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강해(40)
실로암 못에 가서
본문 : 요 9:4-7
한번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1절).
그러자 제자들이
평소 궁금해 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2절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잔인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평소 궁금했던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3절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어떻게 해서 생긴 불행이냐,
누구 때문에 생긴 불행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원인을 과거에서 찾지 않으십니다.
본인의 죄냐 부모의 죄냐
- 모두 과거일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점을 바꾸어놓으십니다.
원인이 있다면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는 것이라고,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3절)....
내일이건 십 년 후건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큰 역사를 위하여 ......
오늘의 이 사건이 있다는
큰 경륜적 의미로 보셨습니다.
높은 차원에서, 곧 하나님의 사역 차원에서
사건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
예수님이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설명하십니다.<4-5절>
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절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일하실 시간입니다.
그 맹인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주님은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러시면서 친히 이 맹인의 눈을
고쳐주시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좀 특이합니다.
6절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랐다는 말씀입니다.
평소 예수님께서 쓰시던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능히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말씀만으로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손으로 만지시기도 하시고
(마8:1-4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심),...
귀머거리에게는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또 침을 뱉아
그의 혀에 대시는 방법으로 치유하셨습니다(막7:33).
또 다른 소경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그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시는 방법으로
치유해 주셨습니다(막8:23).
주님께서 이와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유하신 것은.....
각 사람이 자신의 형편에서
주님의 사랑과 치유의 손길을
가장 확실하게 체험하여 확신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 주님은 각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사역에서도 .....
각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알맞은 방법으로 구원하십니다.
- 어떤 사람은 기적을 통해서,...
- 어떤 사람은 마음의 잔잔한 감동으로,...
- 또 어떤 사람은 큰 시련을 통해 구원하십니다.
실로 우리 성도들은 다양한 은혜의 체험,
구원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를 구원하신 분은
예수님 한분이십니다.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든지
주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으로
오직 우리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의 경로가 어떠하든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먼저 당신의 피를 흘려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우리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순종을 통한 기적>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침으로 이긴 진흙을 바르니
바로 눈이 고쳐진 것이 아닙니다.
7절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주님께서는 이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하십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예루살렘과 감람산이 있고....
이 사이에는 기드론 계곡이 있으며....
이 계곡에는 기혼 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히스기야 왕 때 적군이
침략해 오더라도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기혼 샘의 출구를 봉하고
S자형의 535M 정도의 수로를 만들어
기혼 샘물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끌어들여
실로암 못에 모아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마시게 했습니다.
이렇게 수로를 통해서 보내진
물이라고 해서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실로암이라 명한 것입니다.
이 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은
생명샘되신 우리 주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로 씻어야
모든 죄가 씻어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씀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깊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 요구는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이 맹인이 먼저 예수님에게
눈을 고쳐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과 지나가시다 보고
대화를 하셨을 뿐입니다.
또 이사람 자신도 날 때부터 맹인이었기에
자신이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눈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도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보면
“그러면 네가 나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붙드시어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르고 씻으라
하셨을 뿐입니다.
상황이 이렇습니다.
순종할 사람 몇 없을 것 같습니다.
저부터도 쉽게 순종할 것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사람, 위대한 사람입니다.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순종합니다.
맹인으로서 실로암 못을 찾아가지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맹인은 정말 실로암 못까지 찾아가서
그 못의 물로 자신의 눈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으로 물을 떠올려 씻는 동안
눈을 뜨게 되었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순종의 힘입니다.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요2장)에서도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의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인들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으나
주님의 말씀을 좇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어린아이가 자기가 먹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모두 드렸을 때....
5천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구약에 나타난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순종(왕상17)
- 먹을 것이 없어 마지막 남은
가루 통에 조금 남은 가루와
기름병에 조금 남은 기름으로
마지막으로 빵을 만들어서
어린 아들하고 같이 먹고
그 다음에는 죽으려고 했는데,
마침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그럼 그걸로 빵을 만들어서
먼저 내게 가져오라!” ...
왕상17:15에 보면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을 했더니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바닥나지 아니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권세 있는 자로서
모든 부요를 누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에 걸려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인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나아가 일곱 번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니
그 피부가 어린애와 같이 깨끗함을
받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파커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소리에 순종하는 것이
곧 신자의 표적이다.
왜냐하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절대적인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치료되는 것입니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셨지만
만일에라도 '일진이 사납군' 하고 안 갔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이 사람은 눈을 뜨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로암까지 가서 저의 손으로 물을 떠올려
눈을 씻는 그 과정까지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오로지 순종이 필요했습니다.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맺는 말씀>
뉴욕에 한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이 레스토랑에는 그 주변의
나이 드신 까다로운 손님들이 많이 왔는데.....
주방장이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라
때때로 손님들하고 다투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항상 주방장을
불러 놓고 "손님은 왕이다.
절대로 싸우지 마라.
손님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 해 주어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점잖은 할아버지가 오더니
음식을 주문하는데, 감자를 튀겨서 달라고 했습니다.
감자를 튀겨 오니까
너무 크다고 다시 썰어서
튀겨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썰어서 튀겨 오니까
이번에는 너무 두껍다고
얇게 썰어서 튀겨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몇 번에 걸쳐서 주문을 하니까,
주방장이 그만 화가 나서 씩씩거렸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옆에서
'순종, 순종, 순종" 하고 말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종잇장처럼 아주 얇게,
한입에 쏙 들어가게
다시 튀겨서 갖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손님이 감자 튀김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가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너도나도 그 감자 튀김을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이 레스토랑은
그 감자 튀김 때문에 유명해져
손님이 더 많이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포테이토칩'이라는
새로운 메뉴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까다로운 손님의 주문을 다 들어주다 보니까
새로운 메뉴 하나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사업도 순종을 통해 성공하는데
하물며 주의 일은 어떻겠습니까?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후 1:18-20>
18절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절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은 순종의 결단입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축복 속에서도 ‘아멘’ 하고,
역경 속에서도 ‘아멘’ 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도 ‘아멘’ 이요,
아플 때도 ‘아멘’ 해야 합니다.
형통할 때도 ‘아멘’이요,
고난 중에도 ‘아멘’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멘’할 때,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온전히 드러나는 큰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