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체류기 25
눈발 속에 남겨 놓은 작은 선물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몽골에서의 일정도 이제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오늘은 숙소에서 꽤 먼 곳에 있는 모자보건센터를 찾았다. 규모가 상당히 큰 병원이었다. 이곳을 본원으로 하여 세 곳의 모자보건 병원이 더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병원 안은 매우 분주했다. 오가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모습에서 이 병원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병리과에 들어서자 4년 전 함께 세포병리를 공부하고 토론했던 니나와 엔크엘, 그리고 서울대학교 분당병원에서 3개월간 연수를 받았던 병리사 Amaraa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이지만 금세 예전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다시 발견한 작은 문제들
병리검사실을 둘러보면서 다른 병원에서 보았던 문제들이 이곳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조직을 육안으로 처리하는 gross room에 환기시설이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슬라이드는 다른 병원보다 조금 나아 보였지만, Pap 염색 슬라이드가 맑고 투명하게 나오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세포질의 색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나는 직원들이 염색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핵 염색 후 탈색하는 과정과 현색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 직접 과정을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도록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염색한 슬라이드를 보면서 달라진 색깔을 확인했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세포병리에서는 이런 작은 차이가 진단의 질을 좌우한다.
지난 며칠 동안 세 곳의 병원을 돌아본 결과, 몽골의 세포병리 표본의 질이 좋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0% 알코올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
슬라이드 라벨을 손으로 써서 지저분해지는 것,
슬라이드 트레이를 사용하지 않는 것,
한 장의 슬라이드에 여러 조직 조각을 붙이는 것.
그 밖에도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이 내용은 귀국해서 하나하나 정리해 보고해야겠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비와 눈 사이에서 만난 사람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갑자기 변했다.
비가 내리던 하늘에서 어느 순간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
점심 약속이 따로 있었지만, 병리과에서 차려준 밥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모자보건센터 병리과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야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니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원주의대 병원에서 수련하고 있는 Dr. Jijigee가 몽골까지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한국에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이렇게 먼 몽골에서 다시 만나다니 참 묘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만나지 못했는데 몽골에서 만나는구나.”
서로 웃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만남
오후 4시.
Raphael의 공 팀장이 찾아왔다.
National Pathology Center 원장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동안 내가 몽골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보고하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꽤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나도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년에 제가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한 달 동안 정이 많이 든 사람들이기에 쉽게 떠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선물
긴 대화가 끝난 뒤 조촐한 행사가 이어졌다.
다안(多眼) 현미경 기증식이었다.
이 현미경은 새것이 아니다.
한국 국립의료원에서 사용하던 중고 현미경을 기증받아, 대한세포병리사협회에서 수리한 장비다. 그리고 몽골에서 세포병리 교육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장비라고 판단하여 이번 방문을 계기로 몽골 국립병리센터에 다시 기증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나는 이 현미경을 직접 사용했다.
비록 중고 장비였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세포를 함께 관찰하고, 몽골의 병리의사들과 토론했다. 좋은 장비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 현미경이 앞으로도 몽골의 세포병리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중고 현미경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증식을 마치고 현미경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 장비가 한국에서 시작하여 몽골까지 오게 된 긴 여정이 떠올랐다.
사용하던 장비 하나가 버려지지 않고 다시 고쳐져 다른 나라의 의사와 학생들을 교육하는 도구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참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몽골체류기를 마치며
이제 몽골에서의 한 달 일정이 끝난다.
나는 이곳에 와서 지식을 가르치고 장비와 시약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가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국경이 없다는 것,
작은 도움 하나도 누군가에게는 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때 그 가치가 오히려 더 커진다는 것.
눈발이 날리는 몽골의 9월.
나는 마지막으로 국립병리센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현미경이 이곳에서 오래도록 사용되기를.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그리고 조용히 몽골을 떠날 준비를 했다.
2012년 9월 26일
National Pathology Center of Mongolia
한 달 동안의 몽골체류는 끝났지만,
그곳에 남겨 놓은 작은 현미경 하나는
나보다 더 오래 몽골의 세포병리 발전을 위해 일할 것이다.
현미경 기증서
President Ha Jung Hwa CMIAC
The Korean Association of Cyotechnologist
Dept. of pathology Ill San Hospital
KoYangShi,Ill San Ku, Kyung Ki Do, South Korea
LETTER OF APPRECIATION
On behalf of the National Pathologic Center of Mongolia, thank your Korean Association of Cyotechnologist for donation of multi-headed microscope. This made the campaign one of the most successful event to improve our pathologists knowledge we have ever had.
Sincerely,
Oyun-Erdene Bat-Ochir
Manager of National Pathologic Center of Mongolia
September 25, 2012
눈발 속에 남겨 놓은 작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