시 한국말을 잘 하는 태국인 가이드가 태국 왕궁 관광을 안내하도록 법령에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그래서 우리 일행의 태국 왕궁 관광을 안내할 태국인 가이드가 일행이 탄 버스에 올라 타더니 자신의 이름을“하리수”라고 소개해서 좌중을 웃겼다.성전환으로 유명한 한국의 연예인 하리수 이름을 들먹거렸기 때문이었다.유머스럽고 재치있는 50대 노인이었는데 한국말을 제법 잘 했으며 천성이 낙천적인 분 같았다.
이분의 설명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태국은 3개의 왕조가 있었는데 첫 번째 왕조는 태국 북쪽에 도읍을 정했고 두 번째 왕조는 태국 중부 지방에 도읍을 정했으며 세 번째 왕조가 현재의 왕조로서 도읍을 이곳 방콕에 정했으며 이 왕조가 시작된 것은 1700년대 중반으로서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왕궁은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만 이용하고 평상시에는 비워두고 왕은 다른 곳에서 기거한다고 했다.왕궁 내부에서 사리탑,대웅전,법당,왕궁 본관,화장터 순으로 둘러 보았다.법당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신발을 밖에 벗어 둔 채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법당안에는 무릎를 꿇고 기도드리는 신도들로 꽉 차 있었다.다른 건물들은 관광객들에게 내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외형만 둘러보았다.건물 외곽은 온통 금색으로 도색되어 있는 단층 건물들이었으며 왕궁이 불교라는 종교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불교를 떠난 왕궁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통치 문화의 흔적을 여기 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왕궁관광을 마친 일행은 태국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왕궁을 빠져 나와 도보로 방콕 시내를 관통해서 흐르는 “차우배야”강가로 나와서 유람선을 탔다.방콕 시내에 이렇게 큰 강이 흐르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강폭은 약 100미터쯤 되고 강물은 금방이라도 강둑을 범람할 것처럼 넘실대고 있었다.강물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을 육안으로도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강에는 강물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가는 크고 작은 배와 남쪽으로 내려가는 크고 작은 배가 여기 저기 눈에 띠었다.강물은 탁도가 심해서 물속은 전혀 들여다 보이질 않했다.
이 차우배야 강은 바다까지는 약 90킬로미터쯤 더 내려간다고 했으며 수심은 약 17미터 정도라고 했다.방콕 시내의 남북으로 건물들이 들어선 육지는 해발 약 1미터 정도이지만 홍수로 이 차우배야 강물이 남북 시가지로 범람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태국인 안내인은 차우배야강 남쪽 시가지를 가리키며 서울의 강남이라고 소개했고 차우배야강 북쪽 시가지를 가리키면서 서울의 강북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서울의 도심을 흐르는 한강은 강뚝이 있고 그 강뚝 아래는 고수부지가 있고 그 고수부지 밑으로 강물의 수면이 있기 때문에 강가에서 강물의 수면까지는 그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태국 방콕 시내를 관통하는 차우배야 강의 강뚝에서 차우배야강 수면까지는 약 1미터 정도로 가까워서 강물이 조금만 더 불어나면 범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범람하는 일이 없느냐고 태국인 안내인에게 물었더니 연간 강수량이 날짜별로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이 차우배야 강물이 범람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었다.
차우배야 강에서 우리 일행이 탄 유람선은 처음에는 차우배야 강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서 남쪽으로 항해하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차우배야 강물을 거슬러 북쪽으로 한참을 항해하더니 이번에는 차우배야강 본류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난 강물을 따라서 항해를 했다.이것도 차우배야 강이냐고 물었더니 태국인 안내인은 이것은 차우배야강과 연결된 방콕 시내의 운하라는 것이었다.그리고 방콕 시내에는 운하가 굉장히 길다는 것이었다.운하 좌우측에는 수상가옥들이 즐비했고 그 수상 가옥을 지탱하는 목재 받침대는 약 10년마다 한번씩 새것으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운하의 좌우측 강변에는 낙시질하는 낙시꾼도 눈에 띠어서 강물에 물고기도 많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물고기가 엄청 많이 있다고 했으며 일행들이 빵조각을 강물에 던지자 팔뚝만큼이나 커 보이는 물고기들이 벌떼처럼 수면위에 나타났다.차우배야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제한이 없지만 단 사찰근방 일정한 거리 내에서는 물고기 포획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이렇게 금지된 구역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무거운 범칙금이 부과된다고 했다.그리고 조그만 배에 열대성 과일과 식료품 등을 싣고 운하를 오르내리면서 관광객 등을 상대로 장사하는 장사꾼 배도 있었다.
(방콕 시내의 어떤 한방병원 관광 : 10월 22일)
태국 왕궁과 방콕 시내의 차우배야강 관광을 마친 일행은 한국인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방콕시내에 있는 어떤 한방병원을 방문했다.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한방병원 의사는 태국 왕실 가족의 병을 완치시킨 공로로 유명세를 탄 분이니 이 분의 설명을 들어보라는 것이었다.우리 일행이 이 한방병원의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으니 그 병원 의사라는 분이 내려와서 병치료 일반론을 설명하더니 일행중에 아무라도 몸이 불편한 분이 있으면 한 분 나와보라고 하자 일행중 한 분이 나가서 자기는 양 팔을 높이 치켜들지 못한다고 하자 이 병원 의사는 이 분에게 침을 놓고 침으로 치료를 했으니 팔을 한번 올려보라고 하자 이분이 팔을 들어 올리니 종전과는 달리 이 분의 팔이 높이 치켜 올라갔다. 이것을 본 일행들은 여기 저기서 깜짝 놀라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 병원 의사의 침술 치료에 경탄하는 말도 쏟아져 나왔다.그 다음에는 그 병원 의사의 진료를 받아보고 싶은 사람은 안에 있는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하니 일행들은 너도 나도 이 병원 의사의 진료실을 찾아 가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까지 받아서 구매한 약들이 엄청 많았다.우리 집사람도 진료를 받으니 신장이 안 좋다고 신장약 처방전을 떼주고 약값을 현지에서 카드로 지불한 돈이 920,000원이었다.집사람이 사겠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말릴 수도 없도 두고만 보았는데 그 약을 먹고 집사람이 효험을 볼지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다.
(royal dragon 식당에서 저녁식사 : 10월 22일)
태국 방콕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태국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로얄 드래곤 식당에서 태국식 요리로 저녁식사를 했다.대부분이 생선요리였다.나는 전혀 태국식 생선요리가 입에 맛지 아니했다.일행중 어떤 분이 한국에서 가져온 츄부용 고추장을 꺼내놔서 그것을 만찬으로 해서 겨우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었다.식당이 야외 식당인데 식당 공간이 너무 넓어서 아늑한 식당의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식당에서 서비스하는 직원들은 로울러 스케으트를 타고 다녔고 식당중앙에는 공연하는 무대도 있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공연을 감상하면서 식사할 수 있는 분위기는 못되었다.이렇게 대충 방콕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때우고 일행은 저녁 20시경에 방콕 신공항인 수바나붐 국제공항으로 향하면서 태국에서의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