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 시절 노쇠한 외조부모의 돌봄으로 자랐습니다. 이른 새벽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교회를 찾고 복음 전하기 위해 자전거 타고 온종일 병원과 가게를 찾아다니셨던 분, 일제 탄압의 상처가 고스란히 육체에 남겨져 평생 통증 속에 사시면서 ‘주님 예수 나의 동산’을 매일 노래하고 ‘하나님이 보고 싶다’ 눈물지으며 기도하셨던 외조부.
없는 살림을 도맡아 8남매를 사역자로 키우시고, 그 시대 어머니 대부분이 그러하듯 장성한 어른이 되어
도 벌어지는 자녀들의 다양하게 문제를 스스로 묵묵히 감당하시며 일평생 가정의 질고로 허리 펴지 못하
신 외조모. 아직도 그 시절 두 분과 함께한 일상의 기억들이 뇌리 깊이 남아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두 분의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깊게 팬 주름, 거친 껍질이 벗겨지고 있는 손, 가쁜 호흡 ..
일평생의 고통을 하루에 다 되짚듯이 한숨 한숨 곱씹고 계셨습니다. 온 가족은 초조하게 헤어짐을 기다리며 두 분께 다 드리지 못한 마음을 전해드리기도 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시간.. 임종하신 외조부모의 얼굴에 비치는 평안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날의 옷을 벗고 수의를 입은 채 ‘주님 예수 나의 동산’을 부르시듯 누워계신 외조부, 평생 굽었던 허리를 펴고 이제 편히 누워계신 외조모를 바라보니 지난날 고뇌의 옷을 벗고 주님을 맞이할 새 옷을 입고 계신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