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꼽는 세계문학 걸작 가운데 줄곧 1,2위를 다투는 작품 중의 하나가 세익스피어(William Skakespeare)의 4대 비극의 하나인『햄릿』이라 하던데...
희곡의 이야기는 16세기 덴마크 왕국의 왕권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줄거리 자체는 상당히 속도감 있게 펼쳐지지만, 막상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주인공 햄릿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읽기에 지루하다는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햄릿이라...고전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등장인물의 생각을 묘사하는 글은 장황한 게 많은데, 하물며 세익스피어의 작품이야 두 말할 나위 있으랴. 스땅달의『파르마의 수도원』맹키로 프랑스의 소설들이 사건 위주의 속도감을 특색으로 하는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의 햄릿이 실제하는 인간이었다면 정말이지 억울하게도 작품이 발표된 이래 거의 150여 년 동안 햄릿의 성격은 한 마디로 '우유부단'으로 치부되어 왔단다. 그러한 햄릿의 성격 결정의 원조는 18세기 말의 보즈웰(James Boswell)이었다는데, 그는 햄릿이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를 명쾌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규정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즈웰의 판단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햄릿의 성격으로 인정되어 왔으니, 독일의 문호 괴테는 햄릿을 유약한 성격의 소유자로, 니체는 허무주의의 전형으로, 나아가서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는 인간의 유형으로 햄릿을 우유부단한 사고형으로, 돈키호테를 저돌적인 행동형으로 분류하기도 했다네. 심지어는 근래 들어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의 유형을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하여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란 말도 쓰이고 있으니...
하지만 햄릿이 우유부단한 성격의 전형이란 과거의 규정들이 최근 들어 재해석되고 있는데, 캐스린 슐츠(Kathryn Schulz)는『오류의 인문학』에서 이야기 속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햄릿의 치밀하고 집요하면서도 과감한 성격을 드러내 준다. 남편인 왕이 죽은지 한 달만에 시동생의 아내가 된 자신의 어머니 거투르드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는 장면이나 연인 오필리아를 광인으로 몰아가다 이윽고는 죽음에 이르게 한 장면은 햄릿의 그러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달리 말해 독립선언서에 나오는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다'는 말이 바로 햄릿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진정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모습은 애꿏은 햄릿에서 찾을 게 아니라 햄릿을 사랑한 오펠리아나 영화 『맬랑콜리아』에 나오는 저스틴이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데...전자는 아버지와 오라비를 죽인 햄릿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다 익사하고, 후자는 떠돌이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파멸의 순간을 어쩔 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마저도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야 딱히 더 할 말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