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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을 이기는 믿음
본문 : 시 77:1-20
오늘 우리는 시편 77편을 읽었습니다. 이 시는 아삽의 시입니다.
표제,제목을 같이 읽어볼까요?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여기에 보면, 이 시편은 아삽의 시로,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두둔은 ‘에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당시 아삽, 헤만과 함께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기서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이란 ‘여두둔의 연주형식’에 따라 부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작사는 아삽이 하고,.... 작곡은 여두둔이 한 노래’라는 말입니다.
나의 환난 날에.....
그런데 이 77편 시편의 내용을 살펴보면.....
작사자인 아삽이 어떤 문제로 인해 낙심하여 그 마음이 무너졌을 때 쓴 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로 낙심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이 시는 무엇 때문에 그가 낙심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무슨 문제로 그가 낙심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문제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 낙심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본문 1-2절을 읽어라>
1절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절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여기에 보면, 아삽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나의 환난 날(צָרָתִי 짜라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체로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상황을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고......
따라서 아무도 나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삽이 자신이 당한 어려움을 ‘내 환난의 날’(my trouble)이라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나와 같은 상황을 똑같이 경험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개개인의 삶의 상황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고난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nonsense)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새 번역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이라는 말을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으로 변역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새 번역이 본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알고 보면, ‘내 환난의 날’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누구나 겪는 환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비슷한 인생의 문제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유일무이한 고난, 나만 겪는 환난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고난 중에 있다면,......
우선 ‘나의 고난’,... ‘나만의 고통’,...... ‘아무도 모르는 슬픔’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환난 날’을 만난 아삽은 어떻게 했을까 ? 그는 우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르짖으리니... 부르짖으면’(קֹולִי... קֹולִי 콜리... 콜리)라고 말한 것은 사실 좀 약한 표현입니다. 오히려 ‘악을 쓰며 소리 질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악을 쓰고, 소리소리 지르며, 하나님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저만 아니라.....
성도님들 중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2절에서 그는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라고 노래합니다. 낮에도 주님을 찾았고, 밤에도 계속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밤낮으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런데 낙심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옵니다. 아삽이 그랬습니다. 7절에서 그는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절도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절에서도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라고 묻습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질문입니다.
밤이 길다고 누가 ‘해가 다시 뜨게 될까?’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겨울이 좀 길다고 “봄은 다시 올까?”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낙심한 사람은 이런 말을 자꾸 하게 됩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너무 힘든데 하나님은 도와주기는 커녕,.....
내 인생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신 것 같고.......
하늘이 굳게 닫혀 있는 것 같은 날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왜 나 안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게 됩니다. 지금 아삽의 심정이 그러합니다.
내가 주를 찾았으며......
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아삽이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낙심하고 있어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직 끝은 아닙니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결말은 해피엔딩이겠구나’라고 믿어집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를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욥을 보세요. 그에게 이유 없이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전 재산과 자녀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었고, 온몸에 악창이 났고, 사랑하는 아내도 자신을 떠났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욥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그가 끝까지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따지기도 하고..., 절망의 말을 내뱉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의 삶을 저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이겼던 것입니다.
어느 글에서 읽었습니다만, 얼마 전 고인이 되신 팀 켈러(Timothy J. Keller) 목사님은...
『기도』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911사태가 터졌을 때,.... 나라 전체도 우울증에 빠져들었지만,.....
목사님의 가정에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고 합니다.
아내 캐시(Kathy)는 크론병(Crohn's disease)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목사님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빠져 헤매던 어느 날......
아내가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우리 매일 밤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십시다.’ 가끔이 아니고 매일 기도하자는 제안에
목사님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답니다. 머뭇거리고 있었을 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해 봐요. 의사가 약을 주면서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알씩 먹으라, 절대 잊지 마라, 그랬다간 몇 시간 안에 숨이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면, 약 먹는 것을 깜박 잊을 수 있을까요? 아닐 거예요. 지금 우리 부부가 그런 형편이예요.
함께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으면 눈앞에 닥친 일들을 헤쳐 나갈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반드시 함께 기도해야 해요.” ......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팀 켈러 목사님은 결국 아내와 함께 매일 밤, 같이 기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답니다
아마 우리 중에도 지금 당장 기도를 시작해야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들 ! 기도가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기도하면 문제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생의 문제를 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삽은 고난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를 찾았으며...’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2절)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 아니면 어떤 누구의 위로도 필요없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가 여러 가지 이유로 울 수 있지만 그 아이가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엄마입니다.
엄마는 아이가 가진 모든 문제의 답이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와야 아이는 울음을 그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 ! 계속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이 쓴 『이반 데비소니치의 하루』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이반(Ivan)이 감옥소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
그는 자주 벽에 기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루는 옆에 있던 동료 죄수가.... 이반이 기도하는 줄 알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봐. 네가 여기서 기도한다고 해서 더 빨리 나갈 줄 알아?" ....
그때 이반이 자신을 조롱하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이유는 여기서 빨리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형무소 안에서도 나와 함께 하셔서 이 모진 생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거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견딜수 있거든.”......
기억하여... 진술하리이다.......
그런데 성도님들 !
밤에 잠도 못 자고 소리 지르며 기도하던 아삽의 기도는 10절부터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10-12절을 읽어라>
10절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 손의 해
11절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기억하리이다
12절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읇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라”
여기에 보면,.... 자기 환난 날에 기도하던 그에게 갑자기 하나님께서 지난 날 행하신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지금까지 문제만을 보던 그의 눈이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1절부터는 앞부분에서 그렇게 많이 나오던 ‘나(I)’라는 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크심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은 잠을 못 잘 만큼 마음이 괴로울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
아삽처럼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 그 때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잖아. 이번에도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 해 주실거야!”
분명 이전에도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았습니까?
아삽이 그랬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그의 삶을 신실하게 도와주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인생, 특히 야곱과 요셉의 자손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나오는 한 가지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바로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 앞에 섰을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병거와 말을 타고 쫓아오고 있고, 그들 앞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모세는 하늘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떠한 일이 벌어졌습니까? 앞을 가로막은 홍해가 ‘쫙’ 갈라졌습니다.
출애굽기를 14장 21절에 보면 “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라고 말합니다.
아삽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16-17절을 읽어라>
16절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절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을 가로막은 홍해를 보고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홍해의 물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자신들이 가로막은 것을 보고는 ...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참 기가막힌 표현입니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여 물러갔다’라는 시적인 표현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구름과 흑암으로 이스라엘과 애굽 군대를 분리하셨고,.....
강한 바람으로 홍해의 바닷물이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둥과 번개로 그 능력을 나타내셨고 물들은 그런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홍해 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그 길은 분명 ‘주의 길’이었지만, 하나님의 발자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20절)
무슨 말입니까? 애굽에 재앙을 내려 그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모세와 아론만 보였지만,....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바닷길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발자취는 알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분의 능력은 지금도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시고. 질병을 고치시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19절에 나오는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바다, 홍해밖에 없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인이,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길이 안 보입니다. 아니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아삽은 뭐라고 말합니까?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바다 속에 길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물을 물러나게 하면 그 길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물이 물러갈까요? 언제 바다에 있는 주의 길이 드러날까요?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 때’입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 물에 발을 내디뎠을 때, 요단강물이 멈추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그분께 엎드려 기도할 때, 물이 물러가고, 주님이 준비해놓으신 그 ‘길’ 주의 길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인이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주님여 이 손을 꼰 잡고 가소서]라는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본래 이 곡은 미국의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토마스 도르시(Thomas Andrew Dorsey)가 지은 노래입니다.
그는 미국 애틀랜타 출신의 아프리카계 찬양인도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세인트루이스로 연주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참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함성을 받으며 연주를 하고 있는데....
행사 주최 측으로부터 작은 쪽지를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아내가 위독합니다.” 전보를 받은 그는 즉시 시카고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시카고에 도착한 그를 기다린 것은, 아들을 낳다가 죽은 아내의 싸늘한 주검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날 밤 아기도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함께 묻어야 했던 그는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찬송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작곡하지 않고, 교회도 다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이 큰 슬픔은 그로 하여금 비탄과 절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마침내 정신 병원에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왜요? 하나님!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습니까?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예배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찬양하지 않겠습니다.” ...
평생을 쌓아온 그의 믿음이 한순간 뿌리째 흔들린 것입니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었을 때,.....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찾아와서 그를 자신이 일하는 학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에도 시카고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그는 멍하니 흰 눈이 쌓여 있는 창밖 운동장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교실 벽에 새긴 한 문구가 보였습니다.
“Take My Hand, Precious Lord(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아서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Precious Lord, take my hand/ Lead me on let me stand/ I’m tired, I’m weak, I’m lone,,,”
우리말로 번역된, 이 찬양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토마스 도르시의 영혼은 이 찬양을 통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와 같이 고통과 비탄에 빠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
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여전히 하나님은 작게 느껴지고, 인생의 문제만 너무 크게 보이는 분은 없으십니까? 그래서 ‘나의 환난 날, 나의 고통은 아무도 모를 거야!’ 하면서 낙심에 빠져 헤매고 있는 분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시편 77편, 아삽의 시를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이미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 예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난날 내 삶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내가 직면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오셔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낙심을 이길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