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지식채널e '눈물의 룰라 1부'
EBS 지식채널e '눈물의 룰라 2부'
빈농의 8남매 중 일곱째로 출생.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 구두닦이를 하다가 금속공장에 취직. 노조에 가입해 노동운동가로서 삶을 시작.
철강노조위원장으로서 노동운동을 주도, 그 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 노동자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세 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마침내 2002년 대선에서 승리. 34대 대통령에 취임
2009년에 2016년 올림픽 유치 성공까지, 8년 동안 경제성장, 경제안정, 분배 개선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 성공. 퇴임 시 국민 지지도 87%.
“이제 거리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앞으로는 더 서민들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집권을 끝내고 2011년 새해부터 평민으로 돌아간 그. 브라질 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일제히 찬사를 보냈습니다.
[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 분석 ]
1.. 룰라 정부는 사회정책 항목들의 예산을 직접 지출 부문을 중심으로 대폭 증액했고, 빈곤 퇴치 운동과 가족 지원금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 가족들에게 일정액의 기초 생활비를 지급하고 미취학 연령 어린이 가족에게 자녀 취학을 전제로 소득을 지원하는 등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으로부터 수혜를 받은 주요 집단은 비공식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무토지 농민과 빈민층이었습니다.
2. 룰라 정부는 공적 부문 퇴직자의 연금 수령액을 사적 부문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고 연금 수령액 상한액 상한선을 낮추는 연금제도 개혁을 실시하여 노동자당 의원들과 공공 부문 노동자들에게서 거센 저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막대한 규모의 정부 부채와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절대다수는 연금제도 개혁에 동의했으며 CUT도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안을 수용했습니다.
[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 분석]
전체적으로 경제 정책에서는 룰라는 까르도주의 계승자로 평가받습니다.
1. 룰라 정부는 까르도주 정부가 추진하던 사유화 정책을 중단하고, 시장 개방을 조절하며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한편, 미국 중심의 중남미 경제통합을 거부하고 메르꼬수르 중심의 지역 경제 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등 개입주의 경제‧통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2. 노동자당은 창당 이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변혁적 정책들을 꾸준히 주창해 왔으며, 은행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 외채 지불 중지, 급진적 토지개혁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룰라 정부가 노동자당의 국민들과의 오랜 약속들 가운데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한 것은 토지개혁밖에 없습니다,
3. 2003년 임기를 시작한 룰라는 까르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던 '과격한 투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브라질을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더 깊고 더 양호하게 편입시키는 길을 선택합니다.
룰라는 월스트리트 출신 엔리케 메이렐레스를 중앙은행 총재로 기용하는가 하면, 외환·자본 시장의 개방 및 자유화를 더 심화시켰습니다. 개인이나 기업이 국내 은행에서 무제한으로 달러를 사서 해외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세율도 크게 낮췄습니다. 또한 임기 내내 금리 수준을 세계적으로 높은 10% 내외로 유지했습니다. 레알화 가치도 1999년 변동환율제 도입으로 크게 떨어진 뒤 줄곧 빠른 속도로 절상되었습니다. 외자 유치를 위해 국내 산업을 희생시켰던 까르도주 노선이 유연한 형태로 계속된 것입니다.
4. 까르도주와 가장 큰 차이는 룰라 임기동안 수출 실적(과 경상수지)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 무역흑자는 매년 100억~400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러나 수출 내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수출품이 주로 농업·광업 등 원자재 부문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레알화 가치는 까르도주 당시에 비해 떨어지고, 2003~2008년의 세계적 호황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수출 실적이 개선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중급이나 고급 기술이 필요한 제조업 상품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는, 일종의 '탈산업화' 현상이 진행 중입니다.
가이 버튼 교수 (런던 정경대학)는 2000년대 들어 브라질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3.2%로, 같은 브릭스(BRICs) 국가인 중국·인도(7~10%)보다 크게 낮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중국은 브라질과 반대로 저금리-통화 저평가 정책을 사용했기에 국내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브라질 경제는 삽시간에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5. 그러나 룰라의 임기 8년동안 2000만여명이 빈곤층에서 벗어나는 등 빈부격차가 빠르게 시정된 것은 사실입니다. 2006년 재집권 이후에는 4~5%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세계 경제위기에서 가장 빨리 탈출한 나라도 브라질입니다. 이같은 현상이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서 '경제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완한 덕분입니다. 먼저 '가족 수당'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가 있습니다.
6 인프라(사회간접시설) 투자를 크게 늘린 것도 룰라 정부의 공로입니다. 브라질은 한국과 반대로 인프라가 지나치게 부족한 나라립니다. 룰라는 2007년 '경제성장 가속화 프로그램(PAC)'을 개시합니다. 4년 동안 교통·에너지·위생·주거 따위 인프라에 5040억 레알(약 337조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개발 계획입니다. 이에 따라 룰라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매년 1% 정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룰라 집권 2기의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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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을 뛰어 넘는 대화와 소통 ]
그가 노동당 대표로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하원에서 노동자당의 의석은 18%밖에 안 돼 좌파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또, 그가 당선되고 좌파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외국자본이 브라질을 떠나고 증시가 곤두박질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좌우파를 뛰어넘는 유연한 경제, 외교정책을 구사했다고 합니다. 외채를 상환하고 긴축정책을 펴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 제일 중요한 것은 어린이 ]
가난한 노동자 가정의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룰라.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고 거리에서 구두를 닦고 땅콩과 사탕을 팔아야 했던 그. 그는 브라질의 어린이들이 자신의 과거의 삶을 반복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이와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제도가 ‘보우사 파밀리아’입니다.
참고 - 보우사 파밀리아 <일종의 기본소득>
보우사 파밀리아는 정부가 빈곤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는 대신 부모가 의무적으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제도입니다. 어린이 예방접종도 현금 지급의 조건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음식·의류 등 빈곤층의 생필품 부족을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어린이들의 학습권과 건강을 보호해서 인적 자본을 육성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어린이 1인당 22레알(약 1만5000원)을 지급하는데 3인(66레알)까지 지원이 가능합니다. 또한 극빈층에게는 월 68레알(약 4만6000원)을 추가 지급합니다. 룰라 집권 이전까지 하위 60%가 국민소득의 4%밖에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브라질에는 가구당 월소득이 50레알 이하인 지역도 많으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 가난의 대물림도 끊겠다.]
가끔 물질만능 주의 속에서 성장과 발달만 중시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가장 중요한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지도자라면 다른 것보다 사람 즉, 국민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룰라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단지 당선을 위한 공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룰라 집권 8년 동안 빈곤률이 30%에서 19%로 감소되었다고 합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8번째로 소득 불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였다고 합니다. 양극화가 극도로 심해 ‘벨린디아’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는 남부 지역은 벨기에만큼 잘 살지만 동북부는 인도(인디아)만큼 못 산다는 뜻이라고 하니 그 불평등이 짐작이 됩니다. 룰라는 임기동안 극빈곤층 인구수를 줄이고 중산층을 두텁게 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킨 “사람”을 생각하는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제도적으로만 서민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가난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던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틈만 나면 대통령궁을 나와 빈민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서민들과의 소통과 스킨십을 즐긴 가까운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빈곤층을 위해 최저임금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4년 동안 최저임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에게 공약은 공약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그는 집권 8년 동안 2002년 월 200레알이던 최저임금을 현재 510레알까지 올리는 등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서민을 위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부드러운 좌파' 룰라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장'
SBS | 하대석 | 입력 2011.01.01
< 앵커 > 부드러운 좌파 정책으로 브라질의 도약을 이끈 룰라 대통령이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습니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지지율 87%를 기록하며, 국민들의 박수를 받은 아름다운 퇴장이었습니다. 하대석 기자의 보도입니다. < 기자 > 퇴임을 앞두고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고향을 찾았습니다. 서민을 위한 좌파정책을 줄곧 펼치며 겪었던 고난의 과정을 설명하다 결국 눈물을 흘립니다. [ 룰라 다 실바/브라질 대통령 : 내가 실패했다면 그건 노동자들의 실패이자 빈민들의 실패였을 겁니다.] 시민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자랑스런 대통령의 퇴장을 아쉬워했습니다. 좌파 정권에 대한 국내외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임 기간 브라질을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바꿔놨습니다. 8년 만에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빈민들에게 식량을 무상 제공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파격적인 좌파 정책을 펴면서도 보수 성향의 인사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며 사회 통합을 이끌었습니다. 국민들은 어제(31일) 여론 조사에서 87%의 지지율을 나타내며 마지막까지 뜨거운 성원을 보냈습니다. 룰라의 뛰어난 업적은 그의 정책을 계승할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룰라는 우리 시간으로 오늘 저녁 취임하는 호세프 차기 대통령에 대한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당부했습니다. 하대석 bigst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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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정치인’인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65)이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울고 말았다. 7월21일 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방송 프로그램 <TV Record>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8년째 집권 중인 룰라 대통령의 임기는 올해가 마지막이고 3선 연임은 불가능하다.
룰라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떠나면 뭘 할지 아직 모르겠다”라고 고백하며 “브라질 이곳저곳을 가족과 함께 여행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룰라는 현 정부가 국내외에서 칭송받는 데 대해, 이 정부의 업적은 룰라 개인이 아니라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선반공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년을 회고하며 룰라는 인터뷰 도중 두 번 눈물을 흘렸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오른쪽 사진).룰라 집권 기간에 브라질 빈곤층은 2000만명이 줄었고, 실업률은 역사상 최소치에 근접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80%에 달하며, 일부 지지자는 개헌을 통한 연임을 요구한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인 바 있다. 2009년 10월, 다음다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가 선정되자 룰라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며 눈물을 흘렸다(왼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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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룰라 대통령, 지지율 80%라니…
한겨레 | 입력 2010.09.15
남미 독립 200년-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서
① 브라질 '룰라'에게 배우라
독재·부패 역사 청산하고, 분배-성장 두토끼 다 잡아…야 대선후보도 후계 자처 "역사적 인물 룰라와 세하, 경험 있는 두 지도자."
대선을 한달여 앞둔 브라질의 텔레비전 정치광고 내레이션이다. 이 광고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조제 세하 대통령 후보다. 야당 후보의 선거 캠페인에 집권 여당 대통령이 버젓이 등장한 것이다. 세하 후보는 아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단념하고 그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이번 선거 포스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역시 룰라다. 룰라 대통령은 과거 다섯 차례 대선에 나왔지만 이번엔 3선 금지에 묶여 출마하지 않는다. 다음달 3일로 예정된 대선을 한달 앞둔 이달 초 브라질 양대 도시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선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후보들 면면과 공약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고, 퇴임 4개월여를 남긴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선거 분위기를 지배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8년 임기를 마치고 퇴장하는 대통령의 지지율 80%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야당 후보조차 현 대통령의 정책 승계를 내세우는 것만큼 룰라의 성공을 대변하는 풍경도 없다. 세하 후보는 "내가 룰라의 정책을 지속시킬 적임자"라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여당인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후보의 절반께까지 떨어졌다. 너나없는 룰라 끌어들이기에 일간 < 이스타두 지 상파울루 > 가 보다 못해 "여당 후보가 있는데 그러는 것은 서커스 수준의 쇼"라고 비난할 정도다. 일부 여당 총선 후보들은 자신보다 룰라 대통령의 얼굴을 더 크게 부각시킨 포스터를 내걸고 있다. 룰라 대통령의 눈부신 성공은 브라질이라는 한 국가를 넘어 지도자들의 독재와 부패, 망명 등 부정적 유산으로 얼룩진 남미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의 인기를 '신성불가침' 수준으로 만든 요인은 견실한 경제 성장과 빈곤 해소, 그리고 국가 위상 높이기 등으로 요약된다. 1994, 98년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을 거푸 꺾은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전 대통령조차 "룰라가 다시 나선다면 아무도 그를 패배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세계 8위로 부상한 브라질의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7%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룰라 대통령 집권기인 2003~2008년 빈곤층은 43% 줄었고, 인구 1억9000여만명 중 빈곤층에 속하던 3200만명이 '신중산층'에 합류했다. 집권 첫해 12.3%였던 실업률은 6%대로 내려왔다. 수치뿐 아니라 경제의 탄력과 건전성도 크게 개선됐다. 브라질도 지난해 경기 침체(-0.18% 성장)를 겪었지만 주요국들 중 가장 먼저 침체의 그늘을 벗어났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브라질은 "가장 늦게 빠져들고, 가장 빨리 빠져나올 것"이라는 룰라 대통령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주변국들과 함께 채무국의 대명사이던 브라질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을 대는 채권국으로 탈바꿈했다. 남미 경제를 망치는 역병과도 같던 인플레이션 공포에서 해방된 것도 룰라 대통령이 점수를 딴 대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 확보를 추진하고, 이란 핵문제 중재에 적극 나서는 등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 대등한 반열에 서려는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행보 역시 브라질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마리아 에르미니아 타바리스 지아우메이다 상파울루대 국제관계연구소장은 "집권 노동자당이 대선에서 이기면 그것은 룰라의 개인적 승리와 다를 바 없다"며 "그는 서민들의 삶을 확실히 개선하는 정치를 필요로 하는 세계적 흐름을 탄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이념 집착않고 적대세력까지 포용 ‘화합 대통령’
한겨레 | 입력 2010.09.15
빈곤율 43% 감소 등 커다란 경제 성과 복지 적극 시행하며 산업 지원도 확대 수수한 이미지·품성 등 서민적 매력 커 [남미 독립 200년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서] 룰라 '성공비결'
올해는 1810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콜롬비아 등 남미 여러 나라가 스페인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20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세기 동안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지향해온 남미는, 특히 지난 10년간 좌파 지도자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각 나라의 성과는 서로 다른 리더십 아래서 평가가 엇갈린다. 남미 독립 200주년을 계기로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칠레 4개 나라의 '제2독립'을 향한 변화와 현실을 현지 취재를 통해 6회에 걸쳐 짚어본다. 남미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내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1970년대 말 파업투쟁으로 그를 전국적 인물로 키운 상파울루시 인근 상베르나르두를 지난 2일 찾아갔다. 오늘날 룰라 대통령을 만든 역정이 시작된 곳이다. 룰라 대통령은 이곳 금속노조 지도자에서 정당 지도자로, 대통령으로 성장해갔다. 올해 78살인 폴크스바겐 공장 퇴직자 줄리우 마리아누는 룰라 대통령과 함께 한 날들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금속노조 건물 뒤 선술집에서 룰라 대통령과 자주 술잔을 기울였다는 그는 "룰라는 교육은 못 받았어도 머리 회전이 빠르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다"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배운 것은 적어도 머리가 좋고, 달변이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10대 소녀 때 룰라 대통령과 파업 선동활동을 한 브랑카 파리야스는 "그는 한번 본 사람은 반드시 기억하고 다시 만나면 꼭 이름을 불렀다"며 "말을 참 잘해, 파업 현장에서 인기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물러나는 대통령의 전례없는 인기의 배경에 수수한 이미지와 품성도 한몫했다고 입을 모았다. 파리야스는 "룰라는 대통령이 된 뒤 금속노조를 여러 번 찾아오고, 옛 친구들과 연락하며 뿌리를 잊지 않았다"며 "출신 기반을 잊지 않고 우리를 위해 일한 게 큰 지지를 받는 이유 같다"고 말했다. 브라질 국민 일반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은 4년밖에 받지 못한 채 구두닦이를 하고, 공장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고, 첫번째 아내가 결핵에 걸렸으나 치료받지 못하고 숨진 일 등은 성공 신화를 더 빛나게 하는 소재로 쓰였다. 상파울루대 학생 캐서린 언글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북동부 출신이 대통령이 돼 서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말하는 방식과 행동 등 서민적 매력이 모두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빈곤율을 절반 가까이 떨어뜨린 룰라 대통령의 실적은 이런 평판과 겹쳐져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굳혔다. 2003년 1월 첫 각료회의에서 "(첫번째) 임기 말에는 모든 브라질인이 하루 세끼를 먹게 만들겠다"고 공언한 룰라 대통령은 곧 '기아 제로' 프로그램에 쓸 돈도 모자라다며 전투기 12대의 구매를 유보했다. 서민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제스처였다. 그렇다고 '반시장'으로 돌아서지도 않았다. 그는 과거 낙선한 세 차례 대선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난하며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막상 집권하고서는 복지 프로그램을 적극 시행하면서도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산업 지원책과 감세 정책도 함께 폈다. 전임 정권한테서는 "저주받은 유산"만 받았다면서도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정책을 유지해 인플레이션을 누르고, 역시 과거 정권이 만든 복지 프로그램들을 확대개편하는 길을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룰라 대통령은 더는 좌파가 아니라며 노동자당을 떠나는 이들도 나왔다. 그러나 또하나의 장기인 평이하면서도 능란한 화술로 비난을 비껴가는 노련함도 보여준다. 퇴임을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사회주의를 하기 전에 분배해 줄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나는 다중 이데올로기를 지닌 사람"이라며 친시장 정책을 옹호했다. 대표적 해방신학자로 룰라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고, 집권 초 대통령 고문을 지낸 프레이 베투는 "룰라 정권의 가장 큰 과오는 농토, 정치, 경제, 조세 등 어느 곳에서도 구조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투는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상대가 누구든 그의 입장을 경청하고 모두를 동등하게 대했으며, 전통적 적대세력까지 끌어안았다"며 "이런 능력이 거의 절대적인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견습공 때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던 룰라 대통령의 연설에 감화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세르지우 아파레시두 노브리 현 금속노조 위원장은 "룰라는 원래 '노동자당은 노동자당이고 브라질은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대국이라 혼자 통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닌 사람이다. 그가 변절했다는 것은 뭘 모르는 소리"라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의 타협적 성향은 "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모두 대화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국가정상"이라는 표현도 만들어냈다. 카르도주 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후벵스 히쿠페루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누구와도 화합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룰라 대통령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지능적인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상파울루·상베르나르두/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친서민-친기업 동시추구 룰라 ‘타협노선’ 지속될 것”
한겨레 | 입력 2010.09.15
타바리스 상파울루대 국제관계연구소장 인터뷰
남미의 역대 대통령 리더십을 연구해 온 마리아 에르미니아 타바리스 지아우메이다(사진) 상파울루대 국제관계연구소장은 "브라질에서도 임기 말 대통령의 인기 하락은 일반적인데, 80%의 지지도는 여론조사가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말했다. 타바리스 소장은 고질적 인플레이션의 기세를 꺾은 업적을 인정받는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도도 30%대에 머물렀다며, 룰라 대통령이 구가하는 인기는 앞으로도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임을 예견하게 하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룰라 대통령이 실용 또는 타협 노선을 택한 것은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타바리스 소장은 "여러 정당이 과반에 크게 못 미치는 의석을 지닌 의회 구조에서 다른 당들과 연합해 집권 블록을 형성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기 이념만 고집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타바리스 소장을 비롯한 대다수 브라질 내 전문가들은 카르도주와 룰라를 모두 범 중도파로 분류한다. 그는 "범 중도파가 16년 집권한 데 이어 당분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것은 온건 개혁이 대세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전·현 집권당인 사회민주당과 노동자당은 서로 최대 경쟁자이지만 중도지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서민에 호소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로서 남미 종속이론의 대가였던 카르도주 전 대통령이 집권 뒤에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면서 신자유주의자로 변질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친서민·친기업 정책을 함께 구사한 룰라 대통령과 본질적 차이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룰라 노선의 지속'은 필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심은 룰라 대통령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와 다시 정치일선에 나설지로 모아진다. 타바리스 소장은 "노동자당은 계파를 뛰어넘는 인물인 룰라 대통령을 계속 필요로 한다"며 "그가 2014년에 다시 대선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파울루/글·사진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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