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의 교리와 문제점
그들의 수도방법은 수도장에서 1시간 기도는 가정집에서 1달 기도와 동일하며,
1초라도 잠깐 졸면 무효가 되며,
수도방법은 강증산이나 조철제의 영원히 모시는 정신을 단전에 염마하며
정성을 다하며 주문을 외우고 암송하여 수행한다.
그들의 주문의 대상이 모두 신명인 귀신들과 관계되거나
인간 하느님들에게 하는 것이며 이러한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라고 한다.
이 도통법은 모든 유혹의 근원이며 이것 때문에 도인이 되는 것이다.
"스위치를 올리면 전기불이 들어오듯이 때가 되어 박한경이 스위치를 올리면
연원을 따라서 도통(연맥도통)을 받게 되고 이때부터는 선남선녀가 되어
손오공 마냥 구름을 타고 하늘도 날아 다니게 된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
"도통은 운수노름이라 그러므로 돈 많이 내고 포덕 많이 하는 것이 도통의 지름길이다"
대순진리회 신도들이 포교하는 과정에서
흔히 써먹는 얘기 중의 하나가 중곡동의 지맥에 관한 내용이다.
즉 곤륜산(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으로 중국 서족에 있다고 하며
처음에는 하늘에 신선경이라고 이르는 산, 전국 말기부터는 서왕모가 살며
불사의 물이 흐르는 신선경이라고 믿어져온 산임) -
장백산(백두산) - 금강산 - 삼각산 - 용마산으로 지구의 지맥이 흐르는데
이 용마산이 여체의 '옥문'과 같은 형상으로 생긴 천하의 명당자리이며
바로 이 용마산 기슭에 대순진리회의 중곡동 회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자리가 천하의 명당이며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 중곡동의 지세가 아기를 낳은 여자의 음부와 같기 때문에 여기서 진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1965년도에 76명이 태극도에서 죽은 사건이 터졌으며,
태극도 도주인 조철제가 계시를 빙자하며
알뜰한 여신도들을 바치게 했으며,
대순진리회 도전인 박한경의 방에 밤마다 이모 여인을 끌어들여
추행을 했다는 비윤리적인 사건들이 신문과 신흥종교연구가들에 의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아직도 대순진리회는 9궁도수,
천자는 9명의 부인을 둔다는 일남 구녀의 교리는 잠재하여 있어
간음행위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시한부 말세론인 개벽설을 주장한다.
"1984년 4월 8일 대순진리회 신도들이 갑자년에 개벽이 갑자기 온다며 84년 개벽설을 부르짖고
학업중단과 금품갈취, 집단가출로 가정을 파괴하는 등...
"(추적 60분에 고발된 대순진리회의 비리)의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에 자신의 지위에 위태함을 느낀 박한경은 1989년 8월8일 개벽설을 다시 부르짖게 된다.
또한 그들은 초창기부터 금품강요로 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왔다.
앞에 보았듯이 돈을 많이 내는 것이 도통의 지름길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아직도 단전호흡이라는 속임수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진설명>: 박한경 장례식.
태극도에서 떨어져 나와 새판을 차린 지 정확히 27년만인
1996년 1월 23일 박한경은 대순발전의 절정의 순간에서
8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헛도수 27년 )
◎ 1895년(乙未, 을미년)
조철제가 살인 강도골로 알려진 도둑골을 옆에 낀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에서 출생.
◎ 1909년(己酉, 기유년)
이해 부친을 따라 전 가족이 만주로 이주.
훗날 조철제는 만주로 가던 그날 신의주로 가는 열차 안에
앉아 있는데 홀연히 증산 상제님이 자신에게 나타나
정산이라는 호를 주고 시루와 솥의 일체 논리를 따라
종통을 계승하라는 계시를 내렸다고 주장함.
(실상은 만주 유하현에서 이치복 성도 계열의 김혁에게서 태을주가 적힌 주문지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후일 전라도로 들어가 이치복 성도를 만나 상제님 식솔을 만나 혈연관계를 맺어
천하사를 하겠다는 욕심을 갖게 됨)
◎1917년(丁巳, 정사년)
이 해 1월 1일 새벽에 증산 상제님께서 나타나 시천주와 태을주 주문을 내리는 계시를 받았으며
다시 윤(閏) 2월 7일에 증산 상제님께서 나타나 운장주와 오주 칠성주 등의 주문을 내리는
계시가 있었다고 주장함. 그리고 다시 4월 28일 증산 상제님께서 나타나시어 고국에 돌아가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함. 이해 조철제는 만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였음.
귀국 후에도 더 많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음. 태극도의 『진경』을 보면 수많은 계시가 등장함.
◎1918년(戊午, 무오년)
조철제가 자칭 옥황상제로 둔갑하게 되는 첫 번째 사건 발생
함께 수도하던 박봉운이라는 자가 수도 도중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를 뵈었는데
그 얼굴이 조철제의 얼굴과 같다고 하며 일행에게 4배를 올리자고 말하자
조철제는 절을 받으며 이는 오직 천기(天機, 하늘의 비밀)라고 하였음.
◎1919년(己未, 기미년)
종통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람을 시켜
보천교 본부에 보관되어 있던 약장과 궤를 강탈해 오다가
사람들이 뒤쫓아오므로 약장은 무거워 버려 두고 궤만 가지고 도망 함.
◎1921년(辛酉, 신유년)
이해 2월 상제님의 초빈을 헤치고 성굴을 도굴하는 대패악을 감행함.
도굴한 성골을 통사동 이씨 재실에 모시고 자신은 상제님의 의자(義子)로 종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따르는 교인들에게 복을 받으려면
상제님 성골 앞에 성금을 헌납하라 하며 금전을 갈취함.
또 상제님의 뼈에 살이 붙어 나와 재생신함으로써 증산 상제님이 다시 출세하시는데
보천교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허언을 유포하였음.
그러나 1차로 기한한 날짜에 ‘상제님 유골이 살아난다’는 일이 허사로 돌아가자
다시 날짜를 상제님 성탄일인 9월 19일로 연기하였고 이 또한 무산됨.
하지만 이 때 많은 돈을 모았으며 2년 전에 훔쳐온 궤와 성골을 숨기고 교단창립을 계획하였음.
인류 역사상 스승의 성골을 도굴한 초유의 사건이었으며 "배은망덕"의 끝을 보는 사건이었다.
◎1925년(乙丑, 을축년)
구태인 도창현에서 무극도를 조직하였음.
◎1936년(丙子, 병자년)
일제의 종교탄압령으로 해체
◎1945년(乙酉, 을유년)
해방과 더불어 종교활동 개시
◎1946년(丙戌, 병술년)
1917(丁巳, 정사)년에 출생한 박한경이 안상익의 인도로 조철제 교단에 가입함
◎1948년(戊子, 무자년)
교명을 ‘태극도’로 바꿈.
이후 부산 보수동에서 감천동으로 이주하면서 신앙촌을 형성하였고 6·25 한국동란을 계기로
어수선한 시운을 타고 시한부 종말론과 부산이 구원의 땅이라는 말을 퍼뜨리며 세력을 신장함.
태극도의 여러 방면 중에서 박한경의 충주방면이 단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함
◎1955년(乙未, 을미년)
조철제가 자칭 옥황상제로 둔갑하는 두 번째 사건이 발생.
한 신도가 조철제가 천상에서 면류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용상에 앉아 있는 꿈을 꾼 뒤로 조철제를 지존의 위격으로 받들기 시작
◎1957년(丁酉, 정유년)
조철제 드디어 평생 소원이던 옥황상제가 됨.
스스로 옥황상제의 위패를 떼고 자신의 사진을 붙임으로써 옥황상제임을 말함.
이후부터 조철제를 조성옥황상제로 받듬
◎1958년(戊戌, 무술년)
조철제 사망.
태극도내에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박한경이 교권을 장악함.
그러나 박한경의 교권계승을 승복하지 않는 반대파와의 내분이 시작됨 = 신 구파의 대립
◎1961년(辛丑, 신축년)
5·16 군사혁명을 계기로 태극도촌의 비리에 대한 혁명정부의 수사시작.
박한경을 비롯한 28명이 전원 수감되었으나 막대한 양의 금품을 동원하여
관리를 매수함으로써 12월에 들어 흐지부지 되며 풀려남
◎1965년(乙巳, 을사년)
부정리(夫丁里)를 부정리(扶鼎里)로 조작하고 시루와 솥의 비유에 따른
거짓 종통을 주장하는 『선도진경』이 박한경 책임 아래에 발간됨
교묘한 지명 조작을 통하여 종통성확보 훗날 고증을 통해 모든 비리가 들어남(비디오 테잎배포)
◎1968년(戊申, 무신년)
태극도내의 내분이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 격화되자 박한경은 잠적함.
구파(지금이 태극도)는 잠시 조철제의 3남 조영래(趙永來)가 이끌다가
후일 다른 사람을 내세우며 오늘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
◎1969년(己酉, 기유년)
신파인 박한경은 서울에 올라와 중곡동에다 태극진리회를 창립,
후에 대순진리회로 개칭하였는데 이로부터 도통 공부가 헛된 것으로 끝나고 마는
27년 헛도수가 열리기 시작함.
◎1974년(甲寅, 갑인년)
『대순전경』과 『선도진경』에서 태모 고수부님의 종통계승을 나타내는 성구를 삭제하고
대신 조철제를 종통계승자로 내세워 그의 생애를 성구화하여 『전경』을 발간함.
그 주모자가 바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한 장병길.
장병길은 대순으로부터 고액의 댓가를 받으며 서울대 출판부를 발행처로 『전경』을 발간함.
통일교의 세계평화교수협의회 회장인 장병림 전 서울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친형임.
◎1984년(甲子, 갑자년)
이해에 개벽이 ‘갑자’기 된다고 하며 주부신도들을 천륜을 끊고 가출하게 하고
성금명목으로 무수히 많은 돈을 갈취한 것이 사회문제가 되어
KBS TV 「추적 60분」에 ‘아내의 가출’이라는 프로로써 고발됨.= 갑자 개벽설
◎1988년(戊辰, 무진년)
이해에 다시 도통이 나온다하여 신도들의 재물을 갈취,
개벽이 되지 않자 급기야 많은 신도들이 연동흠이란 자를 중심으로 용화일심회를 조직,
대순진리회 재단 이사장 박희규를 걸어 재산반환을 청구하고,
박한경 현 도전은 그동안의 지병(당뇨병)으로 고려대 부속병원을 전전하는 등
붕괴의 조짐을 보인바 있음. 그러나 이 위기를 극복하고는 여주와 포천과 속초에
화려한 수도장을 지으며 한국사회에 더욱 급격히 퍼져나가기 시작함. = 무진 개벽설
◎1996년(丙子, 병자년)
박한경이 부산의 태극도를 뛰쳐나와 서울 중곡동에 새판을 차린 이후
27년만에 대순진리회 발전 절정의 순간에서 사망함.
이해 3월 5일 MBC PD 수첩 ‘대순진리회를 아십니까’가 방송되면서
사회의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킴.
◎1998년(戊寅, 무인년)
교주 사망이후에도 더욱 기승을 부리는 대순진리회 신도들의 이해할 수 없는 길거리 포교행각이
MBC 시사매거진 2580 프로에서 ‘거리의 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며
다시 한번 전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킴. = 최근에는 증산도를 사칭하며 다니기도함.
◎1999년(己卯, 기묘년)
박한경의 3년 상이 끝나면서 드디어 내부에 잠재되어 오던 주도권 쟁탈전이 시작됨.
경석규를 앞세운 양위상제파가 이유종을 우두머리로 하는 삼위상제파를 여주 본부도장에서
무력으로 몰아낸 이후 두 쪽으로 분열하기 시작함.
◎ 2000년(庚辰, 경진년)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대순진리회 여주 도장에서 한국 종교사상
최대의 유혈 폭력 사태가 발생하여 KBS, MBC, SBS TV를 비롯한
모든 매체를 타고 하루종일 방송됨.
이제 대순진리회 사태는 전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름.
◎2001년(辛巳, 신사년)
폭력사태이후 각 지방별 군소 조직으로 급속한 분열중
◎2003년(癸未, 계미년)
생명수 사건으로 유명한 연천 신도 암매장사건 발생.
시사메거진, PD수첩 방영
연락주십시요
모든 진실을 밝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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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방면 도장
증산계의비극
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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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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