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평설 12월호 - 투시와 인공 시각

[hari-hara]

투시력이란 무엇인가

지금은 시험 시간, 열심히 문제를 풀어나가던 순간, 갑자기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분명히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에 본 것인데,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 뿐 도통 생각나지 않습니다. 떠오를 듯 떠오를 듯 하면서도 혀 끝에서만 뱅뱅 도는 답 때문에 손바닥엔 땀이 배고,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갑니다. 분명 조금 전에 본 내용인데… 시험 시간은 점점 지나가는데 답은 생각나지 않고, 애꿎은 책상만 노려봅니다. 저 책상 속에 책이 들어 있는데, 저 책 몇 페이지 몇째줄에 답이 있는지도 알고 있는데.. 튼튼하고 두꺼운 나무 책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책상이 순간적으로 투명해진다면 답을 알 수 있을텐데…
누구나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잘 생각나던 것도 시험시간이나 긴장하게 되면 입술에서만 맴돌 뿐,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 일이 종종 있지요. 마음이 초조하고급해지면, 내게 단 몇 초간만이라도 투시 능력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허황된 마음까지 들게 되지요.

투시라…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이긴 한데, 그 개념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볼까요? 투시(透視,Clairvoyance)라는 단어는 깨끗한(clear)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접두사(clair)에 시각을 의미하는 단어인 voyance라는 말이 결합해 생긴 단어입니다. 즉,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 너머를 보듯 실제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텔레파시(telepathy), 사물을 만져서 그 기억을 읽는다는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손가락이나 피부로 만져서 글을 읽는 피부시각(dermo-optical perception), 과거의 사실을 알아내는 과거 투시(retrocognition),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아맞추는 예지(precognition) 등이 투시라는 개념과 혼돈되어 사용되어 왔구요. 좁은 의미의 투시란 막혀 있는 장애물에 구애받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을 말하는데, 만약 이런 능력이 있다면, 처음에 이야기했던 책상 속의 책이 보이지 않아 겪는 시험시간의 초조함 같은 건 없을테지요.

투시는 초능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야로써,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능력에 대한 소망은 강렬해서 언뜻 보기엔 황당한 일에 대한 실험도 실시된 것이 사실입니다. 1930년 듀크 대학의 칼 제너는 초능력 카드(ESP card)를 고안해서 투시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ESP카드는 별, 십자, 네모, 원, 세 줄의 물결 무늬 등 아주 간단한 다섯 가지 기호가 그려진 카드가 각각 다섯장씩 들어 있어 모두 25장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실험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카드를 철저하게 섞은 뒤, 임의의 카드를 한 장 뽑아 뒤집어 놓습니다. 실험자는 이 카드를 뒤집힌 카드의 모양을 알아맞추는 것이구요. 이 초능력 카드의 시험 결과는 우연히 적중할 수 있는 확률인 20%(다섯 가지에서 하나를 뽑을 확률 1/5=20%)를 기준으로 작성됩니다. 예를 들어 97200회의 실험에서 어떤 사람이 32918회를 성공했다면, 이 사람은 우연히 맞출 수 있는 확률인 19440회(20%)보다 13478회를 더 맞춘 것이 되므로 이는 미약하기는 하나 투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실제 이 실험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실제 실험 결과 대부분은 의미있는 확률의 증가도 없었을 뿐더러, 실험에 대한 객관성이 부족해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일어날 수 있는 카드 맞추기 비율의 증가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었지요. 만약 뒤집혀진 카드를 척척 맞추는 완전한 투시력을 갖춘 사람을 찾았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기에 이 실험은 결국 실패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초능력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대단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초능력은 그저 상상 속의 능력이라고 치부하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초능력의 실존에 대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일의 배경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경우-예를 들어 누군가가 다치는 꿈을 꾼 뒤에 실제로 사고가 일어나거나-에 사람들은 초능력의 실존에 대해 믿고 싶어합니다.

본다라는 것에 대한 개념

만약 눈이라는 신체적 기관을 사용하지 않고 사물을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흔히 감춰진 곳의 숨겨진 물품들을 보거나, 미래나 과거의 영상을 볼 수 있어서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이런 능력이 가장 많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은 시력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있습니다. 신체 다른 부위에 전혀 이상이 없더라도, 한 쪽 눈을 완전히 실명하면 노동력의 40%를, 양 눈을 모두 실명하면 노동력의 90%를 상실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로 ‘본다’라는 개념은 우리의 오감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어떤 원리로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또한 더 나아가서 엄마의 얼굴을 다른 사람과 구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엄마의 표정이 웃는지 우는지를 파악해서 알아차릴까요? 언뜻 보기에는 다소 아둔해보일지 모르는 질문이지만, 사실 이는 매우 복잡한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 원리를 알아낸다면, 인간처럼 사물을 구별하고 이해하며 볼 수 있는 기계도 만들 수 있을테니까요. 이런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시각신경생리학(visual neurobiology)입니다.

인간의 시각은 눈의 망막(retina)에서 시작하여 뇌로 들어가 외슬체(lateral geniculate body)를 거쳐 머리 뒷부분에 위치하는 시각 피질(visual cortex)로 전달됩니다. 눈은 빛을 모으고 그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을 담당하며, 실제 시각으로 들어온 영상을 인식하는 부위는 뒷머리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사고로 뒷머리를 다쳐서 머리 뒷부분의 시각 피질이 손상된다면 눈에는 전혀 이상이 없더라도 사물을 전혀 볼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처음에 눈으로 볼 때에는 빛을 인식하여 광학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실제 뇌가 인식할 때는 이를 전기적인 신호로 인식합니다. 우리 뇌의 수많은 뇌세포들은 전기적인 신호를 주고 받아 서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 신경계에는 광학적 신호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줄 수 있는 변환 장치가 존재한답니다. 그 부위가 어디냐구요? 이 과정은 바로 눈의 망막에서 일어납니다.

1953년 하버드 대학의 스테판 쿠플러(Stephan Kuffler)는 고양이를 이용해서 이를 증명했답니다. 쿠플러는 마취시켰지만, 눈은 뜨고 있는 고양이의 정면에 스크린을 놓고 여기에 조그만 빛을 여기저기 비추면서 고양이의 눈의 변화를 연구했습니다. (실제로 시각 실험 연구실에서 주로 쓰이는 실험동물은 고양이랍니다. 통상의 생물학 실험에서 사용되는 실험동물은 흰 쥐나 토끼, 기니아피그 등이지만, 시각 실험에서는 고양이를 사용합니다. 포유동물 중에 인간을 제외하고는 몸에 비해서 눈이 크고 시각이 가장 잘 발달한 동물이니까요. 조금 잔인하긴 하지만, 수술로 고양이의 망막에 일종의 코일을 삽입해서 거기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측정합니다.) 그랬더니 고양이의 빛이 비추는 위치에 따라서 망막의 특정 위치에서 특정한 전기적 펄스가 방출되는 것이 관찰되었던 것입니다. 즉, 우리의 눈은 마치 공간을 모눈종이처럼 촘촘히 나누어 그에 대응하는 망막의 부위가 있어서 점점이 보이는 영상을 하나로 합쳐서 ‘본다’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죠. 즉,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와 같은 개념입니다. 디지털 카메라 역시 화소라 불리는 일종의 빛의 점들을 찍어 사진을 구성하기 때문이죠. 화소가 많다면 같은 공간에 더 작은 점들을 더 많이 더 촘촘하게 찍을 수 있어서 사진의 선명도가 훨씬 높아지게 되지요. 우리의 눈은 디지털 카메라에 비할 수 없을만큼 촘촘하고 수많은 화소(망막 신경세포)가 존재하는 고성능 카메라입니다.

현대의 투시, 인공시각

‘본다’라는 개념은 이렇게 전기적인 신호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시각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인공 시각의 개념도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단, 현재까지 접근할 수 있는 개념은 눈 자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아직까지 시각을 처리하는 시각피질에 대해서는 연구가 그다지 진행되어 있지 않아서, 이 부분이 손상되면 시각을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공 시각은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접근과 공학적 접근이 그것이죠. 먼저 생물학적 접근이란 눈을 새로이 발생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지난 2002년 일본 도쿄 대학의 아사지마 마코토 교수는 개구리의 눈을 인공적으로 발생시켜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개구리의 배(胚, embryo)에서 분화되지 않은 미분화 세포를 추출해 내어 세포 분화를 유도하는 물질- 악티빈(activin) 등-을 처리해 시험관에서 수정체와 망막을 갖춘 완전한 안구(眼球)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 시험관 안구를 인위적으로 눈을 적출한 올챙이에 이식하여 생착시키는데까지 성공했지요. 시험관 안구를 이식받은 올챙이는 별탈없이 생존하여 약 1주일 후, 눈에 빛을 비추면 반응을 보이는 등 시력이 살아난 것을 확인했습니다. 만약 이 실험이 순조롭게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사고로 눈을 잃은 사람의 경우, 자신의 세포에서 새로운 눈을 만들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도 꿈이 아니게 됩니다.

생물학적인 인공 시각의 접근방법이 아직 동물 실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과는 달리 공학적 인공 시각의 개발은 이미 인간에게 실현단계에 와 있습니다. 인공 실리콘 망막(artificial silicon retina, ASR)은 미국의 시각생명공학 회사인 옵토바이오닉스(Optobionics, http://www.optobionics.com/ )사의 초우 형제에 의해서 이미 실혐되었습니다. 소아과 안과 전문의였던 알렌 초우 박사는 전기기사인 동생 빈센트 초우의 도움을 받아 옵토바이오닉스를 설립하고 인공 망막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ASR을 개발해 냈습니다. ASR은 지름 2mm, 두께 1/1000인치의 미세한 실리콘 칩입니다. 이 칩에는 전극과 마이크로포토다이오드(Microphotodiodes)라고 불리는 초소형 태양 전지 3500개가 집적되어 있어서, 손상된 망막을 대신해 빛을 인식해 이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ASR이 기존의 인공 시각 기계들과 다른 점은 태양 전지의 원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특별한 외부 전원이나 배터리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눈의 망막하(Subretinal space)라고 불리는 위치에 이식하면, 스스로 빛을 받아서 에너지를 얻고 전기 신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ASR은 2000년 6월 드디어 세명의 시각 상실 환자들에게 이식된 것을 시초로 10명 정도의 환자에게 이식되었습니다. 이식 결과 환자들은 완전한 시력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움직이는 물체를 구별하여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시력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미국 뉴욕의 의료 장비 업체인 도벨 연구소(The Dobelle Institute, Inc. http://www.dobelle.com/ )는 아예 뇌에 직접 전극(electrode)을 삽입하는 인공 시각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옵토바이오닉스의 ASR이 황반변성증 등 특정한 몇몇 병으로 시각을 잃은 사람에게만 이식이 가능한 것과는 달리 이 시스템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이 가능합니다. 이는 선글라스의 렌즈에 초소형 핀홀 카메라와 초음파 거리계를 부착하고 이들이 수집한 정보를 소형 컴퓨터(허리에 차고 다닐 정도의 작은 크기)와 연결해 영상 신호를 처리하여, 뇌 속에 삽입된 전극을 통해 직접 뇌로 신호를 전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난 2000년에 실시한 임상 실험 결과, 시각 장애인이 약 1.5m 앞에서 5cm 정도의 글씨를 구별하고, 벽에 걸린 모자를 찾아 마네킹의 머리에 씌우는데까지 성공했답니다. (만약 이것이 성공한다면, 오래 전 외화 시리즈인 ‘스타 트랙(Star Trek)’의 조르디(Jordi)처럼 눈에 일종의 선글라스를 쓰는 것으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글을 마치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능력에 대해 동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싶어하는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낸 것이 투시라는 개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통해 세상의 빛과 아름다움을 늘 보고 있기에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보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감사할 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개발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투시력을 개발하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시력을 잃은 이들에게 빛을 되찾아 주고 그들이 우리가 보는 세상을 같이 누릴 수 있게 해줄 기술의 발전일 것입니다.

- hari-hara

[과학천재]

그럼 투시 카메라 사진은 불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