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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7(239) 중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2022. 10. 30
오늘은 505주년을 맞이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당시 로마천주교 신부였던 마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의 대문에 게시함으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항하였다는 이유로 1520년 파문을 당하고 평신도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찰스 5세(Charles Ⅴ, 1500-1558)는 1521년 루터를 심판하기 위하여 보름스 회의를 소집하고 마틴 루터를 소환합니다. 루터의 친구들은 루터가 보름스회의에 가면, 루터를 죽이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두었던 카톨릭에 의해서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루터더러 모른 체 멀리 도망을 가라고 권유합니다.
이때 루터는 담대하게 자신의 피신을 권유하는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나를 죽이려는 원수들이 보름스 성당의 기왓장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가리라”말하며 재판정에 출두합니다.
그리고 재판정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Oh, God! Here I stand; I have no choice(하나님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선택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외치다가 설령 로마 카톨릭에 의해 살해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하나님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의 신앙이며 정신입니다.
하나님만을 신앙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려는 루터의 신앙고백이 나타나난 것이 바로 찬송가 384장입니다. “1)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찬송처럼 믿음으로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은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는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성경구절을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수도사들은 로마 교황청이 있는 빌라도의 계단(Scala Sancta, holy stairs) 이라 불리우는 28개 돌계단을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기하며 유리 조각을 깔아 놓고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28돌계단을 왜 중요시하느냐 하면, 여기에 역사적 유래가 있습니다.
이 돌계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 기간 동안 재판을 받으러 가던 예루살렘의 본디오 빌라도 관저로 이어지는 계단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이 돌계단을 걸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연유로 로마제국에 기독교를 국교로 허용한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4세기에 베들레헴에서 로마로 가져와 설치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여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기독교 순례자들과 수도사들이 여기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예식을 합니다.
무릎으로 올라갔다가 무릎으로 기어 내려오는 고통을 겪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돌계단에 유리 조각을 뿌려서 일부러 무릎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을 하자 로마교황청은 계단을 보호하기 위하여 1200년대 초반부터 계단에 나무 덮개를 하여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거의 300년 가까이 나무덮개로 보호를 받았던 이 계단이 2019년 복원작업을 마치고 한시적으로 다시 개방되었습니다.
루터는 무릎으로 고통스럽게 돌계단을 기어 올라가던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을 떠올립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 한 구절이 루터의 가슴을 마구 두들기기 시작합니다. 이 말씀이 머릿속에서 루터의 모든 사고방식을 다 덮어 버립니다. 이 말씀을 몇 번이나 되 뇌이던 루터는 기어 올라가던 행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올라갔던 계단을 걸어서 내려오고 맙니다.
주변 사람들이 비난하고 눈총을 주었지만 루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그 계단을 내려옵니다. 루터가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요? ‘오직 의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 루터에게 어떤 영행을 주었길래 루터의 행동이 한순간에 돌변한 것인가요?
그것은 바로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다”는 진리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고행을 하고, 몸을 상하게 하면서 엄청난 수련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까닭입니다. 아무리 빌라도의 계단을 수 천번 오르락 내리락 거려도 인간의 행동으로는 구원이 완성되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기독교 신앙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이신득구(以信得救)’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을 ‘이신칭의(以信稱義)’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당시 부패하였으면서도 전혀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던 로마카톨릭 교회의 개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바로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개혁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개혁은 ‘교회든 개인이든 사회이든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개혁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잘못된 제도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바꾸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인들의 개혁은 자신의 입맛대로 고무줄 개혁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다 바꾸는 것을 원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당의 방침에 따라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개혁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개혁과는 차원이 다른 개인 욕심에 따른 개혁입니다.
신앙인의 개혁은 내 입맛대로 하는 개혁이 아닙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나만 이롭게 하는 밥그릇개혁이 아닙니다. 사람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이 성경적 모습입니다. 인본주의 생각과 사상에서 신본주의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내 중심의 행동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고, 나만 생각하는 모습에서 항상 하나님만 바라 보는 모습입니다.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의 원리를 이 시간 찾아보며 은혜 받기 원합니다.
1.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sola fide)
마틴 루터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나무 밑으로 피했는데 벼락이 떨어져 친구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충격을 받고 수도사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이에 카톨릭 신부가 된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교훈을 따라 고행과 선행에 힘썼지만, 도무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고행을 하면서 아무리 연단을 해도 자신의 구원은 확신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러한 번민 속에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연구하던 중에 본문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읽고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얻게 됩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 원리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원의 길은 오로지 믿음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성도들은 오직 믿음으로 해야만 실수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좋은 방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믿음으로 나서지 않는 행동은 결국은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는 일부의 교인들은 이 간단한 원칙을 자주 놓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하고, 내가 저것을 하고, 내가 무엇을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이런 행동은 목적과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져 있는 경우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열심히 선행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봉사하고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고 올바른 모습을 보이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행동은 성도가 하나님에게 받는 상급에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내가 선행을 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덕이 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런 행동은 나의 상급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행동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한 행동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상은 상급이지 구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결과 성경은 ‘행함이 바탕이 되는 율법으로 구원 얻을 수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부인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바로 이단이며 사탄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인 것입니다.
엡 2:8절,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즉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아울러 내 행동으로 받는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받은 구원이기에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갈 2: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선행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2. 오직 성경으로 살리라 (sola scriptura)
어떤 분이 성경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열심히 읽다가 깨달은 바 있어 먼저 신앙생활을 하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구먼”. 아내는 옳다고 긍정했습니다. 그는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야”. 아내는 옳다고 긍정했습니다.
그는 계속 성경을 읽더니 더 크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여보, 성경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살 길이 있군”.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발견한 대로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에게 살길을 주시기 위하여 무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살아났으니 너희도 살리라”. 우리에게 살길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밝히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올바른 진리의 가르침은 오직 성경밖에 없습니다. 모든 믿음의 내용도 바로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순종할 때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믿을 때 구원을 주시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을 믿고 지킬 때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지금까지 성경대로 살지 않았으면 돌이켜 회개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시편 119편 11절에 말합니다. 우리도 오직 성경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설교 패턴은 ‘성경에 이르기를 (The Bible says)’ 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 바를 전하니까 수많은 영혼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성경이 말한 것을 좇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따라가는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울러 나는 성경대로 살아갈 것이라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십니다.
믿는 자의 삶의 원리는 오직 성경입니다. ‘솔라 스크립추라(오직 성경)’입니다. 삶의 원칙이 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돈 버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는 세상의 것이 사라지면 모두 없어져 버리는 허무한 목표입니다. 이런 것을 따라가면 실망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세시대 종교개혁자들은 교황의 말을 따르고, 천주교회의 예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어떤 전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있던 나의 마음과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인 진정한 성경적 개혁입니다.
3. 오직 은혜로 살리라 (sola gratia)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독일군의 피격으로 영국군함이 파선되자 군인들이 살기위해 바다로 뛰어듭니다. 물에 뛰어든 병사 한 명이 간신히 널판지 하나를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병사 한 명이 또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동료에게 널판지를 함께 붙들게 합니다. 그러나 널판지가 너무 작아 두 병사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채 자꾸만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러자 그는 동료에게 널판지를 내어 주며 말합니다. “아무쪼록 살아서 돌아가시오”. 그런데 중상을 입은 동료 병사는 극구 사양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생명줄인 널판지를 내어 준 병사는 평상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배안에서도 수많은 전도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자신은 기독교가 싫어서 그 병사를 극구 싫어하면서 혐오하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워했던 기독교인이 자신에게 생명줄 널빤지는 건네주고 희생하니 받아들이기 무안했던 것입니다.
널빤지를 건넨 동료 병사는 “부디 살아서 예수 믿고 천국에서 만납시다.”는 말을 건내고 이내 물에 가라 앉아 버립니다. 동료는 널판지를 붙들고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받은바 은혜를 전합니다.
마틴 루터는 카톨릭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공덕 축척설’이 진리가 아님을 말합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기에‘오직 은혜’를 외쳤습니다. ‘오직 은혜’는 라틴어로‘솔라 그라티아’ 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 정답이 나타납니다. 롬 3:24절에 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또 엡 1: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의 삶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면서 10월을 마무리하고 11월을 소망하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