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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별점 4.2
유튜브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은 왜 해적이 되었을까?
내가 아는 해적이라고는 바이킹과 소말리아 해적, 캐리비안의 해적, 그리고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해적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난 왜 만화가 그다지 재미가 없을까)원피스 세계관은 정말이지 해적들의 전성시대, 그들만의 세계였구나 싶다. <원피스>를 보면 해적들끼리의 전투들이 자주 나왔던 것 같은데 책에서 본 사략선과 해적들의 싸움이었을까 싶기도 한 게 무슨무슨 제독도 나왔던 것 같고... 문득 원피스를 읽어 보고 싶은.... 하필 집에 <대항해시대>라는 누가 봐도 재미없을 것 같은 B5에 가까운 책 크기에 581쪽 분량의 그야말로 대항해 느낌이 나는 책이 있는데...........(이거 읽으면... 6주 인정해 주세요)
아무튼...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소말리아 한정. 그들이 해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유럽열강들의 소말리아 해역의 대규모 불법 조업 때문이었다. 불법 조업을 막기 위한 조직이 해적으로까지 발전한. 현재 소말리아는 국가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상황이고, 유럽의 국가들은 여전히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있다. 이런저런 방법들로 현재 소말리아 해적들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역사는 그야말로 승자의 관점으로 쓰여진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문득 어렸을 적 람보나 코만도, 인디아나 존스를 보면서 나쁜 놈 때려죽이는 통쾌한 영화로 알고 있다가 최근에야 그들은 침략자들을 막기 위해 애를 썼을 뿐이라는 걸 인식했는데 분야만 다를 뿐 여전히 답답하고 주관적인 관점을 학습하고 있다는 점이 스스로 안타깝다.
집에 있는 대형 세계지도를 훑어보며 읽으니 좀 더 잘 이해됐다. 중요한 부분에는 책에도 지도를 제시해서 이해를 도왔고. 얼마 전에 이스라엘 관련 책을 읽었는데 여전히 이슬람에 대해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필리핀과 이슬람이 연결되어 언급되는데 도대체가....
아!!!!!! 동양의 해적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이지 ‘왜구’가 일본 해적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걔들이야 워낙 다른 나라 침략하고 겁탈하고 수탈하고 노략질 했던 애들이라 그저 일본을 비하하는 정도의 용어라고 알고 있었는데.... ‘왜구’는 일본 해적을 말하는 거였다...... (그들 기준) 동쪽 바다의 해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해적이 언급된다. 따로 발췌정리를 하겠지만 세종대왕도 등장하는데 군함 200척과 군사 1만 7,000명을 보내 쓰시마섬의 악명 높은 해적기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섬마저 점령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역시 세종대왕....
귀족들도 해적 활동을 했다는 것, 무역상이기도 해적이기도 했다는 것, 그 규모가 ‘선단’이라고 불릴 만큼 최대 하나의 해적단이 배 300척에 수만 명 규모까지도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략단’이라는 해적도 있었다는 것 등등... 잘 알지 못하는 세계 곳곳의 지명과 인물들, 심지어 옛지명들까지 언급되어 읽기 쉽진 않았지만 인상 깊은 내용들이 꽤 있었다.
제1부 나누어진 바다(700에서 1500년까지)
제2부 대해적의 시대, 유럽 해상강국의 부상(1500년부터 1914년까지)
제3부 세계화 물결과 빈곤(1914년부터 현재까지)
13. 이 책은 해적이 되기로 결심하고, 해적으로 살다, 마침내 그만두게 되는 해적의 생애주기를 시대에 따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19. 이 해군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략선(또는 코르세어(지중해에서 활동한 경우에는 코르세어, 그 외의 경우에는 사략선))이었으며, 해적은 허가 없이 활동했다.
23. 하지만 강요당해서 해적이 되거나 사략선을 타는 귀족도 많았다.
24. 계약한 군주를 위해 싸우면 사략선이었고, 자신을 위해 싸우면 해적이었다.
유랑과 약탈은 불명예가 아니다. 가장 강한 나라가 하는 일일 뿐이다.
27. 왜구는 1440년대와 1560년대에 주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활동한 해적이다.
28. 일부 해양문화권에서 약탈자는 경탄과 존경을 받는 고귀한 전사였다. 8세기 이후 중세 초기에 영국제도와 아일랜드, 유럽 본토의 해안 지역을 약탈한 바이킹,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몰루카해협 연안으로 내려온 바다의 유목민 오랑라우트를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그랬다.
전사 계급에 속하면서 봉건 영주로 입신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용맹한 전사'라는 명성을 얻고, 노예를 얻어 노동력을 확보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일이었다. 바이킹이 좋은 예다.
35. 맥락은 저마다 다르지만 북해와 발트해를 배회하던 양식형제단, 영국해협에서 활동하던 해적, 남중국해의 오랑라우트, 동중국해와 동해의 왜구 등 모두 그랬다.
38. 대항해 시대의 초입이자 중세 말기에는 선박이 해안에 근접해서 운행했다. 그래서 고도로 숙련된 선원이 아니라면 명백한 해적 출몰지를 피하는 것은 어려웠다.
39. '덴마크해협'으로 통칭하는 이 세 뱃길은 외레순해협, 그레이트벨트해협, 리틀벨트해협이다. / 지구 반대편 동쪽 바다의 또 다른 해상 병목 지점이었던 몰루카해협과 안다만해 연안에는 울창한 맹그로브 숲이 있어 해적들이 매복해 있다가 기습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에 좋았다.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눈물의 문(바브엘만데브해협)' 그리고 페르시아만과 서인도양을 잇는 호르무즈해협도 해적이 날뛰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해상 병목 지점이다.
40. 복잡한 해안 지형의 가장자리에 놓인 바이킹들조차 바다 위의 약탈자 대신 단순한 무역상이 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46. 해적은 종종 일반 상선 깃발을 단 채 무방비 상태의 멋잇감에 다가가서는 갑자기 해골 밑에 뼈다귀 두 개가 교차한 악명 높은 흑기를 걸어 올렸다.
54. 누구도 바다에서 공격이 시작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초병이 없었고, 따라서 다가올 일을 경고하는 건 불가능했다.
린디스판 수도원에 가해진 이 끔찍한 공격은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이 사건 이후 세계는 이전과 달랐다. '바이킹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수도원은 주로 섬이나 해변에 피난처 용도로 지어졌는데 이는 육지에서 영토전쟁이 고질병처럼 끊이지 않아서였다. 결국 교회와 수도원은 귀중품이 풍부할 뿐 아니라 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약탈자들에겐 쉬운 사냥감이었다.
56. 바이킹의 서유럽 침략
58. 왜구의 동아시아 침략
60. 해적행위를 '합법적 권한 없이 바다 위에서 또는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강도질, 납치, 폭력행위'로 정의한다면, 바이킹과 왜구는 중세와 근대 초기에 해적의 운영 방식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선두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63. "해상 무역이 없으면 해적도 없다." 적어도 명나라의 두 황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1368년 명나라 태조 주워낭은 '해금'으로 알려진 해상 무역 금지령을 내렸다. / 바다 너머에서 좋은 것이라고는 오지 않는다는 믿음, 아시아 내륙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했다. 이는 유교적 신념으로 강화되기까지 했다. / 해상 범죄를 줄이기는커녕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1567년에 이르러 대규모 군사작전과 더불어 해금 조치가 폐지되자 왜구는 섬멸되었다.
65. 중국과 한국 해안에서도 왜구의 줄기찬 침입에 대항해 항구, 도시, 마을에 요새를 짓는 비슷한 방어책을 사용했다.
68. 이 일련의 바이킹 습격은 "바이킹의 가장 대담하고 가장 광범위한 지중해 침공이었지만, 정복이 목적은 아니었다. 바이킹의 목적은 약탈과 약탈물 획득이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빠른 속도와 기습을 주무기로 썼다. 강한 저항에 부딪히면 그들은 미련없이 포기하고 더 손쉬운 목표물을 찾아 떠났다.
71. 느닷없는 폭우나 폭풍, 미지의 암초나 숨은 모래톱 때문에 부서진 배가 지난 몇 세기 동안 해적의 공격으로 잃은 배보다 더 많았다.
82. 1419년 6월 19일 세종대왕은 군함 200척과 군사 1만 7,000명을 보내 쓰시마섬의 악명 높은 해적기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섬마저 점령했다.
83. 해적의 이면에는 탐욕과 불만, 그리고 둘의 조합에 신념이나 종교가 일정량 첨가되어 있었다.
84. 이런 대규모 습격을 저지하려면 국가의 인력, 물자 동원 능력과 의지가 필요했다. / 두 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내전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정치 권력이 작은 공국 여러 개로 분할되었다는 점이다.
85. 해적 중심지 / 지중해와 북해, 동쪽(동아시아) 바다는 이때까지만 해도 서로 꽤 독립적으로 존재했는데도 이 세 지역 모두에서 가혹한 생활 여건, 비참한 가난, 고질적인 전쟁 같은 조건이 해적 발흥의 근본 원인으로 동일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94. 모든 일이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들 모두 해적이 될 기회를 잡았다느 ㄴ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다른 길을 택했으리라.
95. 서기 1500년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상대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적이 되는 일은 '하층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신사 탐험가'들은 호화롭게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적질에 꼬여 들었다.
97. 명나라의 한 관리가 상인과 해적이 사실상 같다며 탄식했다. "무역이 허용되면 해적은 상인이 된다. 무역을 금지하면 상인은 해적으로 변한다."
100. 바이킹의 해적행위가 불명예와는 상관없었던 것처럼, 18~19세기 말레이 해적도 해적질을 오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적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고, 그중 잘나가는 해적은 용맹하게 활약하기에 전사, 즉 지역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101. 해적을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는 과정에 종교가 강력한 동기를 제공했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존재했던 '우리 대 그들' 같은 이분법이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대립하는 모든 곳에서 사략행위를 비롯해 해상에서의 모든 약탈행위를 정당화 했다.
110. 지중해와 코르세어 근거지
113. 싱가포르와 리아우제도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제국주의가 대립하는 소속이 불분명한 회색지대였다. 이것이 해적에게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이 각축을 벌인 홀로섬도 사정이 비슷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곳의 해적들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주의가 낳은 균열, 즉 상호 불신과 연합순찰의 부재가 만든 틈새에 숨어서 존재했다. /
동쪽 바다에서 포르루아얄과 비견할 만한 해적소굴은 한 곳밖에 없었다. 바로 마카오항이다. / 1557년 이래 포르투갈이 점유했고, 중국, 일본과의 무역에서 중요한 기지 역할ㅇ르 했다. / 해적 소굴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이 독특하게 합의된 관할권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는 포르투갈의 관할지였지만, 마카오항과 중국인 거주민들은 여전히 중국법의 지배를 받았다.
116. 몇몇 역사가는 /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 영국이 '해적이 많은 국가'에서 '해적국가'로, 심지어 '해적정치를 하는 국가'로 변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적여왕'이 되어 이 상황을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121. 지역 정치 사안에 외부 세력이 개입한 게 대규모 해적이 발흥한 주요 원인이었음은 분명하다.
126. 사략선처럼 '허가받은' 해적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다른 애로 사항들이 있었다./ 자금 조달이었다. / 따라서 사략선단에는 대부분 많은 투자자가 얽혀 있었다. / 따라서 임무를 성공시키고 이윤도 창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 사략선장이 / 사략선원과 해적의 경계를 이리저리 태연하게 넘나들었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 투자자들도 그렇게 하기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130. 우리는 왜 여러 시대에 걸쳐 해적선과 사략선이 자신만 있다면 해안 마을을 줄기차게 습격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바다에서 배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육지의 마을은 늘 그자리 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143. '우선 포격으로 죄 날려 버리고, 이후 승선 및 도륙, 필요 시 후퇴하고 다시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해적 공격 방식이 가끔 변형되기도 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148. 바로 그때 천재일우로 영국 해군 슬루프인 울프함과 동인도회사 소속 외륜증기선 다이애나호가 등장해 정크선을 구조했다.(다이애나호는 증기선 신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바람과 상관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다이애나는 프라우선을 농락하면서 순식간에 해적 선단 전부와 수많은 해적을 바다에 빠뜨렸다.
154. 약탈물의 정확한 범주는 해적의 사업모델에 달려 있었다. 예를 들어 지중해의 코르세어, 동남아시아의 이라넌, 발랑잉이는 배에 실린 화물은 물론 승객과 선원까지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거나 노예시장에 내다 팔았다.
159. 이 장에서 다루는 근대 시기에 보통 해적 경력은 길지 않았다.(2년 길어야 10년이라고...)
166. 해적 중에서 해적 사냥꾼을 찾았다. 그러던 중 곧 우연히 헨리 메인웨어링이 왕의 눈에 들어왔다. / 메인웨어링은 1616년 6월 9일에 제임스 1세에게서 특별 사면을 받았다. / 보은의 의미로 기꺼이 해적 사냥꾼이 되겠다고 했다. / 1618년 초, 메인웨어링은 <On the Beginnings, Practices, and Suppression of Pirates>라는 논문을 써 왕에게 제출했다. / 1장에서는 영국 해적이 보통 어떻게 해적 경력을 시작했는지, 어떠헥 해적질을 배웠는지, 그리고 해적 활동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이 여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술한다. / 2장은 평범한 해적들이 가니 사고방식을 흥미롭게 통찰했다. / 3장은 해적 전술을 다루었고, 짧았다. / 4장은 / 해적항구, 항만 관련 정보가 자세히 담겨있었다. / 5장에서는 해적을 진압할 방안을 제시했다.
182. 사략선도 해적 사냥에 동원되었다. 물론 그들의 주된 역할은 교역품을 약탈함으로써 적구그이 해상 무역을 훼방 놓는 일이었다. (지중해 사략선을 가리키는 '코르세어'는 무역 전쟁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186. 이동 중이 ㄴ사략선과 마주친 배들이 공격을 피할 유일한 길은 미리 돈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바르바리 코르세어가 '안전통행권'이라 불렀던 깃발을 알제, 트리폴리, 튀니스의 통치자들에게 거금을 주고서 사둔 후 코르세어들과 마주쳤을 때 잘 보이게 내걸면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통행권을 '판매'하는 세 공국의 지배자들은 '조공'이라는 이름을 선호했다.
187. 하지만 돈으로 산 평화는 쉽게 깨지고 단명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해 봐서 안다.
189. 1801년 2월 26일 카라만리는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고, 이것이 제1차 바르바리 전쟁이다. 우연하게도 이 전쟁은 미국이 선전포고를 받은 첫 번째 전쟁이었다.
190. 알제를 점령한 후 프랑스인들은 내륙으로 밀고 들어가더니, 이후 북아프리카의 많은 지역까지 점령했다. 그렇게 시작한 길고 유혈 낭자한 정복전쟁은 1847년 12월까지 계속되었다. 이제 해적을 양산하던 환경인 국가의 승인도, 해적 친화적 항구도 없어졌다. 결국 바르바리 해안의 약탈자인 코르세어와 해적도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1. 유럽의 주요 군사대국들조차 그토록 오랫동안 조공 체제를 묵인한 이유이기도 했다. / '조공'이 여전히 해군 원정비용보다 훨씬 싼 데다, '조공'을 낼 여유가 없던 가난한 경쟁국들은 해상 무역 과정에서 줄기차게 약탈을 당했으므로 그들에 비해 상업적 우위도 점유할 수 있었다.
192.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식민지 해군은 저마다 '자국 해상'에 한정해 독자적인 해적 퇴치 체제를 구축했고, 가끔 남몰래 다른 나라 해역에서 해적이 활동하도록 후원하거나 최소한 간접적으로 편의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 하지만 20세기 초 각국의 정책 기조가 변했고, 국제 정세도 마찬가지였다. / 이전에는 각종 해적 함대에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던 해안 지역들이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유럽 해상강국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다. 대영제국이 단연 선두였다. 제국주의 시대에 변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전통적 유럽 강국들은 제각기 세력권 주변부에서 '작은 전쟁'을 벌여 왔지만, 이제 세계를 무대로 제 몫을 차지하기 시작했고(강대국 간에 양해가 상당히 이루어졌다), 사략선이나 해적선을 활용해 소소한 이익이나 약탈물을 얻는 것보다 해상 무역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96. 우리가 제1부에서 살펴본 해적행위와 이 시기 해적행위의 가장 현저한 차이는 '각 지역의 문제에 전 세계적 수준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었다는 점이다.
199. 1991년 1월에 소말리아 정부가 붕괴하고 육지와 해상에서 법질서마다 사라지자 젊은 소말리아 어민들은 대거 해적으로 변신했다. 초기에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저인망어선이 몰려와 IUU어업(불법, 비보고, 비규제 어업. 일각에서는 '해적어업'이라 부른다)으로 어족 자원을 약탈하자 자신들의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 단체를 조직했다. // 1990년대 중반 소말리아 어민들은 난폭한 침입자를 쫓아내기 위해 자경단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1990년대 말 자경단이 해적단으로 탈바꿈한 이유다.
201. 소말리아 해적의 위협
204. 우리가 앞서 살펴본 두 시기 모두에 북해와 지중해는 해적들에게 최고 인기 놀이터였다. 그런데 오늘날 이 지역들에는 사실상 해적이 없다.
210. 앞서 살펴본 두 시기오 ㅏ마찬가지로 해적질이 정말로 번성하려면 환경의 도움이 필요하다. 공무원의 묵인, / 환영하는 항구, / 국가가 해적을 진압하는 데 관심이 없거나, / 힘이 없는 환경 등 말이다.
220. 육지에서 치안이 상실되었다는 것은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224. 해적선과 어선의 유일한 차이점은 해적선에는 네발닻과 사다리(해적질 의도를 입증하는 장비다)가 있고, 선원들이 대개 돌격소총과 RPG로 부장한다는 점이다.
237. 해적행위를 포함한 조직적 범죄와 테러리즘 사이에도 분명히 연속성이 존재한다.
242. 소말리아 해적들은 선원을 납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박을 대담하게 통째로 납치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2012년경에 이르러 다국적 해적 퇴치 동맹에 의해 마침내 바다에서 축출될 때까지 약 10년 동안 국제 뉴스를 지배했다. 현재 가장 악명 높은 해적은 폭력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나이지리아인들이고, 그 다음이 남중국해와 몰루카해협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동남아시아 해적 조직이다. / 존재가 사실상 드러나지 않는 해적들도 존재한다.
243. 하천해적
246. 해적 위험 지역 TOP10
248. 어느 때보다 강화된 다국적 해군 동맹의 효과적인 감시 때문에 소말리아 해적단들은 아주 드물게 습격을 시도하지만 대개 성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그들에게 '얼큰히 취한 삶'이 없을 것 같다.
250. 국내법뿐만 아니라 국제법에서도 해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한 다소 흥미로운 법적 문제를 제기한다. / 자유무역과 통상을 방해함으로써 전 인류에게 전쟁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군사적으로는 적이다. / 253. 다른 나라도 이처럼 해적들을 값비싼 재판에 회부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해적이라는 특정 범죄 행위의 재출현에 대응할 국내 형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5. 2008년 12월, 유럽연합 해군이 신설한 '아프리카의 뿔 해상 안보센터'는 해상에서 여러 선박을 감시할 수 있는 '해상돌길'로 함께 항해하는 단체 항해 체제를 구축했다.
262. 지난 몇 년 동안 해운업계에서는 화물 운송용 '미운선박'을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무인선박이란 육지에서 조종하는 원격조종 무인선박이나 미리 설정된 경로를 따라 자율적으로 항해하는 무인자율화선박 모두를 뜻한다.
273. 아탈란타 작전은 소말리아 사회에 공헌하고 경제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소말리아 해적 문제의 그본 원인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274. 유럽연합의 소말리아 권역 능력 강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소말리아 해역을 여전히 순찰하고 있는 다양한 역외 강대국들의 군함이 철수한다면 해적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2017년에 보고된 해적 공격 두 건(두 척 모두 해적이 승선했지만 탈환했다.)과 2018년에 발생한 해적 공격 두 건(모두 실패했다)은 그런 점에서 다소 불길한 징조다.
남중국해, 몰루카해협, 기니만과 같은 여타 지역에서는 여전히 해적들이 활동 중이다.
275. 2009년 1우러 29일 지부티, 에티오피아, 케냐, 마다가스카르, 몰디브, 세이셸, 소말리아, 탄자니아합중국, 예멘이 '지부티 행동 강령'을 공동으로 채택한 것은 분명 올바른 방향으로 크게 한 걸음 내디딘 조치였다. 강령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해적 및 해적행위를 조장하는 자(예를 들어 해적 작전 후원자)를 조사, 체포, 기소하는 데 협조할 의무, 선박 나포, 검색, 필요 시 의심스러운 선박을 억류할 의무, 해적의 공격을 받는 선박이나 개인을 구출하는 데 협조할 의무, 역외 강대국 군함과의 합동 작전 등 해적 퇴치 활동을 함께 수행할 의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적행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의무가 있다.
280. 육지 기반 버뫼 집단이 그렇듯이 해적의 중심에도 언제나 '얼큰히 취한 삶'을 얻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냉철한 골수 범죄자 그룹이 있다. 따라서 무인선박의 시대가 도래해도 해상 무역이 존재하는 한 해적행위는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284.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사례로 보드싱 여러 나라가 순찰을 공동으로 추진(몰루카해협 순찰)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군함이 해적선을 쫓아 자기 나라 수역으로 진입하도록 허가하려면 여전히 더 많은 신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 확실히 해적과의 전쟁을 현대적 사략선인 사설 업체로 '민영화'하는 사안은 앞으로 많은 설득과 협상을 요구할 것이다.
286. 딱하게도 해적행위의 근본 원인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