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장군의 기상을 말해주는 북정가(北征歌)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수음마무(頭滿江波飮馬無) -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 남아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랴
위 시에 대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 이야기 한국사(교양국사연구회 역음)에서 요약한 내용임.
세조13년(1467년)함경도 길주 출신의 호족(豪族) 이시애(李施愛)는 아우 이시합(李施合)과 공모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부임하여 오는 관리들을 죽여 없애고, 남도인들이 북도인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쳐들어 온다는 유언비어
를 퍼뜨려 북도인 3만여명을 모았다.
이시애의 기세가 날로 커가자 세조의 근심은 깊어만 갔고, 이시애는 함흥 이북의 땅을 모두 석권하여 버렸다.
남이장군은 도총사 이준의 명에 따라 두만강가의 회령에 진을 쳤고, 깊은 감회에 젖은채 강 건너편을 응시 하
면서 즉흥시 한 수를 지어냈다.
『허허허 과연 장부다운 시 입니다. 』 크게 웃으면서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갑사 유자광(柳子光)이었다.
그는 호조 참의를 지낸바 있는 유규(柳規)의 서자(庶子)로, 무예에 남다른 자질이 있는 역사(力士)였다.
남이장군의 북정가에 질투심이 끓어오른 유자광은 꾹 참고 있었고, 후에 그 시를 이용하여 남이장군을 모함
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시애의 난은 평정 되었고 세조 임금은 이준을 비롯한 41인에게 적개공신(敵愾功臣)의 영예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