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년 한국기독교문학회 신인작품 당선작(유영희 선)
- 고무신만 신고 다니던 그 시절, 서울에서 전학해온 아이의 빨간 털구두는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재미있게 읽으세요!-
(최균희 창작동화)
[빨간 털구두]
하얀 눈송이가 운동장 가득히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첫눈이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모두다 빙글거리는 웃음으로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일등으로 오는 현이, 난이, 육이 삼총사는 교실 출입문 앞에 서서 들어서는 아디들 하나하나를 가리크며 누구의 머리 위에 눈이 더 많이 쌓여있는지 점수를 매기며 깔깔거리고 있습니다.
햐얀눈은 펄펄 쉬지 않고 내립니다, 방금 들어선 남열이와 정환이는 어느새 책상 위에다 책보를 동당이 치고 운동장에서 깡충깡충 뛰고 다니고 있습니다.
교실 안에는 여기저기 책보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 칠판에 적혀 있는 아침 자습 문제들은 누구 한 사람 거들떠도 안 봅니다.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모두 운동자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닥치는대로 눈을 집어 서러 먼저 던지고, 편도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뭉치기를 하면서 강아지들처럼 좋아합니다. 눈 위에 발딱 드러누워 사진 헝클어질까 봐 일어나 지도 못하는 아이, 잎을 동그랗게 벌려 눈을 받아 먹는 아이 등 전부가 하나같이 신바람이 나 있으비다. 말괄량이 삼총사들도 둥글게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돌아가며 코빼기신 발자국으로 예븐 꽃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에 시작종이 울렸습니다.
아이들은 와아! 소리 지르며 제각기 자기를 교실을 향해 몰려 갑니다.
3학년은 운동장 서편에 있는 강당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교실과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칸막이를 한, 날로도 없는 교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지어 낸 그림과 글들로 뒷 벽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고, 미술 시간에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공작품들이 만물 상회처럼 아늑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윽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 왔습니다.
즐거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24번 이 훈!"
"안 왔어요"
"훈이가 오늘은 웬 일일까? 이제껏 지각이나 결석을 한 적이 없었는데, 누구 아는 사람 없나요?"
아이들은 모르겠다는 듯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때 마침, 출입문이 드륽 열리면서 한 손에 책가방을 다른 손에 빨간 털구두를 든 훈이가 인사를 꾸벅하면서 들어섰습니다.
아이들은 잠시 하하하 웃어대다가 모두 빨간 털구두에 시선을 모았습니다.
" 아이 참, 예쁘다 ! 구 신발 이리 좀 가져와바라야."
수진장이 영희가 소리쳤습니다.
" 왜 지각을 했지? 신은 신자에 내다 두고 들어와 앉아요."
훈이는 계면쩍은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 나가 신을 놓고는 제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언제나 재미있게 설명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로 오늘만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다른날 처럼 깊이 새겨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모두의 생각으 바같 하얀눈과 아가 훈이 손에 쥐어져 있던 빨간 털구두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끝종이 나기가 바쁘게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신장으로 몰려 나갔습니다.
"참말로 이쁘다. 그렇지 ?"
"이번에도 저그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왔나 보다. 훈이 녀석은 참 좋겠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러운 표정으로 훈이의 털구들르 힐끗힐끗 쳐다봅니다. 이 반에 있는 아이들은, 아니 전교생 거의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닙니다. 검정 고무신은 값도 사고 오래 신기 때문에 시골 어머니 아버지들은 으레 장날인면 읍에 나가 이 신을 사오는 것입니다.
가정 형편이 조금 나은 아이들은 색무늬가 있는 코빼기 고무신이나 중학교 언니들이 신는 검정 운동화를 신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훈이는 신등에 우주인이 그려져 있는 만화 고무신을 신고 와서 저희 아빠가 사온 거라며 자랑 했었는데, 오늘은 또 하얀눈이 처음 내리는 날 빨깐 털구두을 신고 나온 것입니다.
훈이는 이 반에서 공부도 썩 잘했지만 저희 아버지는 케이블카가 있고 집집마다 텔레비젼이 있다는 서울에서 큰 회사의 전무자리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꼭 시골 집에 내려 올 때면 훈이 식구들에게 한 아름씩의 선물을 가져돠 준답니다.
훈이 엄마는 훈이와 훈이 동생 들 그렇게 넷이서 여기에 살고 있지만, 겨울이 지나면 서울로 이사를 하겠다고 저번에 선생님과 이야기 하는 걸 반아이들은 호김심에 귀를 세워 들었습니다.
또한 훈이는 명랑하기도 하지만 해찰을 잘 하기로 이름이 나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훈에게 '가불이 참새'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 이 훈, 일어서요, 방금 선생님이 뭘 설명했지 ?"
그렇지만 선생님이 질문하기가 바쁘게 하나도 틀림없는 대답을 척척대곤 합니다. 해찰을 하면서도 어는 사이 들었는지 예습을 잘애왔는지 조금도 망설이자 않았습니다.
" 아이, 저 개구쟁이 !"
선생님도 훈이의 재치 있는 답변에는 빙긋이 웃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훈이는 귀염성 있는 얼굴에다 반아이들로부터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땡땡!
마지막 시간의 끝종이 울려습니다. 아이들은 수첩을 꺼내어 오늘의 숙제를 적고 나서 반장이 재영의 구령에 따라 인사를 나눈 뒤, 참새떼마냥 재재거리며 막 교실 밖으로 빠져 나갈 때입니다.
"선생님, 훈이 신발이 없어졌대요 !"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부리나케 뛰어 나가던 훈이가 울상이 되어 얼굴을 내밀였습니다.
" 아니, 신발이 없어진 다니 잘 들 찾아아봐요."
집으로 가려던 아이들도 놀란 얼굴로 멈춰 섰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요."
정호가 헐떡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자진해서 강당 주위를 한 바퀴 빙글 돌아 찾아보고 온 것 같습니다.
" 별 일이군, 신발 잃었단 애기도 올들어 첨음인 걸? 이렇게 추운날 다른반 아이들이 강당 근처에 올리는 만무하고-."
선생님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 저기 앞에 가는 아이들을 다시 들어오라고-. 빨리 빨리 !"
얼마 동안 뒤숭숭하던 교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자, 여기 봐요. 혹시 누가 훈이 신발을 신어 보고 깜빡 잊어 제자리에 갖다 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요? 아니면, 신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장난으로 감춰 놓고 미안해서 내놓지 못한 사람은 없는지요? 지금 웃으면서 가지고 나오면 퍽 좋겠는데-."
아이들을 빙 돌아보며 선생님은 싱글벙글 웃어 줍니다.
아이들은 모두 둘레 둘레할 뿐 말이 없습니다.
"그럼 시간을 주겠어요. 선생님이 교무실에 다녀올 때 까지 모두들 함께 알아보도록 하세요. 훈이는 밖에 나가 더 좀 찾아보고."
한참 있다가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도 아이들은 서로서로 나는 안 했다고 하며 꽁무니를 빼었습니다.
선생님은 약간 높은 소리로 애기를 해 봤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내 차분한 소리로 계속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나능로 한 일도 숨기고 알리지 않으면 나중에 큰죄가 되는 거에요. 아주 나쁜 사람이 되는 거지요. 정직하게 말하는 것도 아주 훌륭한 일이니까요."
그래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은 다른 방법을 한 가지 생각해 냅니다. 구절 갱지를 세 번 씩이나 접어 잘라서 아들에게 종이 한 장씩을 골고루 나누어 준 뒤, 연필을 꺼내어 이름을 쓰게 했습니다.
다음에는 모두 눈을 감게 하고 나서 분단 사이 사이를 돌아 온 뒤, 조용히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 그대로 눈을 감고 들어요. 선생님은 방금 여러분들이 가진 종이 위에 별을 세 개 씩 그려 놓았어요. 다음에는 여러분이 눈을 감은 채로 세 번 째에다 표시를 해야 됩니다. 알았죠? 그렇지만 눈을 떠선 절대로 안 되지요. 눈을 뜨는 사람은 선생님이 조사하고 있으니까요."
별안간 당하는 일에 모두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눈이 아프도록 고옥 감고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더듬거리며 종이로 찾아 짐작으로 표를 했습니다.
하지만 색종이 보다 작은 종이 위에 조그맣게 그려진 별을 찾아, 그것도 눈을 감은 체로 세 번째 별에다만 표시하라니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 된 사람들은 손을 올려 머리 위에 얹어요."
얼마 후에 다시 교실 안을 한 바퀴 돌아 종이를 다 거두고 난 선생님은
"그만 눈을 떠요, 모두들 고생했지요?"
빙그레 웃으며 거둔 종이를 이쪽 저쪽으로 갈라 놓았습니다
"옥이, 현이, 송자, 그리고 영희, 영만이, 또 정호와 승민이는 훈이와 함께 남도록 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가도 좋아요."
"야 ! 신난다. 빨리 가자."
한 시간 동안이나 숨막히게 갇혀 있던 아이들은 새장에서 풀려 나온 새들처럼 눈 쌓인 논둑길로 줄달음질하여 돌아갔습니다.
남은 아이들은 틀림없이 세째번에다 표를 했는데 이상하다는 듯이 선생님을 원망스레 쳐다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과 약속을 어기고 눈을 뜬 아이들이에요. 이 중에서 선생님한테 바르게 이야기하면 보내주고 아니면 늦게까지 남도록 하겠어요"
"빨리, 말해라. 감춘 사람은-."
저희들끼리도 서로서로 추궁을 했습니다.
"훈이는 그 신 누가 사다줬지?"
"아빠가요."
"얼마주고 샀는지 훈이는 몰라?"
"저 오백원이라고 한 것 같아요."
"알았어요. 오늘은 그냥 저기 수집해 놓은 헌신발에서 맞는 것으로 신고 가고 내일 다시 찾아보도록 하자꾸나."
훈이는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눈을 힐끔 흘겨 주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영희가 추운 듯이 몸을 움추렸습니다.
"정말 난 손 안댔어요. 선생님!"
"저도요, 저도."
현이가 어린양처럼 불평을 하자 다른 아이들도 울상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선생님은 괜히 이런 쓸 데 없는 방법으로 아이들한테 마음의 짐을 지어 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욱이 언제나 헬쓱한 얼굴로 말이 없는 승민이가 떨어진 양말 틈으로 나온 발가락을 감추느라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집으로들 가요. 여러분은 눈을 뜬 것 외에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훈이 신은 내일 더 찾아 보기로 할테니까요. 신발을 잘 간수하지 못한 훈이가 더 나쁘지. 자. 어서들 돌아가요."
큰 벌이라도 줄지 알았던 아이들은 선생님이 바로 보내주는 게 또 이상했습니다.
정말 자기들이 신을 감춘 사람이 되는 것처럼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 돌아갔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의 뒷 모습을 지켜보며 창문가에서 서서 쓸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음날도 신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은 진눈개비가 날리고 바람이 불어 몹씨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육성회 자모회장이라서 자주 학교에 나오곤 하는 훈이 엄마가 두터운 밍크오바에 여우 목도리를 두르고 의기양양하게 교실문을 두드렸습니다.
"엊그제 새로 사다 준 신발을 훈이가 잃고 왔기에 화가 나서-."
선생님과 인사도 나누기 전에 훈이 엄마는 신발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불찰로 인해서-."
"글세, 무슨 중이에다가 별을 그려서 조사한 게 있다면서요? 우리 옆집 영만이라도 걸렸다던데 그 아이들 좀 불러 주시겠어요?"
선생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히려 내가 죄를 만들었구나. 내가 아이들한테 더 큰 죄를 졌어-.)
선생님은 훈이 엄마를 조용히 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내가 직접 찾아 나설 테니 선생님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요. 나도 그 전에 교편 생활을 할 적에 경험이 있지요."
훈이 엄마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러세요. 훈이 엄마! 실은요. 어제 한 아이가 잘못을 빌었어요. 무척이나 털구두가 신고 싶었나 봐요. 어린 마음에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 애 엄마가 학교에 일부러 나와서 정말 죄송하다 하며 대신 용서를 빌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또 그 애가 신고 싶어서 그런 일까지 저질렀으니 자기가 그 신을 사겠다고 신발값을 내놓고 가더군요. 훈이 아버진 그래도 서울에 가실 기회가 많으니까 다시 새신을 사 신기면 어떨까 해서요."
"아니, 뭐라교요? 다시 사서 신기라니요?"
훈이 엄마의 높은 목소리를 들으며 선생님으로 교실로 들어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봉투에 넣었습니다.
선생님은 마음 속으로 일이 잘 되기를 빌었습니다.
"훈이 엄마, 제가 이렇게 용서를 빌지 않아요. 아이들의 일이니까 넓게 생각해 주셔야지요."
"그렇다해도 전 신을 찾아 가지고 가지 그까짓 돈을 받겠어요?"
"말씀 드렸잖아요. 훈이도 새맛으로, 또 그 애의 엄마도 오직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고 한 일이겠어요. 받아두세요."
훈이 엄마는 선생님이 쥐어 주는 봉투를 억지인 듯 받아 쥐었습니다.
훈이 엄마가 돌아가고 난 뒤 선생님은 아이들을 빙 한바퀴 둘러보고는 마음이 찡하니 아파옴을 느꼈습니다.
무척 천진스런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며칠이 지난 토요일. 여자 아이들은 교실에서, 남자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대청소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갑자기 "선생님, 선생님!"하며 남자아이들 한 떼가 헐레벌떡거리며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교실을 닦고 있던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게 어디서 나왔지?"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었습니다.
차츰 잊어 버려 가던 빨간 털구두였습니다. 머지가 뿌옇게 끼어 있습니다.
가까이 보니 신발 속에는 거미줄이 쳐 있고, 쥐똥도 몇 개 들어 있었습니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저 쪽에서 승민이가 부르지 않아요? 가보았더니 강당 밑 공기통 속에 이 구두가 나란히 들어 있었어요."
반장인 재영이가 씩씩 거리며 설명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선뜻 무엇인가를 느끼며 되물었습니다.
"승민이는 지금 어디 있지?"
"몰라요. 금방 저 쪽에 서 있었는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은 몽당비로 구두 속을 쓸어내고, 걸레로 깨끗이 닦은 다음, 훈이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승민이는 빨간 털구두가 나온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늘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승민이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승민이네 집은 문이 꼭 잠긴 채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집 같더라고 했습니다.
우울하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선생님, 승민이가 교문에서 들어오지도 않고 울며 서 있어요."
"학교가 파할 무렵인데 우체국에 심부름을 다녀온 옥이가 부끄러운 듯이 살짝 선생님 귀에 대고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님은 귀가 번쩍 트였습니다.
부랴부랴 뛰어 나간 선생님은 떨고 있는 승민이를 교무실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요새 승민이는 왜 결석을 했지? 눈물을 닦아요. 학교에 오면 바로 선생님한테 올 것이지, 교문 앞에서 떨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난롯가로 자리를 정하여 승민이를 앉힌 선생님은 부드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승민이 집에 무슨 일이 생겼었나?"
이윽고, 교실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던 승민이가 모기소리만하게 대답합니다.
"엄마가 집을 나가서 밥하느라구요."
"엄마가 집을 나가다니, 왜?"
선생님이 놀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노름을 해서 논이랑 밭이랑 다 팔았어요. 그래서 엄마와 아버지가 막 싸움을 하고-."
승민이의 복받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알았어요. 이제 보니 승민이가 퍽 고생을 했구만, 선생님은 그런 것도 모르고. 염려 말아요. 엄마는 곧 오실 거야. 선생님도 함께 찾아 볼 테니 너머 걱정하면 안 돼."
선생님은 승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지금껏 자신이 승민이에 대하여 너무 무심했지 않나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훈이 신도 저어-."
승민이는 말을 잊지 못하고 더 크게 흐느꼈습니다.
"괜찮아요. 그만 그쳐. 다른 선생님들이 보는데? 승민이는 정말 착한 아이에요. 지난번에 선생님이 링컨 대통령의 어렸을 적 일을 들려 준 일이 있는데, 승민이도 기억 나니?"
승민이는 대답 대신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용기를 내서 열심히 공부하는 거에요. 승민인 머리도 남달리 좋은 편인데, 뭘. 곧 엄마도 돌아오시게 되고 선생님이 승민이 아버지를 한 번 만나 뵙고 잘 말씀드리면 아빠도 다신 그런 일이 없을 거야.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부터는 학교에 잘 나와요."
승민이를 보내고 나서 선생님은 한참 동안이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창가를 왔다갔다 서성대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직 시작종이 치기 전인데, 훈이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훈이 엄마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선생님, 지난 번에는 정말 미안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선생님한테 면목이 없네요. 제가 너무 했지 뭐에요. 자요 받으세요. 그 때의 봉투."
"아니에요. 그건 왜 또 가져오셨어요?"
"훈이 신발이 나왔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님한테 감쪽같이 속았지 뭔가요. 절 그렇게 속여 놓구선-. 어쨌든 미안해요. 그리고 여기 저의 죄값으로 조그만 선물.
훈이 엄마는 무안함을 감추려는 듯이 하하하 웃었습니다.
"그럼. 전 가봐야겠어요."
훈이 엄마의 거치장스러운 오바깃이 교무실을 나서자 선생님은 훈이 엄마가 놓고 간 물건을 풀어 보았습니다.
조그많고 동그란 거울이 꽃종이에 싸여 있었습니다. 귀엽게 생긴 새 두 마리가 솜동우리 속에 들어 있는 예쁜 거울이였습니다.
선생님은 그 거울을 겨실에 가져다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칠판에다 커다란 글씨로 "마음이 보는 거울"이라 쓰고 난 뒤 아이들 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우리 교실에 귀여웁고 예쁘장한 새 거울이 걸렸어요. 여러분들은 저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복장을 단정히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기의 마음까지도 비쳐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언제나 반성하면서 새롭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거에요. 선생님 애기가 좀 어려운가요 ?"
선생님은 살짝 승민이 쪽을 바라보며 뜻있게 웃어 주고는 애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조그만 일이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 고쳐 나갈 줄 아는 습관을 길러 보자는 얘기지요. 그날 그날의 생활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후에 링컨 대통령처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수선장이 영희가 "고것 참 이쁘다 !"라고 소리칠 틈도 주지 않은 채, 선생님은 아침 일찍부터 새삼스레 링컨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갑자기 뛰어든 거울과 요사이 볼 수 없었던 선생님의 태도, 그리고 칠판에 적어 놓은 글씨들이 모두 낯설기만 해서 아이들은 멍ㅎ멍히 숨을 숙이고 앉아 듣고만 있었습니다.
어쨌든 오래만에 활짝 웃는 선생님의 얼굴이 무척 기분 좋아 보이니 아이들도 덩달아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할 이야기를 다 끝냈는지 선생님이 칠판 위의 글씨들을 한자 한자 지우고 나서 책을 펴들자 '까불이 참새'
훈이가 가만히 있지 않았읍니다.
"선생님! 우리들은 교실 뒤에 있는 커다란 거울이면 충분해요. 그 꼬마 거울은요 선생님이나 날마다 보시면서 더 예뻐지시라구요."
"하하하하!"
겉으론 생글거렸지만 속으론 어쩐 일일까 궁금증을 안고 있던 반 아이들은 모두 마음 놓고 크게 웃었읍니다.
"아휴, 우리 훈이 고마워요. 앞으론 빨간 털구두나 잘 간수하시라구요."
뒤이어 선생님이 훈이의 말솜씨를 빌어 놀려주자 아이들은 또 한바탕 소리내어 웃었읍니다. 선생님은 들었던 책을 다시 높고 이번에는 "착한 일을 생각하는 거울"이라고 칠판에 써 놓았습니다. 말괄량이 삼총사를 비롯한 반 아이들 전체가 싱글벙글한 마음이 되어 조그맣고 예쁜 거울 쪽을 자꾸자꾸 바라다 보았읍니다. 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오는 크리스마스를 기해서 불우한 승민이를 도와주는 일과 착한 일을 더 많이 하자고 약속 했읍니다. 창밖에는 탐스러운 함박눈이 계속해서 사뿐사뿐 내려오고 있었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