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바둑 놀이
글쓴이 : 윤 무
2023년 5월 23일
바둑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서울고 1학년 때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남일 짝궁과 심심 풀이로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올해로 64년째 내가 가장 즐기는 놀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최근 가장 반가운 친구와의 통화는 바로 바둑 두자는 전화이다.
바둑은 우선 재미있는 놀이이다. 무슨 놀이든지 계속하다 보면 싫증이 나게 되어있다. 똑 같은 패턴이 계속된다거나 실력차이가 나서 승패가 예상될 경우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나 바둑은 그렇지 않다. 4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바둑게임이 진행되었지만 똑 같은 게임을 찾을 수가 없다. 또 아마추어 게임에서는 각자의 실력에 따라 급수를 정해서 강자에게 핸디켑을 줌으로 해서 매번 게임의 승패를 예측할 수 없다. 매 게임이 새롭고 승패를 가름할 수 없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한 친구들과 계속 즐길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취미라고 생각되어진다.
취미로서 바둑이 으뜸인 것은 첫째 바둑은 골프나 낚시등과 같이 고가의 장비나 비용이 필요하지 않고 바둑판과 바둑돌만 있으면 족하다.
게임을 즐기는데 필요한 돈과 체력 측면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수담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다. 바둑을 즐기는 친구들은 대개가 온유한 성품이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기력 향상을 위해 머리를 써서 공부해야 함으로 노년에 올 수 있는 치매를 예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둑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인성과 덕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바둑 한판은 사람의 일생과 너무 닮은 점이 많아 많은 교훈을 여기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은 포석, 중반전투, 마무리로 끝이 나는데 사람의 일생도 태어나서 성년까지 공부하고 준비하는 청소년기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장년기 및 인생 마무리인 노년기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 포석이 잘 되어야 중간 전투와 마무리가 유리한 것과 같이 인생도 청소년기에 인격과 교양을 충실히 쌓아야만 장년기에 많은 업적을 쌓을 수 있고 노년기가 편안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바둑에 임하는 자세와 작전적 요령을 밝힌 열 가지 요결을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하면 첫째 승리를 너무 탐하면 바둑을 그르칠 수 있다.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이기는 수가 보인다. 둘째 자신의 약한 곳부터 보강한 다음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바둑의 이치이다. 셋째 소탐대실 하지 말라. 작은 돌은 버리고 큰 돌은 살리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상대방 돌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조화와 능률을 극대화 시킬 최적의 착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이 우선이며 자기 주장만 앞세우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한판을 두는 사이 우세와 열세 정세판단이 여러 번 교차 되는 게 통상인바 순간의 실수를 빨리 잊고 끈기를 갖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인생 살이 에서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마음으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자기의 능력에 맞춰 분수를 지킴으로서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것은 양보하고 큰 것을 취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며 항상 우물 안 개구리기가 되지 말고 주위환경 변화에 발맞춰 자신도 발전할 수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인생도 성공과 실패가 여러 번 교차 될 수 있는 바 일시 성공했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실패하드라도 오뚜기 같이 다시 일어서서 상황을 반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 바둑과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 대림엔지니어링 근무 시 당사는 필요한 반응기 화공장치를 일본 히타치 제작사에 발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히타치는 이 반응기를 제작해 본 경험이 있는 유일의 공장이었기에 가격 협상이 어려웠었다. 그리하여 본인이 직접 일본을 방문하여 가격을 협상하였으나 상대방은 요지 부동이었다. 그런데 길은 있었다. 영업담당 책임자가 바둑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저녁에 호텔에서 바둑을 한번 두자고 제의하니 좋다고 하였다. 마침 같은 급수의 바둑 실력이어서 밤 2시까지 바둑을 두면서 친교를 쌓았다. 다음 날 협상에서 발주가격을 당사 예산 범위 내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바둑친교도 한몫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진다.
모든 세상사가 명암이 있듯이 바둑의 이런 좋은 점이 있는가 하면 주의할 점도 많다. 바둑으로 도박을 해서는 않되고,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중독되면 심신이 피폐해질 수도 있다. 바둑은 한판에 60분 정도로 조절하고 실전에 임해서는 스포츠 정신으로 승패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미덕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둑놀이는 사람의 일생과 달리 한판의 바둑이 끝난 후 복기도 할 수 있고 또 시간이 있으면 새로운 한판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여유를 갖고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