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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리 서린 기운 담아 “지신제”를 올리다
600리…....
그 멀고도 험했던 여정.
땀과 눈물, 웃음과 울음, 환호와 탄식이 범벅으로 어우러져 이어졌던 길….
그 구비구비 서린 기운을 못 잊어 끝내는 다시 한강과 청계천,
그리고 더 멀리 이어진 길을 영원으로 잇고 싶은 우리들은 이렇게 다시 모였다.
비록 시작은 미미 하였으나 한 발 한 발 부르튼 발바닥으로 딛고 밟았던
600리 길이 얼마나 장엄 하였는지 뇌세포에 깊이 각인 되었기에,
때와 장소를 옮겨서 또 다시 걷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다시 모일 수 밖에 없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노소도 불문한 채, 강릉 제일고라는 명패 아래에서…..
2014년 동계 올림픽 평창 유치를 기원하는 600리 대 장정을 작년 10월에 성공리에 완주한 후,
완주자들과 구간구간 참여자들을 주축으로 하여 작년 12월에 처음 발족한
“SG 242 워킹 클럽”은 매월 한번씩 한강을 중심으로 수도권 근교로 길을 바꾸어 가며
도보 행군을 하는데, 이번 3월 4일 행군에는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까지 지내고 난
다음이라 행군 중에 “지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더구나 당일은 정월 대보름 날이니 금상첨화인 셈이다.
지난 달 행사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치 못했고, 이번에도 다른 일정이 선약으로
잡혀 있었는데, 행사를 알리는 후배 박 총무의 추상 같은 문자 메시지가 무거운 중압감으로
나를 압박한다. 어떡하면 좋지….? 잠시 고민... 그러나 고민은 짧을수록 좋다.
선택은 600리….!
그 길이 어떤 길인가? 결코, 아무나 갈수 있는 길이 아니었지 않은가!
2007년 3월 4일 아침 9시 종각 역 5번 출구.
우리 몇 사람은 시간이 촉박하여 바로 출발 지점인 청계 광장으로 먼저 갔는데,
바로 도착한, 종각 역에서 출발한 본대와 합류 하였다.
40명 가까운 선배님, 후배님, 선후배 사모님, 그리고 동기들…. 대 부대다.
날씨는 약간 흐렸는데, 오후엔 30mm에서 70mm까지 많은 비가 쏟아 진다는
예보가 있었다니 조금은 걱정이다. 요즘 통 TV 시청을 못하는 바람에 우산이나 비옷 조차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러나 600리 길에, 그까이꺼~ 뭐~ 가랑비가 대수였던가?
출발 하기 전 이 범욱 회장님의 격려 말씀이 있었다.
많은 인원이 참석 하였으니, 과시 회장님의 표정도 여간 흐믓해 뵈지 않는다.
환갑이 한참 지나신 노구에도 불구하고 7박 8일에 걸쳐 600리 길을 완주 하셨고,
이번 코스 또한 박 총무와 같이 직접 답사하신 노익장,
아니, 누구보다 싱싱(!)한 “젊은 엉아” 이시다! (선배님! 죄송 합니다^^)
출발 전 달팽이 탑 앞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 드디어 오늘의
대 장정을 시작한다. 18기 선배님부터 45기 후배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문 사모님들까지
참석 하셨으니 참으로 각계 각층을 망라한 대단한 행렬이다.
나는 작년 9월 중순에 중랑천까지 왕복해 보았는데, 처음 걷는 분들이 있으신지 청계천에
물고기가 사느냐고 묻는다. 포장 콘크리트 아래로 구정물이 흘렀던 냇물이 이제는 물고기
뿐만 아니라 철새까지 날아 오는 환경 생태 공원으로 변했으니 과연 우리 선조들은 선견
지명이 대단하셨던 듯 싶다. 600년 후에 당신의 후손들이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게 할 것을
예견 하시고 "청계천(淸溪川)"이라 이름 하신 것은 아닐까?
아침이라 우리 일행 외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때로는 외국 관광객으로 뵈는 분들이 기념 촬영도 하고 신기해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청계천은 구정물이 흐르는 수질 오염도 문제였지만, 수로에 들어 찬
가스 때문에 언제 폭발 할지 모르는 거대한 시한 폭탄이었다니, 그 가공할 공포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는 도심 한 가운데를 맑은 물이 흐르고 시가지 주변의 한 여름 대낮의
온도를 4~5도나 낮추었다니 그 경제적 효과는 실로 천문학적인 수치일 것이다.
많은 난제가 있었음에도 청계천 복구 건설에 성공한 전임 시장님의 뚝심이야 말로 어떤
정치색을 떠나서라도 감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비교적 선두에서 길을 잡는데 너무 빨리 간다고 아우성 들이다.
빨라도 탈, 늦어도 탈이니, 하향 평준화가 평화로 가는 길이다.
모전교, 광통교, 광교, 장통교, 삼일교, 수표교, 관수교, 세운교를 지나는데 다 사연이 있는
다리 이름들이다. “패션원조”라는 건물 간판이 눈에 익은 평화 시장 건물이 반갑다.
청계천으로 하여 한층 업-그레이드 된 주변 풍광이다. 청계천 내벽에는 정조 대왕의
능행 행차도 라든지 초등학생의 그림들을 수백개 모아 놓은 도자기 타일 벽화도 그 나름대로의
개성을 뽐낸다.
아홉 시 반에 출발을 했는데, 1시간 못 미처 걷다가 벤치 있는 곳에서 반주를 나누며
휴식 시간을 갖는다.
왼쪽으로 이어지던 길은 초지 보호 구역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내를 건너는 길이 이어진다.
각기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어 길을 가는데, 하늘이 수상하여 약간의 비를 뿌리기 시작 할
즈음엔 모두의 발걸음이 자연 빨라질 수 밖에 없다. 간간이 기념 촬영도 하면서…..
자연 생리 현상은 길 위쪽 도로변에 있는 화장실을 자신이 알아서 짬짬이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청계천이 끝나는 마지막 다리 고산자교를 지나고 조금 더 가자 본격적으로 가랑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2마장교의 교각 아래에서 우선 비를 피하는데, 누군가 여기가 자리도 넓고 비도 피할 수 있으니
“지신제”는 여기서 지내자고 한다. 그러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나라 일도 우리처럼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으면 을매나 좋을꼬~?………)
애초엔 오늘 도보 행군의 끝 지점인 뚝섬 서울 숲 부근 강변에서 지내기로 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오늘은 여기가 안성맞춤일 것 같다.
그래서 청계천 시내 쪽으로 방향을 향하고, 최 재무가 개인적으로 모두 준비한 제물을
진설 한다. 평소엔 덜렁덜렁한 선머슴 같더니만, 오늘 제물 준비는 어찌 이리도 꼼꼼한고?
쇠고기 산적에 어물찜(조기, 가오리 등등) 홍동백서 과일 준비가 과수원이다.
진설을 모두 끝낸 후, 이 범욱 회장님께서 먼저 토지 신에게 고하는 제를 올리고,
최 정규, 박 종황 부회장님 순으로 차례로 돌아 가며 절 값을 올리고,
한해 우리 워킹 클럽의 안녕 무사한 도보 행군을 기원한다. 인원이 많은 기수는 단체로
합동 3배를 올리고 나서, 우리는 모두 부복한 채 청아한 목소리로 지신에게 고하는 박 창기
총무님의 축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가슴에 새긴다.
(서울 동창 산악회 홈피 “SG 242 워킹 클럽” 별첨 “축문” 참조)
이렇게 “지신제”를 모두 지내고 난 후, 서로 권커니 자커니 음복주부터 나눈다.
그러나 인원이 많으니 술은 금방 동이 난다. 그러나 아쉬워할 때 쯤이면 36기 최 인수
후배가 마술사처럼 막걸리가 가득 든 비닐 봉투를 조달 한다.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선 누군가 꼭 자청하여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늘의 행군을 위하여 미리 시간 내어 답사한 회장님과 총무의 노고가 그러하고,
사비(私費)로 이 많은 제물을 준비한 재무의 치밀함이 그러하며, 또 제물 가방을 끌고
먼 거리를 오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김 남일 후배의 뚝심이 그러하지 않은가!
45기 막내라는 단 하나의 원죄 때문에….!
(두루두루 수고가 많으셨구랴~ 지켜 보신 지신님도 흐믓해 하셨으리라~~!)
잠시 입이 즐겁던 시간을 접고 다시 출발, 비를 맞으며 중랑천으로 이어진 길을 걷는데,
나는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어서 그냥 비를 맞으며 걷는다.
이제는 30기 동창회 박 종문 총무의 27년에 걸친 순애보 강의를 들으며 지루함을 달랜다.
산상(山上) 성교육 명 강의로 줌마들의 우상, 문사마가 된지 이미 오래다.
(30기 산악회 산행에서만 들을 수 있음)
특히 여성 대원들은 아련한 향수에 젖어 드는지 동화 같은 순애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워낙 출중한 저명 인사 인지라, 순애보가 실화인지 창작 인지는 본인만 아는 진실 게임이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살곶이 다리에서 단체로 기념 촬영을 한다.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정겨운 돌다리이다.
이제부터는 중랑천을 따라 걷는다. 옛날엔 악취로 명성이 자자 했던 중랑천이 이제는
낚시꾼들의 쉼터로 변했으니 환경의 정화란 물리적 화학적으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혼자 운동을 하던 뚝섬 산다는 아줌씨는 우리 옆을 따라 나란히 걸으면서
관심을 보이는데, 청계 광장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더니 기절 할 듯이 놀랜다.
대 선배님들이 구비구비 강원도 험한 600리 길을 걸었다고 하면 아마도 졸도 하겠지….?
용비교 구름다리를 건너니 한강과 만나는 곳이고 성수 대교를 지나면서 한갓진 곳에서
마지막 떨이주를 나눈다.
12월과 1월에 성산대교에서부터 20km를 걸으면서 늘 쉬던 자리이다.
나도 비장해 둔 술과 딸랑 잔을 꺼내고 최 만순 후배는 버너 꺼내서 기막힌 찌개 안주를
제공 한다. 선배님부터 돌아 가며 여러 잔을 권하니, 선배와 후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정 깊은 자리이다. 각자의 주류 창고 재고가 바닥이 난 다음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지막 행군을 시작한다. 비가 뿌리고 바람도 강하게 부니 우산은 그대로 뒤집히고 만다.
한강 자연 학습장까지 가야 하니 짧은 거리가 결코 아니다.
선두에서 속도를 더하니 날씨가 궂은 탓인지 시원치 않은 무릎이 조금은 소식을 보내 온다.
드디어 궂은 날씨 속에서 시작한 대 장정이 끝나는 종착점에 닿았다.
자양동 버스 종점, “버섯 마을”, 우리의 뒤풀이 장소이다.
시간 차로 선배님과 후배들이 도착하여 이 회장님의 인사 말씀이 있고, 박 총무님이 초안한
회칙에 대한 만장일치의 추인이 있었다. 부회장님을 필두로 의미 있는 건배 제의가 연이어
졌는데, 특히 이번 행군엔 600리를 완주한 철녀(鐵女) 3인방이 처음으로 모두 참석 하여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바로 20기 김 형남 선배 사모님 공영옥 여사, 30기 동기
백 옥남 동문, 32기 차 금용 후배 부인 정 미자 여사 이시다. 대단한 여장부들이다.
그리고 박 종황 부회장님과 최 만순 후배의 금일봉 찬조가 있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넉넉한 마음을 베푸는 흑기사가 있어서 우리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 지는 것이 아니랴!
뒤이어 흥겨운 가운데, 처음 나오신 분들의 인사 소개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 “SG 242 워킹 클럽”의
충만한 저녁 만찬 시간이 깊어 가고 있었는데….
언제나 뒤풀이 자리는 쉽게 마무리 하기가 어려운 법,
그것도 술잔이 오고 가는 자리야 더욱 미련이 남는 법이지….
각자 기수 별로 알아서 2차 연장전을 가지라는 박 총무의 최후 통첩에~,
우리 30기도 별수 없이 자리를 옮겨서 길 건너 호프 집에 둥지를 틀었겠다.
다시 기분 좋게 권커니 자커니, 무한대로 제공 되는 보리 거품..........
그런데 이게 어인 변고인가?
모처럼 함께 합석 했던 20기 최 종일 선배님께서 먼저 일어 서시면서 그대로 실탄을 쏘셨으니,
이 결례를 어이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나로선, 선배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뵙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데….
언젠가는 이 원쑤(?) 갚을 날도 있을 것이라 다짐해 봅니다. 썬배님!
아~ 결코 쩨쩨 하지 않으신 우리 제일고의 하늘 같은 선배님들!
그것이 또한 600리에 구비구비 서린 청정한 기운이고,
“SG 242 워킹 클럽”의 싹수 있는 미래가 아니랴~!
(함께 하셨던 선배님, 후배님, 사모님,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동기들,
비 내리는 궂은 강변 길에 정말 수고 만땅 하셨습니다.) 끝.
첫댓글. 아저씨 글읽느냐고 시간가는줄모르겠네요. 지금시간이새벽 2시41분. 좌우지간 재미나게 잘쓰쎴우. 우리 승영이 아저씨도 물건은 물건이야요. 내가 강릉제일고를 나오기를 참잘했지요. 어찌 이런 귀한 친구를 만날수있었을까요. 정말로 영광이로구만요. 승영이 친구 화이팅 화이팅 .
잘읽고 갑니다.
항상 푸짐한 문장의 매력에 읽는시간이 순식간이요~ 항상 건강들하시고, 4 월 만우절에 다시만납시다.~~.
멋진 문체에 한눈에 보일듯 그날의 사실을 생생하게 생각케해주셔 고맙습니다. 또한 이자리를 빌어 하나 빠짐없이 제수를 정성들여 준비하신 최금자 선배님과, 우리 모두 하나임을 인식하는 깃발제작에 애를 쓴 김남일 후배, 그리고 항상 뭉치돈 쓱쓱 스폰하는 최만순 선배님 고맙습니다. 아참! 박종황 부회장님이 "매월 워킹은 20Km정도는 돼야한다. 왜냐하면 20Km×12개월=240Km 즉 SG242와 일치한다." "맞습니다. 그렇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