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로 08 김기수
6·25전쟁중 12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형과 함께 월남했다. 여수 피난민수용소에서 구두닦이, 목판담배장수를 지내다가 권투선수로 입문했다. 여수고 1학년 때 광주에서 개최된 전국학생선수권대회 라이트웰터급에서 우승, 당시 서울 성북고 교장이던 고향 사람 이의석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선수로 활동을 했다.
1958년 제3회 도쿄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1960년 제17회 로마 올림픽 대회에서는 웰터급에 출전하여 이탈리아의 벤베누티에게 져 초반에 탈락한 후 프로로 전향했다. 1966년 6월 25일 장충체육관에서 아마추어 시절 자신이 졌던 벤베누티를 이기고 한국 최초로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후 6개월 간격으로 미국의 스턴 해링턴과 프레디 리틀을 상대로 2차례의 방어전에 성공한 뒤 1968년 5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산드로 마징기와의 적지 3차 방어전에 실패, 1년 11개월의 세계 챔피언 생활을 끝맺었다. 1969년 5월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뒤 개인사업을 해왔다. 우리 어린시절의 우상 김기수 이야기다.
중 3 나의 담임은 능글맞은 노년의 김기수 샘이다. 물론 권투 선수는 아니다. 수학 시간이 되면 핫바지에 왼손을 넣고 일단 칠판을 세 구역으로 나눈다. 그리고 나서...
"오늘 18일이제. 8번 18번 28번 앞으로 나와 보제. 22페이지 예제 1 2 3 하나씩 풀어. 나머지는 모두 노트에 풀고..."
그리고는 온 교실을 이리저리 돌며 애들 공부하는 것을 분석하고 교실내 청결 상태, 애들 정신 상태. 시시콜콜 모두 간섭한다.
우리는 명문 광주일고를 이미 자동 진학으로 합격한 터이라 모두들 그냥 느긋한 기분으로 살아간다. 김샘이 뭔가 마음에 들지않는 하나를 발견했다.
"오늘이 금요일인디 모두들 집에 가면 머리 깍고 오도록... 머리가 길어 쓰것냐? 월요일에도 지저분하게 등교하면... 아뭏든 알아서들 혀."
그리고 수학 문제를 하나하나 풀고 모두들 열심으로 노트를 메워 나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간에 공부를 제일 많이 한것같다. 왜냐하면 그냥 샘이 풀고 우리는 듣기만 하는 일반 수업은 도대체 내가 뭘 모르는가? 어디서 막히는 가? 알 까닭이 없기 때문. 나중에 대학 다닐때 알바 샘이 되었을때 나는 김샘 방법처럼 그대로 따라한다. 그래야 누가 알고 모르는가가 명확히 나타난다.
그런데 수학이 문제가 아니였다. 반공일과 휴일을 느긋하게 지내고 나온 월요일. 김기수 샘은 머리 긴 4명을 불러 세운다.
“니는 왜 머리 안잘랐어?”
“...”
아무런 대답이 없자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니는?”
두 번째 녀석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돈이 없어서 못 짤랐구만요.”
“니는 왜?”
세 번째 녀석은 새로운 답을 낸다.
“시간이 없어서요.”
마지막으로 나를 가르킨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돈다
"할머니께서 편찬으셔서 간호하느라고 못 깍았습니다."
“뭐? 야들 봐라. 한놈은 아예 대꾸 하기 싫다는 거고. 돈이 없어? 그럼 선생인 내가 주리? 나 한테 니들 머리 깍는 돈까지 내라구? 글구, 니는 시간이 없어? 그 시간에 공부했냐? 니가 그렇게 공부를 잘해 이반에서 수석하냐?”
나를 제외하고 세녀석은 흥분한 샘 앞에 불려나가 김샘이 휘두르는 어퍼컷을 피해 이리저리 움크리다 그로기 상태의 벤베누티를 연기하고서야 링에서 내려와 자리에 돌아왔다. 사진은 중 2 수학여행 교복에 교모까지... 하태윤(현 외교부)의 머리가 시원하다.
첫댓글 김 기수선생님 우리담임선생님. 보고싶네.별명이 백곰? 진성이 옆은 오인록이?
하하 광주사는 김형철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