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리산둘레길 17구간 제1부
오미정-곡전재-원내마을-섬진강둑방
20260630
1.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월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6월을 마감하는 날 지리산둘레길 17구간 탐방을 위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에 2주만에 다시왔다. 여름을 대표하는 선비의 꽃 배롱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날씨는 맑아 보이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풍경은 투명하지 않다. 오미정 옆에서 탐방을 출발한다. 전체 탐방 거리는 18.9km, 예상 소요 시간은 7시간, 난도는 하라고 한다. 지리산둘레길에서는 17구간을 이렇게 개략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과 구례군 광의면 온당리 난동마을을 잇는 18.9km의 지리산둘레길 오미-난동 구간은 서시천과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로 여름이면 원추리꽃이 장관을 이룬다.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곳 중의 하나인 용두마을에는 일제시대 울분과 저항의 흔적인 용호정이 있고, 섬진강 일대는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 강바람 따라 제방길을 걷다 보면 지리산과 인근 들녘이 어우러지는 조망 속에 구례 5일장(3일, 8일)과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를 만나게 된다. 구간 경유지와 거리는, 오미마을(운조루) (0.2km) 곡전재 (0.7km) 원내마을 (0.8km) 원내 수달보호구역 (1km) 용두 수달보호구역 (0.5km) 용호정 (2.9km) 서시교 (0.9km) 구례센터 (6.0km) 연파마을(광의면소재지) (2.1km) 구만마을(우리밀체험장) (3.8km) 난동갈림길, 전체 18.9km이다." 지리산둘레길 17구간 탐방 체험을 4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오미정~안촌배수펌프장)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정에서 지리산둘레길 17구간 탐방을 출발한다. 왜 오미리(五美里)일까? 구례군청에서는 월명산(月明山), 방장산(方丈山)이라고 불리는 지리산(智異山), 오봉산(五鳳山), 계족산(鷄足山), 섬진강(蟾津江)의 다섯 아름다움(五美) 때문에 오미라 불렀다고 하며, 주재민 풍수지리가는 첫째 안산(案山·앞산)인 오봉산의 형상이 아름답고, 둘째 사격(沙格·산의 품격)이 훌륭하며, 셋째 섬진강을 비롯한 물이 풍부하고, 넷째 기후와 토질, 지세(地勢·땅의 형세) 같은 자연환경이 뛰어나며, 다섯째 거주하기에 좋은 터 때문에 오미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월명산이 어디에 있는가? 월명산을 찾아도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다.
2주 전 지리산둘레길 16구간 탐방을 마치고 운조루고택과 운조루유물 전시관을 관람하였기에 이번에는 곡전재를 관람할 마음을 먹었다. 미세먼지와 운무가 얇게 하늘을 덮어서 명료한 풍경을 감상할 수 없어 아쉽다. 북쪽으로 토지면 문수리 문수골과 왕시루봉 능선 풍경이 분명히 들어오지 않는다. 토지면 구산리 단산윗길의 부자 전원주택 솔까끔마을과 오미리 앞 종자뜰도 2주 전에는 분명히 보였는데, 이번에는 흐릿한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곡전재로 들어갔다. 곡전재(穀田齋)는 운조루, 쌍산재와 함께 구례 3대 전통 고택으로, 조선 후기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이 고택은 1929년 승주 출신의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 성주 이씨 이교신(호·곡전)이 인수하여 당호를 곡전재(穀田齋)라고 지어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솟을대문에 붙어 문간채가 있고, 중문이 있는 사랑채, 사랑채 좌우에 두 행랑채가 마주보고 있으며, 동행랑채 뒤에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조성했다. 이 연못물은 사랑채 앞뜰을 흘러 솟을대문 옆으로 빠져나간다. 사랑채와 만나는 동행랑채 누마루 춘해루(春海樓)는 자생차 자율 녹차방 금향다실(金香茶室)로 이용된다. 안채는 곡전재 끝에서 사랑채를 마주하고 앉아서 곡전재 전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안마당은 안채, 사랑채와 두 행랑채에 둘러싸여 있다. 안채 뒤에 장독대가 있으며, 그 오른쪽에 2009년에 지어진 건물 뒤채가 있다. 그리고 별채인 세심당은 서사랑채 뒤 대나무숲 산책길 입구에 자리한다.
현재 곡전재는 주인집 생활공간인 안채를 제외한 다른 건물은 한옥민박 체험으로 사용되고 있다. 곡전재 어디가 좋았던가? 건물로는 동행랑채에 붙은 누마루 춘해루가 가장 마음에 들었으며, 두 번째는 별채 세심당이 마음에 들었다. 춘해루 금향다실에서 동산에 달 솟은 밤 녹차향을 즐기며 곡전재 사랑채에 붙은 윤선도의 <오우가>의 서시 '水石松竹月'을 읊으면 어떤 맛이 날까?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밧긔 또 더하여 무엇하리."
그리고 건물 밖 시설에서는 호박돌 담장이 으뜸이다. 담쟁이덩굴에 덮이고 능소화가 피어서 동그랗게 돌아가는 담장은 밖에서 볼 때 그윽한 낙엽활엽수숲과 대나무숲에 싸여 더욱 그윽해 보인다. 안채 뒤뜰의 푸르른 잔디밭과 대나무숲, 그리고 장독대도 길손의 마음에 울림이 컸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끌어들여 조성한 연못도 마음에 들었지만, 물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지하의 물을 끌어올려 연못에 공급하여야 하는데 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탓에 연못의 물이 부옇게 흐려 명증하지 못하여 마음의 깨끗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에서 섬진강대로를 건너 토지면 금내리로 넘어갔다. 금내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 들녘을 가로지른다. 앞쪽에는 섬진강 건너편의 오봉산과 계족산, 그리고 사성암이 자리한 오산이 길손의 눈길을 계속 놓아주지 않고, 뒤돌아서면 지나온 오미마을의 곡전재와 운조루, 구산리의 솔까끔마을, 그 뒤 왕시루봉 능선과 그 왼쪽 형제봉이 그리움으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토지면 금내리 지역에는 원내마을, 용정마을, 안촌마을, 신기마을, 봉소마을이 자리하는데, 지리산둘레길은 금내리 동쪽 원내마을을 지나 섬진강 둑방으로 올라간다. 용정마을은 원내마을 동쪽 가까이에 자리하고, 그 동남쪽 섬진강 둑방 안쪽에 안촌마을이 자리하며, 그 동쪽으로 신기마을과 봉소마을이 자리한다. 그 동쪽 옆에 토지면 면소재지 구산리 시가지가 있다.
원내마을은 마을회관 언덕에서 서쪽으로 길게 펼쳐져 자리하는데, 마을의 중심은 당산나무와 원내경로당이 있는 곳이다. 원내마을을 지나 섬진강 둑방으로 나가는 농로에서 살피면 원내마을의 펼쳐진 모습 및 당산나무와 원내경로당이 있는 곳이 마을의 중심지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동쪽 섬진강 둑방에 가까이 자리한 금내리 안촌마을, 신기마을, 봉소마을도 어림된다.
2020년 8월 구례 지역에 집중 폭우가 쏟아져 섬진강 주변 마을과 지리산 골짜기 곳곳이 큰 수재(水災)를 입었다. 수재(水災)를 당한 안촌배수펌프장을 지나 섬진강 둑방으로 올라갔다. 안촌배수펌프장은 복구 공사가 완료되었지만 섬진강 둑방은 현재 개선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섬진강 둑방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지리산 노고단 능선, 문수골의 형제봉과 왕시루봉 능선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리산둘레길 탐방의 환희가 하늘로 치솟는다. 비록 풍경이 명증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것이 지리산 풍경 감상의 환희를 꺾지 못한다. 지리산 서남쪽 자락 토지면 오미리 일대가 풍수지리적으로 금환락지(金環落池)의 명당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길손의 가슴에 그득히 밀려오는 풍경에 아름다움에 황홀경에 빠졌다.
2.탐방 과정
실제 탐방 거리 : 20.9km
실제 소요 시간 : 5시간 36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정 옆에 지리산둘레길 상징 조형물 벅수와 16·17·18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오미리(五美)마을 이름을 딴 오미정(五美亭)과 현판 글씨가 멋지다.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출입구 난간에 설치되어 있다.
새마을 창고가 낯설게 느껴진다. 오른쪽 뒤에 연지(蓮池)와 운조루 솟을대문이 보인다. 맨 뒤에 왕시루봉능선이 흐릿하다.
풍요로운 종자뜰 너머로 섬진강이 흐르고 강 건너로는 백운산 자락인 오봉산이 보이는 곳에 오미마을이 있다. 정갈한 한옥들과 돌담,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가 정감 있고 한옥민박촌이 형성되어 있어 숙박이 가능하다. 조선 중기 99칸 양반가옥인 운조루는 금환낙지의 명당터에 누구나 열어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의 ‘타인능해’ 뒤주 이야기로 유명하다. 조선 후기의 집으로 환형의 돌담과 아기자기한 정원으로 유명한 곡전재도 둘러 볼만하다. 오미마을은 오미-방광 구간과 오미-난동 구간의 분기점이다. - 지리산둘레길
운조루는 지난 16구간 탐방을 끝내고 살폈기에 들르지 않고 돌아서서 17구간 탐방길로 이어간다.
오미마을은 풍수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땅으로 마을 뒤로는 노고단 형제봉능선(월령봉능선)이 뻗어 내려오고 마을 앞으로는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섬진강이 흐른다. 풍수지리에서 금환락지(金環落地, 금가락지가 떨어진 터), 오보교취(五寶交聚, 금·은·진주·산호·호박 등 5가지 보물이 쌓인 터), 금귀몰니(金龜沒泥, 금거북이 진흙 속에 묻힌 터)의 3대 명당으로 꼽히는 운조루가 있는 마을이다. 운조루란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칠언율시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영조 때 류이주(柳爾胄)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건축했다.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건축물이다. 운조루는 일종의 택호에 해당하는데, 원래는 큰사랑채 이름이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다. 또한, 운조루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쌀독을 두어 주위의 배고픈 사람이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 귀감이 되고 있다. 150여 점의 유물이 보관 전시되어 있는 운조루유물전시관은 운조루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 지리산둘레길
오미마을 출입구 모퉁이에 오미마을 유래비와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이 서 있다. 오른쪽 방향은 18구간 오미-방광 탐방로이다.
오미마을은 영조 2년(1776년)에 문화류씨 류이주(柳爾胄)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운조루(雲鳥樓)를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전에는 오동이라 불렸다. 오동은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환동을 말한다. 마들의 안산이 되는 오봉산이 기묘하고,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길하며, 물과 샘이 족하고, 풍토가 모두 질박하며, 터와 집들이 살아가기에 좋다고 하여 오미리(五美里)라 불리고 있다.
오미마을 유래비 앞에서 곡전재길을 따라 맨 오른쪽에 기와 지붕이 보이는 곡전재로 내려간다. 오미리 종자뜰이 드넓게 펼쳐지며 중앙 뒤에 금내리 용정마을, 섬진강 건너편에 오봉산, 중앙 뒤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맨 왼쪽 뒤에 토지면 면소재지 구산리가 보인다.
곡전재길 오른쪽에 운조루 유물전시관이 자리한다. 16구간 탐방 뒤 관람하였기에 그냥 지나간다.
오른쪽 앞에 곡전재가 자리하고, 섬진강 건너편에 오봉산의 나즈막한 다섯 봉우리가 이어지고, 왼쪽 뒤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앞에 곡전재 뒤뜰의 담장과 대나무숲이 있고, 그 뒤에 오봉산, 오른쪽 뒤에 자라 모양의 오산(鰲山)이 보인다.
수로의 다리를 건너 곡전재(穀田齋) 북쪽 출입구로 이어간다.
곡전재 관람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곡전재 담장을 따라 곡전재 솟을대문으로 이어간다. 담장은 높이가 2.5m가 넘는다고 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476번지 곡전재 솟을대문 담장 앞에 곡전재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 건물은 1929년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에 이교신(호, 곡전)씨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처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목조 건축양식의 주택으로서 부연을 단 고주집, 문살의 외미리 형식, 기둥 서까래 등이 매우 크고 지붕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영호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부농의 민가형식 주택으로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一자형으로 배치되었으며 2.5m 이상의 호박돌 담장을 설치하여 집터의 환경을 금환(金環)의 개념을 도입한 점 등이 독창적이며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인증 우수 전통한옥 문화체험 숙박시설' 명품고택 곡전재 명패가 대문에 붙어 있다.
대문은 도로를 보지 않게끔 틀어 외부에서 여자들만의 공간인 안채를 볼 수 없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바람이 사랑채를 바로 때리지 못하도록 했다. 대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집안으로 곧장 들어오게 되면 집안의 생기가 흩어져 ‘기가 빠진 집’이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며 호박돌 담장 또한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바람은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기는데, 통상 바람과 물을 함께 묶어 ‘기승풍즉산, 계수즉지(氣乘風則散, 界水則止·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정지한다)’라 표현한다. - 주재민 풍수지리가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사랑채 옆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갈 수 있다. 중문 문주 위에 '忍是積德門참음이 덕을 쌓는 문' 현판이 걸려 있다. 관람 순서는 사랑채 오른쪽으로 돌아가 곡전재 뒤채를 살피고 안채 마당을 통해 중문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사랑채 정원 앞으로 도랑물이 흐른다. 이 물은 사랑채 앞 연못의 물이 사랑채 정원을 흘러 대문 옆쪽으로 빠져나간다. "이 수로 구조는, 집안의 물이 용맥(龍脈·정기를 품은 산줄기)의 전진을 멈추게 하여 지기(地氣·땅기운)를 고택에 응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형지기축화생만물위상지야(形止氣蓄化生萬物爲上地也·형이 그치면 기가 쌓여서 만물을 탄생하는 곳이니 상지이다)’라 한다."(풍수지리가 주재민)
중문 옆 사랑채 벽면에 성주 이씨 선조들을 기리는 게시판이 붙어 있다. 고려 말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 이억년과 이조년의 '투금탄', 두문동 칠십이현 중의 한 사람 이환과 그 후손들을 기린다.
삼락당(三樂堂) 당호가 붙은 사랑채 동쪽 연못 방향으로 이어간다.
동행랑채 누마루 춘해루(春海樓)는 자생차 자율 녹차방 금향다실(金香茶室)로 이용된다고 한다.
동행랑채 당호 거연당 뒤쪽에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밖에서 끌어들인 물이 연못을 이루며 이 물은 사랑채 정원으로 흘러간다.
사랑채를 마주하여 안채가 자리하고 안채 뒤쪽에 뒤채가 자리한다.
오른쪽의 안채가 사랑채를 마주보고, 오른쪽에 서행랑채가 있고, 이들에 둘러싸여 안마당이 자리한다.
물을 연못으로 끌어들이는 언덕에서 연못과 동행랑채를 살폈다.
연못 위쪽의 뒤채는 2009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광풍동춘(光風動春) 액자와 덕천실(德天室) 당호가 봍어 있다.
뒤채 뒤뜰이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고 호박돌 담장이 이어진다. 담장에 담쟁이덩굴이 덮여 있고 능소화 주황색 꽃이 피어난다.
뒤뜰 잔디밭에서 대나무숲과 장독대를 살핀다. 왼쪽은 안채이다.
논·밭 가운데 위치한 곡전재는 좌청룡과 우백호, 그리고 안산 등의 고택을 보호하는 산이 부실해 비보(裨補·부족한 부분을 채움)를 해야 한다. 다행히 곡전재의 호박돌 담장과 집 주변을 에워싼 대나무를 포함한 각종 나무가 비보 역할을 하고 있기에 바람과 미세먼지 등을 잘 막아주고 있다. 특히 대나무는 매우 촘촘한 상태로 군락을 이루기 때문에 바람과 미세먼지, 소음 등을 막고 땅심을 강하게 하는 데 탁월한 수종이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므로 사대부 집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 주재민 풍수지리가
장독대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나무숲으로 돌아가는 산책로가 나 있다. "곡전재의 안채는 부드러운 생기가 감돌고는 있지만 안채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에서 강한 생기가 솟으므로 용맥이 최종 안주한 곳이며, 안채와 사랑채는 여기(餘氣·남은 기운)가 있는 곳이다. 곡전재는 생기가 고택 전체를 감싸고 있어 길택(吉宅·복된 집)임은 분명하다."(주재민 풍수지리가)
장독대를 지나와서 뒤채를 살폈다. 오른쪽은 안채 건물이다.
안채 앞 안마당에서 사랑채의 중문을 통해 문간채로 나간다.
사랑채 서쪽의 서행랑채에 한자 액자들이 걸려 있다.
동행랑채 오른쪽에 누마루 춘해루(春海樓)가 있고, 그 오른쪽에 사랑채가 이어진다.
금환락지 곡전재(穀田齋)는 승주 지역에 살던 ‘7천 석의 부호’ 박승림이 10여 년간 명당을 찾다가 발견한 터에 지은 조선시대 후기 한옥이다. 건축에 함께 참여했던 곡전 이교신(穀田李敎臣)은 당시 건물의 관리를 위임 받았는데, 박승림이 별세한 후 지금의 고택을 인수했다. 이후 이 고택은 성주 이씨(星州 李氏) 문열공파(文烈公派) 가문이 터를 잡고 24대손에 이르는 현재까지 충실히 지켜가고 있다. 단체로 15~20명 정도가 묵어도 비좁지 않은 동행랑채는 곡전재에서 경관이 가장 좋은 방으로 손꼽힌다. 뒤쪽으로 문을 열면 연못이 바로 보이고, 왼쪽 끝에 달린 들문을 올리면 각종 나무로 둘러싸인 누각, 춘해루로 연결된다. 동행랑채 맞은편에 위치한 서행랑채에는 두 개의 객실이 있다. 대나무방은 외국인도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침대 방으로꾸몄고, 국화방은 옛 벽장까지 그대로 남겨 소박하고 한국적으로 꾸몄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사랑채에 중문이 나 있으며, 벽에 윤선도의 오우가 '수석송죽월'을 적은 액자가 붙어 있다.
왼쪽에 사랑채, 건너편에 서행랑채, 오른쪽에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집주인의 생활공간이고, 나머지 건물은 고택체험 민박으로 활용된다.
곡전재 생활의 중심 안채가 곡전재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벽에 수복(壽福) 액자가 걸려 있다.
서행랑채 왼쪽 사랑채 끝에 화장실이 있고, 그 사이로 나가면 별채가 있다.
사랑채 오른쪽에 별채 세심당이 있다.
세심당 벽면에 세심당 내부전경 사진이 걸려 있다.
별당에 당호 세심당(洗心堂) 현판이 붙어 있다.
서행랑채 뒤쪽으로 대나무숲 산책로가 나 있고, 화박돌 담장과 기와담장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별채 세심당 앞에서 사랑채와 문간채를 바라보았다. 곧바로 나가려다가 안마당으로 되돌아가 중문으로 나간다.
별채 세심정에서 안마당으로 되돌아와 사랑채의 중문을 통해 나간다.
사랑채의 중문으로 나와서 별채 세심당을 다시 바라보았다.
솟을대문 양쪽의 문간채에 無愧我心과 家和萬事成 현판이 붙어 있다. 무괴아심은 명나라 시인 유기(劉基)의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구할 뿐이다.(豈能盡如人意 但求無愧我心)” 말에서 나온 표현으로,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한다’는 뜻은,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함축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문간채 벽면에 금환락지 곡전재 춘해루는 자생차 자율 녹차방 금향다실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솟을대문 출입구에 구례관광지도와 성금함, 곡전재 담장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옛부터 비기로 전해온 봉성(옛 구례)현 동쪽에 금환락지가 있는데, 이곳에 터를 잡으면 무장이 천명, 문장이 만명이 나오고 자손대대 흥하고 만호 이상이 살 수 있으며 주민 모두가 발복할 명당이라는 것이다. 옛 풍수지리가들은 한반도를 절세의 미인형국으로 보았고 지리산이 자리잡은 구례 땅은 그 미녀가 무릎을 꿇고 앉으려는 자세에서 옥음(玉陰)에 해당하는 곳이며, 그 미녀가 성(性) 행위를 하기 전 금가락지를 풀어 놓았는데 그곳이 명혈(名穴)이 되어 금환락지 명당 터라는 것이다. 도선국사 등 옛 비기에도 우리나라 3대 명당터 중 한 곳으로 금환락지(金環落地)가 있는데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여기 곡전재가 그곳이라 한다. 곡전재는 이곳에다 집을 지으면서 명당터 '금환락지가 이곳이다'라고 확정 짓고 담을 금가락지 형태로 쌓아 곡전재가 금환락지임을 나타내려는 의도이다. 곡전재의 뜻은 성주 이씨 20대손 이교신의 호를 따서 명명한 집으로 곡전이 살았다는 뜻이며, 구례군 향토문화유산(2003-9호)으로 지정되어 있다. 곡전의 증손 이병주
곡전재 솟을대문을 나와 곡전재 북쪽 출입구로 되돌아간다.
곡전재 호박돌담장을 담쟁이덩굴이 뒤덮고 있다. 오른쪽 남쪽 출입구로 나가지 않고 북쪽 출입구로 되돌아간다.
곡전재 북쪽 출입구로 나와 걸어온 길과 호박돌 담장과 나무, 대나무숲에 싸인 곡전재를 돌아보았다.
곡전재는 지기가 뛰어난 터를 호박돌 담장이 환형으로 둘러싸고 있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금환낙지형(金環落地形·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천적 요소인 명당에서 태어나거나 거주하더라도 후천적 요소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 주재민 풍수지리가
곡전재 관람을 마치고 되돌아와 지리산둘레길 탐방을 이어간다.
곡전재 북쪽 출입구 앞에서 왼쪽 뒤 왕시루봉 능선을 올려보았다. 맨 왼쪽 옆에 16구간 탐방 때 살핀 그윽한 서어나무가 서 있고, 중앙에 오미리 외죽마을이 자리하며, 중앙 뒤 산중턱에 구산리 솔까끔마을, 맨 오른쪽에 단산마을이 자리한다.
곡전재 남쪽 출입구에서 맨 왼쪽 운조루유물 전시관, 중앙의 운조루, 오른쪽 한옥민박촌 입구의 그윽한 서어나무를 확인한다.
왼쪽 한옥민박촌 입구의 서어나무, 중앙의 하죽마을, 오른쪽 산중턱의 솔깔끔마을, 중앙 맨 뒤의 왕시루봉 능선을 확인한다.
곡전재길을 따라 종자뜰을 지나며 섬진강 건너편의 나즈막한 다섯 봉우리가 이어지는 오봉산과 왼쪽 뒤의 계족산을 확인한다.
곡전재길 오른쪽의 곡전재 남쪽 출입구에 곡전재 표지판이 서 있으며, 중앙 뒤에 오산(鰲山)이 솟아 있다.
곡전재 사진을 보면 전체가 분명히 보인다. 곡전재 솟을대문과 바깥채, 그 뒤에 사랑채, 그 왼쪽에 별채 세심당, 사랑채 오른쪽에 누마루 춘해루와 동행랑채, 동행랑채 뒤에 연못, 동행랑채 맞은편에 서행랑채, 중앙에 안채, 그 오른쪽 뒤에 뒤채, 맨 뒤에 대나무숲이 확인된다.
곡전재 남쪽 출입로 뒤에 곡전재 호박돌 담장이 돌아가고 솟을대문이 도로를 보지 않게 세워져 있다.
곡전재길을 따라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로 나간다. 섬진강 건너편의 오봉산과 계족산이 끊임없이 눈길을 끈다.
오미 0.5km, 난동 18.5km 지점,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의 오미마을 출입구에서 원내마을 버스정류소 방향으로 이어간다.
토지면 금내리 들녘이 펼쳐지고 왼쪽에 용정마을, 오른쪽에 원내마을, 용정마을 뒤 섬진강 안쪽에 안촌마을이 자리한다.
국도 제19호선 섬진강대로가 서쪽 화엄사 방향으로 달린다. 원내마을 버스정류소 왼쪽으로 이어간다.
섬진강대로에서 원내1길을 따라 토지면 금내리 원내마을로 내려간다. 섬진강 건너의 오봉산은 볼수록 친근해진다.
원내1길을 따라 토지면 금내리 들녘을 가로지른다. 섬진강 건너편 문척면 금정리 지역은 오봉산에서 계족산까지 아우른다.
섬진강 건너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지역에 오산(鰲山)이 솟아 있다.
토지면 오미리에서 금내리로 넘어와 오미마을 돌아보았다. 중앙 뒤에 곡전재가 보인다.
앞의 언덕 아래에 토지면 금내리 원내마을이 자리한다. 왼쪽 주황색 지붕 건물은 원내마을회관이다.
금내리 원내1길에서 뒤돌아서서 왼쪽 오미리 오미마을과 곡전재, 오른쪽의 오미리 하죽마을, 맨 오른쪽 산중턱의 구산리 솔까끔마을을 확인한다. 왼쪽 맨 뒤 형제봉이 봉긋하고, 중앙 뒤에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이 흐릿하다.
원내1길을 따라 원내길로 내려간다. 주황색 지붕 건물은 원내마을회관이며, 왼쪽 뒤에 용정마을, 그 아래쪽에 안촌마을이 자리한다.
원내1길에서 원내길로 내려가 원내길을 오른쪽으로 따라간다. 왼쪽에 원내마을 유래비가 있으며, 앞에 용정(龍井)마을이 자리한다.
금내리 용정마을은 1926년 남원 이백면 응령에서 최성관(崔成官)이 두 형제와 함께 금환락지의 풍수지리설을 듣고 터를 잡았다고 한다. 마을회관에 보존되어 있는 용정재기(龍井齋記)의 기록에 의하면 23가구가 마을에 정착하여 1938년에 마을회관을 건립했다고 한다. 용정(龍井)이란 이름은 마을 위쪽의 구룡동(九龍洞)과 마을 아래쪽의 삿갓샘 지명을 따서 용정이라 한다. - 구례군청
언덕의 원내마을회관으로 올라오니 회관 앞 새마을 창고 벽에 원내마을 행복지도와 마을 유래 게시판이 붙어 있다.
원내마을회관에서 원내마을로 이어지는 길에 벽화들이 장식되어 있다.
원내마을회관 앞에서 왼쪽 뒤의 형제봉, 중앙 뒤의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을 가늠한다. 오른쪽으로 내려가 원내길을 따라간다.
왼쪽 언덕의 원내마을회관을 살피고 내려와 원내마을 유래비 앞 삼거리에서 원내길을 따라왔다.
토지면 금내리(金內里) 들녘 뒤 섬진강 안쪽에 안촌(安村)마을이 자리한다. 오봉산과 계족산이 다정하다.
금내리 안촌마을은 전주 이씨 이금재가 13대손으로서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과 회관 앞 당산나무가 약 400여 년의 수령인 것으로 보아 마을의 설촌 시기는 약 400여 년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36호로 번창하였으나 2005년 기준 12호가 살고 있다. 섬진강의 광활한 모래벌판이 여울로 어우러져 있는 마을로서 당초에는 양안(陽岸, 양지바른 안 동네)이라 불렀다. 그 뒤 섬진강 모래가 아름다워 사탄(沙灘) 또는 모래여울로 부르다가 몇 가구가 살지 않으면서 시끄럽고 화합이 안 되고 모래여울물과 같이 시끄럽다고 하여 마을 명칭을 개명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뜻에 따라 1982년 안촌(安村)으로 불렀다. 옛날엔 안촌(岸村)으로 쓰기도 하였다. - 구례군청
원내길에 원내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던 옛 공동우물이 보존되어 있다.
원내길을 따라 왼쪽의 옛 공동우물을 지나왔다. 오른쪽 뒤 산중턱에 솔까끔마을, 중앙 뒤의 왕시루봉 능선이 가늠된다.
앞쪽 갈림길에서 원내길과 헤어져 금내리 들녘의 들길로 이어간다. 오른쪽 뒤에 사성암이 있는 오산이 솟아 있다.
오미 1.1km, 구례센터 5.7km 지점, 오른쪽 당산나무 옆에 원내노인정이 있으며, 왼쪽 뒤에 오산이 솟아 있다.
금내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 섬진강 둑방으로 내려간다. 왼쪽 뒤에 금내리 안촌(安村)마을이 보인다.
금내리 들녘의 농로에서 토지면 금내리 원내마을을 살핀다. 정면에 원내마을 당산나무와 원내경로당이 보인다.
원내(垣內)마을은 조선 선조 34년(1601년) 달성인 서원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대구 남산에서 현 용방면에 이주하였다가 금환락지를 찾아 이곳에 정착하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전주 이씨, 장흥 마씨 등이 입촌하여 큰 마을이 되었다. 마을이 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금동재뜰, 고랑뜸, 건너뜸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형이 대입(竹葉) 셋이 놓여 있는 형국이라 하여 죽간(竹簡)이라 칭했다는 설과 대나무가 있으므로 섬진강 건너 오봉(五鳳)이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여 죽안(竹岸)이라고 한 설도 있으며 세월이 흘러 죽안으로 변용하여 칭하였는데 1,800년경 본 군 현감이 지방 순시 때 서씨(徐氏)가 대종을 이루고 있으므로 서씨는 담 안에서 살아야 번성하니 원내(垣內)로 칭함이 어떠냐 하여 이후부터 원내라 칭하였다고 한다. - 구례군청
금내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 안촌배수펌프장을 지나 섬진강 둑방으로 올라간다. 오른쪽 묘지 위에 올라가 사방을 살폈다.
토지면 금내리 들녘 오른쪽에 용정마을, 왼쪽에 원내마을이 자리하며 중앙 산중턱에 구산리의 솔까끔마을이 자리한다. 왼쪽 뒤에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이 가늠된다.
원내마을이 넓게 자리하고 중앙 뒤에 형제봉, 오른쪽 뒤에 왕시루봉 능선이 가늠된다. 오른쪽 뒤에 오미리 외죽마을이 보인다.
토지면 금내리 원내마을이 앞에 길게 펼쳐지고, 오른쪽 뒤에 형제봉, 왼쪽 뒤에 노고단 능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토지면 금내리 들녘 뒤 토지면 용두리 지역의 낮은 숲 아래 용호정이 있고, 맨 오른쪽 뒤 언덕의 용두마을이 가늠된다.
용두(龍頭)마을은 임진왜란 초기 1,600여 년경 서산 유씨(瑞山柳氏)가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후 경주 김씨(慶州金氏) 등 각 성씨가 풍수지리설에 의해 금환락지를 찾아 이주하면서 큰 마을이 이루어졌고 배틀재, 상촌(쇳골), 하촌(굴뚱, 대상)으로 마을이 산재했으나 배틀재 마을은 국도확장으로 폐촌되고 토지 주유소와 2개의 식당이 있다. 지리산의 용맥이 노고단 형제봉을 경유하여 내려오다가 섬진강에 이르러 머물렀는데 지리산 줄기가 강물에 침식되어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 강물에 잠기듯 굽어보고 있었다. 절벽의 형상이 용머리 같다고 하여 용두(龍頭)라 부르게 되었다. - 구례군청
섬진강 둑방이 토지면 금내리에서 용두리로 이어지고, 섬진강 건너편에 문척면 월전리 마을, 왼쪽에 오산이 솟아 있다.
안촌배수펌프장 뒤 섬진강 둑방이 왼쪽 금내리 안촌마을로 이어지고, 섬진강 건너에 오봉산, 중앙 뒤에 계족산이 솟아 있다.
토지면 금내리 들녘 끝자락에 마을들이 자리한다. 맨 오른쪽에 금내리 지역의 안촌마을, 그 왼쪽 뒤에 신기마을, 그 왼쪽 뒤에 봉소마을이 자리하고, 중앙 뒤에 토지면 면소재지 구산리 시가지, 맨 왼쪽에 금내리 용정마을이 자리한다.
금내리 신기(新基)마을은 1920년경 화순군 능주에서 하동 정씨 정종순(鄭宗淳)이 금환락지의 혈지(穴地)라 하여 일가이세(一家二世)대가 입주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고흥 등지에서 명지(名地)를 찾아 이주하여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을 개척한 정종순의 고향을 따서 능주촌이라 했는데 196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새로 생긴 터라 하여 신기(新基)로 불렀다. 금내리 봉소(鳳巢)마을은 1750년경 밀양 박씨와 김해 김씨가 정착하였으며 그 후 진양 강씨, 김해 차씨 등이 마을에 이주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처음에는 섬진강변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진변(津邊)이라고 하였는데 섬진강 건너 오봉산에 살던 봉황새 5마리가 강을 건너 동서쪽에 집을 짓고 낮에는 오봉산에서 놀다가 밤이면 이곳에 와서 자고 다음날 간다고 하여 봉소라 부르게 되었다. 오평은 지대가 평평한 지대라고 하여 오평(梧坪)이라 불렀다. - 구례군청
금내리 들녘의 농로를 따라 안촌배수펌프장을 지나 섬진강 둑방으로 올라간다.
2020년 8월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안촌배수펌프장은 2021.12.24~23.06.20 수리공사하여 복구되었다고 한다.
섬진강 둑방으로 올라와 동쪽 섬진강 하류 방향을 살폈다. 둑방 안쪽에 토지면 금내리 안촌마을, 신기마을, 봉소마을 등이 자리한다.
섬진강 둑방에서 걸어온 농로를 내려본다. 금내리 원내마을이 길게 펼쳐지고, 그 뒤에 오미리 오미마을, 오른쪽 뒤에 오미리 하죽마을과 내죽마을이 가늠된다. 중앙 뒤에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이 흐릿하고 그 왼쪽 앞에 형제봉 두 봉우리가 봉긋하다.
섬진강 둑방길을 따라 섬진강을 거슬러 토지면 용두리 방향으로 올라간다. 송전탑 뒤 숲에 용호정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