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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강 아리랑☆]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 ============ [한강 아리랑] 한석산 시집 / 동학사(2013.03.03) / 값 10,000원 ================= ================= 한강 아리랑 한석산 천년을 흘러도 한 빛깔, 물 파랑 쳐 오는 갈기 세운 물소리 조국의 아침을 깨운다. 한강 1300리 물길 하늘과 땅 이어주는 구름 머문 백두대간 두문동재 깊은 골 뜨거운 심장 울컥울컥 꺼내놓는 용틀임 춤사위 우리 겨레의 정신과 육신을 가누는 민족의 젖줄 한강 발원지 여기 검룡소. 큰 물줄기 맑고 밝게 뻗어 내리는 골지천과 아우라지 조양강 휘돌아친 두물머리 이끈 한강 한 복판에 떠있는 선유도 갈대숲 물새 둥지 튼 그 속에서도 꽃 피웠네. 대한민국 서울 기적 이룬 한강 굴절된 역사의 아픈 눈물 삼키며 제 몸 뒤집는다. 이런 날에 우리 다 같이 부르는 가슴 벅찬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우리 가는 곳 어딘지 몰라도 가버린 것들은 허망하게 아름다운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동기 문화를 세운, 오늘날 우리 민족의 선조 이 땅 순한 백성들이 원시생활 하던 시절부터 강에 안기던 사람 품을 내주던 강 세월이라는 깊은 강가에 서면 고요한 강물이 내 영혼을 끌고 가네. 먼 옛날 삼각산 소나무 아래 어매 아배 뼈를 묻고, 삽을 씻으며 민초의 한을 씻던 아리수 넓고 깊은 어머니 가슴 강물도 차운 날에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젖가슴 여미는 어머니 가슴 헤집는 젖둥이 온갖 풀꽃 향기에 젖은 물가에 앉아 있어도 목이 마르다. ☞ 애국심이란 선조의 땅을 지키는 마음이라기보다 후손의 땅을 보존하는 마음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능내리 푸른 산빛 - 다산 생가에서 한석산 첫새벽 풀잎에서 젖 같은 이슬 받아 백리향 녹아드는 찻물을 끓이는 날 능내리 푸른 산빛이 샛강을 끌고 가네. 이에 저에 등 떠밀려 마현골 깃 사리고, 두물머리 바윗돌에 깨어나라, 깨어나라 휘두른 저 붓 자국은 맥이 돌아 숨을 쉬;s다. 이가 시린 맑은 물 바위 틈새 길어 와서 벼룻물 어르는 아침, 딸각대는 분청다기 뒤뜰에 살구꽃 향기 마재마을 다 적신다. ☞ 다산 생가 : 경기도 남양주시 능내리 일대는 예전에 마현마을로 불리던 곳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서 유념시절을 보냈다. 다산은 강진에서의 q8년 유폐생활에서 벗어난 뒤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주자학과 천주학 사이에서, 그리고 권력의 위협과 견제 아래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하여 실학의 체계를 완성한 다산 유적지는 다산 선생의 묘소를 중심으로 기념관, 복원생가, 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섭 그림「서귀포의 추억」- 그림을 보며 생각하다 한석산 두 아들과 아내와 중섭이 서귀포 피난 시절 곁방살이 하던 세 칸짜리 토담집 고방 눈만 뜨면 내다보는 열린 창 너머 바다의 눈물 같은 섶섬이 보이는 썰물 진 바닷가 갯벌 허기 달래 준 농게 칠게 오분자기 껍질만한 은지화에 화필도 물감도 없이 짝 잃은 조가비로 꾹 눌러 그린 아이와 꽂게 그림 선각화 몇 점 그가 살았던 뻘밭 같은 세상 절절한 그리움만 남겨둔 채 슬픔에 잠긴 바다를 건너 자신을 외면하는 이녁 땅에 지쳐 두 아들과 이제 가고 없는 아내 마시코(남덕) 멀리 있어 더욱 아픈 사랑 어쩌면 그리운 건 모두 먼 곳에 있을까. 설움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기울어진 뱃고동 소리만 지나새나 고독이 뼈를 깎는 밑줄 그은 수편선 저 너머 현해탄을 넘나들었다. ☞ 이중섭李仲燮 : 한국근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서양화가. 암울한 시대 가족과 피난살이하던 무렵 서귀포 바람은 차고 거칠었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오늘날 그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로 풀어 쓴 시론 - 시와 시인 한석산 시라는 것은 창작이다. 이 땅 우리 겨레를 지킨 조선의 정신 말글 그 뉘도 흉내 재지 못할 시심을 풀어내라 초안할 때는 먼저 문장을 써 놓은 다음 이것저것 다른 말로 바꿔 굴려 봐라 어휘를 잘게 잘게 썰어 써라 작은 그릇에도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시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문학적 향기가 우러나오는 싱싱한 소재와 주제 취사선택 구성을 잘해서 기승전결 격을 갖춘 차원 높은 시를 써라 직유보다는 은유나 비유 묘사와 진술 생략과 압축 상징 암시 연상작용을 할 수 있게끔 하라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작품을 써라 우리 모두 핏속에는 시의 혼이 흐른다. 다독多讀 많이 읽고 다사多思 많이 생각하고 다작多作 많이 써라 첨삭添削 퇴고推敲 되풀이 하라 불멸의 명작은 퇴고에서 나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2년에 걸쳐 쓴 『개미』를 120번 고쳐 썼고, 헤밍웨이는 『노인과바다』를 200번 고쳐 썼다고 했다. 갈고 닦는 글다듬기 공들일 일이다. ☞ 두 종류의 시인이 있다. 하나는 교육과 실스에 의한 시인, 우리는 그를존경한다. 또 하나는 타고난 시인,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랠프 에머슨 사랑의 기도 한석산 당신과의 사랑이 한낱 풋사랑인 줄 알았더니 텅 빈 내 마음은 이미 당신이 차지해서 기도로 하루를 열고 기도로 하루를 닫고 내 하루는 날마다 당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생명의 생명이시여 그리움의 기도가 간절하면 할수록 당신의 사랑 또한 가슴 속 크게 자라 당신의 뜨거운 숨결을 느낍니다. 기도는 참으로 경건한 일 기쁨과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한 나를 아름답게 하는 기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도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기도 오- 주여, 당신 발에 입 맞추오니 고독한 군중 속에서 방황하는 굶주린 민초들의 영혼을 평화롭게 하소서. ☞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 F.Q 호라티우스 꽃을 닮아가는 사람들 한석산 가슴에 향기 고운 한 아름 시의 꽃을 안고, 꽃을 닮아가는 사람들. 상처도 향기 좋은 맑고 아름다운 시의 꽃으로 낭송으로 피워내는 순수한 영혼들. ☞ 태양이 물들이듯 예술은 인생을 물들인다 - 러버크 대장간 - 젊은 날의 초상 한석산 속살까지 다 드러낸 화덕 언 잉걸불에 안으로 결삭이며 붉게 익은 쇳조각을 담금질, 담금질한다. 뿌지직 노을이 탄다. 시우쇠 무딘 정수리 쌍메로 두들겨서 숫돌에 양날을 세워 살의殺意가 번득이는 갓 벼린 조선낫 들어 검은 밤을 가른다. 벌건 불꽃 입에 물고 쇠붙이 기다리는 대장간 언저리에서 곁불 쬐던 소년이 빛바랜 사진 속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다. ☞ 시인이란 마음 속에 남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고뇌를 삭이면서, 그 절규와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 입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 키에르케고르 유배지에서 온 편지 - 다산 초당에서 한석산 꽃 진 대궐 뜰을 지나 떠나온 길 저만치서 지친 날개 접고 앉은 서늘한 먼 새벽녘 녹이 슨 문고리 잡고 젖은 어깨 들썩인다. 골이 패인 맞배지붕 낙숫물로 먹을 갈아 붓 끝에 곧추세워 긴 상소문 고쳐 쓴다. 잠든 땅 귀먹은 산하 일어나라, 일어나라. 정수리 혈혈 찌르는 만덕산 푸른 바람에 귤동 마을 동자석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 펼쳐 든『목민심서』를 밤새도록 읊조린다. 신들메 고쳐 매고 손금 같은 길을 따라 불 꺼진 다산 초당 짙은 어둠 쓸어 내고 강진골 그 낯선 땅에 역사의 아침을 연다. ☞ 무릇 시의 근본을 군신, 부부의 떳떳한 도리를 밝히는 데 있으며, 더러는 그 즐거운 뜻을 펴기도 하고, 더러는 그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펴고자 하는 데 있다. 그 다음으로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항상 힘 없는 사람을 구원해 주고 재산 없는 사람을 구제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흔들리고 가슴 아파서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을 항상 가져야 바야흐로 시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해에만 연연하면 그 시는 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다산 선생이 유배기간 중에 두 아들에게 띄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간월암 가는 길 한석산 건곤에 제의를 치르는 듯 하루 물길이 두 번 열ㄹ리는 신비로운 섬 바위섬 해와 같이 떠오르고 지는 해와 같이 가라앉는 맑은 얼 서려 푸른 저 천수만 서산 갯벌의 사리舍利 밀물에 섬이 되고 썰물에 물이 되는 섬 같은 육지의 포구 조선 초 무학대사가 주춧돌 놓은 간월암에 다다를 즈음 일순 열리는 바닷길 사람도 정물이 되는 신이 그린 회화繪畵란 점 부처님의 몸이 깃든 한 송이 연화로 피어난 여기 적멸보궁. ☞ 간월암 :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소재. 조선 초 무학대사가 이 섬의 작은 암자에서 수행하다 천수만에 쏟아지는 달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달 보는 벌인 ‘간월암’은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비로운 달맞이 명소이다. 구름이 달을 가려도 별이 뜨는 만리포 한석산 해당화 다퉈 피는 솔숲 사잇길을 지나 한 데 어울려 살 비비던 깨끗한 추억들이 늘 푸르게 일고 잦고 노래가 되고 시가 되는 만리포 하얀 등대 키를 넘는 작은 물새 혼을 쏟는 울음소리 누군들 살면서 울음 운 적이 없었으랴. 내 어릴 적 눈물, 슬픔과 기쁨의 빛 구름에 달을 가려도 별이 뜨는 만리포. 한 꺼풀 허물 벗ㄴ은 달달 볶던 매운 여름 까치놀 밝게 번져 울안까지 갈마드는 코 묻은 유년의 곳간 나의 사람 만리포 ☞ 만리포 :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소재. 끝 모를 백사장에 늘 푸른 소나무숲으로 에워싸인 천혜의 환경을 갖춘 서해안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해수욕장이다. 만리포란 어원은 조선 초기 중국의 사신을 전송하기 위해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노래한 거싱 유래가 되어 만리장벌이라 불러 오다가 1955년 해수욕장을 개장하면서 만리포萬里浦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들꽃 피는 언덕 한석산 잘 살든 못 살든 인생, 돌아보면 뉜들 가슴 아리는 아픔 없으르랴. 세상은 하나의 꽃밭 오늘 어느 비탈에 서서 풀꽃으로 흔들릴지라도 우리 사는 곳과 살아가는 시간들이 꽃이다. ☞ 시인이 창작한 제2의 자연이 시다. - 조지훈 어머니 손맛, 그 알싸한 기억 - 오관과 오감 한석산 시퍼런 이조의 칼끝에 날 세운 손맛이여 삼삼한 햇나물에 곁들여 열무김치 비벼 먹은 음양오행 음식궁합‘ 파김치와 어루러진 아사삭 오이소박이 풋풋한 상추쌈과 찬 없는 꽁보리밥 갓 쪄낸 고구마와 살얼음 서걱이는 이빨 시린 동치밋국 오관이 자지러지고 오감이 까무러친다. 삼 년 묵은 곰팡이가 허옇게 낀 짠지 배불뚝이 옹기그릇 속 푹 삭은 밴댕이 젓인데 아직도 더 삭혀야 할 못다 다스린 소갈머리 오장을 다 채우고도 걸근거리는 인욕人慾이여 눈물은 내려가고 숟갈은 올라간다. ☞ 시는 애련 속에서만 존재한다 - 휘스턴 오든 눈물은 내려가고 숟갈은 올라간다 - 민담民譚 시편 한석산 저 먹을 거하고 저 파묻힐 땅은 다 타고 난다지만 인생 백 년 시름 잊고 웃는 날 몇 날이더냐. 더럽고 힘겹고 눈물겨운 인생살이 업으나 지나 부모가 반팔자라 큰 복은 누워 먹고 소복소복은 손발톱 다 닳아야 먹고 산다는데 있고 없고 고생 맛 알아야 인생 맛도 안다. ☞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스코트 니어링 혜원 신윤복의 「美人圖」즐겨보기 - 성 담론 시편 한석산 여자는 예뻐도 욕먹고, 미워도 욕먹는단다. 예쁘면 인물 치레한다고 욕먹고, 미우면 젖것도 여자냐고 욕을 먹는 게 여자란다. 볶은 콩하고 잚은 게집은 곁에 있으면 그저 못 두는 법이고, 계집질 잘 하려면 세 가지 치레를 잘 해야 하는 거란다. 첫째는 입담치레 말을 그럴싸하게 잘 해서 여자의 호기심을 끌어야 하고, 둘째는 체면치레 거추장스런 체면 같은 건 진작에 던져 버려야 하며, 셋째는 양물치레 여자가 까무러칠 정도로 디딜방아에 겉보리 찧듯 여자 확에 가죽방아를 잘 찧어야 한단다. 여자는 밑방아 한 번 잘 찧으면 좋은 일 없어도 사흘 웃는단다. ☞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의 눈이 그것을 다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 로댕 그 짓 안 하는 놈 있나 - 성 담론 시편 한석산 비 오는 어느 날 올후 한 사내가 일을 하러 나갈 수도 없고 해서 방안에 틀어박혀 있으려니까 은근히 낮거리 생각나는 거였다. 한데 아들놈이 비 때문에 밖에 놀러 나가지를 못해 방해가 되자 멀찌감치 심부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머리는 춤추고 이불은 물결치고 방바닥은 먼지를 일으키는 참인데 느닷없이 밖에서 나들놈 발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이에 사내가 벌컥 화를 내면서 “야, 이놈아, 심부름을 아직도 안 갔단 말이냐?”고 호통을 쳤단다. 그랬더니; 아들놈 한다는 말이 “아니 이렇게 비 오는데 그 집이라고 그 짓 안 하겠소?”그러더란다. ☞ 시인은 여지와 같다. 여자는 아이를 낳을 때, 이제 두 번 다시는 남자와 가까이 않으리라고 결심하지만 어느 틈에 다시 몸을 안기는 것이다, -요한 페터 에커만 .♣. ================= ■ 시인의 말 허기를 채울 수 없는 나의 시 나는 오늘도 시를 지어서 밥을 먹으면 좋겠다는 설익은 생각을 한다. 아, 이 엄청난 산다는 일의 모순 덩어리 먹고 살려고,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슬픈 방랑의 끝에 돌아온 시인의 때늦은 후회 삶 그 눈물 나는 아름다움 나는 먹고 사는 일에 너무나 많은 피를 말렷다. 이제 와서 생각을 하니 하늘 밑의 풀벌레 아ㅓ니더냐. 헛되고, 헛되고 헛된 세상사 육탈이 끝나는 고된 탈고의 시간 이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가. 이천십삼 년 물오름달 - 뫼와 달에 물 오르는 달 韓 石 山 =============== == = == =============== 韓石山 詩集 [※한강 아리랑※] [ 작품 해설 ] - 흙을 태워 일어서는 불꽃 - 한선산 시의 뿌리 이근배(시인) 1. 모국어가 현대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눈을 뜬 지 한 세기를 넘어 새로운 백 년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 오랜 한자 틀의 글쓰기의 멍에를 벗고 모진 역경과 수난 속에서도 이 땅의 시인들은 모국어의 눈부신 개화를 이루어 왔고 참으로 빛나는 시의 텃밭을 일구어 왔다. 그 시대의 고비마다 날선 감성의 붓 끝은 삶의 현장을 잘도 도려내고 시의 언어들은 치열하게 불꽃을 피웠다. 그리고 오늘 한국시는 정체성에 대한 변화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분명한 것은 시(예술)는 미지의 땅을 향해 숨 가쁘게 개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지만 너무 급격한 진화, 혹은 낯설게라는 구실로 해석이 되지 않는다거나 시의 본려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까지 용인하고 수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T.S.엘리엇은 “시는 지은이의 의도에 있는 것도 독자의 해석에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 해석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이 가능한 시와 해석이 되지 않는 시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 분별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시는 예술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인류는 시와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아끼며 사랑해 오지 않았던가. 한석산은 오늘의 한국시가 난해성에 매몰되는 것을 크게 꺼리고 오히려 모국어가 뿌리를 박고 있는 토양을 파헤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시인이다. 천년千年 뒤 시詩와 더불어 내 나랏말의 텃밭을 지킬 문청文靑들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유산을 위하여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차 넘치는 좋은 시 한 편 쓸 수 없는 것일까 관념시든 순수시든 사물시든 서정시든 서사시든 이미지시든 신체시든 참여시든 목적시든 서정시든 실험시든 해체시든 시는 정결한 언어 절제된 문장이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씌어져 쉽게 읽혀지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내일을 향한 먼 시적 여정에서 긴 형식으로 쓰인 장시長詩나 이름 없는 한 권의 두툼한 문집 같은 산문시는 말고 일행시든 단시든 연작시든 명치끝 툭, 때리는 감동을 주는 시 따뜻한 시 외로운 영혼이 쉬어 갈 수 있는 존재의 집 한 채 짓고 싶다. 그예.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전문 한국 문학사에 돌 하나 흙 한줌 얹고자 하는 뜻에서 자연스레 쓰여지는 말, 시인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평범한 생각이다. 바로 이 평범한 듯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생각이 좋은 시가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한석산의 시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그가 추구해 온 시의 방향은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오늘의 시가 정체성에서 일탈해 가는 것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몇 편의「시와 시인」연작은 스스로를 다잡고 채찍질하면서 묵은 벼루에 먹을 갈고 눈을 씻고 붓을 고쳐 잡아보겠다는 생각이며 시류에 흔들리거나 눈을 주지 않고 자신의 시를 정하여 세우는 강렬한 천명이다. 정월 초하루 먹은 마음 섣달 그믐날까지 그날이 그날 느리고 긴 귀에 익은 사투리에 둥그런 마음 서로 닮은 그냥 좋은 서산 사람들 어둠을 이기고 나온 밝고 빛나는 달빛 젖은 새벽별 보며 일 년 삼백 예순 닷새 저마다 가슴에 둥실 떠오르는 해와 달 하나씩 끌어안고 천 년의 세월이 흐른다 하여도 변치 않을 넉넉한 인심 대물림해 온 이 땅의 흙내 나는 두레나 품앗이 정신으로 세상의 중심에서 세상을 이끌어간다 -「서산 사람들」전문 어찌 “서산 사람들” 뿐이랴.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이면 아주 먼 옛날부터 지니고 살아온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한석산은 그 서산 사람이면서 내가 누구인가를 시로 밝히고 추구하는 세계를 이 작품에서 보여 주고 있다. “느리고 긴 귀에 익은 사투리에/둥그런 마음 서로 닮은/그냥 좋은 서산 사람들” “저마다 가슴에 둥실 떠오르는/해와 달 하나씩 끌어안고” “이 땅의 흙내 나는/두레나 품앗이 정신으로” 그는 시의 텃밭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2. “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바탕을 둔다”고 워즈워스는 일렀다. 시의 서정성을 강조한 것이며 한석산이 줄기차게 파고드는 시의 뿌리 캐기에도 흘과 불과 물의 원형적 정신이 근원을 이루고 있음이 그것이다. 한석산이 건너온 지평은 매우 넓다. 눈에 담아온 것, 생각으로 엉켜 있던 것, 몸으로 부딪친 것 등등. 그러나 지상에 많은 산이 있고 물이 있다 한들 나를 낳고 기른 고향의 산과 물, 흙과 나무, 바람과 햇빛만을 그리게 된다. 가야산 푸른 자락 산그리메 내려와서 들머리 미륵불 어깻죽지 가부좌 틀고 앉은 귀 닳은 오후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開心寺 정수리에서 발 끝에 이르기까지 씻겨 내리는 듯한 세심동洗心洞 계곡 종그려 듣는 청량한 물소리 어느 시인 시란 눈빛 닮은 풀꽃과 어우러져 구불구불 이어지는 밭은 계단이 세상의 모든 길을 데불고 오네 -「배롱나무 꽃그늘 아래」부분 비스듬히 파인 인암印岩 절벽 그 얼굴 신의 손끝에서 빚어진 내포문화권 사람 닮은 마애삼존불 빛 따라 표정을 달리 짓는 말 없는 설법說法 그저 바라만 보는데도 마음결이 다듬어지는 화두話頭같은 미소 한 송이 니르바나의 꽃 퍼지는 자비의 빛에 마음 한구석에 가로질러 걸어둔 빗장을 푼다 -「마애삼존불」부분 개심사開心寺는 글자풀이를 하면 ‘마음을 여는 절’이다. 서역의 문물이 뱃길로 들어오던 당진과 이웃한 서산의 개심사, 마애삼존불은 신라에 앞서는 백제불교의 정화로 꼽힌다. 종교를 넘어서 우리 겨레는 이천 년 가깝게 이 땅에 들어앉은 불교적 정신에 젖어 살아온 것이다. 저 향가로부터 고려 선승들의 게송偈頌이며 조선의 시가를,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한용운, 오상순, 서정주, 조지훈 등의 시의 살과 피가 불교에 깊이 녹아 있음이 아닌가. 한 채의 절간, 바위에 새긴 세 부처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거기 살아 있는 맑고 푸른 바람과 햇빛, 사람이 살아가는 힘과 사랑의 모습을 캐내고 다시 오늘의 삶을 보태어 내일로 가는 길을 열어야 시가 된다. “어느 시인 시린 눈빛 닮은 풀꽃과 어우러져/구불구불 이어지는 밭은 계단이/세상의 모든 길을 데불고 오네”에서 산사의 겉 풍경이 아니라 거기 풀꽃 하나 돌 하나가 시인의 눈에 들어와서 말을 깎고 생각을 다듬어 가부좌를 틀고 앉으신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오랜 면벽, 장좌불와長座不臥의 선승이 아니더라도 머릿속을 맑게 씻는 지혜의 물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신의 손끝에서 빚어진/내포문화권 사람 닮은 마애삼존불/빛 따라 표정을 달리 짓는 말 없는 설법”에서 부처의 모습이 곧 이 고장 사람들의 모습이고 그 얼굴이, 눈빛이, 미소가 우리네 “어머니의 어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아니 그 핏줄을 이어받은 한석산의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밖에도「해미읍성 회화나무」에서는 “지금 나는 듣는다/하늘로 뻗은 가지 뚝 부러지는 소리/살아남은 자의 슬픔을/뼈아른 그날, 그날의 고백 성사.”로 저 천주교 박해와 처형의 현장에서 순교자들의 영혼의 외침을 귀담아 듣고 있다. “사람도 정물이 되는/신이 그린 희화戱畵 한 점/부처님의 몸이 깃든/한 송이 연화로 피어난/여기 적멸보궁” 「간월암 가는 길」, “하늘을 날다 지친 새들의 보금자리/달도 별도 내려앉는/천수만 빈 들녘 끝/나 여기 쉼표 하나 찍는다”「천수만에는 철새가 모여든다」에서도 태어난 땅의 곳곳을 깊고 먼 영혼의 눈으로 높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치 연어가 모천으로 죽음의 역류를 타듯 사나운 물살을 가르며 언어의 숨결을 높이고 있다. 3. 장미는 2만 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뿌리는 오직 하나 찔레라고 한다. 저마다 화려한 빛깔과 현란한 향기를 다투어 자랑하지만 장미들이 찔레의 뿌리에서 피어나듯 우리의 모국어 또한 시대적 수사를 아무리 짙게 발라도 삶의 담금질 속에서 견뎌온 뿌리의 말을 어찌 따를 수 있으랴. 한석산은 한석봉, 한용운 문한文翰의 혈통을 이어받아 10대 후반에서 20대에 걸쳐 시와 시조를 짓다 먹고사는 일로 한 동안 붓을 놓았다가 1999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장원,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우리네 토속의 언어, 토박이의 정서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연마를 하는 30여 년의 오랜 시역詩歷을 지닌 토종 시인이다. 몇 편의「민담民譚 시편」연작은 조선시대 민중들이 즐겨 쓰던 질펀한 담론풍의 시로, 김수영이나 김지하의 그것처럼 소리 높은 익살, 해학, 풍자, 비판과 고발을 특유의 입담으로 시원스레 풀어내고 있다. 정치인은 죽으면 쓰레기만 남긴다 반쪽 나라 썩은 정객 나랏일은 안중에 없고 흰 것을 검다고 검은 것을 희다고 헛손질 헛발질에 민초들의 삶은 멍든다 돈 뺏은 놈은 벌 받아 죽고 나라 뺏은 놈은 임금이 된다 새끼는 밑으로 나오고, 세상은 입으로 나온다 -「나라 뺏은 놈」전문 고전주의시대에 시는 품격 있는 귀족계급의 언어로만 쓰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낭만주의에 와서 워즈워스는 “모든 일상어는 시어가 된다”고 했고 콜리지는 “일상어가 시 속에 놓일 때는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어떤 시인들은 일부러 궂은 말을 찾아서 시대를 꾸짖기도 했다. 그러나 궂은 말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속 깊은 정서와 가슴에 닿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나라 뺏은 놈」은 지난 한 세기 이 나라의 정치사를 아주 날카로운 붓으로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재단하고 있다. “시인은 태어나면 낱말을 만들고”에서는 시심은 곧 천심이다. 그리고 다시 민심이다라는 말이 떠오르고, “반쪽 나라 썩은 정객”에는 시대적 굴곡이 떠오르며, “새끼는 밑으로 나오고, 세상은 입으로 나온다”에는 우리네의 김치 “살얼음 서걱이는 이빨 시린 동치미 국물”이나 고추장맛 같은 시원하면서도 뒤끝이 매운 촌철살인의 경구가 새겨 있다. 거지는 거지를 시인은 시인을 시기한다던가 험담만치 좋은 안줏거리도 없다고는 하지만 비루먹은 똥개 짖듯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하늘에 별도 많고 삼각산 돌도 많고 곰의 씹엔 털도 많고 새벽달 보자고 초저녁부터 기다리는 어지간한 문사 서넛 한길에 서서 시시덕거리다 서로가 서로에게 내던지는 모난 말에 하늘이 고귀한 정신, 영혼에 가실 수 없는 멍 자국을 남긴다 -「말」전문 김지하는 총칼로 정권을 잡은 군인세력이 부정부패로 부귀영화를 누릴 때 「오적」을 써서 돌팔매질을 했다. 그때 ‘담시譚詩’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야기 시’라는 것인데 운문체의 가락이나 형식을 젖히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읽어가듯 줄줄이 사설을 늘어놓는 시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비유의 닻을 가진 우리말에 ‘곁말’이 있는데 시가 다름 아닌 곁말 쓰기라면 충청도 사람들이 유난히 곁말을 잘 쓴다. 서사내기인 한석산의 입담도 그런 내력에서 얻어진 것인데 꺾고 붙이고 휘어넘는 말부림새가 범상치 않다.「말」에서 “거지”와 “시인”을 빗대어 놓은 것과 “똥개 짖듯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하늘에 별도 많고 삼각산 돌도 많고 곰의 씹엔 털도 많고” 할 말이 많은 듯 없고 없는 듯 많아서 문인의 위상을 스스로 끌어내리는 중뿔 난 문인의 푼수 떠는 짓거리를 날카로운 필봉의 깃을 세워 매보다 더 아픈 말로 회초리를 친다. 그렇다. 시는 말이다. 천지 말 속의 말이 있고 말 밖의 말이 있다. 한석산은 말을 잘 고르는 시인이다. 그것도 신라금관이나 고려청자, 조선백자같이 땅속에 묻혀 있어도 인류의 눈을 밝게 해주는 저 아득하고 깊은 빛깔 모국어의 고갱이를 잘도 캐냈다. 흙을 태워서 언어의 불꽃을 일으키는 말의 청자, 말의 백자를 구워 내는 모국어의 토종시인이 한석산이다. 그가 앞으로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 낼 모국어의 정화가 기다려진다. .★. .♣. ================= ◆ 표사의 글 ◆ 모국어의 정화精華 - 한석산의 시세계 장미는 2만 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뿌리는 오직 하나 찔레라고 한다. 저마다 화려한 빛깔과 현란한 향기를 다투어 자랑하지만 장미들이 찔레의 뿌리에서 피어나듯 우리의 모국어 또한 시대적 수사를 아무리 짙게 발라도 삶의 담금질 속에서 견뎌온 뿌리의 말을 어찌 따를 수 있으랴. 한석산은 한석봉, 한용운 문한文翰의 혈통을 이어받아 10대 후반에서 20대에 걸쳐 시와 시조를 짓다 먹고사는 일로 한 동안 붓을 놓았다가 1999년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장원,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우리네 토속의 언어, 토박이의 정서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연마를 하는 30여 년의 오랜 시역詩歷을 지닌 토종 시인이다. 몇 편의「민담民譚 시편」연작은 조선시대 민중들이 즐겨 쓰던 질펀한 담론풍의 시로, 김수영이나 김지하의 그것처럼 소리 높은 익살, 해학, 풍자, 비판과 고발을 특유의 입담으로 시원스레 풀어내고 있다. 그가 앞으로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 낼 모국어의 정화가 기다려진다. - 이근배(시인) ♣.
================= ▶韓石山 시인∥ ∙ 2004년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장원. ∙ 2005년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 2012년 매월당 문학상 수상. ∙ 시집『자음과 모음』『흔들리는 풀꽃으로 서서』『시는 악마의 술이다』출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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