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주요 순교 현장으로는 재판이 이루어진 동헌인 화청관, 죄인들을 잡아 가둔 곳으로 6간 초가 감옥인 현초옥, 형이 집행된 곳으로 군 사령부에 해당하는 중영이 있다. 중영이 순교장소임을 나타내는 근거 자료로는 알릭스 신부의 편지(1897), 김윤영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글(1922년 4월 29일, 5월 1일), 감리교회 회보(1937년 8월 17일) 등이 있다.
초대 유수 채제공 재직시 화성 축성에 참여한 다산 정약용(요한)은 방화수류정 서쪽 벽면에 벽돌로 십자가를 표시하여 수원 지방의 초창기 천주교의 흔적을 남겼다.
박해 기간중 수원에서의 박해가 매우 혹독하여 병인박해 이후 천주교에 대한 구전(口傳)이 사라졌으며,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고 천주교가 수원에 정착(1923년 11월초 수원 본당 창설)하였음에도 박해의 영향이 사라지지 않고 미신적이 토착 신앙만이 득세함으로 첫 성당을 짓고(1932년 11월 13일 봉헌 축성) 악의 무리를 물리칠 수 있도록 주보성인을 성 미카엘 대천사로 정하였다.
수원교구는 2000년 현재의 북수동 성당 자리를 수원 순교성지로 선포하고 성지 전담신부를 발령하는 등 성역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