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관한 글은 아닙니다.
애착(愛着) / 文耕 양귀순
거실 소파에는 한 사람이 앉을 자리를 곰 인형이 앉아 있다. 핑크빛 피부색에 곱슬거리는 털에 까만 눈동자, 까만 코로 입을 꾹 다물고 말이다.
10년 전에 내 덩치보다 더 큰 곰 인형을 선물 받았다. 지금까지 비비적거리며 함께했다. 웬만하면 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선물을 준 사람이 여전히 고마운 생각이 들어 힘껏 끌어안고 있다. 그러니 내가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집착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열네 살 때 언니가 이쁜 강아지를 안고 왔다. 그 강아지 이름은 ‘제니’라고 명명하고 한 가족이 되었다. 그 강아지는 2년 정도 함께 하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 당시만 해도 개를 묶어 놓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쥐약 먹고 펄쩍펄쩍 뛰는 개를 보며 10대였던 동생과 오빠 셋이서 수돗가에서 펑펑 울었다. 마치 또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두 살 위 오빠가 이른 아침 산에다 묻어 주고 왔다. 그다음 해쯤에 언니가 또 강아지를 안고 왔다. ‘복실이’라고 이름 지었다. 동그란 눈이 이슬이 맺힌 것처럼 반짝였다. 복실이를 얼마나 가족들이 끌어안고 놀았는지 복실이가 귀찮아할 정도였다. 손을 많이 타니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주 사나워졌다. 집에 어떤 사람도 발을 디디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7~8년을 살았는데 엄마가 떠나보내 버렸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며 개를 키운다는 것이 눈치 보였는지 우리 없는 시간에 떠나보냈다.
그 후 나는 개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죽음과 이별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인연을 맺지 않고 있다.
1977년, 오빠가 카세트를 사 왔다. 그 당시 내 두 달 월급을 줘야 살 수 있는 일제인 좋은 제품이었다. 나는 집에 있을 때면 거의 끌어안고 살았다. 묵직하고 스피커 성량도 좋았다. 여유 용돈이 있으면 테이프 사는 것이 취미였다. 음악다방 DJ나 착용할 만한 두툼한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오빠가 결혼할 때도 가져가질 못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동생들이 애지중지하니 가져가지 말라고 엄마가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다가 떨어뜨려 깨지는 사건이 생겼다. 깨진 것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 정도로 함께 했던 것에 애착이 강했다. 검정 고무줄로 칭칭 감아서 사용했다. 그 후 10년 만에 금성 제품인 CD플레이어와 더블데크 카세트를 샀다. 많은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하며 애용했다. 그 당시는 인켈 오디오 시스템을 거실 장식장 옆에 폼나게 두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뒤 연결선이 없는 단순한 금성 제품이 좋았다. 거의 삼십 년을 썼는데 더블데크 중 한쪽이 고장 났다. A/S 점에 가져가니 부품이 없다고 했다. 안에 먼지 청소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나마도 한쪽 데크도 고장 나게 했다. 문이 닫히지 않았다. 아마도 기구를 넣어 청소하다가 무언가를 건드려 떨어뜨린 것 같았다. 내가 청소해달라고 해서 그랬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속상했지만, 그냥 집에 가지고 왔다. 가지고 있는 테이프와 CD를 버려야 하나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오래된 제품은 버릴 수 밖에 없는 걸까? 라디오만 있던 것에서 테이프와 함께, 그리고 CD 삽입, 그리고 USB 삽입,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동시켜 얼마든지 기능을 추가하여 신제품을 만들어 낼수 있을텐데. 그러면 테이프와 CD를 버리지 않아도 되는데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검색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한참 검색하다 보니 다행히 내가 원하는 제품이 있었다. USB 삽입도 할 수 있는 필립스 제품이었다. 구매하기 버튼을 눌러 택배로 받았다. 실망했다. 제품이 너무 가벼웠다. 테이프 삽입 때에도, CD를 넣을 때도 본체를 잡고 넣었다 뺐다 해야 했다.
‘아! 존재의 가벼움’
순간 쉽게 산 것을 후회했다. 속상한 마음이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젠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그래도 젊은 날 용돈 아껴서 산 테이프와 CD를 버리지 않게 되어 좋다.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모든 음악을 다 들을 수 있겠지만, 내가 젊은 날 들었던 음악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제목도 기억하지 못한다. 몇십 년 된 음악을 테이프로 들으며 젊은 날에 대한 추억에 잠긴다. 나이 들면 희망보다는 추억으로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은 맞는 듯싶다.
나는 미련(未練)과 애착(愛着)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선택하지 않는다. 핑크빛 곰 인형 다리를 끌어당겨 베개 삼으며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 곰 인형과 친구를 하게 될까?’(2021.04.07.)
첫댓글 누구나 이별은 슬픈 것. ㅎㅎ
집 안에서 개를 기르는 것은 나도 반대입니다.
'왜 옛것을 다 버리며 살게 할까.' 문단이 조금 어색해 보입니다.
테프는 그렇지만 CD는 어느 음향기기든지 다 들어 있잖아요?
아니예요. 신차는 CD플레이어는 없어요..
어색해 보이는 곳은 검토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된 제품은 버릴 수 밖에 없는 걸까?
이렇게 수정하면 조금 자연스러울까요?
8년 된 반려묘를 키우는 입장에서 늘 이별을 생각하며 나이 들어가는 고양이 콩이의 건강 상태를 늘 확인하고는 합니다.
라디오를 껴안고 살다 CD 플레이어에 의존하며 지냈던 옛 추억을 소환했어요.
좋은글 통해 순수했던 양귀순 선생님의 마음을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