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계 역사서
바빌론 유배가 끝난 후 어느 시기부터 한 무리의 서기관들이 유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왕국 역사를 다시 편집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의 동기는 유배가 끝난 뒤 이스라엘 재건을 돕는 데 있다. 이 결과로 나온 책들이 역대 기계 역사서들이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기원전 587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바빌론 유배를 계약의 불충실에 대한 벌로 해석하였다. 이런 암울한 역사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희망을 전적으로 포기하게 할 수도 있기에, 절망을 수정하여 희망과 재건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전의 예배와 율법에 대한 관심과 결집이다. 원천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느님을 경배하며 경신례를 바치며 성전이다. 다른 하나는 ‘다윗 왕조가 영원히 세워졌다’(1역대 17,14)의 믿음이다. 이것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 과업을 넘겨주기 위해 자세히 묘사하는 역대기 신학 안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1역대 22-29장). 에즈라기 5장은 역대기에서 다윗의 마지막 후손으로 제시하는 즈루빠벨의 업적으로 본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한다. 이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왕정 시대에 생겨난 구두 전승과 기록 전승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지식인들이 다른 나라로 유배를 가는 시기에 어느 정도 보관되었다. 족장들에 대한 전승과 이집트 탈출 전승(J*E)이 보존되어 종교와 사제들과 관련된 다른 전승(P) 안에 통합되었다. 얼마 후 신명기가 신명기게 역사서에서 분리되어, 현재 우리가 지닌 오경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족장 전승과 이집트 탈출 전승과 결합되었다. 느헤미야기에서 언급되는 모세의 율법서는 이런 형태의 토라 오경을 가리킬 것이다.(느헤 8장) 에제키엘과 제2 이사야 같은 유배기 예언자들의 설교는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어떤 것들은 독자적인 책이 되었고 어떤 것들은 기존의 기록된 예언서 안에 통합되었다. 유배에서 귀환한 직후에 제3 이사야, 하까이, 그리고 즈카르아 같은 다른 설교자들이 예언 활동을 계속 이어갔는데, 어떤 경우에는 별도의 책이 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기존의 책들 안에 들어가 더 큰 책으로 확장되었다. 멸망과 유배라는 비극과 정치적 경제적 고통과 힘의 상실은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에 몰입하고 의지하게 했고 그 결과 구약성경의 태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1.배경:기원전 10세기 다윗왕부터 4세기 말인 538년 키루스 칙령 선포때까지
2.연관성서: 역대기 상*하.에즈라.느헤미야기
3.저술시기: BC 350( 헬레니즘 불 언급, 예언자 하깨. 즈카르야 소개됨:에즈 5,1;6,14)
4.목적: 신명기계 역사서를 근간으로 하여, 신명기 신학을 강화하고 체계화 한다. 즉 신명기적 관점의‘제의(사제직.전례.성전)를 첨부시킨다. 신명기계에 없는 페르시아 시대의 사료들이 있다.(예 키루스 칙령) 이스라엘 공동체 재건 대한 미래지향적 제시한다.
5.저자: 편집시기는 짧게 추정되며 한 사람이 집필하거나 편집되었다. 그 근거는 역대기계 자료 편집 방향(신학사조):귀환후인)현재와 미래지향적 시점이다. 즉 동일한 문체와 공통 사상이 있다.(예: 2역대 36장은 에즈 1장에서 반복됨) 족보, 통계, 성전과 예배등의 공통 관심사. 저술시기는 귀환 후로 성전이 재건 되었을 때다.
-신학적 경향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전의 예배와 율법에 관심. 북왕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직 다윗왕조와 다윗의 선정에 치중(악정과 죄는 삭제한다. 또한 다윗이 예배와 성전에 대한 관심사를 묘사하며 낮에도 밤에도 성전을 생각하여 노래를 지었으며 관심을 가졌다고 묘사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 관심사인 성전 예배 규정들을 다윗이 명령하는 것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다윗이 맺은 계약을 중시하며 다윗 왕조 역사를 길게 제시한다. 다양한 자료에 대해 역대기적 신학사조에 어긋나면 과감히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그 밖의 역사서(2경전): 룻.토빗.유딧.에스텔.마카베오기-2경전
룻.토빗.유딧.에스텔은 역사 전달 목적이 아닌, 교화 목적으로 쓴 역사 소설이다. 그래도 시대 배경이 같아서 묶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