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은 경허집 서문에서
‘문장마다 선禪이요, 구절마다 법法이어서
실로 기이한 문장이요 기이한 시’라고 높이 찬탄했다.
경허의 시는 450여 편이 전해지는데, 가히 이백과 두보에 견줄 만한 위대한
시불詩佛임을 느끼게 한다.
시심과 불심이 일치된 경허의 시를 통해 언어의 길이 끊어진 곳에서 피어오른 만다라에 취해도 좋다.
우연히 읊다
머리를 떨구며 언제나 졸고 있나니
조는 일밖에 별일이 없네
조는 일밖에 별일이 없으니
머리를 떨구며 언제나 졸고 있네
低頭常睡眠 睡外更無事
睡外更無事 低頭常睡眠
일없음이 오히려 일을 이룸이라
사립문 닫고 한낮에 조나니
산새들이 나의 고독 아는지
그림자 그림자가 창앞을 지나가네
無事猶成事 掩關白日眠
幽禽知我獨 影影過窓前
부처니 중생이니 내 모르니
평생을 그저 취한 듯 미친 듯 보내려네
때로는 일없이 한가로이 바라보니
먼 산은 구름밖에 층층이 푸르네
佛與衆生吾不識 年來宜作醉狂僧
有時無事閑眺望 遠山雲外碧層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모두 꿈 속의 일이로다
북망산 아래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인가
誰是孰非 夢中之事
北邙山下 誰爾誰我
홀연 코뚜레를 꿸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忽聞人語無鼻孔 頓覺三千是我家
六月 巖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
은선동에 노닐며
산은 사람과 더불어 아무 말이 없고
구름은 새를 따라 함께 날으네
물 흐르고 꽃 핀 곳
담담히 돌아감을 잊고자 하네
山與人無語 雲隨鳥共飛
水流花發處 淡淡欲忘歸
천장암에서 부른 노래
세속과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봄 햇살 닿는 곳마다 꽃 피지 않은 곳이 없네
누가 만일 성우의 일을 묻는다면
돌계집 마음속 겁 밖의 노래라 하리라
世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
傍人若問惺牛事 石女心中劫外歌
토굴가
세상의 모든 일이 꿈 속 아님이 없음을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짚고 병과 발우를 가지고 구름이 자욱한 숲 깊은 곳에 들어가니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샘물 소리 옥 구르는 듯하며
천길 노송에 백겹이나 등나무 덩굴 얽혔는데
두서너 칸 띳집을 짓고 뜻 맞는 벗과 함께
때로는 연하 낀 정취를 읊고 때로는 향 사르고 고요히 좌선하니
티끌세상의 번거로운 일 다시 없네
한마음 비고 영묘하여 모든 이치 환히 드러나니
곧 세상에 으뜸가는 사람이라
잔 속에는 산중 신선의 술이라 만취하고
천지 삼라만상을 한 법인으로 인가하며
그런 뒤에 재 머리 흙 얼굴로 향기로운 풀 언덕에 유희하니
한 가락 젓대 소리 라라리로다
영명당과 함께 불령으로 가는 도중에
무엇을 가리켜 거짓이다 참이다 하는가
참과 거짓 모두 참되지 못한 데서 왔네
안개 놀은 날리고 잎이 떨어져 가을 모습 조촐한데
옛 그대로 청산은 참을 대하고 있네
摘何爲妄摘何眞 眞妄由來總不眞
霞飛葉下秋容潔 依舊靑山對面眞
푸른 바다에 파도 소리 높음은 용이 지나간 뒤요
푸른 산에 주인이 없음은 학이 오기 전일세
하늘과 땅을 희롱하여 쥐고 해와 달에 뛰어놀며
용과 범을 산채로 잡고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네
碧海有聲龍去後 靑山無主鶴來前
戱把乾坤挑日月 生擒龍虎奮風雲
해인사 구광루에서
아름다운 장경각은 신선봉을 대했는데
지난 일 모두 한바탕 꿈일세
마침 하늘과 땅을 삼키고 토하는 나그네 있어
구광루 위에서 천산을 저울질하네
經閣對仙巒 往事無非一夢間
適有乾坤呑吐客 九光樓上秤千山
열반송
마음달이 외로이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心月孤圓 光呑萬像
光境俱忘 復是何物
첫댓글 너무나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날마다 좋은날 보내시길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