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도시, 부산은 그야말로 '시네마천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영화사가 생겼고, 최초로 영화가 제작된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 20세기 초였던 1926년에 이미 연간 극장관객 50만명을 돌파했던 영화도시였습니다.
이번 부산여행에서는 극장이 있던 장소를 찾아봤습니다.
시민극장

대교동 시청앞 '시민극장' 있던 자리
시민극장은 20세기초였던 1911년 '변천좌'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극장입니다.
참고로 부산 최초의 극장은 1903년 광복동에 개관한 2개의 극장
<행좌>와 <송정좌>입니다. 이어 1905년에 <부귀좌>(부평동)가 개관했고
네번째로 <변천좌>(시민극장)가 문을 열었습니다.
변천좌->상생관->대중극장->부민관->시민관->시민극장
으로 이름이 여러번 바뀌었구요. 1976년 폐관되었습니다.
저에겐 1974년에 이 극장에서 <정무문>을 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상영관내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참 특이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30년대 상생관 시절의 시민극장의 모습입니다.

시민관 시절 1955

시민관 시절 1960년대

북성극장

서면 '북성극장'이 있던 자리
북성극장은 외화만 상영했던 재개봉관이었구요.
남포동 개봉관들과 동시개봉도 꽤 많이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나타샤>를 이 극장에서 단체로 관람했습니다.
1947년 개관한 이 극장은 제가 <나타샤>를 보고난 후인 1975년 폐관되었습니다.
북성극장 1960년대

동보극장

서면 '동보극장'이 있던 자리
<썬샤인> <재뉴어리> <열애> 등 사춘기 시절 , 이 극장에서 많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목조건물이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무로 되어 있었지요.
1975년 수리중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하자,
신축하여 그해 추석 <엑소시스트>를 재개관 푸로로 상영했습니다.
1961년 <성춘향>이 상영될 때 표를 사려는 관객의 줄이 서면로타리까지
이어졌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보극장 1960년대

태화극장

서면 '태화극장'이 있던 자리
<추상> <너무너무 좋은거야> <타워링> <사망유희> 등
이 극장에서도 많은 영화를 봤습니다.
1층에서 계단식으로 바로 2층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의 극장이었습니다.
고교 졸업을 앞둔 겨울날 아버지를 졸라 같이가서
이 극장에서 본 영화가 성룡의 <사형도수>였습니다.
'영화가 아니고 만화다'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태화극장은 1980년대 중반, '태화백화점'이 되었습니다.
태화극장 1960년대 초반

대한극장

서면 '대한극장'이 있던 자리
대한극장의 좌석수는 무려 1,933석입니다.
1968년 '부산의 자이안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개관했습니다.
재개봉관이었지만, 남포동 개봉관들과 동시상영한 영화들이 많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부산에서 최초로 UIP영화들을 직배하기도 했지요.
<꽃밭에 나비> <닥터 지바고> <알랭 들롱의 조로> <죠이> 등의
영화들을 대한극장에서 봤습니다. 모두 청소년시절이었죠.
극장이 얼마나 큰지 3층 끝에서 보면 화면이 조그만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는 CGV대한 으로 운영하고 있더군요.
대한극장 1990년대

중앙극장

초량동 '중앙극장'이 있던 자리
1930년대 개관한 극장으로, 1958년 중앙극장으로 재개관되었습니다.
좌석 600여석으로 당시에서는 소극장이었습니다.
이 극장 역시 목조건물이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무였습니다.
사춘기시절 이 극장에서 <영자의 전성시대>를 보았구요.
고등학교때 개봉관에서 본 <디어헌터>의 감동에 빠져
이 극장에서 재관람을 햇던 기억이 납니다.
아래 사진은 1951년경 중앙극장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6.25 전쟁중에 멸공 궐기대회 모습 이라네요..
사진속의 소녀들이 이제는 80대 할머니가 되었겠네요... 
중앙극장 1977
중앙극장 1978 초량복개천 건물 철거후 모습

왕자극장

부평동 '왕자극장'이 있던 자리
왕자극장은 1962년에 개관한 남포동 극장가에서 유일했던 재개봉관입니다.
사춘기 시절, 이 극장에서 <토지> <초대받지 않는 손님>
<후리비의 대난전> 등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1970년대 왕자극장 일대는 불량청소년들의 무대가 되었고
오락실, 만화방 등이 밀집하여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왕자극장 건너편은 부평동 먹자골목으로 이어집니다.
1986년 서울극장이 인수하여 신축, 아카데미극장으로 재개관했지요.
역시 서울극장 소유였던 서면 은아극장과 체인을 맺어
개관푸로로 <에이리언2>를 상영, 대성공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했지만
멀티플렉스 시대가 된 2001년 조용히 폐관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아카데미극장 시절의 사진입니다.

왕자극장 1980년대

대성극장

문현동 '대성극장'이 있던 자리
제가 유년시절부터 중학교때까지 거의 매일 지나가던 극장입니다.
2편동시 상영관이었구요. 초등학교때 이 극장에서
'윤정희 영화'를 참 많이 봤습니다. 그당시 한국영화의 여주인공은
윤정희, 문희, 남정임, 김지미 딱 네 사람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파란 이별의 글씨, 여자이기 때문에, 흐느끼는 백조, 내 아내여
죄많은 여인, 갑순이, 경복궁의 여인들, 약한 자여, 유정 30년
간다고 잊을소냐... 등등 어떻게 그 제목들을 다 나열하겠습니까?
대성극장은 저의 영원한 '영화의 고향'같은 그런 곳입니다.
대성극장은 1978년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사라졌습니다.
보림극장

보림극장은 1968년에 개관한 초대형극장입니다. 좌석수가 무려 1,900여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개봉관으로 출발, 그해 초흥행작 <내시>를 상영하기도 했지만
1970년 <여인전장>을 마지막으로 재개봉관으로 전향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쇼 전문공연장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당대의 톱가수들이
보림극장에서 리사이틀을 열었지요. 대표적인 가수들이 남진, 나훈아, 하춘화였고
패티김, 이미자, 김추자, 문주란, 정훈희, 최희준 등 당대의 톱가수들이 보림극장 무대에 섰답니다.
해마다 추석, 설날 등 명절에는 보림극장에서는 항상 대중가수들의
쇼가 공연되었고, 공연마다 전국 최고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당시 공연을 하겠다는 가수가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보림극장은 1997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1970년대 초 '하춘화 리사이틀' 공연중인 보림극장앞 풍경입니다.

록/燦
출처 : https://blog.naver.com/oldcine "영화는 인생의거울" "록"님의 네이버블로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