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의 한 모텔에서 16세 여고생이 숨진채 발견되었고 성폭행 가해자로 추정되는 17세 남학생 두 명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포털사이트 뉴스에 오른 기사를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한다. ‘우리애들은 아니겠지?’ 아니었으면 하는 소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학생부인 동료교사에게 연락하니 사망한 여고생은 인근의 타학교생이고 남자 아이 둘은 자퇴생이란다. ‘다행이다,,,,,’ 싶다가도 정신이 번쩍든다. ‘다행’이라니....이 상황에 무슨 말인가. 제대로 닦아 부처되기엔 백 살도 모자란 삶이거늘, 고작 스무 해도 살아보지 않은 세 아이의 삶이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건만 나는 무엇을 두고 ‘다행’이란 말부터 떠올린 것인가.
경계성 인격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는 아이, 너무 많아 별 특징도 아니게 여겨지는 분노조절장애 아이, 성매매 알선, 성추행이나 폭행, 절도, 폭력, 집단폭력, 불법 도박, 무면허 운전, 기물파손..... 월요일부터 오늘 금요일까지 내 귀에 들린 아이들의 증상과 죄목이다 . “선생님! 우리 학교엔 살인 빼고 다 있어요, 진짜예요!” ‘자랑이다, 이 녀석아!....’ 속으로만 대꾸했지만, 평생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고 입 밖에 욕을 뱉은 적도 없었던 내가, 하필 이곳에 와 있게 된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운명처럼, 소명처럼 느껴진다. 며칠 전엔 평소 쌓인 감정이 폭발해서 서로 “한 판 붙자!”며 교사와 급우들 앞에서 난동을 부린 두 학생이 선생의 참관하에 진짜 한 판 붙었다고 한다. 단, 보호장구를 갖추고 ‘태권도 룰’에 따라서. 한 시간 동안 3라운드(?)를 뛴 끝에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는 “사과는 받아주는데 화해하고 싶지는 않다”는 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21세기에도 결투가 실제로 존재하다니! 나는 남학생의 세계에 대해선 백치나 다름없는 듯 하였다.
한편, 어제는 일 년에 두 차례 있는 학부모대상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었고, 행사담당자는 나였다(-정확히 말하면 '나라고 동료들이 말했다'). 참관록과 지도안, 방명록을 만들고, 음료와 다과를 챙기고, 학부모들을 안내하며 마지막 평가회까지 챙기는 연례행사인데, 처음으로 내게 맡겨진 과업이었다. (나름 고되었던 모양인지 자고 일어나니 입 안이 헐었다)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만 학교의 초청에 응할 것이므로 이미 한 차례 걸러진 모집집단이겠으나, 학교를 방문한 부모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온화하고, 품위있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분들이 많았고 학교와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가 그나마 나아졌다며,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받게 되었다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아이때문에 함께 상담치료를 받는 부모도 있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감독 린 램지는, “최대한 문제의 원인을 엄마 에바와 연관되지 않게 그리고 싶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었다. 오늘 밤, 어디선가 세 쌍의 부모들이 살아서 겪는 지옥이 어떤 건지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찌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