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잡아먹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고 있다.
목숨 빚이라는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이 빚의 연쇄 고리 속에 묶여있다는 걸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버린 우리 인간종은 잊어가고 있거나 잊고 싶어 한다. 심지어 인간 종 사이의 목숨 빚에 대해서도 그런 것 같다.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하루가 저물어 가는 밤, 소파에 몸을 부리는 나를 쫓아 올라와 서로의 정수리를 따뜻하게 핥고 있는 땅꼬와 장군이, 둘의 그루밍 향연에 동참하고자 들이민 내 손을 보고 있자면... 묘한 감회에 사로잡히면서 이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고 3 시절 나는 화농성 관절염을 앓았다.
중학교 3학년,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젊은 아버지 시신이 부슬비가 내리는 청초호변의 작은 선착장, 생선 가공공장 담벼락 아래 뉘여진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에게 진 목숨 빚의 무게에 눌려 사춘기를 보냈다. 당장 갚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쨌든 열심히 사는 것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열심은 공부뿐이었다. 무리한 공부와 함께 무릎 관절에 고름을 재촉한 스트레스는 대학 갈 아이들을 위한 학습 분위기 조성에 열의 넘치던 젊은 담임선생님과 그 운영방침에 저항하는 당돌한 학급 친구들 사이에 낀 요령 없는 반장의 처지였다.
수술과 치료 후 다시 등교를 시작한 늦여름 무렵, 부기와 통증과 점점 깊어 가는 우울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교한 내게 관절에 좋은 약이라고 엄마가 내민 대접을 받아 들었다. 곰탕보다 더 기름지고 푸르스름하고 비린 역겨운 탕. 기름이 둥둥 뜬 이 탕의 정체에 대해 짚히는 게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엄마는 자주 거래하는 촌 아줌마와 빈번하게 통화하기 시작했고 그 통화 내용 중, 고양이 운운하는 소리를 얼핏 들었던 것이다.
“이거 고양이지?”
“아니다. 닭이다.”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형제들한테 고개를 돌렸다.
“닭 맞아.” 이구동성으로 엄마를 거들었다.
나는 푸르스름하고 기름진 그 액체의 정체가 닭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 액체 위로 구겨져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누런 고양이 시신의 이미지가 오버 랩 되었다. 유연한 고양이가 관절에 좋다는 속설... 며칠 동안 저항했지만 공부 잘하는 딸내미를 향한 유난한 모성의 집요함을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푸르스름한 액체에 검은 탕제가 더해지면서 한약의 두터운 냄새와 씁쓸한 맛 뒤로 사체의 비린내가 감춰진 뒤, 나는 ‘닭인 거야.’ 나를 속이며 받아들였다. 일찍 남편을 잃고 어린 다섯 남매를 홀로 키우는 엄마에 대한 연민... 세상 어떤 연민보다 힘이 센 홀로된 모성에 대한 연민의 힘 앞에서 먼 시골 마을 담벼락 사이를 헤메다녔을 일면식도 없는 들고양이에 대한 연민은 무력했다. 아니 차라리 고양이에 대한 연민이 18살 내게 밀려들 틈이 당시에는 없었다고 해야 정직할 것이다. 한 집 걸러 한 집, 바다에서 시신으로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들. 로드킬 당하는 고양이들과 다를 바 없었던 생계의 바다를 건너는 아버지들의 처지. 생계와 생존의 칼날 위를 살아냈던 바닷가 마을에서 고양이에게 남겨질 연민의 여유분은 없었다.
삼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이 고단한 한 해가 어서 지나가기를... 나는 무감하게 엎드려 살아내고 있었다. 이 모든 바람이 아무런 생채기를 남기지 않고 지나가기를... 아무것도 더 느껴서는 안 된다. 어린 나는 그 해 그렇게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남겨진 고기와 뼈 등은 꿀과 함께 버무려진 환약이 되어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는 내 짐 속에 동행했다. 유리병에 담긴 검은 작은 알갱이들이 엄마의 소원대로 내 입에 넣어졌는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는지 기억이 없다. 매캐한 최루가스가 배경이 되었던 대학 시절 나는 새로운 만남 속에서 고3의 우울들과 멀어졌고 건강한 다리로 넓어진 세상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엄마는 고양이탕 덕이라고 공치사를 했지만, 젊디 젊은 내 육신에게 관절에 생긴 염증은 그저 가뿐히 지나가는 시절 인연 같은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병이 나은 대신 내겐 기름이 둥둥 뜬 푸르스름한 액체와 오버 랩 된 누런 고양이 사체의 영상이 남겨졌다. 미신과 속설을 믿는 엄마를 둔 덕에 나는 목숨 빚을 짊어졌다.
언젠가 우연히 여러 마리 개를 키우면서도 전국을 다니며 유기된 개들을 구조해서 입양 보내는 한 유투버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같은 대학을 다닌 사람. 이제는 철거되어 고층아파트 촌이 들어선 가난한 산동네 자취촌에서 맑스,레닌주의를 공부하며 반독재투쟁을 벌였던 청년 시절,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거대한 이상에 의기 등등했던 그가 자취방 주인 아주머니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 그 집 개 두 마리를 언덕에서 밀어버린 사연을 어떤 맥락 사이에 언급했다. 칼 맑스 전집을 출간하기까지 했던, 정치, 경제, 시사... 모든 일에 분명한 견해를 거침없이 토로하면서 세상 쫄릴 것 없이 자긍심 과잉처럼 보이던 그가 사연 끝에 덧붙였다. 그날 언덕 밑으로 떨어진 개들을 찾아 헤메다니던 아주머니, 그리고 그 개들에 대한 빚을 갚느라 이렇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전국을 다니면서 가엾은 개들을 구조하고 돌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에게 진 목숨 빚을 갚겠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거대한 서사의 능선을 호기롭게 질주한다 믿었던 청춘이 저물던 시절, 나는 내가 잡아먹었던 들고양이들처럼 아파트 덤불을 헤메다니는 길고양이 땅꼬를 만났고 장군이를 데려왔다. 땅꼬와 장군이와 함께 살면서 그날을 상상하곤 한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위해 촌 아줌마가 놓은 덫, 굶주림에 지쳐 그 덫으로 걸어 들어간 고양이의 밤.
거대 서사, 이념, 문명, 진보, 권력의 그늘. 육신을 가진 존재로 늙어가다 보면 거대 서사의 능선을 떠나 구체적 고통의 세계, 생명의 골짜기를 향해 마음길을 잡게 되는 섭리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 태고적 인류부터 인간 종은 ‘목숨 빚’에 예민했다. ‘목숨 빚’에 대한 감각이 역사를 만들고 인간 세계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목숨 빚'에 대한 감각은 동족의 경계에서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종은 교만해졌고, 교만 끝에 둔감해진 그 감각이 다른 종 뿐 아니라 같은 인간 종 사이에 만연해진 폭력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잡히지 않는 초월, 이념이 아니라 따뜻한 체온, 보드라운 감촉, 지긋한 무게감, 기대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평화로운 저녁이 육신을 가지고 생을 종주하는 힘이라는 걸, 위로라는 걸. 인간 종 뿐 아니라 육신을 가진 생명들 모두가 고통으로 점철된 생애를 그렇게 종주하고 있다는 걸... 오랜 부인과 외면 끝에 수긍하는 나. 이 가녀린 세계에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무분별한 폭력, 폭력들.
둘이 펼치는 그루밍 향연에 슬쩍 끼어든 내 손을 기꺼이 받아안고 할짝할짝 핥아주는 너희들. 빚을 갚는 내게 더 많은 애정의 빚을 지우는 너희들. 너희는 참 너그럽구나. 너희 종족을 잡아먹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땅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가문의 복수와 나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우리는 오늘 밤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
워낙 고기 맛을 잘 모르던 나였지만 땅꼬와 함께 살면서 나는 점점 더 고기 맛을 잃어가고 있다. 위를 앓으면서부터 단백질 소화가 어려워진지 오래였지만 땅꼬와 장군이를 만나 겪으면서, 이해하면서.. ‘벙어리 딸’... 불가항력적으로 떠오른 이 단어를 수긍하면서...공장식 축사에 갖힌 소, 돼지, 닭의 나날들, 살처분 현장의 비명을 더 가까이 느낀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닭과 고등어 간식을 내민다.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고양이들의 태생이다. 육식동물인 것이다. 고양이들은 학살을 하지 않는다. 동족 학살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생존을 위한 살생 이상의 살생. 필요 이상의 목숨 빚.
내 육신을 다 내어주어도, 인류의 모든 육신을 다 내어 주어도 갚을 수 없는 무분별한 목숨 빚. 청구서를 배달하는 거친 노크 소리도 없고, 복수의 경고장을 묶은 화살이 날아들지 않아도... 무한한 신뢰와 애정으로 할짝거릴 뿐인 너희들 곁에서 나는 그 빚에 대해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