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작은 집
임 재 문
나는 우리 강릉교도소를 "숲속의 작은 집"이라고 부른다. 대개 교도소를 은어로 큰집이니 하얀집이니 하는데, 왜 작은 집이라고 해야하는가? 그도 그럴 것이 전국 대도시에 있는 큰 교도소는 수천명씩 수용하는 엄청나게 큰 규모이건만 이곳 강릉은 현재 불과 3-4백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곳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작년 이맘때 한 여름의 열기가 후끈거릴 때다. 외정문을 들어서며,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양쪽 길가에 울창하게 숲이 우거져, 지금은 진초록이지만, 가을이와서 단풍이 들고 또 새봄이 와서 벚꽃이 피면 그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들어왔었다.
그런데 내가 상상한 그대로 들어맞았다. 내가 부임하던 그해 가을 양쪽의 단풍은 곱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고, 대나무와 감나무가 어우러져 고향의 정취를 그대로 연출하는데 인색함이 없었다. 한 없이 푸르기만한 가을하늘 서울에서 이런 하늘을 보는 것은 일 년에 불과 한 달 정도라고 들었는데, 가을 내내 푸른하늘과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별빛이 탄성을 발하게 한다.
다시 새봄이 왔다. 춘천에서 근무할 때 그토록 기다리던 봄! 그러나 잠간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봄의 훈풍을 이곳 강릉에서는 지루하리만치 오래토록 간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외정문 들어오는 길가 양쪽에 심겨진 벚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들어내놓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겹 벚꽃은 왜 그렇게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꽃이 피는 것일까? 가지가 휘어질 지경까지 꽃이 피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꽃들이 만개해서 시들무렵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걷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진달래 꽃을 노래한 김소월은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하고 노래했는데, 정말 나도 아름다운 꽃비를 맞으며, 출소하는 사람들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노래하고 싶어진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부임하고 나서 이 곳 숲속의 작은 집에도 변화가 있었다. 미결 수용실이 비좁아 증축공사를 하여 최신 건물로 탈바꿈하고 흡사 새 아파트 거실 처럼 그렇게 완공을 하여, 수용할 수가 있어서 우리 교도소의 첫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교도소를 짓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밀집수용을 해소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또 교도소 주벽이 그 옛날 지을 때 정사각형의 땅을 허가 밭을 수 없는 처지여서 마름모꼴이 되어 비정상 적이었는데, 주벽을 헐고 바로잡아 정사각형으로 개조해 놓으니 보기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미결수용자들 운동장이 한 없이 넓어져서 좋았다. 내가 우리 한국수필작가회 회장을 하며 동인지를 "마당 넓은집"이라고 했는데, 바로 우리교도소가 마당 넓은집이 된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한 없는 정감을 느낀다. 내가 이 곳에 와서 그런 것일까? 폭설로 유명한 이곳 강릉에 폭설다운 눈이 내리지 않고 겨울의 정취를 느낄정도로 그렇게 눈이 내리고 한 겨울을 연출하던 눈은 봄눈 녹듯이 사라져 화장을 지우는 여인을 느끼게 한다. 그 뿐이 아니다.내가 오기전에 이곳 강릉은 폭우로 한 여름 몸살을 앓아야 했었는데, 비가오면 여인의 속삭임처럼 그렇게 조용히 생각에 젖어들게 한다.
그 뿐인가? 내 사무실에 연통을 설치하기위해 뚫어놓은 곳에 아름다운 산새가 와서 "찌르르 찌르르" 하고 고운 음악을 연출해서 온통 그 아름다운 새소리에 직원들도 함께 환호했는데, 그렇게 아름답게 울던 산새가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그 아름다운 산새가 내가 거처하는 관사에 와서 아침이면 음악을 들려주어 아침을 깨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외로운 내 침실로 찾아와 우는 아름다운 산새! "찌르르 찌르르" 오늘 아침에도 산새는 울었다. 산새가 좋아 나는 아침이 좋다. 흥겨운 산새의 노래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 강릉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름다움 바로 그것이다. 강릉의 사계가 그렇고 한없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자연의 경관이 그렇다. 조금만 나가면 바닷가 출렁이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서 좋다. 한 여름의 해수욕장에서 느끼는 감정도 좋지만, 겨울바다를 찾는 것은 더 없이 아름다운 추억을 연출할 수가 있어서 좋다.
그토록 아름다운 이 곳에 사는 사람들과 이 곳을 거쳐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기원해본다. 출소하는 사람들도 다시는 이곳을 찾는일이 없도록 모두가 불꽃처럼 살다가는 인생길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나 자신도 아름다운 이곳을 찾아왔으니 더욱 더 아름다운 일들이 터질 것이라 생각해본다. 언젠가 나는 또 이곳을 떠나가야 한다. 그 때는 나도 그 곳이 아름다웠노라고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름다운 이 곳 강릉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때까지 더 열심히 살아가리라.
첫댓글 강릉은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유명한 오죽헌, 경포해수욕장하며 산수가 너무 아름답군요!
네네 강릉교도소 시절이 그립습니다.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후도 그렇고 대나무 감나무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죽순도 꺾어 먹었구요 감사합니다. 인제 김권섭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