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내 문화의 거리를 따라 쭈욱 들어가 옛 오산장로교회앞을 지나 좌측으로 영동집이란 오랜 간판이 달린 식당이 있다. 겨울철이라 다소 냄새가 덜나긴 하는데, 여름철에는 일단 이 식당을 지나다 보면 곱창 특유의 누릿한 냄새로 식당 문을 들어서기가 다소 꺼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은 진정한 오산시민의 자격을 갖추었고, 오산의 토박이 노릇을 해도 될 정도로 오산을 대표하는 식당이라고 할 것이다. 일단 오산토박이들은 어릴 적부터 그 냄새와 맛에 익숙하였으므로 전혀 거부감이 없다. 토박이란 원래 그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란사람을 가리키지만 타 지역에서 오산으로 이주한 사람이라도 영동집에 와서 식사를 했을 정도라면 감히 오산의 토박이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아직도 영동집에서 곱창찌개를 먹어 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오산시민으로서는 이방인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들의 단골 순례 코스이기도 하다. 바로 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살한 후 정육한 고기는 등급을 매기게 되는데, 1++, 1+, 1등급, A등급이냐 B등급이냐에 따라서 고기의 가격의 차이가 현저하게 나게 된다. 일반정육은 이렇게 등급판정을 하지만 부산물(내장 포함)에 대해서는 등급 판정을 하지 않는다. 부산물 자체가 전국에 산재해 있는 도축시스템상(탕박이냐 생박이냐) 도축 후 빠른 시간 내에 내장의 세척이 어려워 불결한 상태로 오랫동안 계류장에서 지체되는 문제와 먼 거리에 위치한 도축장인 경우 운송시간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냄새가 좀 더 나게 되며, 특히 여름철에는 냄새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돼지의 대창(큰창자)은 소창보다 훨씬 싸다. 양질의 대창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서울 근교의 도축장에서 빨리 대창공장으로 수송해서 빨리 손질하고 삶으면 그만큼 상품의 질이 좋다. 돼지 대창은 돼지 부산물 중에서도 가장 냄새가 많이 나는 내장 부위이다. 막창과 항문을 통해서 돼지 똥이 배설되기 직전의 내장이라 항상 똥을 품고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냄새가 덜하고 손질하기가 쉬워 상품성이 있는 소창은 대창보다 약 2.5배정도 비싸며 순대국에 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대창은 돼지 내장 중에서도 가장 손질하기 까다로운 부위이며 도축 이후 조금만 상태가 불량하거나 손질이 잘못되어도 그 냄새가 고약하기가 짝이 없다.
대창을 손질할 때에는 식용소다와 때론 커피, 한약재 등을 첨가하여 냄새를 잡는다고는 하나 대창을 손질하고 특히 삶는 과정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되어 전국의 식당 중 대창을 취급하는 곳은 이웃의 항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돼지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일본에서도 이 부위는 버리는 부위였고,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서 어렵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한국인들은 그들이 버리는 돼지의 창자를 주워와 냄새를 없애기 위해 식용소다를 넣은 물에 삶고 경험에 따라 한약재인 당귀, 천궁, 오가피, 계피, 팔각 등을 첨가하여 삶아낸 후 한국의 김치와 함께 끓이거나 얼큰하게 야채와 함께 볶아 요리하여 역한 냄새를 잡아서 영양을 보충하며 모진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 메뉴를 당당히 내건 식당들이 일본인들 사이에도 인기라고 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요리를 파는 식당이 한국인이 밀집한 오사카와 후쿠오카 등에는 제법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돼지의 창자를 요리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배고픔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어려운 시절 도축장이나 시장에서 가장 싼 재료로 버려지다시피하는 돼지의 대창으로 식구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수 있는 고단백성 식품은 닭발과 더불어 이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 식당은 45년 전에 시장 안에서 김명근(79세) 님과 이예곤(73) 님이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오산토박이였던 아버지와 충북 영동에서 오산으로 시집와서 음식솜씨가 좋았던 어머니가 식당을 차리면서 ‘영동집’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 영동집의 대표 메뉴 곱창김치찌개 © 오산시민신문 | | 돼지곱창은 가장 저렴한 재료 중 하나였고, 잘 익은 김치와 돼지곱창을 함께 조리한 찌개 요리로 만들어 대표적인 서민의 먹거리로 좋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현재의 20년 전에는 현재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는데, 뒷골목이라 후미진 곳임에도 저녁시간이면 하나둘 모여들어 자리를 꽉 채우는 인기 있는 식당이다.
2007년에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면서 이전부터 식당일을 도와주던 사위인 송봉식(50) 씨와 법무사 사무실을 다니던 딸 김은주(50) 씨가 대를 이어 식당일을 하게 되어 단골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는 않는 식당을 못내 아쉬워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처가를 도와 식당일을 해오면서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콧노래를 불러가며 즐기는 송봉식 씨와 손님이 필요한 것을 찾을까 노심초사하며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시선을 옮기며 손님의 시선을 감시(?)하는 김은주 씨는 정말 식당일을 타고난 명콤비라고 할 것이다.
▲ 현재 영동집을 운영하는 송봉식 씨와 김은주 씨 내외 ©오산시민신문 | | 메뉴는 달랑 곱창김치찌개와 국밥 두 가지뿐이다. 곱창김치찌개에는 돼지곱창과 몇 가지 내장부산물 그리고 숙성한 김치와 얼큰한 양념들이 들어간다. 모든 돼지고기 부산물과 쌀, 김치는 국내산을 사용한다.
이 집에서 김장을 담글 때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올해에도 무려 2,500포기나 담궜다고 한다. 요리의 주재료가 김치이고 달랑 나오는 반찬도 김치가 주반찬이다 보니 김치만 보름에 200포기 이상 사용한다고 한다. 겨울엔 동치미를 여름에는 무김치를 반찬으로 내놓는다. 돼지곱창 재료를 다른 집들은 밀가루로 닦는데 반해 이 집에서는 소금으로만 닦는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는 곱창을 끓이는 물에 월계수잎을 넣으면서 이전에 나던 냄새가 많이 가셨다고 한다. 단골들은 딸 내외가 인수하고 나서는 몇 년 사이에 식당 전체에서 나던 조금은 역한 냄새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육수는 돼지사골을 끓여서 준비한다.
이날 만난 21살의 한 병원의 간호사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퇴근하면서 싸와서 가족이 함께 끓여먹던 그 맛을 못 잊어 동료와 함께 추위를 녹이기 위해 식사를 겸해서 들렸다고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게를 지켰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시골의 할아버지댁에 들려서 할머니가 끓여주던 바로 그 맛이라 한다.
약간 돼지곱창 특유의 누릿한 냄새가 느껴지긴 하지만 숙성한 김치의 깊고 얼큰하고 시원한 맛과 돼지곱창의 담백한 맛이 어우러져 저물어가는 추운 겨울의 초입에서 식당은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삼삼오오 어울리는 직장동료들과 친구들로 만원이다. 오고가는 대화로 시끌시끌한 것이 장터를 연상케 한다.
곱창김치찌개는 대 30,000원, 중 20,000원, 소 15,000원이고 점심때 주로 찾는 국밥은 6,000원이라고 한다. 아침 11시에서 저녁 11시까지 영업하며, 첫째, 셋째 일요일에 휴무한다. 전화는 373-1876, 373-6888이다. 오산시 문화원 이사/강남성형외과 원장 부리부리박사 권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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