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6월 18일 (금) 맑고 더움
사랑하는 봉연아 ! 어제는 편지 답장 쓰고 소포 보낼 준비하느라 너무 늦어서 너의 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 감정 표현이 너무 미흡했구나. 늦게 영모 외삼촌이 와서 어머니랑 캔맥주 1캔 씩 마시며 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단다.
어젯밤에 우체통에 넣은 편지를 집배원이 오늘 수집해 가면 토요일 쯤 너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소포는 어머니가 우체국에서 빠른 소포로 부쳤는데, 내일이면 도착한다고 했다니 역시 토요일에 받게 되겠구나.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서해상에서의 교전사건이 3일째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재도발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낸 편지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쓴 것이라서, 사건 발생일인 6월 15일 후에 전군에 비상조치 "태프권 3, Watch"라는 것을 내려서 그동안 군인정신의 교육을 받았어도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다시 16일 자로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18일인 오늘 받았을지 아니면 내일 받게 될지....?
군인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총을 쐈다니 이제 진짜 군인이다. 아버지가 논산 훈련소에서 지급 받은 총은 M1(엠원)소총이었단다. 자대에 와서는 칼빈 M16(엠씩스틴)이었지만.... 소음과 진동이 굉장하고, 영점사격을 해서 가늠쇠 조정을 하고, 다시 정조준 사격을 해도 과녁을 명중하기가 쉽지 않았단다. 요령껏 오조준을 해서 사격을 하기도 했었지.
사격에서 불합격이면 군댓말로 “곡소리”나는 날이었지. PRI(피알아이)라는 교육을 잘 알지? 그야말로 피가 나고 아리고 아프고... 사격 예비훈련을 말하지.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기합이 있었지. 그 때를 생각하니 네가 지금 겪고 있을 사격훈련이 머리에 주마등처럼 스치고 가는구나. 모든 기합이 악의적인 것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정신적, 육체적 훈련이라는 걸 잊지 말거라. 자신을 단련시켜주는 교육이므로 고맙게 여겨야한다. 아버지도 그렇게 전반기 6주, 후반기 특수교육 8주를 받고 자대에 배치됐단다.
군인은 눈을 크게 뜨고 턱을 들고 어깨를 쫙 펴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보행시에는 큰 보폭으로 씩씩하고 늠름하게 걸어라 그리고 배짱을 키워라. 기분이 새로워 진단다. "I can do." 나는 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군대에서 2등은 없다, 오직 승리 뿐이다. 분대 별, 소대 별 대항 운동 시합도 있을 것이다. 안해본 것에 대해서도 무조건 도전해라. 승, 패는 단체의 결과이므로, 지는 경우라도 혼자가 아닌 단체기합이 있을테니 부담스러울 것도 없지 않느냐? 너의 편지 내용 중에서 아쉬운 게 있더구나. “퇴소식” 행사가 없다는 거 말이다. 아빠의 그 시절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퇴소식 시범을 보이기 위해 차출된 병력은 약 2주 전부터 훈련에 임해야 했다. 영모 외삼촌 때만해도 퇴소식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리고 이등병 계급장을 부모가 직접 달아 주었었지.
후반기 교육 위치가 홍천 쯤이면 좋겠다. 수송단이라고 해서 모두 운전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보직이던지간에 우선 지리적으로는 그곳보다 가까우니까 말이다. 3주차 교육을 받아보니 적응력도 생기고 군대란 조직생활에도 많이 익숙해졌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집에서는 입대하던 날 차안에서 아버지가 너에게 했던 약속, 집 문제 말이다. 최선을 다해서 제대를 하고 나오면 작더라도 너의 방이 따로 있는 집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겠다.
요즘 산에는 밤나무 꽃이 만개해서 밤꽃 향기가 바람 타고 은은하게 코끝을 파고든다. 오늘 새벽 일찍 출장을 갔다가 퇴근을 여느 때보다 일찍 했단다. 지금 시각은 저녁 식사 중일 것 같다. 부디 건강 조심하고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거라. 잠도 잘 자거라. 99. 6. 18. -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