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1. 시작 성가 (발자취 또는 전례에 맞는 성가)
2. 기도 (발자취 158쪽 집회 시작 기도 또는 자유 기도)
3. 출석 확인 및 인사
4. 회칙
5. 생활 묵상
6. 생활 나눔
7. 공지사항
8. 마침 기도(발자취 159쪽 또는 자유 기도)
성 프란치스코의 삶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덕행은 '가난'이다. '아씨시의 가난뱅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성인이 보여 준 가난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과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정작 성인이 남긴 글과 가르침 속에서 물 질 적 가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성인은 가난한 옷과 음식 그리고 거처 등을 통해서 형제들의 내적 삶을 미학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 권고 28장 중에 물질적 가난을 주제로 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음은, 그것이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은 본질적 가르침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성인은 항상 인간의 내면을 주시하며 겉으로 그러나는 삶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내적 상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이 일상 속에서 여러 상황을 겪을 때, 그 상황을 대하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형제들이 살아가며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은 때때로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바로 그 순간에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내면이 거울처럼 드러나며, 영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를 포함한 대부분의 성인들의 삶을 보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때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때 오히려 영적으로 더 큰 발검음을 내디뎠음을 알 수 있다. 그 순간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삶의 실질적인 권고가 시작되는 권고 2장의 주제는 '순종'이다. 가난에 앞서서 순종이 먼저 언급되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 떠올려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순종이야말로 진정한 영적인 가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가난과 순종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덕행이 아니라 가장 지극한 가난이 순종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형제들 사이에 불손중이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되는 영적이며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했지만, 필연적으로 한 명의 장상이 여러 형제들의 삶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세속적이고 전통적인 공동체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공동체들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들도 고스란히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당시 이탈리아는 계급 사회였다. 하지만 형제 공동체 안에서는, 때로는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의 형제가 장상이 되고, 그보다 높은 계층의 형제가 아랫사람이 되는 경우도 발생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별다른 권력을 누려보지 못했던 형제가 장상이 되었을 때, 그것을 마치 세상의 권력처럼 누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을 것이다. 반대로 높은 계층의 형제가 아랫사람이 되었을 때, 낮은 계층 출신의 장상에게 복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순종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문제는 때때로 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할 만큼 큰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순종의 가치가 어디에 있으며, 형제들이 어떤 태도로 순종의 생활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권고 첫머리에서 언급하고 있다.
"주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아라"(창세 2,16-17), 아담이 순종을 거스르지 않았을 때까지는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동산에 있었던 모든 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자기 안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善)을 자랑하는 바로 그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은 악마의 꾐에 빠져 계명을 거슬렀기 때문에, 먹은 것이 악을 알게 하는 열매(악의 지혜의 열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권고 2)
먼저 프란치스코는 '죄'의 근원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구약의 창세기를 인용하면서 인간의 욕심과 교만으로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한 까닭에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태초에 인간은 온전히 하느님 뜻에 메어 순종하였기에 죄에 물들지 않았고 하느님의 창조 본성을 충만히 누릴 수 있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이들이 누리는 자유와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첫 인간들이 누리던 모든 자유와 풍요를 뱀의 유혹 때문에 상실하였고,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고 선경은 전한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상실과 추방의 결정적 원인으로 보이는 '뱀의 유혹'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내적 상태를 지적한다.
즉, "자기 의지"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교만고 욕망이 모든 비극의 원인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 의지를 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는 교만이고, 주님의 선을 자기 것으로 자랑하는 것은 자신이 하느님의 위치로 올라서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만과 욕망은 인간을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의 한계에 갇히는 고통을 겪어 한다. 결국, 벌 받아 마땅한 것은 뱀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간이 유혹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대전기 6 v1 참조)을 깨닫고 인정하는 겸손이 요구된다. 하느님께 드러내는 겸손은 인간을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께 도우심을 청하고 의탁함으로써 모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강함이 된다 그리고 이 겸손 아래서 인간은 '순종'의 덕행으로 인도된다.
프란치스코는 가장 완전한 순종이 모범을 복음 속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을 통해서 당신의 가난과 겸손을 세상에 드러내신다. 특히 공생활의 절정인 십자가상에서, 순종의 덕행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10)
프란치스코도 미사 중 사제의 손에서 성체가 높이 들어 올려질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들어 올려지심을 직관 하며 그 안에서 가난하시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한다.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형제회에 보내신 편지 v28)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은 그 자체로 형제 공동체의 삶의 규범이 된다. 프란치스코는 평생을 그리스도의 순종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고 형제들에게도 그러한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글: 최문기 마티아/ OFM Conv.
생활 나눔
1. 순종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이야기해 보자.
2.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싫었던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나누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