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해 출생으로 경남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4년 『실천문학』(5권)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에 나와 시집『바다가 보이는 교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처용의 도시』『경주 남산』『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을 펴냈다.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2001년)과 소월시문학상(2003년)을 수상했다. <시힘>동인, <나팔꽃>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오줌 마려워 잠 깼는데 아버지 어머니 열심히 사랑 나누고 계신다, 나는 큰 죄 지은 것처럼 가슴이 뛰고 쿵쾅쿵쾅 피가 끓어 벽으로 돌아누워 쿨쿨 잠든 척한다, 태어나 나의 첫 거짓말은 깊이 잠든 것처럼 들숨날숨 고른 숨소리 유지하는 것, 하지만 오줌 마려워 빳빳해진 일곱 살 미운 내 고추 감출 수가 없다
어머니 내가 잠 깬 것 처음부터 알고 계신다, 사랑이 끝나고 밤꽃 내음나는 어머니 내 고추 꺼내 요강에 오줌 누인다, 나는 귀찮은 듯 잠투정을 부린다, 태어나 나의 첫 연기는 잠자다 깨어난 것처럼 잠투정 부리는 것, 하지만 어머니 다 아신다, 어머니 몸에서 내 몸 만들어졌으니 어머니 부엌살림 낱낱이 알고 계시듯 내 몸 다 알고 계신다
파일 燃燈연등
이 저녁 어머니는 홀로 연등에 불 밝히고 계실 것이다
가난한 내 이름 석 자와 가족들의 이름 부르며
걸어가는 맨발맨발 환하게 빛나라고
사랑의 연등 하나 밝히며 절하고 계실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로 타는 파일 연등은
눈물로 피워 내는 어머니의 꽃
어머니의 연등으로 내 길이 열리고
나는 그 꽃길 밟고 여기까지 왔구나
눈을 감으면 차안과 피안 사이 빛나는 어머니의 연등
잠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어둔 저 세상의 사람들 환히 살아 돌아오는 이 저녁
파일 저녁에 내 몸 고요히 탄다
어머니의 감성돔
진해 어머니 감성돔 두 마리 보내셨다
아마 중앙시장 어물전에서 물 좋은 그 놈들 보시고
산골에 엎드려 시 쓰는 내 생각났을 것이다
크고 튼실한 놈들이라 값도 만만찮을 것인데
어머니 망설이지 않고
용돈 주머니 다 터셨을 것이다
마흔 중반을 살면서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어린 새끼다
집 떠난 지 스무 해가 지났어도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 새끼다
그 스무 해 혼자 헤엄 치며
어머니의 바다 멀리 떠나왔다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언제나 어머니의 손바닥 안이다
어머니 무엇 좋아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어머니의 밥상에는 무엇이 오르는지도 모르는
불효한 내 식탁으로 내일 아침
감성돔 구이가 오를 것이다
늘 혼자 드시는 어머니의 밥상으로
살찐 감성돔 되어 회향하고 싶은 밤
…어머니
어머니의 그륵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아구*
선생이 나를 아구라 불렀을 때
나는 사춘기였다
여드름 돋은 얼굴이 터져 버릴 듯 화끈거렸고
나는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진해아구찜 집 아들인 내가 보인 적의는
선생의 호명에 침묵하는 일뿐이었다
남편 잃은 어머니에게 아구는 생의 동반자였고
나에게는 달아나고 싶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때
제 뱃속 가득 먹이를 담고 잡혀온 아구는
어머니의 칼질에 토막이 나버렸지만
밤이면 내 꿈속으로 살아와
나는 한 마리 어린 생선이 되어
아구의 핏빛 뱃속에 갇혀 파닥거렸다
진해여중 그 계집아이도 나를 아구라 부를까 두려워
세상의 모든 아구와 함께
컴컴한 심해로 가라 앉아버리고 싶은
가난하고 막막한 사춘기였다
*바다 물고기인 '아귀'의 경상도 방언.
가덕 대구*
입이 큰 그 생선을 슬픔처럼 널던 날이 있었다.
어머니는 가덕 어디 깊은 바다에서 잡은 것이라 했다.
그런 날은 어머니는 밤새 아버지를 생각하시고,
조선무 풍덩풍덩 빚어 넣어 끓인 생선국물로 속을 푸시던
술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시고,
새벽 일찍부터 연탄아궁이 위에는 물이 끓어
어린 내 잠 속까지 바다 깊은 곳과
어머니 눈물의 밑바닥이 끓는 냄새가 났다.
나도 언제 한번 술이나 마셔볼까.
그런 못된 다짐을 하는 사이
한 번씩 폭설이 내려 생선들의 아픈 옆구리가 젖었고
다시 마르는 사이 봄이 오고 있었다.
달력에는 아버지의 기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해만 가덕도 인근에서 잡히는 대구. 요즘도 최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열 일곱 살의 바다
-어머니
비수처럼 날아드는 해안 경비대 차가운 서치라이트 불빛에 찔려 추락하던 열 일곱 어지러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 홀로 그물을 깁고 계셨다. 소금을 가마채 풀고 가는 해풍의 비린 힘살들이 칼날 문양 새긴 문고리를 흔들고 조금의 물살에 밀려 어업 한계선 밖으로 섬들이 흘러가는 소리 자욱하였다. 물오른 푸른 무같이 팽팽한 가슴을 가졌던, 서른 이후 청상이 된 어머니 순흥 안씨. 헝클어진 그물 같은 씨줄의 슬픔과 날줄의 눈물이 굳은 살 박힌 손끝에서 연연하게 다스려지고 있었다. 때로는 붉은 유행가에 얼굴 더욱 붉게 물들어 간장 종지처럼 작아진 가슴 안에 아버지가 돌아올 동백섬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진도 늙는다
잠시 왔다간 세상 사진 한 장 남기신 아버지
20대 후반 공군 시절 닫힌 격납고 배경으로
푸른 군복,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서 있는 아버지
어머니 몰래 한 20여 년 그 사진 숨겨두고 아버지를 추억한다
신기하다, 닮고 싶지 않았던 사진 속의 아버지를 내가 닮아가고
사진 속의 아버지는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하루하루 늙어간다
늙으신 어머니 그 곁에 나란히 서도 어울릴 듯
배경 풍경들 욕심 없이 늙어간다
신비한 시간의 힘이여
사진 속에서도 시간은 쉬엄쉬엄 흘러가
사진 밖의 세상과 사람과 함께 늙어간다
사진 속에 담긴 추억도 슬픔도 쭈글쭈글 김빠져간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옛 모습으로 남아 기다리지 않는다
잊고 살아온 사진을 찾아 펼쳐 보라
사진도 늙는다! 우리와 함께
몸·1
내 오래 전부터 네 터에 집 짓고 살았지만
네 속에서 내가 자라는 줄 모르고
내 밖에서 네가 자라는 줄만 알았다
뼈가 굵어지고 머리칼이 길어지며
네가 나를 키워 주는 세월 동안
나는 그 세월을 앞질러 너를 떠나고 싶었다
가난한 삶이 몸뚱이마저 부끄럽게 해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 늙어 버리고 싶었다
몸이여 나는 너를 버리고 싶었다
너를 버림으로 또 다른 나를 얻으려고 했지만
어리석도다, 네가 나를 버리는 줄 이제야 깨닫는다
네가 나를 버리는 날
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정든 집 잃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
홍시
양산 신평장 지나다 홍시장수 만났네
온전한 몸으로 늦가을에 당도한 감의 생애는
붉은 광채의 詩시처럼 눈부셨네
신평은 아버지 감꽃 같은 나이에 중학을 다니셨던 곳
그러나 아버지의 생 너무 짧아
붉게 익기도 전에 떨어져버린 풋감이었네
헤아려보니 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올해 甲年갑년
홍시를 좋아하실 연세, 드릴 곳 없는 홍시 몇 개 사며
감빛에 물들어 눈시울 자꾸 붉어졌네.
기다림에 대하여
기다림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늦은 퇴근길 107번 버스를 기다리며
빈 손바닥 가득 기다림의 시를 쓴다
들쥐들이, 무릇 식솔 거느린 모든 포유류들이
품안으로 제 자식들을 부르는 시간,
돌아가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부르고 싶다 어둠 저편의 길들이여
경화, 태백, 중초마을의 따스한 불빛들이여
어둠 저편의 길을 불러 깨워
먼 불빛 아래로 돌아가면, 아내는
더운 밥 냄새로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리
아이들은 멀리 있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으리
살아 있음이여, 살아 있음의 가슴 뛰는 기쁨이여
그곳에 내가 살아 있어
빈 손바닥 가득 기다림의 시를 쓴다
푸른 별로 돋아나는 그리운 이름들을 쓴다
봄이 오는 소리
곡우 오길 기다리며 연초록 작은 혀를 내미는
지리산 화개동 야생 작설들의 착한 소리
어머니 섬진강을 찾아 되돌아오는
은어들의 눈부신 비늘처럼 빛나는 소리
산과 강 사이 들판이 젖가슴 펼쳐
땅 속 어린것들에게 봄젖 물리는 건강한 소리
그리운 남쪽바다 봄도다리 뼛속 가득 새살 차고
새살 가득 새 뼈 돋는 맛있는 소리
저녁 밥상 곁으로 둘러앉은 우리 식구들
더운 밥숟갈 달그락거리는 정다운 소리
옛집 진해
내 삶은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지친 두 발 기진한 육신
허기진 비애가 하루를 마감할 때
돌아가 옛집 더운 아랫목에
굽은 허리 묻고 잠들고 싶다
진해시 여좌동 3가 844번지
굴다리 지나 다닥다닥 산 위까지
둥지 틀고 식솔 거느린 번지마다
날 저물면 저 빼곡한 불빛
내 영혼의 일부가 그 불빛 속에서 자랐다
먼 사람 그리웁듯 그리운 진해 옛집
지금도 내 이름의 우편물이 쌓이고
꽃밭에는 봄꽃 흐드러지겠다
사월이면 꽃 지고 연초록 새잎들 신생하겠다
내 영혼은 집 떠나 길 위에서 상처받고
삶에 등 배길 때마다
백열전구 불빛 환한 마루
저녁 밥상가로 둘러앉던 식구들처럼
더운 국에 밥 말아먹는 뜨거운 밥숟갈처럼
그리운 옛집 진해
木蓮목련
이사온 안방에 신혼시절 쓰던 은은한 목련꽃 같은 공단 솜이불 깔며 아내는 이제 여기에 뿌리내려 살자고 속삭인다
바람 같은 생에 뿌리 내려 살기 위해서 銀峴里은현리 마당에 목련나무 두 그루 심어놓고 아직은 먼 봄을 기다린다
겨울 새벽에
시인의 아내는 겨울에 눈이 밝아진다
봄 여름 가을에는 잘 보지 못했던
곳집이 비는 것이 눈에 환히 보이는 모양이다
새벽 추위에 우리는 함께 잠을 깨
아내는 사위여가는 겨우살이를 헤아리고
나는 시를 생각한다
시인의 가난은 추운 날을 골라서 찾아온다
보일러 기름도 추운 날 새벽을 골라 똑 떨어지듯이
지붕에 오르기
지붕에 오르면 못 친 곳을 골라 밟아야 한다. 양철지붕 위로 나를 불러 올리며 할아버지 말씀하셨다. 발 아래는 내 가벼운 유년의 발길에도 한 장 종이처럼 그냥 찢어져버릴 것 같은 녹슨 양철지붕, 저 위를 어떻게 걸어가나요, 두려움에 떨고 서있는 어린 손자를 위해 그렇게 일러주셨다. 아버지 떠나간 1970년,
녹슨 양철지붕 위에서 할아버지는 당신이 떠나간 뒤에 혼자 남을 나에게 혼자 걸어가야 할 세상의 길에 대해 깨우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새로 이주한 진해시 여좌동 산 번지, 양철지붕 아래는 일곱 평 반의 겨울바람 같은 남루와 그 바람에 빈 나뭇가지로 서서 밤마다 잠들지 못하며 흔들리던 우리 아홉 가족,
할아버지 가르쳐주신 못 길을 밟고 지붕의 끝에 오른 나는 즐거웠다. 눈 아래는 낮은 세상, 내게 높기만 했던 마을의 집과 담들이 엎드린 듯 낮게 낮게 펼쳐지고,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철길의 먼 끝까지 바라보며 더 높은 지붕으로, 지붕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나는 오르고 싶었는지 모른다.
병상에서 살아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아들아이의 손을 잡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 나는 침묵하고 만다. 지붕에 오르면 못 친 곳을 밟아야 한다. 지붕에 오르면 못 친 곳을 밟아야 한다. 아이에게 할아버지 말씀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아아, 나는 지붕의 길을 보지 못한 채 너무 높이 올라간 아이였다.
못이 박힌 곳에 양철과 지붕을 이어주는 세상의 길이 있었다, 못 친 곳만 밟고 오르면 녹슨 지붕의 끝에 닿을 수 있듯, 험한 곳에도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할아버지 나에게 가르쳐주셨지만, 무거운 삶의 무게로 높은 더 높은 지붕에 오르기만 꿈꾸었던 나는 여전히 유년의 지붕 끝에 불안하게 서 있었다.
아름다운 병
올해 85세의 우리 할머니 경주 이씨
순간 순간 삶이 끊어진다
짧은 낮잠에도 10년, 20년씩 시간은 끊어져 사라지고
그 시간의 끝을 따라 일찍 떠나간 아버지 할아버지
이승으로 살아 걸어오시고, 떠나간 사람들과 함께
할머니는 여전히 양산 고향집에 살고 계신다
그래서 할머니는 늘 공업 도시의 이 집이 새롭고
내일이면 시골 옛집으로 보내달라 야단이다
잠시 잠깐 옛날에서 현실로 돌아오실 때마다
할머니, 내가 왜 이러는 지,
자는 잠에 가야하는 데, 지고 있는 현실의 짐을 고통스러워하지만
이내 그 짐을 베고 누워 자신만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할머니
우리 모두 늙고 병든 할머니 곁에 근심스럽게 남겨두고
좋았던 시간 시간을 찾아 돌아가는 할머니, 할머니의 병
아름답기만 한,
불, 할머니가 밝히시는
길고 긴 생 다 사시고 나머지 여생, 자신의 냄새나는 작은 방 안에 갇혀 징역 사시는 우리 할머니, 어둠만 내리면 온전하지 못한 정신 한 줌도 되지 않는 육신 힘겹게 힘겹게 끌고 나와 빈집에 불 밝히신다. 아픈 다리로 기어, 기어서 혼신의 힘으로 스위치를 찾아 누르시는 할머니. 어두워서야 돌아오는 식구들을 위해 병든 할머니가 밝히는 一燈일등, 내 새끼 어둠에 길 잃지 말고 집 찾아오너라,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자신이 생의 마지막을 태워 밝히는 저 거룩한 할머니의 一燈일등!
세월의 몸
할머니 부러졌다 붙은 뼈의 통증으로
비올 것을 아셨다
살 속에 숨은, 볼 수도 없는 뼈의 미세한 떨림으로
하늘의 움직임을 주술사처럼 예언하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할머니의 몸은 일기예보
운동회나 소풍 전날의 설레는 밤이면
할머니 곁에 누워 내일의 날씨를 물었고
할머니의 예보는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 할머니 세상 떠나시고
떠나시며 그 몸 내게 물려주셨는지
이제는 내 몸이 하늘의 변화를 감지한다
지난밤 맑은 가을 하늘에 별들도 초롱초롱 빛났지만
아프고 난 몸의 한 곳이 심하게 땀에 젖어
날마다 새벽밥 먹고 학교 가는 딸아이에게, 지숙아
내일은 우산을 준비해야겠구나, 낮게 중얼거렸는데
세상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에
내가 놀라 새벽잠 깨었다
나와 함께 살아가지만 내가 다스릴 수 없는 몸이 왔으니
아문 상처 틈새를 비집고 새어나오는 주술을
나도 이제는 어찌할 수 없나보다
하늘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 흐려지거나 비가 오려면
칼 간 자리 욱신거리고 이내 땀에 젖는 세월이
내 몸에 자리하는 것을,
놋쇠뎐
우리 장인 金大燮김대섭씨, 올해 환갑의 삼팔 따라지. 막소주 한 잔 에도 쉽게 눈시울을 붉히며 두고 온 고향 멸악산과 예성강을 말씀하신다. 시인 사위와 대취하시는 날이면 '내래 강건군사학교 1기야' 조선 놋쇠 쟁쟁쟁 우는 한을 푸신다. 1987년.
내 고향은 황해도 서흥이지, 율리면 송월리. 새벽이면 스무 살 건강한 잠 속으로 싱싱히 굽이쳐오던 내 아버지 멸악산이며 흰 광목 빨래 소리 아득히 흘러가던 내 어머니 예성강이며, 그리운 부모형제 모두 그곳에 두고 혈혈단신 떠나온 죄로 하여 굽은 등 한쪽 기댈 수 없는 바람 치운 다락이나 개똥 쌓인 마루 밑을 놋쇠처럼 뒹군다. 놋쇠 같은, 조선 놋쇠 같은 내 인생 구석진 어둠 버려진 분단과 함께 뒹군다. 지금은 빛 바랜 삼팔 따라지의 쓸쓸한 그리움과 회한만 남아 밤마다 홀로 일어나 속절없이 베갯잇을 적시나니, 내 나이 육십, 그리운 그 땅에 누가 살아 있어 나를 기억해줄까. 이 나라 이 땅 위에 갈라져 슬프고 그리운 마음, 나누어져 억울하고 분한 마음 모두 내 몸에 담아 녹아 찌지직 뼈가 타고 살이 타들어 갈지라도 마음 하나 남아 징소리 꽹과리소리로 환생했으면, 앞산 뒷산 첩첩 막힌 봉봉들이 저절로 길을 열고 남북강산 남남북녀가 곱게 곱게 만나는 날, 황해도 서흥군 율리면 송월리 함정동 201번지 옛집을 찾아가는 우리 손주 기영이 손에 들린 징소리 꽹과리소리로 환생했으면, 얼쑤절쑤 캥마쿵쿵 내 목소리에 우리 아버지 멸악산이 달려나오고 우리 어머니 예성강이 버선발로 달려나와 반기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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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국
닭국을 끓이는 겨울 아침은 새벽부터 신이 났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러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며 아주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우리집에 아침잡수러 오시라데예, 닭국 사발통문을 돌리는 일은 어린 내 차지였다.
부엌에서 허연 김은 펑펑 솟아오르고 노란 닭기름이 구수하게 끓을 때 당숙모는 겨울 마당에 묻어둔 무를 꺼내와 가마솥 가득 빚어 넣었다. 닭 한 마리로 한 가마솥 끓여내던 당숙모의 닭국을 어른들은 배내댁 백국이라 불렀다.
푸짐한 무와 닭고기 몇 조각이 국그릇마다 평등하게 담겨 아침 밥상으로 오르고 닭국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어른들은 모여 즐거운 숟가락 소리를 내며 크고 작은 마을일들을 배부르도록 의논하셨다.
닭국 먹는 날은 당숙모는 내 국그릇에 계륵을 몰래 건져 넣어주어 눈 쌓인 앞산 천성산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코도 귀도 장갑이 없는 내 손도 하루종일 춥지 않았다. 누이만 데리고 도시에 살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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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마루 끝에 걸터앉은 아버지 말이 없었다. 저녁햇살에 길어진 감나무 그림자 그 곁에 눕고 댓돌 위에는 가을하늘처럼 맑은 옥색 고무신 한 켤레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어머니 낮은 목소리 사이 가끔씩 낯선 울음소리 흘러나와 안방 문풍지 적시고 툭툭 할머니의 타이르는 소리 무겁게 새어나왔다. 시나브로 어둠이 집구석구석 찾아왔지만 어느 누구도 불을 켜지 않았다. 이윽고 안방 문 열리고 조용히 밀리는 스란치마 밑으로 흰 버선코 잠시 돋았다 사라졌다. 나는 그 여자의 얼굴 한 번 보고 싶었지만 사마귀가 난 손이 자꾸만 부끄러워 고개 들 수 없었다. 그 여자의 옥색 고무신 잠시 아버지 곁에 멈추어서는 듯 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아버지 돌아앉아 말은 없었지만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견고한 어깨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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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
팔순을 넘기신 우리 할머니 경주 이씨와 칠순이 가까운 큰고모부는 의좋은 오누이 모습으로 도란도란 옛날 이야기 나누시네. 때는 봄날, 햇살은 까르르까르르 간지러운 웃음으로 콩기름 바른 방바닥 위를 환하게 미끄러져 나가고 백발 장모가 권하는 일배 일배에 취해 눈멀고 귀먹어 가는 사위는 아주 오랜 옛날도 어제처럼 가까워 흥이 나네.
-기억하시는교 빙모님요 막내 처제 낳고 제가 가물치 한 마리 사 가지고 찾아갔지요.
-하모 김서방 그 달이 윤삼월 참으로 큰 가물치였제.
마흔 고개 힘겹게 넘어 출산한 장모 문안 가던 젊은 서른 사위가 있었네. 가물치 한 마리 짚으로 꿰어들고 경남 양산군 하북면 삼감리로 걸어가는 키 큰 고모부의 모습 나도 보이네. 갓난아기 처제를 본 큰고모부 선한 눈가 웃음도 보이네. 금가루처럼 부서지는 두 분의 옛날 이야기 곁에 버릇없이 누운 나는 살아보지도 못한 그 먼 세월 어슬렁어슬렁 거슬러 올라가는 귀 큰 당나귀, 금줄 친 사립문 밖에서 백년손님 맏사위 멋쩍게 맞으며 신라 와당의 얼굴로 웃는 할아버지 젊은 웃음소리 도 나는 듣네. 아직도 살아 푸드덕거리는 가물치 소리 생생히 들려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