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암 나철 선생(이하 ‘나철’이라고 함)은 홍익인간 사상을 매우 소중히 여겼고 반드시 실천해야할 덕목으로 여겼다.
그것은 홍암(弘巖)이라는 그의 號에서도 암시받을 수 있는 바와 같이 弘益弘濟(나철,「重光歌」41장 참조.) 또는 ‘홍제’(나철,「중광가」52장 참조.) 그리고 ‘홍제일세’, ‘증제천하’, ‘독성홍포’(나철,「여일본총리대외서」참조.) 등을 사용하여 홍익인간의 의미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 나철은 「중광가」 52장 두주에서 ‘천악신기’ 의 “홍제천하”라는 말에서 자호하여 ‘홍암’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종교단의 전래 경전인 「신사기」에서 이미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으므로, 나철은 ‘홍익인간’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나철의 이런 사상은 홍익인간 구현을 위한 기본 요소인 ‘봉천’ ‘선봉행’, ‘자수련’이 ‘오대종지’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대종지 중 ‘경봉천신’은 홍익인간 요소 중 제일 중요한 봉천과 연결되고 ‘애합종족’은 선봉행과 연결되며 ‘성수영성’은 자수련과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대신적 자아발견’을 위한 봉천과 ‘대물적 자아확인’을 위한 선봉행 그리고 ‘대인적 자아각성’을 위한 자수련이 삼위일체 될 때 홍익인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정신과 사상은 백포 서일에게 계승되어졌다. 그는 홍익인간 구현을 위한 위의 세 요소에 대하여 봉천(奉天-한울공경)․애인(愛人-선봉행)․성수(誠修-자수련)라는 가치로 단정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
“사람마다 내가 복되고자 하지 않는 자 없건만 진실로 그 마음이 착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재화(災禍)를 받고 사람마다 내가 오래 살고자 하지 아니하는 자 없건만 진실로 그 기운을 맑게 못하면 도리어 죽고 사람마다 내가 귀하게 되고자 하지 아니하는 자 없건만 진실로 그 몸을 두터이 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천하게 된다. 밝은이는 능히 이 이치를 통달하여 몸을 공경히 하여 하늘을 받들고[奉天], 몸을 바르게 하여 사람을 사랑하되[愛人], 나쁜 응보가 한 번 이르면 도리어 정성으로 수행하여[誠修] 사람을 원망하지 아니한다. (人莫不欲福我者 苟不善其心則反禍矣 人莫不欲壽我者 苟不淸其氣則反殃矣 人莫不欲貴我者 苟不厚其身則反賤矣 哲能達是理 恭己以奉天 正己以愛人 惡報一至則反誠修 勿尤於人).”(서일,「眞理圖說」, 대종교중광육십년사 ,122쪽.)
.
홍익인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는 ‘理化世界’라 할 수 있다. 단군사화에서 나타나 있는 ‘재세이화’가 진행적 의미라면 ‘이화세계’는 완성적 의미이다. 즉, ‘재세이화’는 세상에 있으면서 인간세계를 도리로 교화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화세계’는 도리로 교화된 이상적인 인간세계를 말한다. 유교에서는 ‘법치’보다 ‘덕치’를 중시하고 있다. 그런데 순리에 따라 구분한다면 인간의 자율성에 바탕을 둔 ‘덕치’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 우주의 질서에 바탕을 둔 ‘이치’라 할 수 있고 ‘이치’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 ‘이화’라 할 수 있다. ‘이화세계’는 협동과 조화, 타협과 공존으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본체인 한(一)이 셋(三)으로 작용하고 작용인 셋은 본체인 한으로 환원 발전하는 ‘즉일즉삼’, ‘즉삼즉일’과 ‘가달’을 참으로 되게 하는 (‘반망즉진’) 대종교의 ‘삼일철학’이 담겨 있다.
.
나철은 이와 같은 홍익인간의 범인류적 교리사상을 토대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하늘의 뜻에 의해 인간이 사이좋게 지냄을 ‘호생(好生)’ (‘호생’은 우리 민족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로서, 중국 송나라 때 ‘범엽’이 쓴 ‘후한서’ 「동이전」에 왕제를 인용하여 나오는 말이다. 그 기록을 보면 “이(夷)는 저(抵)다. 즉 그들은 어질어서 만물을 잘살게 하며 大人으로서 땅 위에 살고 있다(이자저야언인이호생만물저야이생 夷者抵也言仁而好生萬物抵也而生)”고 나타난다. 여기서 저(抵)라는 글자의 의미는 ‘대(大)의 뜻과 아울러 땅에 접(接)한다’는 의미로서, ‘군자’의 의미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이 우리를 상징하여 ‘대인’․‘호생’․‘군자부사지국’이라고 호칭한 배경에는 우리 고유의 홍익사상의 기반이 크게 작용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라했다. 그는 ‘호생’이라는 표현을 1914년 6월 9일 당시 대종교 사무의 총책임을 맡은 호석 강우를 대신 보내 천제를 봉행할 때 「백두산제천문」에 ‘호생천덕’이라는 말로 처음으로 사용한다.( 나철,「백두산제천문」, 대종교중광육십년사 ,169쪽.) 즉 나철은 ‘호생’이 인간관계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덕(天德)으로 엮어지는 사이좋은 인간의 삶으로 이해한 것이다. 천덕은 달리 표현한다면 하늘의 아량이요 신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다. 나철은 인간이 서로 사는 관계로 통용되는 ‘상생’을 넘어 천리(天理)와 인애(人愛)가 어우러진 승화된 인간의 삶을 ‘호생’으로 본 것이다.( 나철의 호생주의 가치에 대해서는 김동환의 「홍암 나철의 사상과 독립운동방략」( 한국독립운동사연구 19,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2002)를 참고)
나철이 단군교를 중광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을 거듭 강조한다면 구국운동의 일환이었고 중광된 후 그의 활동은 구국운동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홍익인간 이화세계 및 호생의 실현이었다. 그러므로 나철의 조천(朝天)은 단순히 일제의 대종교 탄압에 항거한 자결이 아니라 그의 유서 「순명삼조」에 나타난 것처럼 대종교를 위하고 한배검을 위하고 천하를 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나철의 조천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민족과 인류를 모두 살리고자 한 높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한 뜻의 시작이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나철의 정신이 대종교인을 중심으로 한 당시 우국지사들에게 전해져 다양한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정신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건국이념과 교육이념 등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