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와(이재용) 경부는 두한(안재모)이 독립군이 되면 어쩌나 염려했지만 주먹패가된 것이 생각할수록 유쾌한 일이라고 좋아한다. 문달영(양형호)도 두한이 다른 주먹들처럼 평생 유치장을 들락거리며 살 거라고 맞장구친다.
두한은 제비(최상학) 손에 이끌려 신마찌 유곽촌에 갔다가 신마찌 패거리들 손에 이끌려가는 조선 여자를 보게 된다. 두한은 여자를 구하기 위해 그들과 피할 수 없는 접전을 벌이고 일순간에 그들을 제압해 버린다. 매를 맞고 도망쳤던 신마찌 패거리들은 설욕을 만회하기 위해 이십여명이 몰려온다. 그러나 신마찌 패거리들은 두한의 발차기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두한의 통쾌한 승리는 종로에도 퍼져 화젯거리가 된다.
신마찌패의 왕초가 두한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하야시(이창훈)는 구마적(이원종)에게 정식으로 항의한다. 화가 난 구마적은 당장 두한을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쌍칼(박준규)은 구마적을 찾아가 오히려 두한을 칭찬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기분이 상한 구마적은 두한을 데려오지 않으면 대신 쌍칼을 해치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 1 그 술집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모두들 두한을 보고 있다. 쌍칼의 표정도 굳어 있다.
쌍칼 다시 말해봐. 뭐라고 그랬지, 지금?
두한 저라면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김영태 김두한..
쌍칼 (제지하며) 계속 해봐.
두한 일본 놈들에게 넘어간 사람을 큰형님으로 모실 수는 없습니다. 싸우겠습니다. 구마적은 물론 하야시와도 싸우겠습니다.
쌍칼 ..........
김영태 허허허.. 이거야 원... 형님, 형님답지 않으십니다. 그런 중대한 일을 까마득한 아우한테 물으시다니요? 두한이는 아직 이 세계를 잘 모릅니다.
두한 주먹 세계는 잘 모르지만 일본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구마적의 명령은 따를 수 없습니다.
김영태 어허 그래두.. 그건 하극상이야. 구마적 형님이 자네 동무인 줄 아는가? 그 사람은 조선 주먹계의 최고 오야붕이야.
두한 오야붕은 오야붕다워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오야붕 자격이 없습니다.
김영태 그게 틀렸다는 게야. 그러한 이유로 너도나도 반기를 들었다면 주먹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을 걸세. 이 세계에도 체계와 질서라는 것이 있어. 그것을 함부로 무너뜨리려 해서는 안 되는 거야.
두한 구마적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쌍칼 형님께서 괴로워하시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닙니까?
김영태 두한이......
쌍칼 그만들 둬.
두한 .............
쌍칼 (두한들을 향해) 너희들은 그만 들어들 가라.
문영철 예, 형님...
문영철과 김무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한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한다. 잠시 그렇게 앉아 있던 두한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그들이 나가면 김영태가 쌍칼의 잔을 채운다.
김영태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형님. 두한이는 이 세계에선 아직 어린애에 불과합니다.
쌍칼 (도리질) 그렇지 않아. 두한이 말에 일리가 있어. 구마적의 횡포를 이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김영태 하지만 형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어쨌거나 하극상입니다. 구마적을 치려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당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쌍칼 하하하. 명분이라.... 역시 김영태답군. 배운 티가 난단 말이야.
김영태 ..........
쌍칼 명분은 충분해. 다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내심 불만들이 많은 표정이었어.
김영태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뭔가 일이 진행되어야 반발들이 노골적으로 터져 나올 겁니다. 그 때까지는 참으셔야 합니다.
쌍칼 솔직히 말해봐. 영태 자넨 내가 구마적에게 당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되는 거지? 안 그래?
김영태 .............
쌍칼 (술을 마시고는) 싸워야 해.. 구마적은 틀렸어.
김영태 .......형님...
쌍칼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두한이 녀석 말이야.. 보면 볼수록 참 마음에 든단 말이야.. 큰 주먹이 될 게야. 이 쌍칼하고는 비교도 안될 큰 주먹이 될 게야.
김영태 .............
# 2 종로 거리
두한과 문영철, 김무옥들이 그 거리를 빠져나가고 있다.
김무옥 두한아, 니 참말로 대단허다잉. 감히 구마적 형님과 붙겠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다니 말이여...
두한 ..........
김무옥 나도 아까는 속이 뒤집혀부렀다. 쌍칼 성님이 구마적헌티 당할 때 말이여.. 오야붕이고 나발이고 간에 확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더라니께.. 허지만 고곳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제..
두한 ...........
문영철 아니야.. 어쩌면 두한이 말이 맞을 지도 몰라.
김무옥 잉? 영철이 넌 또 뭔 소리여?
문영철 못할 것도 없잖아... 쌍칼 형님이라면 해볼 만 해.
김무옥 뭣이여? 상대가 천하의 구마적인디...?
문영철 구마적도 늙었어. 예전만 못할 거야.
김무옥 .....허지만.....?
두한 그런데 구마적은 왜 그렇게 된 거냐? 그 동안 이 종로를 지키기 위해 일본 패들과 싸웠다고 알고 있었는데......
김무옥 지난번에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하야시가 꺼내준 것 때문인 것 같은디...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아이구 나도 몰러. 우린들 그 시커먼 속을 워찌 알겄냐?
문영철 하야시가 두려워진 것이겠지. 그 동안 혼마찌를 비롯한 일본 패거리들은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엄청나게 세력을 불렸어. 더 이상 예전처럼 하야시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을 거야.
두한 두려워서..? 일본패가 무서워서...?
김무옥 따지고 보면 너도나도 왜놈들한테 빌붙으려고 하는 세상이 아니냐? 구마적도 그렇고 그런 거겄제..
두한 .........
두한의 의미심장한 표정에서...
# 3 우미관 사무실
구마적이 소파에 몸을 깊숙이 한 채 궐련을 피우며 수하들과 마작을 하고 있다. 패를 갖고 놀다가 넌지시 뭉치가 한마디한다.
뭉치 큰형님, 2정목의 쌍칼 말입니다.
구마적 왜?
뭉치 큰형님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것 같애요. 지역 오야붕들이 다 왔는데 거기서 노골적으로 항명한 거 아닙니까 그게?
구마적 .....(인상을 찌푸리며) 어서 패나 집어.
제비 쌍칼은 처음부터 삐딱했습니다. 자존심만 세가지구.......
상하이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혼을 좀 내야하지 않겠습니까?
구마적 당분간은 그대로 내버려 둬. 큰 일을 앞두고 소란스러워지는 건 좋지가 않아.
뭉치 하지만 형님... 쌍칼 그 자식 어쩐지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듯이 보였습니다.
구마적 .....그렇겠지..가만있으면 쌍칼이 아니겠지...
모두들 ...........?
구마적 쌍칼은 보통 놈들과 달라. 배포도 있고 야심까지 큰놈이지. 알량하기는 하지만 애국심도 있구.
셔츠 그 애국심이라는 게 결국은 일본 애들 싫어하는 것 아닙니까?
구마적 그렇다구 봐야지. 하지만 무조건 싫다고 해서 될 일인가 이게? 요령껏 살지 못하면 이 종로통은 얼마 못 가. 미련한 놈들이 그걸 몰라.
평양박 ................
구마적 머지 않아 제 놈이 먼저 나를 찾아오게 될 거야. 쌍칼은 그때 가서 처리해도 늦지는 않아.
상하이 쌍칼이 감히 큰형님께 도전이라도 해올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구마적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쌍칼은...
뭉치 그렇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놈의 칼은 백발백중이에요. 일본에서도 그걸로 사람을 죽이구 이리로 도망 온 거래잖아요?
제비 쌍칼도 쌍칼이지만.... 신마적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아무래도 언젠가 일을 저지르기는 저지를 것 같습니다마는....
구마적 그럴 수도 있겠지.
뭉치 그렇다면 아예 우리가 선수를 써서 먼저 잠재워 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구마적 잠을 재워? 신마적을? (도리질을 하며) 신마적은 쌍칼과는 또 달라. 그냥 놔둬도 저절로 무너질 인간이야. 인심을 많이 잃었거든. 그저 서로 마찰만 없으면 되는 거야. 절대로 부딪치지 말아. 건드릴수록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뭉치 예, 큰형님.
구마적 한동안 이 종로통이 조용했는데........
구마적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가 않다. 그 위로 들려 오는 비명소리.
# 4 종로통
그곳 어느 요정 외경이다. 행인들이 지나치다 말고 안을 기웃거리고 있다. 안에서 비명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 5 동 요정 안
거구의 신마적이 술이 취해 그곳 지배인을 닦달하고 있다. 지배인의 뒷머리 채를 잡고 계속 탁자에 이마를 내려찍고 있다. 지배인의 얼굴은 피투성이다. 여급들과 주인은 안절부절 말리지도 못하고 있다.
신마적 야, 임마, 너는 도대체 나를 뭘로 아는 거야? 말해봐 내가 누구야?
지배인 시... 신마적 님이십니다.
신마적 인마 내가 왜 신마적이야? 나는 엄동욱이야, 엄동욱..인마
지배인 예, 예....아이구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형님.
신마적 날 뭘로 알고 이따위 맥주를 내오는 거야? 내가 분명히 시원한 걸루 가져오라고 그랬지? (계속 내리친다)
지배인 예, ... 그...그랬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아이구.....
신마적 조금 전에 보니까 쪽발이 새끼들이 찾을 때는 시원한 맥주를 잘도 갖다 주더구만 헌데 왜 우리는 이 모양이냐?
지배인 잘못했습니다. 시원한 것이 마침 떨어져서...
신마적 항상 말했지. 쪽발이보다 우리 조선 사람들을 하늘같이 알라고 말이야.
지배인 예, 예, 잘못했습니다.
신마적 이것들이 쪽발이 새끼들하고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눈치만 남아가지구.. 사람들을 살살 약을 올린단 말이야.. 이것들이...
계속 내려치다가 밀어 던지면 지배인이 그대로 나뒹군다. 신마적이 그대로 몇 번 발길질을 죽어라고 하다가는 마구 집기들을 부수고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육중한 탁자하며 술통들이 날아간다. 실내는 곧 폐허처럼 어지러워진다. 그래도 사람들은 발만 구를 뿐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신마적은 마지막으로 다시 마시던 병맥주를 들고 입으로 부으며 몸이 풀린다는 듯 걸어 나간다.
신마적 다음에는 시원한 맥주로 갖다 놔, 알겠어?
주인 아, 예예.......
신마적이 나가자 주인은 한탄한다.
주인 아이구, 저런 개망나니 하구는 누가 저런 개망나니를 좀 안 잡아가나? 동경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것이 저 모양이니 아이구..... 오늘 장사 다 했다 아이구....
# 6 야시장 사무실
두한과 문영철, 김무옥들이 사무실 입구로 다가가는데,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온다.
번개 형님......두한이 형님......!
두한 ..........?
번개 (다가와 김무옥과 문영철을 보며) 형님들도 함께 계셨군요. 안녕들 하셨습니까?
김무옥 아니, 이게 누구여? 번개 아니여? 그 동안 통 안 보여서 종로 바닥 뜬 줄 알았는디..
번개 헤헤헤. 그렇게 됐습니다.
문영철 여긴 웬 일이냐?
번개 두한 형님 좀 만나 뵈러 왔습니다.
문영철 (두한을 보며) 서로 아는 사이였어?
두한 .........?
번개 형님... 설마 이 번개를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유치장에서 형님한테 까불다가 신나게 얻어터졌잖아요? 헤헤헤...
두한 아아... 번개?
두한은 그제서야 기억이 떠오른 듯 다시 본다.
# 7 시장통 골목길
두한과 번개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오가고 있다.
번개 형님은 제가 별로 달갑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두한 왜?
번개 통 반가운 표정이 없으시네요?
두한 글쎄...
번개 헤헤헤... 나는 형님이 한가닥할 줄 알았습니다. 이 야시장에 오야붕으로 있는 쌍칼과 함께 있다지요?
두한 그래.
그들 어느 술집 안으로 들어간다.
# 8 동 술집 안
주모가 술동이와 파전을 내준다. 두한과 번개가 술잔을 주고받는다.
번개 (따르며) 좀 드십시오.
두한 음, 그래.. (조금 마시다 놓는다)
번개 왜 그러십니까? 술도 별로 안 드시고, 말씀도 없으시고...?
두한 응...아냐.. 번개를 만난 게 좀 뜻밖이라서..
번개 뜻밖이라뇨? 제가 약속 드리지 않았습니까. 출소하면 꼭 찾아 뵙겠다고 말입니다.
두한 그랬었나? 그런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번개 이 번개가 달리 번개겠습니까? 지금은 제가 활동 무대를 옮겨서 그렇지 종로 돌아가는 사정은 누구보다 훤한 게 바로 이 번갭니다.
두한 활동.... 무대라니..? 무슨 일을 하는데...?
번개 헤헤 다 아시면서...? 아 이거 있잖습니까? (손가락 두 개로 지갑을 꺼내는 시늉을 해 보인다)
두한 소매치기?
번개 뭐 자랑은 아니지만 한다 하는 종로 유지들 중에 제 고객이 아닌 분들은 거의 없죠. 헤헤...
두한 그럼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거야?
번개 배운 게 그것뿐인데 어쩌겠습니까?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말이에요. 하지만 요즘엔 일본 놈들 터는 게 수입도 짭짤하고.. 뭐 그렇습니다.
두한 그래도 도둑질은 안돼.
번개 왜요? 어차피 그 놈들이나 나나 도둑놈인 건 피차일반인데요. 애국이 뭐 별 겁니까? 그런 못된 놈들 터는 게 바로 애국이라 이 말씀입니다.
두한 .........(어이가 없는 듯 웃는다)
번개 형님... 정말 반갑습니다. 오늘밤은 이 번개가 화끈하게 모실 테니 다른 말 마십쇼. (둘러보며) 아무래도 여긴 분위기도 그렇고 다른 데로 가시죠.
두한 벌써 꽤 마셨어. 다음에 다시 만나자.
번개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겨우 시작인데.......자 일어나세요.
두한 됐어. (일어서며 주인에게) 여기 얼맙니까?
그러나 번개가 먼저 일어나 그야말로 번개처럼 주인에게 계산을 치룬다.
번개 이대로는 못 보내드립니다. 자 가시지요, 형님. 어서요. 오늘 신마찌 구경 한번 시켜드리겠습니다.
두한 신마찌...?
번개 예... 왜놈들이 들끓는 곳 아닙니까? 거긴 종로하고 달라서 일본 야쿠자들이 꽉 잡고 있는 곳이지요.
두한 일본 야쿠자...?
번개 기가 막힌 데가 많습니다. 가서 한잔하시겠습니까?
두한은 그런 번개를 쳐다본다. 의미 있는 그 표정에서...
# 8-1 종로 거리
나미꼬와 사야꼬를 태운 차가 달려오고 있다. # 8-2 동 차 안
시바루가 운전대를 잡고 있고 뒷좌석에는 나미꼬와 사야꼬가 앉아 창 밖 밤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나미꼬는 조금은 신기한 듯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나미꼬 여기가 형부가 늘 말씀하시던 종로란 말이지? 혼마찌하고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데...
사야꼬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까.. 근데 왜 하필이면 종로니? 혼마찌나 메이지마찌에도 좋은 찻집들이 많은데... 여기 시바루 상에게 너무 미안하잖니?
시바루 ...........
나미꼬 어떤 곳인지 구경 좀 하고 싶어서..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곳이잖아.
차는 비너스 앞으로 다다르고 있다.
나미꼬 저기.. 저기가 좋겠네요..
승용차가 천천히 선다. 시바루가 운전석에 내려 차 문을 열어준다. 나미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비너스로 들어간다.
# 8-3 카페 비너스 안
나미꼬와 사야꼬가 들어오면, 문 근처에 서있던 김이수가 반갑게 맞는다.
김이수 오... 어서 오십시오. 아리따운 숙녀님들..
나미꼬 여기 사장님이신가 봐요?
김이수 하하하. 사장이라.... 그리 거창할 건 없고 그냥 주인장으로 불러주십시오. 한데 조선사람이 아닌 것 같으십니다?
나미꼬 왜요? 여긴 조선 사람만 받는 곳인가요?
김이수 아, 아닙니다. 자... 그럼 이 쪽으로..
김이수의 안내로 나미꼬와 사야꼬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고 시바루는 근처 다른 자리에 앉는다.
김이수 마드모아젤, 주문을 받겠습니다. 참고로 저희 가겐 커피 맛이 아주 일품이지요.
나미꼬 그래요? 그럼 그걸로 부탁 드려요..
김이수 예, 탁월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주방 쪽을 향해) 여기... 커피 둘!
사야꼬 좀 이상한 곳 같아.. 주인이 저렇게 취해 있다니...
나미꼬 재밌잖아... (둘러보며) 생각 보단 괜찮은 카페네.
사야꼬 너... 단순히 구경 삼아 종로에 오자고 한 거 아니지?
나미꼬 무슨 얘기야?
사야꼬 네 형부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일에 관여할 생각이라면 그만 둬.
나미꼬 왜......?
사야꼬 왜라니....?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몰라서 그래? 난 걱정이다. 어려서부터 네가 하는 짓은 항상 엉뚱했잖아? 괜히 네 형부한테 염려 끼칠 일은 하지 마. 알았어?
나미꼬 글세...
사야꼬 나미꼬...
나미꼬 (시바루에게) 시바루상, 왜 거기 앉아 있어요? 이리 와서 같이 앉아요.
시바루 아..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나미꼬 그럴 게 어려워 할 거 없어요.
시바루 이 자리가 편합니다.
나미꼬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구요.
시바루는 다시 자세를 바로 앉는다. 나미꼬는 사야꼬의 어깨 너머로 계속 카페 안을 둘러본다.
# 8-4 종로서 고등계
형사들 각자 일을 마무리하며 퇴근을 서두르고 있다. 미와는 자리에 앉아 뭔가를 생각하며 피식피식 웃는다.
문달영 경부님....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미와 암 있구말구.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단 말이야. 그 긴또깡 말이야.. 긴또깡이 주먹패가 되다니.. 생각할수록 유쾌한 일이 아닌가?
문달영 아 예...
미와 놈은 수렁에 바진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헤어오지 못할 수렁 말이야, 수렁. 건달들의 속성이야 내가 잘 알지. 한 번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 나온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와도 같은 것이다. 주먹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일은 절대 못하지.
문달영 맞는 말씀이십니다. 긴또깡도 다른 주먹들처럼 평생 유치장이나 들락거리며 살게 되겠지요.
미와 하하하. 바로 그거야. 긴또깡이 혹시 독립군이라도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우환거리가 사라졌어.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아.
# 9 신마찌 유곽촌
홍등가의 불빛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다. 골목길마다 술 취한 남자들을 유혹하려 손을 흔들며 일본말로 '한잔하시고 가세요' 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두한과 번개가 그곳으로 들어서고 있다. 두한이 의혹에 가득 찬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두한 여긴......어디야?
번개 헤헤헤. 선녀들이 저렇게 많은 걸 보면 여기가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음흉하게 웃으며) 설마 처음은 아니시겠죠, 형님? 오늘 기분 한번 내십시오. 먼저 맥주를 한잔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예 좋은 데로 일찌감치 들어가 볼까요?
두한 (창녀들을 보며 대답 없이 그저 보며 간다. 어떤 곳인지 짐작이 간다)........
번개 저만 따라오세요, 형님. 제가 기막힌 계집들이 있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두한 .............(그저 따라간다)
번개 저기, 저 집이 제 단골입니다. 가시지요.
그들 그렇게 가다가 어느 유곽 술집으로 막 향하는데 그 길로 몇 명의 일본인 사내들이 한 여자를 질질 끌고 오고 있다. 여자는 일본인 사내들에게 두 손을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여자 제발 살려주세요. 한번만 봐주세요. 부탁입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일사내 (일본어) 네가 도망치면 어디까지 갈 줄 알았어? 이 신마찌는 아무도 마음대로 오거나 나갈 수 없다. 가자..
여자 살려주세요. 한번만 봐주세요.
일사내 일어나, 일어나... 가자고 하였다, 이년아. (마구 때리며) 일어나지 못해? 일어나란 말이야.
두한이 가다 말고 잠시 그들을 보다가 다가가려는데, 번개가 그런 두한의 마음을 읽은 듯 앞을 가로막는다.
번개 형님....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모르는 척하십쇼.
그러나 두한은 번개를 밀치고 일본인 사내들 앞을 가로막는다.
두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일사내 (어이없어 일본어로)....... 너는 뭔가?
두한 사람을 그렇게 막 다뤄서야 되나? 더구나 힘없고 약한 여자가 아닌가?
일사내 조센진 놈이 건방지게... 네 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비켜라!
두한 좋은 말로 할 때 그 여자를 놓아줘.
일사내 뭐? 여자를 놓아줘? (콧방귀를 끼고) 이 자식이 미쳤나?
일본인 사내가 두한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두한은 이미 예상한 듯 가볍게 피하며 사내의 옆구리를 내지른다. 그러자 다른 사내가 두한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그 역시 한동안의 접전 끝에 두한의 주먹에 나동그라진다. 그들이 다시 동시에 두한에게 덤비지만 두한은 또한 그들을 손쉽게 제압해 버린다. 어느새 창녀들이 무더기로 문 앞에 나와 놀라운 눈으로 두한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본인 사내들이 '두고 보자, 기다려라' 하며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자 여자들이 고소한 듯 웃는다.
두한 (여자에게 다가가) 괜찮습니까?
여자 도와주신 것은 고맙지만.... 어서 도망가십시오. 아까 그 사람들은 여기 신마찌의 일본인 야쿠자들이에요. 잡히면 댁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두한 네, 압니다. 자, 일어나십시오. 나와 함께 갑시다.
여자 어서 여기를 나가야 합니다. 어서요.
번개 (다급하게) 이 여자 말이 맞습니다, 형님. 여기 신마찌 유곽의 오야붕은 잔인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놈입니다. 뼈도 못 추린다구요. 어서 도망가야 해요.
두한 알았어. 가자.
# 10 그 골목 또 다른 길
그들이 어느 만큼 왔다. 막 큰길 쪽으로 나간다. 번개는 안절부절못하며 급히 앞서가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십 여명의 신마찌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번개의 표정이 그야말로 사색이 됐다. 신마찌의 오야붕이 앞으로 나온다.
번개 아이구... 드디어 일이 벌어졌네. 유곽의 오야붕입니다, 형님. 별명이 독사예요, 독사...
두한 번개, 여자를 데리고 먼저 여기를 빠져나가.
번개 혀.. 형님...?
두한 어서 가란 말이다. 아가씨도 어서 가시오.
여자 (그제서야) 예, 예.. 고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번개 형님....?
하다가 여자와 함께 달아난다. 쫓으려는 야쿠자들을 두한이 막는다.
오야붕 (여유 있게 다가서며) 넌 뭐하는 놈이냐?
두한 ..................?
오야붕 도망치는 계집을 빼돌렸다면서...? 간도 큰놈이로구나. 어디서 온 놈이냐? (보다가) 맛을 보여줘라.
신마찌 패거리들이 달려들어 싸움이 붙는다. 두한은 날아다니듯 좁은 골목길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친다. 주변의 유리창들이 부서져 나가고 이십 여명의 신마찌 패거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간다. 그 두한을 보는 신마찌 오야붕의 얼굴이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롭다는 표정이다. 어느새 신마찌 패거리들 대부분이 바닥을 나뒹군다. 그러자 신마찌 오야붕이 마침내 외투를 벗고 앞으로 나선다.
오야붕 주먹 깨나 쓸 줄 아는 놈이구나. 보아하니 조센징 같은데,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가?
두한 .....난 종로의 김두한이다.
오야붕 종로...? 역시 조선인 주먹이었군. 헌데 무엇 때문에 경계를 넘어와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남의 나와바리를 침범하면 어떻게 되는 줄 모르는가?
두한 난.... 그런 거 모른다.
오야붕 건방진 놈.... 좋아.. 내 버릇을 좀 고쳐주지..
신마찌 오야붕이 손을 내밀면 옆의 사내가 닙본도를 건넨다. 오야붕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빼어 든다. 날카로운 칼끝이 두한의 목을 향한다. 두한도 외투를 벗어 던지고 진지하게 자세를 취한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유곽의 여자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잠시 후 벼락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오야붕이 칼을 치켜들며 두한에게 돌진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숨가쁜 접전이 펼쳐진다. 칼날이 바람 소리를 내며 허공을 휘젓고 좁은 담벼락과 부딪치며 불꽃이 튄다. 두 사람, 잠시 거리를 두고 떨어진다. 칼날에 스친 두한의 어깨에 옅은 핏물이 배어있다.
오야붕 흐흐흐. 여기서 살아나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거라.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유곽의 여자들 사이에서 도망치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한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신마찌 오야붕은 다시 칼날을 세우며 달려오지만 두한은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는다. 절체절명의 순간, 두한의 발차기가 상대의 옆구리에 작렬한다. 그 단 한 방에 신마찌 오야붕은 그 자세 그대로 쓰러져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한의 결정타가 오야붕의 턱에 꽂힌다. 유곽의 여자들 사이에서 조용한 환호가 일고 있다. 신마찌 패거리들이 분한 듯 쳐다보지만 차마 덤비지 못한다.
두한 겨우 이 정도였나? 힘없는 아녀자나 괴롭히고.. 함부로 칼을 빼 들고 설치다니... 너희들은 쓰레기들이야...
두한이 내뱉듯 말하고 천천히 돌아서 외투를 집어들고 사라진다. 신마찌 패거리들도 오야붕을 업고 사라지면 갑자기 골목골목 마다 환호성이 울린다.
# 11 야시장 사무실
문영철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김무옥이 흔들어 깨운다.
김무옥 뭐여.....?
문영철 아무래도 두한이가 늦는 모양이다. 우리 먼저 들어가자.
김무옥 (하품하며) 그래야 쓰것구먼.........
문영철이 대강 주변을 정돈하며 일어서는데,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며 번개가 들어와 숨을 헐떡인다.
문영철 번개....? 근데 왜 너 혼자야? 두한이는?
번개 (숨을 몰아 쉬며) 크..... 큰 일 났습니다.. 두한이 형님이......사고를.....큰 사고를....치셨다구요.......
문영철 뭐, 사고?
김무옥 (잠이 덜 깬 듯) 뭣이라고?
문영철 자세히 말해봐. 두한이가 무슨 사고를 쳤단 말이야?
번개 그... 그럴 틈이 없다니까요... 잘못하면... 두한 형님 죽어요..... 어서.... 어서 구해야 한다구요.
김무옥 뭐여?
문영철 어딨어? 두한이 어딨냐구?
번개 시, 신마찌요. 어서요..
문영철과 김무옥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듯 미친 듯이 달려나간다.
# 12 시장통
김무옥과 문영철이 시장통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다. 그 야시장을 거의 빠져나갈 즈음, 저 멀리 거리의 불빛 속에서 두한이 오고 있다.
문영철 저기... 두한이 아니야?
김무옥 글씨... 맞는 것 같기도 하고......어두워서 잘 모르겄는디......
문영철이 두한에게로 달려간다. 그들 뻥해서 본다. 두한은 너무도 여유가 있는 것이다.
문영철 두한아.....?
두한 왜들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김무옥 잉? 고것은 우리가 묻고잡은 말인디.........
문영철 ................?
두한은 성큼성큼 가버린다. 세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다가 두한의 뒤를 따른다.
# 13 야시장 다방
다방 마담, 여 종업원들이 모두 몰려 안타까운 듯 보고 있다. 두한과 그 여자가 마주해 앉아 있고 김무옥, 문영철, 번개, 그리고 어느새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쌍칼패들도 지켜보고 있다.
여자 .....(울며) 낮밤이 따로 없는 그 생활에 더는 견딜 수 없었어요. 차라리 도망치다 죽는 것이 낫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무옥 (분노해서) 이... 쳐죽일 놈들 같으니.... 짐승도 그렇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구먼.
두한 (끄덕이며) ....그렇게 된 거군요.
두한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번개를 본다. 눈치 빠른 번개는 어쩔 수 없는 듯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낸다.
번개 제가 가진 전부예요.
두한 (번개를 엄한 눈길로 쳐다본다).....
번개 아,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바지 안 비상 주머니까지 털어 내며) 정말이지 다 털었어요. 정말이에요.
김무옥과 문영철도 그 위에 돈을 보탠다.
두한 얼마 안되지만 이 돈으로 멀리 떠나십시오. 놈들이 찾지 못하도록 아주 먼 곳으로요.
여자 그렇게 되면 댁께서 난처하게 되실 거예요. 그 자들은 절대로 저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한 난 걱정할 것 없습니다. (부하들을 보며) 삼수야.....
삼수 예, 형님.
두한 오늘 밤 아가씨가 묵을 곳을 찾아봐라.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경성역까지 모셔다드려.
삼수 알겠습니다.
여자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두한 그렇게 하십쇼. 그래야 우리 마음도 편해질 것 같습니다.
여자 (눈물)........
두한 어서...
삼수 예... 일어나세요..
여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삼수는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모두들 마음 한곳이 울컥하는 표정들이다.
마담 에휴... 불쌍한 것... 어쩌다가 그런 곳으로 팔려가서... 쯧쯧...
여종업원1 그러게 말이에요..
여종업원2 그나저나 정말 멋지세요, 두한 오라버니.. 나 오라버니한테 오늘 완전히 반했다니깐요.
두한 .............?
김무옥 워매? 저것이 은제는 나밖에 읎다고 하더니만..
여종업원2 그거야 두한 오라버니 만나기 전 이야기구요.
김무옥 뭐여?
왁자하게 웃음이 터진다.
문영철 난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악랄하기로 유명한 신마찌 야쿠자들을 어떻게 혼자서 다 해치웠는지 말이야..
김무옥 그러게 말이다잉.. 근디.. 한편으론 걱정도 되는구먼.... 그렇게 개박살 내놓았으니....신마찌는 물론이고 하야시도 가만있지 않을 것인디...
두한 .............
# 14 혼마찌깡 외경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검은 양복 차림의 야쿠자들과 무사 복장의 사무라이들이 도열해 있다. 그 대문 밖으로 승용차들이 줄줄이 도착하며 경성 지역의 야쿠자 두목들이 안으로 안내된다.
# 15 동 다다미 방
상석에 하야시가 앉았다. 중간중간 다다미 방문들이 계속해 열리면서 장곡천정(현소공동)의 요시모토, 아사히마찌(회현동)의 다나까, 황금정(을지로)의 타즈마사 등 경성 지역의 오야붕들이 좌우로 서열에 따라 길게 늘어서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한참만에 하야시가 조용히 입을 연다.
하야시 모두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고맙소. 오늘 여러 오야붕들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그 동안 추진해온 여러 가지 사업의 진행과정과 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오.
모두들 하이.........
하야시 그 동안 여기 계신 여러 오야붕들께서 노고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우리 경성의 국수회 지부는 본토 못지 않은 세력과 재력을 확보하게 되었소. 본토에서도 이러한 성과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는 후문이오.
모두들 .............
하야시 그러나 가야 할 길을 아직도 많이 남아 있소. 새로운 지역의 확보와 사업장의 확장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소.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남촌만으로는 더 이상의 사업 확장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경성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종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왔었고, 근래에 이르러 마침내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소. 이미 우미관의 구마적과 만나 상당한 진척을 보았어요.
모두들 ..............
하야시 종로는 우리 국수회의 북촌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오. 앞으로 여러 오야붕들의 협조를 부탁하는 바요.
타즈마사 종로에 그토록 공을 들이시더니 그예 결실을 보게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하야시 오야붕.
하야시 고맙소.
기요하라 하지만... 언제 배신할 지 모르는 것이 바로 조선 주먹패들입니다. 그 자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야시 오야붕께서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야시 알고 있소. 하지만 이미 대세는 거스를 수 없게 되어 있소.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들이 장악한 남촌과 조선인 주먹패들이 장악한 북촌의 경계는 허물어지게 될 것이오.
다나까 (냉담하게) 이미 그 경계가 어젯밤에 허물어졌다 들었습니다만..
하야시 그게.... 무슨 말이오, 다나까 오야붕?
다나까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어젯밤 종로의 조선 주먹패 하나가 신마찌를 초토화시키고 돌아갔답니다.
하야시 ............?
다나까 신마찌의 기따노 오야붕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그 때문입니다. 턱이 다 부서지고 조직원이 대부분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합니다.
타즈마사 단 한 사람에게 말이오?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이 아니오?
하야시 .............
다나까 분명한 사실이오. 그렇게 신의가 없는 조센징 주먹들과의 연대는 재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야시 오야붕.
하야시 ............
기요하라 실은....나도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도 수치스러운 사건이라 차마 입에 담는 것조차 부끄러웠습니다.
타즈마사 허허..... 아무리 신마찌 유곽의 세력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일개 조선 주먹패 하나에게 그 지경이 되었다니.....믿을 수가 없소. 도대체 어떤 자였길래.....?
기요하라 나 역시....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더욱이 기타노 오야붕은 칼을 사용했고 상대는 맨손이었다고 하는데...
타즈마사 조선에 그런 사무라이가 있었다니.....놀랍소... 정말 놀라워요.
다나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오. 이것은 우리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란 말이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기요하라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종로와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고.. 이 일을 공론화 할수록 우리 야쿠자 전체가 수치가 될 뿐이오. 쉬쉬하며 일단을 덮어두는 것이 상책일 것 같소.
타즈마사 그것은 나도 동감하는 바이외다.
다나까 (도전적으로) 하야시 오야붕께서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하야시 ..........이 일은 듣고 보니 그냥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소. 내게 맡겨 주시오. 우미관의 구마적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하겠소.
다나까 ...........
오야붕들 모두가 헛기침을 하며 씁쓸한 표정들이다. 뭔가를 생각하는 하야시의 모습에서...
# 15-1 시장통(아침)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이 가게문을 열고 물건들을 밖으로 끌어내 진열하고 있다. 고깃집 주인도 문을 여는데, 다방 마담이 다가온다.
고깃집 어이구... 이게 누구야? 중천이나 되야 문을 열던 사람이 웬일로 이렇게 일찍 나왔어?
다방마담 호호호. 그랬나? 사실은 밤새 입이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고깃집 모기가 주둥이만 물었나? 가렵긴 왜 가려워.
다방마담 혹시 김두한이라고 알아요? 왜 쌍칼 밑으로 새로 왔다는 그 청년 말이에요.
고깃집 김두한...?
다방마담 글쎄 그 청년이 어제 신마찌 홍등가에서 일본 주먹패들과 싸워서 우리 조선 여자를 구해줬대요.
고깃집 일본 주먹하고 싸워......?
다방마담 그렇다니깐요. 그것도 혼자 몸으로....
주위로 마담의 큰 소리를 듣고 상인들이 하나 둘 몰려든다.
상인1 그게 정말인가? 그 살벌하기로 소문난 유곽촌에서 일본 놈들하고 혼자서 싸웠단 말이야?
다방마담 그러니 대단한 거 아니유. 좌우간 어제 그 조선 여자를 우리 가게로 데려와서는 자기 주머니까지 털어 고향으로 보내 줬지 뭐예요.
고깃집 그런 일이 있었어? 허허... 누군지 대단하구만.. 마담 주둥이가 간지러울 만했구만...
상인2 헌데 일본 놈들이 그렇게 당하고 가만히 있을까?
다방마담 아... 몰라서 하는 소리유? 건달이야 주먹 세면 딴 말 못하는 거지. 아니꼬우면 다시 싸워 이기면 되는 거구.
고깃집 맞는 말이네. 일본 놈들을 두들겨 주었다니 내 어깨가 다 으쓱하는 걸. 우리 시장에 걸물이 하나 들어왔어.
다방마담 물건이다 뿐이겠어요. 우리 애들은 그 청년한테 홀딱 반해서 아주 오줌을 쌀 지경이라니까요..
상인들 폭소를 터트린다. 그 화제가 만발하는 모습에서....
# 15-2 인서트
승용차 한 대가 종로 거리에 들어선다. 차안에는 야쿠자 두 명과 미우라가 타고 있다.
# 16 우미관 외경
구마적 (E)아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오?
# 17 동 사무실
하야시의 비서 미우라가 꼿꼿한 자세로 서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구마적은 책망하듯 무섭게 부하들을 노려본다.
구마적 도대체 어떤 녀석이 그런....?
미우라 하야시 오야붕께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구마적 ....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내 직속부하는 아닌 것 같지만 종로의 오야붕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겠소.
미우라 구마적 오야붕과의 관계 때문에 저희 오야붕께서는 나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구마적 알았소. 그렇게 하리다. 헌데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는지 혹시 아는 것이 있소?
미우라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종로의 김두한이라는 자였다고 합니다.
구마적 김두한? 김두한이라 김두한....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떠오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분명히 종로에서 왔다고 했소?
미우라 그 자의 입으로 직접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구마적 (부하들에게) 너희들 중에 김두한이라고 아는 놈 있어?
부하들 ........(어리둥절)
뭉치 글쎄요.... 저희들은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제비 큰형님.... 그런 놈이 자기 이름을 솔직히 불었겠습니까?
구마적 어쨌거나 지금 당장 잡아와. 당장.... 내 요절을 내버리겠어.
부하들 예.
부하들이 밖으로 나간다. 분노한 구마적의 표정에서....
# 18 종로의 빵집
탁자 위로 빵이 가득 담긴 접시가 놓여진다. 양코는 금세 입이 헤 벌어지며 볼이 미어져라 빵을 집어먹는다. 두한은 미소 지으며 빵 하나를 집어 정진영에게 건넨다.
두한 진영아... 어서 너도 먹어.
정진영 응.. 천천히 먹을게..
두한 야 양코.... 누가 뺏어먹지 않으니까 천천히 먹어.
그러나 양코는 먹느라 정신이 없다.
정진영 참... 두한아 너 소식 들었냐?
두한 무슨 소식....?
정진영 오다가 들었는데,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에서 일등을 했대... 그것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해.
두한 올...림픽.....?
정진영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모여 운동시합을 하는 거야. 손기정 선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경기인 마라톤에서 우승을 한 거야.
두한 그래? 근데 마라톤은 또 뭐냐?
정진영 오래 뛰는 달리기 경기인데.. 아마 여기 종로에서 시구문까지 두어 번은 왔다갔다하는 거리쯤 될 거야..
두한 그렇게나 멀리? 이야 대단하구나.. 그런 경기에서 우리 조선 사람이 일등을 했단 말이지?
정진영 그래..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조선 사람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보여준 쾌거라구.
두한 진영이 너까지 이럴 정도면 정말 기쁜 일인 모양이구나.
정진영 물론이지...
양코 두한아... 빵 더 시켜도 돼?
정진영 양코.
두한 괜찮아.. (주인에게) 여기 빵 한 접시 더요.
양코가 갑자기 멍해지며 밖을 쳐다본다. 우미관 뭉치들이 분주하게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양코 무슨 일이 또 터졌나?
두한 .....(돌아본다)......?
정진영 두한아.... 너 최동열 아저씨한테 한 번 찾아가 보는 건 어때?
두한 갑자기 아저씨는 왜.....?
정진영 그렇게 계속 모르는 채 지낼 거야?
두한 진영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자 어서 빵이나 먹자.
두한은 빵 하나를 입안에 집어넣는다.
# 19 신문사
여전히 분주한 모습들이다. 그 한 쪽에서 최동열이 기사를 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때 문이 열리며 기자1이 사진 한 장을 들고 큰 소리를 치며 뛰어들어온다.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장면이 담긴 사진이다.
기자1 보세요, 보세요...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베를린에서 방금 도착한 사진입니다.
그 말에 기자들이 모두 우 일어나 그 쪽으로 모여든다. 국장도 펜을 놓고 다가간다. 손기정 사진이 클로즈업된다.
기자1 손기정입니다.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요 며칠간 조선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손기정 선수예요.
모두들 ....(감격적인)...
국장 참으로 장한 청년일세.. 손선수는 우리 조선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네. 조선 청년이야, 조선 청년....
기자3 헌데 국장님, 일장기가 눈에 거슬리네요.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달고 뛰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국장 그러게 말일세..
최동열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에 손기정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라 잃은 조선인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스포츠는 예외다. 내가 이번에 일등을 하면 전세계는 이 손기정이 조선인임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기자2 오 정말 그리 말했단 말인가? 달리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도 뜨거운 애국청년이었구만....
기자3 그래, 이 일장기가 너무 거슬려. 이걸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안 그렇습니까, 국장님?
국장 ............?
# 20 삼청동 골목
골목 한 귀퉁이에 모인 동네 사람들이 "손기정"과 "마라톤" "올림픽" 이야길 떠들썩하다.
사내1 손기정이가 마라톤에 우승을 했다네. 세계에서 일등을 한 거라네.
사내2 경사일세. 경사야. 조선 청년이 세계에서 일등을 하다니 경사가 아닌가? 오늘 경성에 막걸리께나 동이 나겠네 그려.
삯바느질 감을 들고 그 곁을 지나던 오씨도 흐뭇한 듯 웃고 있다.
# 21 조모의 집
툇마루에 앉아 다듬이질을 하고 있던 조모가 오씨가 들어오는 소리에 다듬이질을 멈춘다.
오씨 다녀왔습니다, 어머님.
조모 어서 오너라... 일감은 좀 있더냐?
오씨 예. 바느질 솜씨가 좋다며 일감을 많이들 내 주었습니다.
조모 그래서 그렇게 얼굴이 환해서 들어온 게로구나?
오씨 일감도 일감이지만... 오면서 또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모두들 그 이야기로 기뻐하는 걸 보는 저도 모르게...
조모 허허허. 그랬구나. 장한 일이지. 암 장한 일이구 말구. 나라 잃은 설움에 얼마나 이를 악물고 뛰었을꼬.... 그 젊은 청년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다 미어지는구나.
오씨 .........
조모 그 청년의 마음이 그러할진대 우리 두한이는 또 어떨고.... 우리 두한이는 말이다.
오씨 ..............
# 22 거리
두한이 갈림길에서 정진영, 양코와 함께 서있다.
양코 헤헤헤. 두한아 정말 오늘 잘 먹었다.
두한 배고플 땐 가끔씩 찾아와, 양코.
양코 정말 그래두 돼?
정진영 (양코를 툭 치며) 되긴 뭘 돼? 어서 가봐, 두한아.
두한 그럼 잘 가라.
정진영 그래.
정진영과 양코는 서로 티격태격 하며 사라진다. 두한이 멀어지는 그들을 보다가 돌아서려는데 멀리서 삼수가 부르며 달려온다.
김영태 무엇 때문에 두한이를 찾는진 몰라도 뭉치의 태도를 보아 뭔가 심상치가 않은 일인 건 분명합니다.
쌍칼 글세.. 도대체 무슨 일일까?
김무옥 ....(눈치를 보며) 쩌그 형님...
쌍칼 왜?
김무옥 혹시 그 일 때문이 아닌지 모르겄구만이라우.
쌍칼 그 일 때문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어?
김무옥 고것이.... 긍께.... 워디부터 말씀 드려야 헐지....
김영태 ...........?
쌍칼 임마, 속터지겠다. 영철이 너두 알고 있는 일이야?
문영철 예, 사실은 두한이가 어제 신마찌에 갔다가 그곳 패거리들을 모조리 두들겨 놓았습니다.
쌍칼 ........?
문영철 말 그대롭니다. 거기 오야붕은 물론, 신마찌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어 놓았답니다.
김영태 뭐야?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두한이 들어온다.
두한 부르셨습니다, 형님?
쌍칼 ..... 그래 이리 앉아 봐라.
두한 (자리에 앉으면)....
쌍칼 어제 신마찌에 갔었냐?
두한 예, 형님..
쌍칼 영철이랑 무옥이가 한 이야기가 다 사실이냐?
두한 (힐끗 그들을 보고) 예... 그렇습니다.
쌍칼 ..........
김영태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사고를 치고 다니나? 거기가 일본 애들 나와바린 거 몰라?
두한 신마찌도 조선 땅입니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태 뭐야?
문영철 두한인 조선인 여자를 구해내기 위해 싸웠습니다. 눈앞에서 쪽발이 놈들한테 질질 끌려오는 여자를 보고 어떻게 참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김영태 .........
쌍칼 그래서 적진에서 혼자 그 많은 놈들을 다 때려 뉘였다는 거야? 거기 오야붕까지...? 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두한 .............?
쌍칼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하하하.. 잘했다.. 이 쌍칼의 아우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지.. 불의를 보고 참는다면 그야말로 그건 사내가 아니지. 암.
김영태 형님....?
쌍칼 내가 두한이 너를 제대로 본 것 같구나.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다. (어깨를 툭 치며) 정말 잘했어.
김영태 하지만 형님... 일이 너무 어렵게 되었습니다. 신마찌는 하야시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미관에서 두한이를 찾는 것을 보면 일본 야쿠자들이 들고 일어선 듯 싶습니다.
쌍칼 (일어서며) 구마적 형님도 조선 사람이야. 자초지종을 들으면 뭐라 하지 않을 게야.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할 거 없어.
쌍칼이 모자를 쓰고 나가려는데 두한과 문영철, 김무옥들도 따라 일어선다.
쌍칼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
두한 저를 찾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쌍칼 됐어.. 니가 가면 괜히 일만 복잡해져..
두한 형님?
쌍칼 그렇게 해..(영태에게) 가지..
쌍칼은 김영태만 대동한 채 밖으로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는 두한의 표정에서..
# 24 종로 거리
쌍칼과 김영태가 시장통을 뒤로 한 채 걷고 있다.
김영태 왠지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두한이를 데려가는 것이 좋을 뻔했습니다.
쌍칼 무슨 소리야? 나더러 부하를 사지로 내몰라는 건가?
김영태 그런 건 아니고.. 쉽게 해결을 보려면 일단 구마적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형님..
쌍칼 영태 자네의 충성심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두한이를 내줄 수는 없어. 그 녀석이 보여준 용기와 의협심은 이 쌍칼에게 큰 감동을 주었네. 두한이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자면 내 가슴이 다 후련해진단 말이야. 그 녀석에게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아..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두한이야말로.... 진정한 오야붕 감이야.
김영태 ...........?
그들 그렇게 간다.
# 25 권번
설향이 대청마루에서 가야금을 연습하고 있다. 선생이 교정 해 주고 있다.
권번선생 가야금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 거라.... 특히나 산조는 사람의 애간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어. 다시 쳐보아.
설향 예...
설향이 다시 가야금을 켠다. 능숙하다. 권번 선생이 좋다는 듯 끄덕이는데 아이란이 중문을 열고 부리나케 뛰어들어오다가 권번 선생과 마주친다.
아이란 에그머니나..
권번선생 어허... 기생 년이 왜 이리 방정맞을꼬...(혀를 찾다)
지나쳐 가면... 아이란이 애교 있게 웃으며 설향에게 다가간다.
아이란 설향아, 설향아..
설향 왜 그래? 어머니한테 한 소리 듣고도 또 호들갑이야?
아이란 잠자코 얘기 들어봐.. 내가 호들갑 안 떨게 생겼는지..
설향 무슨 일인데..
아이란 니 서방님, 그러니까 두한씨가 말이야..
설향 ..........?
아이란 글쎄.. 하룻밤 사이에 종로의 명함을 크게 냈다지 뭐야..?
설향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란 어젯밤에 신마찌에서 일본 패들한테 끌려오는 여자를 구해줬나봐. 그리고 거기 건달패들을 다 혼내줬다는 거야.. 혼자서 말이야...
설향 두한씨는... 다치지는 않았대?
아이란 멀쩡하시댄다.. 창기들과 기녀들, 여급들 할 것 없이 벌써 소문이 쫙 퍼졌어. 누가 그런 용감한 일을 했는가 했더니 그게 두한씨였지 뭐니?
설향 ..........
# 26 우미관 사무실
구마적이 등을 돌리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뭉치 (들어와서) 쌍칼이 왔습니다, 큰형님..
구마적 들여보내.
뭉치 예.
뭉치 나가고 쌍칼과 김영태가 들어온다. 구마적은 애써 화를 누르며 천천히 돌아서 본다.
쌍칼 찾으셨습니까, 형님.
구마적 .....? 왜 너희들 뿐이야? 그 녀석은?
쌍칼 ...........
구마적 내가 분명 김두한이라는 놈을 데려 오라고 했을 텐데....
쌍칼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제가 좀 쉬라고 했습니다.
구마적 뭐야?
구마적의 우악스러운 손에 잡힌 재떨이가 쌍칼의 얼굴을 스치며 박살이 나버린다. 그러나 쌍칼은 미동도 없이 서있다.
구마적 그런 애송이 하나 때문에 이 구마적이 망신을 당했는데.... 그 놈의 오야붕이란 너까지 내 명령을 무시해?
쌍칼 앞뒤 사정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두한이한테 잘못이 없다는 것쯤은 큰형님께서도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칭찬을 해주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구마적 닥쳐. 지금 나하고 말장난을 하자는 거냐?
쌍칼 두한인 혼자의 몸으로 신마찌 패거리 모두를 상대했습니다. 같은 조선인으로서 이건 너무도 장한 일입니다. 형님께서 두한이를 감싸주셔야 할 일이란 말입니다.
구마적 (벌떡 일어나) 야 쌍칼....너 오늘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감히 나에게 훈계를 해.
김영태 (앞을 가로막으며) 고정하십시오, 큰형님.
구마적 비키지 못해!
구마적이 김영태의 뺨을 후려친다. 김영태가 휘청하며 중심을 잃는다. 그러나 가까스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쌍칼의 눈에서 불길이 인다.
구마적 쌍칼.. 너 똑똑히 들어. 이번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아. 김두한인가 뭔가 하는 그 자식을 데려오지 않으면 너는 물론이고 야시장 전체를 엎어 버리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김두한 대신 널 죽여버리겠단 말이다. 널 죽이겠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