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테슬라가 차세대 배터리 규격을 4680(지름 46㎜·높이 80㎜) 원통형으로 확정하면서 원통형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원통형 배터리는 대량 생산이 용이해 생산 단가가 낮은 게 장점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잇달아 원통형 배터리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최근 독일에서 열린 2차전지 전시회 ‘인터배터리 유럽’에서 46파이 원통형 배터리를 최초로 전시했다. 46파이는 테슬라의 4680과 같은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지만, 높이가 80㎜로 정형화된 4680과 달리 지름만 46㎜로 정하고 높이는 고객사 요구에 맞춰 책정한다.LG에너지솔루션도 삼성SDI와 마찬가지로 지름을 46㎜ 고정하고 높이를 다변화하는 ‘46XX’ 제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삼성SDI가 각형,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파우치형에 주력하고 있었으나, 완성차 업체의 수요에 맞춰 원통형 배터리에도 대비하는 모습이다.
◇ 공정 빠르고 양산성 높아… 韓 배터리도 증설 러시원통형 배터리는 구조상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단위 용량이 작아 전기차에 사용하려면 수천 개를 묶어야 한다. 여기서 빈 곳이 발생해 각형이나 파우치형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그럼에도 원통형은 양산성(단위 시간당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이 높아 최근 완성차 업체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원통형 배터리는 양극, 음극, 분리막 등이 담긴 배터리 소재 조합물인 젤리롤(Jelly roll)을 둥글게 말아 캔에 넣고 전해액을 주입한 뒤 밀봉하는 식으로 만들어 고속 공정이 가능하다. 이는 설계 유연성이 낮은 파우치·각형 대비 매우 특화된 장점”이라고 말했다.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원통형 전지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SDI는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말레이시아 세렘반공장에 1조7000억원을 투자해 2공장을 짓고 있다. 이곳에서는 2024년부터 2170(지름 21㎜·높이 70㎜) 원통형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또 미국 인디애나주 뉴칼라일에 건설 예정인 GM과의 합작 공장에서도 원통형 전지를 생산해 향후 출시될 GM 전기차에 전량 탑재한다. 최근 공개한 46파이의 경우 천안 사업장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해 올 하반기부터 샘플 제작을 시작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창 공장에서 테슬라 모델3 등에 탑재되는 2170라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2026년까지 4조원을 투자해 생산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우선 오창 1공장에 1500억원을 투자해 4기가와트시(GWh) 규모의 2170 라인을 증설하고, 오창 2공장에는 5800억원을 투자해 총 9GWh의 규모의 테슬라 납품용 4680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다.배터리 업계 후발 주자인 SK온은 아직 원통형 배터리 생산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중심을 파우치형 배터리에 두고,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에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향후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할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유진투자증권은 지난해 약 108GWh 수준이었던 글로벌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 시장 규모가 2025년 241GWh, 2030년 705GWh까지 늘어나며 연평균 27%씩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 원통형 배터리 소재 업계도 기대감원통형 배터리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관련 소재를 납품하는 기업들도 수혜가 예상된다. 국내 유일 니켈도금강판 공급자인 TCC스틸은 지난 2009년부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에 제품을 납품해 왔다. 니켈도금강판은 내식성과 가공성이 뛰어나 원통형 캔의 겉면을 포장하는 데 사용된다.TCC스틸은 작년 1월부터 총 1105억원을 투자해 포항공장에 니켈도금강판 전용 설비를 증설하고 있고, 다음달부터 시가동을 시작해 생산 능력을 기존 7만톤에서 20만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원통형 배터리캔을 생산하는 동원시스템즈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585억원을 투자해 충남 공장에 2170 규격과 4680 규격 원통형 배터리 캔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증설했다.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하면 연간 5억개 이상을 만들 수 있다. 매출의 90%가량이 삼성SDI로부터 나오는 배터리캔 제조업체 상신이디피 역시 고객사의 증설로 매출 확대가 예상된다.원통형 배터리캔 시장에 새롭게 진출을 선언한 기업도 있다. 냉연특수강 전문 기업인 동국산업은 작년 8월 약 880억원을 투자해 니켈도금강판 제조라인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오는 2024년 10월 완공 시 연 13만톤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전망이며, 동원시스템즈 등에 납품할 계획이다.
정재훤 기자 h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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