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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글판 2024년 여름편
미소 짓는 너의 얼굴은
여름날 장미꽃처럼
가장 따분한 곳까지
향기롭게 해
광화문글편이 여름편으로 바뀌었다. 이번 여름편에는 어떤 문안이 올라올까 궁금해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시에서 발췌한 문안이다. 그녀의 단편 소설 '원유회(Garden Party)'를 감동적으로 읽은 때는 청년기였다. 아득한 시절의 그 내용이 떠오른다. 가든 파티를 끝내고 어린 소녀가 마부가 죽은 가난한 이웃집에 음식을 가져다 주고 돌아오며, 인생이란? 인생이란?을 중얼거리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유와 가난, 계층의 차이, 이런 것은 어린 소녀에게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 "나는 정원이 있는 집을 마련하여 봄과 가을이면 친구들을 초대하여 가든 파티를 여는 게 꿈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그 꿈을 실현하셨는지 이후에 나는 알지 못한다. 선생님의 영향인지 아니면 맨스필드의 소설 영향인지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가든 파티를 꿈꿨지만 실현하지 못하였다. 대신에 지인들을 집에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고 주담을 나누는 일은 꽤 많이 실행하였다. 지금은 지인들과의 만남은 주로 음식점에서 이루어지고, 가족들과의 만남만 집에서 행하고 있지만, 집에서 지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즐기는 일을 언제나 그리워한다.
광화문글판 2024년 여름편의 문안을 발췌한 작품인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1888~1923)의 '정반대(Opposites)' 시 작품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캐서린 맨스필드의 시집 번역본은 없고, 이 시 작품도 완역되지 않았다. 다만 이루카가 엮고 옮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아티초크) 시집 속에 '정반대(Opposites)' 중 마지막 두 연이 번역되어 있다.
O Half-Soled-Boots-With-Toecaps-Child
Your happy laughing face
Does like a scented Summer rose
Make sweet the dullest place.
O Patent-Leather-Slipper-Child
My dear, I'm well content
To have my daughter in my arms,
And not an ornament.
이루카는 끝의 두 연을 이렇게 번역했다.
아, 왈가닥 우리 딸,
미소 짓는 너의 행복한 얼굴은
여름날의 향기로운 장미꽃처럼
가장 따분한 곳마저 향기롭게 만드는구나.
아, 요조숙녀 우리 딸,
사랑스런 우리 아기, 엄마는 흡족해,
우리 딸, 엄마가 안고 있어서.
네가 장식이 아니라서.
-캐서린 맨스필드의 '정반대(Opposites)' 중에서
교보문고 광화문글판 선정위원회는 이 번역시를 참고하여 딸과의 관계를 생략한 문장을 이번 여름편의 문안으로 선정한 것 같다.
미소 짓는 너의 얼굴은
여름날 장미꽃처럼
가장 따분한 곳까지
향기롭게 해
아름답고 향기롭다. 너의 미소가 장미꽃 향기가 되어 따분한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걸 알고 있니? 그래서 세상은 향기롭고 아름답게 되는 거야.
광화문글판 2024년 여름편에 대해, 교보생명 관계자가 “미소는 하품처럼 주변에 퍼지는 전파력을 가진다.”, “감사, 공감, 친절 등과 같은 긍정적 습관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여름 문안을 선정했다고 그 선정 취지를 말했다고 한다. 우리들 개인 각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상호영향 관계 속에 세상은 변화하고 더 밝고 아름답게 진보한다. 그 모습을 글판의 디자인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연둣빛 잔디밭에 누워 있다. 두 눈을 감은 아이의 옅은 미소가 맑다. 장미꽃잎이 아이에게 하나 둘 바람에 날리고 아이의 미소는 장미꽃 향기가 되어 멀리 퍼져 나간다.
교보생명 광화문글판은 1991년 1월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헤아려 보니 33년이 넘었다. 올해 출범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14기에는 수필가 이슬아 후임으로 가수이자 작가인 요조(본명 신수진)가 합류하여, 소설가 이승우(조선대 교수), 시인 김행숙(강남대 교수), 시인 장재선(문화일보 부국장), 시인 곽효환(한국문학번역원장)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분들이 공들여 선정한 광화문글판의 문안이 광화문광장에 울려퍼지고, 시민들의 마음을 또 얼마나 아름답게 물들일까.
언제부터인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을 찾아가 광화문글판의 문안을 살피는 게 습관이 되었다. 글판의 내용은 어렵지 않고 의미는 선명하지만 그 동심원은 넓게 퍼져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글판을 보고 각자 많은 것을 느낄 것이며 나 또한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여러 생각들에 잠긴다. 광화문글판이여, 계절의 변화 속에 너를 읽으며 사랑과 희망을 품는다. 그대는 한국 사회를 상식과 교양, 사랑과 희망으로 이끌어간다.
아래에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1888~1923)의 시 '정반대(Opposites)' 원문을 옮긴다. 그리고 번역을 부탁하여 받은 번역문을 옮겨 놓는다. 전공자가 아닌 번역이어서 번역문이 서툴지만 전쳬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 만족한다.
Opposites by Katherine Mansfield
The Half-Soled-Boots-With-Toecaps-Child
Walked out into the street
And splashed in all the pubbles till
She had such shocking feet
The Patent-Leather-Slipper-Child
Stayed quietly in the house
And sat upon the fender stool
As still as any mouse.
The Half-Soled-Boots-With-Toecaps-Child
Her hands were black as ink;
She would come running through the house
And begging for a drink.
The Patent-Leather-Slipper-Child
Her hands were white as snow;
She did not like to play around,
She only liked to sew.
The Half-Soled-Boots-With-Toecaps-Child
Lost hair ribbons galore;
She dropped them on the garden walks,
She dropped them on the floor.
The Patent-Leather-Slipper-Child
O thoughtful little girl!
She liked to walk quite soberly,
It kept her hair in curl.
The Half-Soled-Boots-With-Toecaps-Child
When she was glad or proud
Just flung her arms round Mother's neck
And kissed her very loud.
The Patent-Leather-Slipper-Child
Was shocked at such a sight,
She only offered you her cheek
At morning and at night.
O Half-Soled-Boots-With-Toecaps-Child
Your happy laughing face
Does like a scented Summer rose
Make sweet the dullest place.
O Patent-Leather-Slipper-Child
My dear, I'm well content
To have my daughter in my arms,
And not an ornament.
정반대(Opposites) by Katherine Mansfield - 채은지 옮김
발가락을 덮은 하프솔 부츠를 신은 아이
거리로 걸어나갔어요.
그리고 발이 더러워질 때까지
주변 공터에 진흙을 튀겼죠.
특허 받은 가죽 슬리퍼를 신은 아이
집에서 조용히 머무르지요.
그리고 쥐만큼이나 조용하게
펜더 의자 위에 앉아 있어요.
발가락을 덮은 하프솔 부츠를 신은 아이
손은 잉크만큼이나 검죠.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며
집으로 달려오곤 해요.
특허 받은 가죽 슬리퍼를 신은 아이
손은 눈처럼 하얗지요.
장난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바느질만 좋아해요.
발가락을 덮은 하프솔 부츠를 신은 아이
머리 리본을 많이 잃어 버려요.
리본들을 정원 산책길에 떨어뜨리고,
마룻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해요.
특허 받은 가죽 슬리퍼를 신은 아이
오, 사려 깊은 어린 소녀여!
아주 차분하게 걷는 것을 좋아하여,
머리카락은 파마로 유지하게 되지요.
발가락을 덮은 하프솔 부츠를 신은 아이
기쁘거나 자랑스러울 때
엄마의 목에 팔을 감고서
아주 큰 소리로 키스하지요.
특허 받은 가죽 슬리퍼를 신은 아이
그런 광경에 충격을 받고,
아침과 밤에
엄마에게 뺨만 내밀지요.
오, 발가락을 덮은 하프솔 부츠를 신은 아이
행복하게 웃는 네 얼굴은
향기로운 여름 장미처럼
가장 칙칙한 곳까지도 아름답게 만드는구나.
오, 특허 받은 가죽 슬리퍼를 신은 아이
사랑스런 아이야, 난 아주 만족해,
내 딸을 안고 있기에.
네가 장식품이 아니기에.
정반대(Opposites) by Katherine Mansfield - 박정슬 옮김
말괄량이 우리 딸
길거리로 나가
발이 엉망이 될 때까지
모든 자갈밭을 헤집고 다니다니!
얌전한 우리 딸
집에서 조용히 지내며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여느 생쥐처럼 조용하구나!
말괄량이 우리 딸
너의 손은 잉크처럼 까맣네!
너는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더니
물 한 잔 달라고 애원하네.
얌전한 우리 딸
너의 손은 눈처럼 하얗네!
너는 노는 것보다
오직 바느질만 좋아하는구나.
말괄량이 우리 딸
머리 리본을 많이도 잃어버렸구나.
정원 산책길에 흘리고
온 바닥에 떨어뜨리니 그럴 수밖에!
얌전한 우리 딸
오 친절한 어린 소녀
너는 차분히 산책하길 좋아해.
너의 곱슬머리가 그대로 있네.
말괄량이 우리 딸
네가 기쁘거나 자랑스러울 때
엄마 목에 팔을 둘러
아주 큰 뽀뽀를 남겨주네.
얌전한 우리 딸
그런 광경에 충격을 받아
아침과 밤에
볼만 내미는구나.
말괄량이 우리 딸
너의 행복한 웃음은
여름날의 향기로운 장미 같아
가장 지루한 꽃마저 달콤하게 하는구나.
얌전한 우리 딸
나의 사랑, 나는
장신구가 아니라,
우리 딸을 내 품에 안는 것만으로 만족해.
교보생명빌딩의 광화문글판은 가로 20m, 세로 8m 크기라고 한다.
교보생명빌딩의 광화문글판은 가로 20m, 세로 8m 크기라고 한다.
이번 광화문글판 여름편은 캐서린 맨스필드 작가의 시 ‘정반대(Opposites)’에서 가져왔다. 단편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캐서린 맨스필드는 1900년대 활동한 영국 여성 작가다. 주로 단편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그는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독특한 문체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행복’, ‘가든파티’, ‘비둘기의 둥지’ 등 단편뿐 아니라 시, 평론, 일기 등 주옥 같은 작품을 써냈다. 이번 문안은 작은 미소가 세상을 밝게 한다는 의미를 시적 표현으로 나타냈다. - 세계일보 김수미 선임기자
이번 문안은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꽃향기처럼 널리 퍼져 나갈 때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디자인은 한 아이가 두 팔을 벌린 채 푸른 잔디밭에 누워 햇살을 만끽하는 모습을 담았다. 싱그러운 녹음을 닮은 아이의 미소는 바람에 흩날리는 장미꽃잎처럼 멀리 퍼져 나간다. - 세계일보 김수미 선임기자
첫댓글 정말 대단하네!!!
광화문 글판이 바뀔때마다 잊지않고 가보는 열정도 대단하지만 그 글귀들을 사랑하고
미소짓는 너의 행복한 얼굴이 지리한 장마의 시작마저 즐기게 만드네...
이곳에 들어오시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시구라서
이번에 더 의미가 있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