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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차 지리산 한신/칠선 계곡 탐방 - 밉상 강요이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8)
2008-05-07 19:55:09
[191차] 지리산 한신/칠선 계곡 탐방
2008. 5. 6. / 밉상 박광용
산행일 : 2008. 5. 4~5. (일~월), 일욜은 흐리고 월욜은 화창함.
코 스 :
1) 한신계곡 : 백무동-첫나들이폭-가네소폭-한신폭 (왕복)
2) 칠선계곡 : 추성-칠선폭-대륙폭-삼층폭-마폭-천왕봉-장터목-망바위-참샘-백무동
참석자 : 광용, 인섭, 문수, 효용, 병효, 택술, 재일, 규홍. (총 8명)
10여 년 동안 막혀있던 추성리에서 천왕봉까지 칠선계곡 9.7 Km를 하루에 40명 인원으로 한시적으로 개방한다는 보도를 접했다. 작년에 안내산악회의 힘을 빌어 살짝 맛보기로 일곱 신선들의 뒷모습을 보고 오기는 했지만, 우리 스스로 전체 코스를 감행하기는 너무 힘들 거라는 막연한 느낌에 결정하기가 망설여진다. 특히나 우리 산우 전체를 대상으로 함께한다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지리산 공원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오자 마음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예약을 해야 하는데 30초 만에 다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이 앞선다. 가고는 싶지만 과연 잘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막상 다가온 예약 당일에는 예정시간을 놓쳐버리고 10분이 지나고 나서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공단 홈피에 슬쩍 들어가 본다.
어렵쇼? 덜커덩 4명 예약에 성공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면서, 항선달한테 연락하여 ‘4명을 더 확보해보자’고 해버렸다. 10분 후 날아온 문자는 ‘4명 예약 성공’. 이리하여 총 8명이 <지리산 칠선계곡탐사 예약가이드제>의 첫 번째 팀으로 산행자격을 확보한다. 이런 것도 조그만 행운임에 틀림 없다. 첫 시행이라 홍보가 부족했던 탓인지, 연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 날에 힘든 산행을 감행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던지, 우리에게도 이렇게 힘든 기회가 조용히 다가온 것이다.
항선달과 의논하며 일정을 짜는데 여러 가지로 번거롭다. 연휴의 마지막 날 본격 산행을 해야 하는 까닭에 여러 산우들의 일정에 부담이 될까 두렵다. 하는 수 없이 하루 일찍 내려가 가볍게 한신계곡을 거닐다 오는 것을 추가하여 이틀간의 산행일정을 확정하고 블로그에 공지한다. 추성동에 민박 예약하고, 먹거리 챙기고, 여행자보험 가입하고, 차편 알아보는 등, 산행준비에 골몰한다. 처음에는 신청자가 많지 않더니, 수요일이 되어서야 8명 정원을 채운다. 전하는 말에 누군가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참가를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는데 우리 모임 개개인의 실력이라면 어디든 우리나라 산은 다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위로해 본다.
집결지 수서역을 기준으로 5/4(일)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규홍이는 차를 몰고 좀 일찍 도착하였기로 우리동네 아파트에 주차하고 다시 수서역으로 간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대사님의 스타렉스가 권박을 태우고 도착하고, 일찍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고수님이 배낭을 메고 나타난다. 예정된 5명이 순식간에 집결 완료한다. 일요일 개인적 업무가 있다는 재일이는 홀로 버스 편으로 백무동으로 이동하여 우리와 조인할 거다.
우리의 공식 애마로 삼기로 한(?) 스타렉스는 10:05 출발하고 미리 연락된 김총과 항선달을 태우러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선다. 참으로 절묘하게 한 명씩 각자 예정된 포인트에서 픽업에 성공한다. 조금씩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고수님은 그 현란한 운전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전용차선을 이용하여 한 번의 막힘도 없이 계속 고고다. ‘인삼랜드’에서 잠시 휴식하고, 지리산나들목을 빠져 나와 오도령을 넘어 전망대에서 지리 주능선의 경쾌함을 음미해본다.
목적지 백무동으로 가는 길에, 똑똑한 미스 김은 쉰내 나는 장정 일곱이 꽉 찬 차 안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마천읍내의 <흑돼지촌(055-962-6689)>에 내려준다. 오후 1시30분경 도착한 흑돼지촌은 푸줏간을 겸하고 있는 식당이라 쫀득한 돼지고기와 미더덕을 풀어놓은 된장 맛이 일품이다. 권박이 많이 시장했던 모양이다. 방금 푸기 시작하여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공기밥을 하나 더 시켜먹는다. 이렇게 우리가 지리의 품 안에 들었음을 지리산신령님께 신고하고, 백무동 산행 들머리로 이동한다.
작년에 산악회의 안내로 한 번 와본 적이 있어 백무동 주변이 그래도 눈에 익다. 우리 고수님은 매년 지리종주를 하고 있는 배태랑인데 백무동에 와 본 것이 꽤나 오래된 모양이다. 그가 옛 기억을 더듬어 풀어놓는 한 마디 한 소절이 백과사전이다. 그의 지리사랑은 열흘 밤낮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다. 다음주에도 지리종주가 예정돼있다 하니 못 말리는 고수다. 널따란 주차장에 주차하고 행장을 갖추어 문화재 관람료 내지 않아도 되는 들머리를 15:30 진입한다.
계속 오르면 한신폭포를 지나 세석산장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곧바로 야영장 옆을 지나고 40분을 더 오르면 작은 폭포가 하나 눈에 띈다. 첫나들이폭포인지 바람폭포인지 표지를 보지 못해 가늠하기 어렵다. 계속 진행하면 가내소폭포 표지목을 지나지만 물가로 내려가기가 귀찮아 그냥 지나친다.
계곡 길 내내 이어지는 물소리는 절로 흥얼거리게 만들고 폭포를 만나면 그 강도가 더욱 세진다. 간간히 뿌리는 빗방울은 재킷을 입어야 할지 망설이게 만들지만, 아직은 체온으로 유지해도 되겠다고 여긴다. 어느덧 규홍이는 새로 산 판초우의를 걸치고 나타난다. 미군용이라는데 그 성능이 괜찮은 모양이다. 얇기도 하거니와 섬유가 숨을 쉬는지 ‘땀이 차고 그러질 않아 좋다. 좋아’ 하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싱글벙글……
한신폭포 표지목이 있지만 폭포가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좀 더 나가보자’며 10분을 더 가보지만 찾을 수 없다. 지나친 것으로 생각하고 하산을 결정한다. 지도에는 두 시간 걸릴 것으로 돼있는데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사과 한 입, 초콜릿 한 조각으로 반질반질한 바위 위에서 충분히 휴식한다.
하산 길로 접어들면서 올라올 때 속도가 너무 빨랐다며 좀 천천히 가잔다. 누군가 그럴싸한 내기를 제안하는데,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이 맥주 한 잔 사기’란다. 누가 보더라도 맥주 살 사람 정해진 것 같다. 물소리가 요란한 것이 아래에 한신폭포가 있나 보다. 항선달과 김총이 카메라를 들고 내려간다. 멋진 폭포 사진을 찍어왔다. 모두들 내려가보기를 권하지만 ‘뭐 별 것 있겠나’ 싶어 하산을 서두른다. 오르면서 찍지 못한 가내소폭포 사진도 찍으러 이번에는 내가 30미터 아래로 내려간다. 이 계곡에서 이 폭포의 모습이 제일 나은 것 같다.
바람폭포를 지나면서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야영장으로 돌아와서는 할 수 없이 재킷을 꺼내 입는다. 민박집 몇 채를 지나니, 먼저 내려가버린 김총과 항선달이 맥주 한 잔을 기울이고 있다. 내일 있을 칠선계곡 탐사를 위한 예비산행으로 한신계곡을 오르내리며 한신폭포와 가내소폭포는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하여 18:30 하산을 완료한다. 혼자 버스 타고 올 재일이와 연락하여 마천에서 내려 기다리라고 알려둔다.
비는 내리지만 내일은 화창할 거라며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이제 민생고를 해결해야지. 작년 피아골-뱀사골 연결산행 후 가본 적 있는 운봉의 <똥돼지집>을 찾아간다. 똑똑한 미스 김의 안내에 따라 30분을 운전하여 찾아간 그곳, 처음에는 너무 늦어 손님 안 받겠다 했던 울산 아지매가 우리를 알아보고 반겨준다. 남원 아저씨가 직접 키운 똥돼지, 그 꼬들꼬들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옆 테이블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나물을 들고 와서 쌈을 싸먹는다. 상추 외에는 별다른 채소가 제공되지 않는 점을 알고 찾아온 손님인 모양이다. 향긋한 냄새가 ‘옻 싹’이란다. 다른 테이블에는 ‘아스파라가스’를 갖고 왔다. 말 한 마디, 인사 한 번에 두 가지 야채를 조금씩 맛본다. 향긋한 봄 내음이 입안에 퍼진다. 이곳 인심이 이렇게 포근한 모양이다.
이제 선달님이 예약해 놓은 민박집으로 가자. 다시 마천을 지나서 추성으로 가야 한다. 가는 길에 재일이를 마천에서 픽업하여 총원 8명을 채운다. 추성마을 맨 위, 산행 들머리에 위치한 민박집, 칠성휴게소, ‘월간 산’지에 소개된 것을 보면 아저씨가 마을 회장쯤 되는 모양이다. 이 집의 유명한 메뉴 산채정식은 내일 아침에 먹기로 하고, 오늘은 김치부침개 한 장과 서로를 부딪치는 술잔에 정을 나눈다. 이렇듯 거대한 지리의 한 끝자락, 추성마을의 밤은 깊어가고, 내일 점심을 위한 빈 도시락을 내주고, 내일의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아침 5시15분, 고수님의 기상나팔에 모두가 기상이다. 엊저녁 밤 늦도록 누군가의 장난질(?) 전화에 거의 모두가 전화기를 꺼놓고 있었기로 고수님의 전화기만은 켜놓고 있었던 거다. 두 개의 방에서 부시시 눈을 뜬 여덟 산우들은 각자의 볼일을 보고, 5시45분 아래층에서 맛있는 조반을 먹는다. 산채정식, 각종 봄 나물과 씨래기국이 도시에서 찌든 입 안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드디어 06:40 산행 집결지인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공단에서는 요원들이 미리 나와서 여러 개의 플랙카드를 걸어뒀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시적이고 제한적이지만 공식적으로 개방하는 칠선계곡을 홍보하는 것일 게다. 보험가입여부까지 확인하고 비표라 할 만한 삼각깃발을 하나씩 내준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예정된 시각 07:00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
한 30분을 오르면 마을이 있었을 법한 곳인데 사람은 살지 않는 것 같다. ‘두지 터’란다. 쌀 담던 뒤주를 경상도에서는 ‘두지’라 불렀나 보다. 두지를 모아놓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가야국의 전설이 이야기 되고, 지형적으로 오목하게 들어 앉아 있어 듣고 보니 적의 침략은 받은 적이 없을 법하다. 날은 언제 비가 왔느냐면서 환하게 개었다. 파란 하늘에 눈부신 햇살이 무서워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가벼운 화장을 한다. 깊은 계곡이지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재킷을 하나 벗어버리고 이어지는 산행은 다시 50분을 올라 선녀탕이란다. 옥색의 담(潭)은 마치 화학실험실의 무슨 용액처럼 그 빛깔이 너무 곱다. 조금을 더 올라 옥녀탕의 그 빛깔도 무슨 비유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각자 잠시 땀을 훔치며 사진으로 기억을 남겨두고, 다시 30분을 올라 09:00 지금까지 개방의 한계선인 비선담이다. 담(潭)과 소(沼)의 차이가 무엇일까? 크기로는 담이 더 크고, 소에는 물이 떨어지면서 회오리(소용돌이)가 있단다.
전망대 울타리 출입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만, 이제 그 자물쇠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열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동행하던 방송사 카메라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좁은 전망대가 조금 소란해졌다. 공원 지킴이 한 분이 열쇠를 자물쇠에 끼워 넣는다. 플래시가 터지고 조장인 듯한 지킴이 한 분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설명한다. 이제부터는 아무런 인공의 냄새가 없는 지역이란다. 안전시설이라곤 로프 몇 동을 설치한 것이 전부란다. 그러니 안전에 각별히 주의해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물론 가고픈 사람이야 이미 다녀왔을 터지만 그나마 원시(?)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인가 보다. 이끼 낀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40분을 오르면 창암능선 소지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다시 조금 올라 칠선폭포다. 이 계곡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폭포라 그렇게 이름하였단다. 두 계곡의 물이 합쳐져서 수량이 풍부하단다. 그런데 산행로에서 50미터 정도를 내려가야 제대로 된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아쉽지만 통제에 따르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폭포의 모습을 담아둔다.
근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김총의 표정이 밝지 못하더니 급기야 내려가야 하겠단다. 포도청 일이 깔끔하지 못한 상태로 일단 산행에 참여는 했지만 뒷골이 땡겨 제대로 산행할 수가 없단다. 본인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존중해줘야지 별 수가 없다. 공단 요원에게 신고하고 홀로 외로운 하산할 수 밖에 없는 거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중간에 잠시 길을 잃어 10분을 허비했단다. 나중에 함양에서 버스 탔다는 얘길 듣고 안심한다.
배낭을 내려둔 채 5분을 오르면 대륙폭포다. 칠선폭포 위 합수부에서 동쪽(왼편)으로 중봉과 하봉 사이의 계곡을 따라 오르면 수량이 많고 경쾌하다는 평을 듣는 폭포란다. 떨어지는 물이 반짝반짝 빛난다. 햇살이 반사되어 영롱한 모습이 눈부시다. 원래 예정에는 이 폭포는 들르지 않을 거라 했는데 등산객의 요구가 드셌던 모양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배낭을 메고 오른쪽 계곡으로 찾아간다. 30분을 오르면 삼층폭포다. 아래서는 2층으로 보이는데 좀더 깊숙이 올라보면 3층을 확인할 수 있단다. 방송사 기자 한 분이 폭포 아래위를 휘젓고 다닌다. 멋진 모습 하나가 내 카메라에 잡혔다.
다시 길을 오른다. 바위에 얹힌 이끼에 발목이 비틀거리고, 힘든 구간에서는 설치된 로프의 도움을 받아가며, 넘어진 통나무가 다리가 되기도 하고, 예전에 이 길로 사람이 다녔을까 싶은 길을 따라 원시의 냄새를 음미하며 급한 오르막을 오르길 거의 한 시간, 11:50 ‘마폭포’에 닿는다. 마지막 폭포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나, 경상도 말로 ‘마~ 폭포’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고도가 1,300미터 정도 되는 북쪽 골짜기에는 이제야 갓 피어난 참꽃이 자신을 불태워 그 붉음을 맘껏 뽐내고 있다.
민박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치니 여러 가지 나물과 장아찌, 김치, 더덕무침, 곧추 갖춘 반찬이 산상에서 더욱 미각을 자극한다. 비닐 봉지가 바람에 날릴까 고이 접어 주머니에 잠시나마 보관하고, 50분 정도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다시 행장을 정리하며 출발을 준비한다. 폭포 물소리가 요란하여 옆 사람과 대화가 힘들다. 이렇게 높은 곳이 수량이 풍부한 이런 폭포가 있을 줄 어찌 알 수 있을까 싶다.
모두들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진데 그래도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난다. 난생 처음으로 지리에 들어온 규홍이가 내색은 않고 있는 듯하고, 권박이 무릎에 조금씩 자극이 오나 보다. 보호대를 풀었다 조였다 반복하고 있다. 이제 주능선 갈림길까지 남은 거리는 1.6Km지만 두 시간 걸리는 것으로 계획했다 한다. 그렇게 힘든 길이란 반증일 거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늦더라도 힘을 모아 가야만 한다.
10분 정도를 오르면 그 높은 고지에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주목이 한 그루 서있다. 모두들 한 번씩 만져보고 간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오르막을 다리에 힘을 불어넣으며, 중간에 간간히 쉬어가며, 마지막 철계단에서 죽을 힘을 다하여 오르면, 마폭포에서 한 시간 반 걸려 14:20 드디어 주능선 갈림길이다. 이제 더 이상 칠선계곡은 아니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5분만 오르면 천왕봉인데 공단요원들이 모두를 불러모으고 있다. <칠선계곡 탐방 가이드제> 시행 제1기 등산객들은 14:35 잠시 모여 수고한 요원들에게 감사의 박수로 답례하고, 사진 한 방으로 이를 기념한다.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개방이 뒤따르고, 휴식년제 본래 의미에 맞게 순번제로 쉬게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전달한다. 비선담에서 우리의 고수님이 퀴즈문제 정답을 맞췄기로 말로 했던 약속을 지키는 공단요원의 모습이 대견하다. 부상으로 초코파이 두 개를 받았다. 사소하지만 이렇게 지켜지는 약속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제 천왕봉을 들렀다가 하산해야 한다. 힘들지만 기쁜 마음으로 오르기를 약 5분, 천왕봉 정상석이 우릴 반긴다. 단체로 일곱 건각의 사진을 기념으로 남겨둔다. 내가 몇 차례 천왕봉을 올랐지만 오늘처럼 맑게 갠 날은 처음이다. 이번에 은수가 홀로 왕복종주를 완성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3대가 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그 일출을 은수는 매번 보고 가는 모양인데, 나는 작년 종주 때도 첫째 날은 화창하게 갰다가 둘째 날 천왕에 올랐을 땐 구름만 잔뜩 드리웠었다.
하지만 오늘 여기서 보는 지리 주능선의 모습이 너무나 경쾌하다. 바로 앞의 제석봉은 천왕에 인사하는 모습이고, 영신봉 아래의 세석에는 철쭉이 만개를 준비하고 있을 게다. 이어지는 남부능선 삼신봉에는 언제 한 번 올라보나? 저 멀리 반야는 제 엉덩이를 까놓고 여럿 나무꾼을 유혹한다. 그 뒤의 노고 할미도 어줍잖은 윙크로 뭇 사내의 마음을 훔친다. 이어지는 서북능선의 모습에서 쿵닥거리는 내 심장의 고동을 듣는다. 다시 올 그날까지 잘 있거라, 지리야!
바람이 심하여 정상에서 내려와 바람 피할 곳에서 정상주로 준비해온 복분자주를 돌리지만 더 달라는 얘기가 없다. 모두들 힘들기는 했나 보다. 권박이 힘든가 보다. 속도가 늦다. 백무동으로 하산하는데 길은 뻔하지만 무릎이 아파오니 견디기 힘든가 보다. 일단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바로 머리 위에서 배낭 정리하고 있던 재일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 찾느라고 아마도 달려갔을 것 같다. 하여 우리는 지 찾으러 달려간다. 하산 길 조심해서 내려가자며 장터목으로 간다.
40분 걸려 15:20 도착한 장터목 산장,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안개 자욱한 광경뿐인데 오늘은 제 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매점에서 파는 깡통 황도 한 입에 피로를 풀고, 수통에 물 채우고 다시 출발이다. 백무동까지 지도에는 4시간 거리로 표시돼있지만 3시간 반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되지만 부상자가 있으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제석봉에서 북으로 뻗어 내린 창암능선을 따라 너덜 길을 내려간다. 외길이니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 뒤따르던 고수님과 의논한 결과, 권박의 속도가 느리니 괴물(?) 재일이와 문수 선달이 먼저 하산하여 차를 백무동으로 이동시켜놓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따라 일행이 나눠진다. 선두는 문수와 괴물이 먼저 내려가고, 고수 대사 규홍 그리고 나는 중간 지킴이가 돼버렸고, 권박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며 내려오고 있다.
장터목을 출발한 지 40분, 16:10 망바위에 닿는다. 능선에서 망보기가 좋았던 데서 유래한 것일까? 이름이 특이하다. 다시 편안한 내림 길을 가면 30분 걸려 16:45 소지봉에 닿는다. 제석봉 아래 단에서 제사에 사용했던 지위나 축문을 여기서 태웠다는 얘긴데 굳이 먼 길을 와서 태워야 했던 연유가 있었을까?
중학생인 듯한 앳된 아이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올라간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뒤따라 오시는데 산장 자리 확보해야 한다며 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잠시 쉬어가라는 뜻으로 사진을 한 장 부탁한다. 잘 찍어준 사진이 돋보인다. 오늘 같은 날에는 예약이 없어도 산장 자리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텐데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 착한 학생인지 발걸음이 바쁘다.
다시 편안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칠선폭포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 입구에는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있다. 소지봉에서 20분을 내려왔을까? 17:10 참샘이다. 물맛의 시원함이 예상보다 덜한 것으로 보아 오늘 날씨가 무척이나 더운가 보다. 한참을 기다리며 모두들 권박을 걱정한다. 어차피 홀로 내려와야 하는 길, 힘이야 들겠지만 권박의 위기관리능력을 믿는다. 뒤따라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권박의 상태를 물어보니 어떤 이는 그런대로 잘 오고 있다는 얘기고, 어떤 이는 상처를 소독하고 있더라는 얘기도 들린다. 어차피 늦어진 길, 기다려보자.
20분을 기다렸나 보다. 내려오는 모습이 권박이다. 홀로 맨 뒤에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턱밑, 팔꿈치, 무릎에 상처를 입었단다. 자신이 갖고 다니는 약품으로 응급처치하고 오는 거란다. 그만하기 참으로 다행이다. 일일이 후미를 다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충분히 휴식하고 마음을 정리한다.
다시 20분을 내려와서 17:50 하동바위다. 하동 군수가 이 큰 바위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는데, 왜 하동에서 함양까지 왔는지는 설명이 없나 보다. 또다시 충분히 휴식한다. 이제 권박 얼굴도 조금 편하게 보인다. 내림 길의 경사가 완만해지니 걷기도 조금은 편해졌나 보다. 충분히 휴식하며 먼저 내려간 선달에게 연락해보니 추성에서 백무동으로 이동 중이란다. 일단 안심이다.
다시 완만한 길을 내려 야영장에 당도하고 10분을 더 내려가니 괴물과 선달은 공원지킴터 코밑에까지 차를 몰아 주차시켜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너무 고맙다. 목욕하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상경할 일이 힘들 것 같아 생략하고 가는 길에 저녁을 먹기로 한다. 고수님의 의견에 따라 괴물 재일이가 운전대를 잡는다. 미스 김의 도움을 받아 인월 두꺼비집에서 어탕국수에 밥도 조금 말아 먹으니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잠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아 걱정이다.
그 먼 길을 운전해준 효용 고수와 괴물 재일이의 수고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며, 차량을 제공해준 대사님께도 감사를, 수고한 모두에게 천왕봉의 기가 가득하기 바란다. 모두들 너무 고생했다. 김총도 먼저 상경하길 잘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고, 권박도 마무리 치료 잘 하길 바란다. 다시 기회가 있다면 가 볼래? 함 더 가면 좀더 편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고, 친구가 있어 한 잔 술로 정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