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좋은 말인가, ‘민주’와 ‘정의’!
1981년 1월 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되었다. 민주정의당은 1979년 불법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등 군인들이 만들었다. 그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군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김대중 등 정치인들을 구속 · 연금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민주정의당 창당 6주년인 1987년 1월 15일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가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死” 기사를 써서 참담한 사실을 국민에 처음 알렸다. 다음날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수사관이 박종철 학생에게 대학 선배의 행방을 물으면서 책상을 ‘탁’ 쳤는데 그가 ‘억’ 하며 죽었다”고 발표했다.
본래 경찰은 14일 밤 박종철 학생의 시신을 은밀히 화장해 버리려 했다. 하지만 최환 부장검사가 음모를 막았다. 국립과학연구소 황적준 박사가 부검 내용과 자신에게 가해진 협박까지 공개하고, 서울 남부구치소 안유 보안계장이 가혹 행위자가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국민 공분이 폭발했다.
기억해야 할 이름들, 신성호 최환 황적준 안유...
1815년 1월 15일 영화 “레이디 해밀턴”의 실존 주인공이자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영국 영웅’ 넬슨 제독의 연인으로 유명한 엠마 해밀턴이 죽었다. 특이한 것은, 박종철 학생을 불법 고문해 죽인 뒤 사실을 은폐하려 들고, 드러난 뒤에는 축소하려 든 한국 경찰과 달리 엠마의 남편 해밀턴은 (그 무렵 평균 연령으로 치면 죽음을 앞둔) 70세 고령 탓인지 두 사람의 불륜을 공인했다는 사실이다.
엠마를 비호하는 견해도 있다. 엠마는 당시 33세였다.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부 등을 전전하던 중 우연히 넬슨의 상관이었던 퇴직 독거노인 해밀턴과 결혼했다. 엠마 해밀턴은 팔 하나와 다리 한 쪽을 전쟁에서 잃은 넬슨을 극진히 간호해주었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해밀턴이 74세로 죽은 이듬해 넬슨마저 46세에 전사한다. 해밀턴과 넬슨의 친척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유산을 가로채고, 엠마는 어렵게 살다가 49세로 삶을 마감한다. 역사학자 제이슨 M. 켈리는 “귀족과 남자들의 권위로 가득한 세상이 출신 신분이 낮고 여자라는 이유로 엠마를 옭아매었다”라고 평가했다.
마흔아홉 엠마에게 혹 위로가 되려나 싶어, 처칠이 “레이디 해밀턴”을 83번이나 관람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스물둘 박종철 학생에게는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우리나라의 민주와 정의가 이토록 아름답게 완성되었노라는 소식이라야 할 텐데, 마땅한 사례가 떠오르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