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을 보면서: 온 국민이 청록색맹? 2/2
남귤북지(南橘北枳)는 귤(橘)과 탱자(枳)에 대한 이야기인데 귤나무가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열린다는 뜻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볼 때마다 노랗고 동그란 탱자가 많이 열려도 따기가 쉽지 않다. 날카로운 가시가 많기 때문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짐승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도둑을 막기 위한 것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가시 때문에 개구멍도 만들기 불편하다. 작은 콩새나 굴뚝새가 들락거리기 좋을 뿐 참새의 은신처로서도 적합하지 않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가시 때문에 안에서 나올 수도 없고, 밖에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래서 유배지로 보내는 형벌에는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가택연금형이 있다. 말인즉, 울타리로 둘러 싸인 곳에 편안하게 모신다라는 뜻이다. 울타리(籬)는 탱자나무 울타리다. 거주지를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막아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던 형벌이었다. 연산군도 강화 교동도에서 위리안치형을 받아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서 유배 생활하다 2달만에 역질로 사망하였다.
귤은 단맛과 향이 좋은 데 탱자는 단맛보다는 신맛이 나고, 탱자는 귤보다 씨가 많고 향은 귤보다 진하다. 귤은 귤의 본질이 있고, 탱자는 탱자대로 본질이 있다. 비교의 기준이 서로 다를 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귤나무는 추위에 약해서 강북보다는 강남에서 자라기 좋고 탱자나무는 내한성이 강해서 더운 강남보다는 서늘한 강북이 재배의 적지이다. 귤나무와 탱자나무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귤의 단맛과 탱자의 내한성을 겸비하는 기술을 알아내었다. 바로 탱자나무에 귤 가지를 접목을 하는 것이다. 결과는 나무는 추위에 잘 견디고 열매(귤)를 많이 맺게 된다. 그런데 추위가 닥치면 귤 가지는 얼어 죽는다. 하지만 탱자 밑동은 살아서 다시 가지를 키워서 탱자가 열린다. 그러면 사람들은 전에는 귤이 많이 열리던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리므로 남귤북지의 현장 확인이 되었다고 할것이다.
남귤북지라는 이야기에서 제나라 재상 안영과 초나라의 영양왕도 귤과 탱자를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이 말의 함의는 같은 종류의 귤(橘)이라도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그 모양과 성질이 달라진다는 뜻이므로, 사람도 주위 환경이 달라지면 변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출신지 보다는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된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사자성어가 있다. 쪽에서 짜낸 물색(靑, blue)이 쪽풀의 풀색(藍, 람색, green)보다 더 진하다는 뜻인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있다(靑出於藍而靑於藍). 또 얼음은 물로 만들어졌지만 물보다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라는 빙수위지(氷水爲之)라는 말도 있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스승이 제자가 되고 제자가 스승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참조: 이밀/李謐/과 공번/孔璠/). [2022.02.05.]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람색(藍色)이 록색(green)인지 남색(indigo)인지 헷갈린다. 청람의 뜻에서는 람색은 분명히 록색이다. 그런데 주로 남색으로 설명을 하니 헷갈리게 된다. 두음법칙 때문에 람색이 남색으로 변화여 헷갈리게 되는것 같다. 청람을 영어로 보면 분명히 blue와 green의 비교인데 우리는 람을 초록색이 아닌 남색(indigo)을 연상시킨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녹색과 청색도 헷갈리게 한다. 예를 들면, 교통신호등은 분명히 녹색 신호등인데 푸른 신호등이라고 하니 온국민에게 청록색맹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무지개 색갈을 말할 때 ‘빨주노초파남보’라고 하여 초록(green), 파랑(blue), 남(indigo)을 분명히 구별하고 있는데도 헷갈리게 만드니 왜그럴까?
* 더보기: 심의섭, 남귤북지(南橘北枳) : 귤과 탱자는 종자가 다르다, 거울의 헛기침, 한국문학방송, 2022.05.10.: 216~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