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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 14-19> 창조 넷째 날,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신년을 주신 하나님의 뜻, 유월절과 나팔절
1. <신년이 주어진 이유는 우리들에게는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 은혜의 기간과 긍휼의 기간>
우리들이 매년 신년을 맞이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해에 돌아가셔서 우리가 맞이하는 2023년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축구황제 펠레도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신년을 맞이하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2023년이라는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또 다른 새해를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금년이라는 기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말입니다. 금년을 살게 하신 이유 말입니다.
이 질문을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저는 이 질문을 가지고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눅 13:6-9절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눅 13:6-9절을 보면,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에게서 삼 년동안 열매를 얻고자 했으나 얻지 못하자 주인이 포도원지기에게 땅만 버릴 수 없으니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포도원지기가 “금년 (후토스 호 에토스, 이번 년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열매를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도 “금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이 주어진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왜, 그들에게 금년이 추가로 주어진 것입니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열매를 얻고자 함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 심겨져 있으나 그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삼 년이나 복음을 전했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택한 백성들이므로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없는 자들입니다.
▶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동안 열매를 맺지 못한 그들에게도 “금년”이라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찍어버림을 당하지 않고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것이므로 “긍휼의 기간”인 것입니다. 긍 휼의 기간이 포도원지기인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심겨져야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기간 까지 자라야 합니다. 나무에 따라서 이 기간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기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저는 이 기간을 “은혜의 기간”이라 봅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했볕도 주시고 비도 주시고 두루 파서 거름을 주시는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의 은혜를 주십니다.
이 은혜의 기간이 지났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뿌리에 도끼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제 도끼에 찍혀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중보로 다시 그들에게 “금년”이라는 기간이 주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기간을 “긍휼의 기간”이라 봅니다.
왜냐하면 덤으로 추가로 사는 인생이니까요. 긍휼의 기간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기간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 두루 파고 거름을 주시는 돌보심과 공급을 하십니다.
▶ 우리는 지금 어느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은혜의 기간입니까? 긍휼의 기간을 살고 계십니까? 경고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이 긍휼의 기간마저 지나면 긍휼이 없는 심판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도끼가 뿌리에 놓여 찍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고 다음 신년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 세례요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 3:8-10)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들에게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곧 찍혀 불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금년이 주어진 것은 가장 먼저 회개의 열매,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중심으로 살고 육신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쨌던 금면에는 이미 구원을 얻은 자는 더 거룩함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역을 하고, 여전히 예수님을 마음 중심 가운데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고 자기가 주인 되어 있는 사람들은 회개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2. <신년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창조시부터 지금까지 새해가 어김없이 다가오고 앞으로도 종말까지 어김없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그것들이 말씀대로 운행되기 때문에 어김없이 신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창세기 1:14-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셔서 인간들에게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다양한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이들을 통해서 어김없이 사계절이 돌아옵니다. 새날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새해가 어김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이 시간과 계절속에 속에 살고 있으며 태양의 빛과 온도, 지구의 공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분들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태양을 만드시고 그리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인간이 살 수 없습니다. 창조의 순서와 내용을 보면, 첫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만드신 모든 것이 마지막 날에 창조하신 인간을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신 것만 보아도 창조의 중심이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짐승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달과 해를 포함하여 모든 우주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중심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창조 자체가 너무나 분명하게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창조하실 때만 사랑하고 그 이후에는 아닌가요? 아닙니다. 종말이 오는 그날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종말의 그날까지 질서있게 조화롭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명령하신 그대로 운행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 만이 질서를 파괴하고 있지만 다른 피조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운행되고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 우주까지 고려하지 않더라도 우리 태양계 특히 해와 달을 보더라도 그들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서 그들을 붙드시고 운행하고 계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표현했습니다(히 1:3). 만물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붙들고 계신다는 것은 그것들을 유지 보존하고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신년을 맞이한 것입니다.
▶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는 태양과 달이 제 멋대로 운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가 더 멀어지거나 더 가까워지면, 즉 지구의 공전궤도가 달라지면 우리들은 다 타죽거나 얼어 죽습니다.
태양계도 우리 은하계의 변방 모퉁이에 있는 작은 성체에 불과합니다. 우리 은하계 중앙을 중심으로 또 돌고 잇는 것입니다. 태양계 전체가 은하계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끝장입니다. 지구를 포함한 모든 별들이 자기 궤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제 멋대로 돈다면 모든 것이 혼돈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 달과 별들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창조시부터 지금까지 정확히 365일 주기로 신년이 다가오고, 매달 보름과 그믐이 반복되고, 하루가 24시간으로 반복되면서 다음날 아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구가 끝이 나는 그날까지 어김없이 계속적으로 새해가 다가올 것입니다. 새 날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9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데,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이는 소리는 없으나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여 여전히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년을 맞이한다는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인이나 악인을 포함하여 온 피조물에게 베푸시는 일반 은총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총, 사랑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나타내야 할 피조물인 달과 해에게 소원을 빌면 안되는 것입니다.
▶ 종말이 다가오면 이런 은총도 끝이 납니다.
핵폭탄이 터지면 지구 축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자전궤도, 공전궤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여 멸망의 길을 재촉하는 길입니다.
종말에는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져 지구와 충돌하고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땅은 다 없어지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요엘 2: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요엘 3:15]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계 8: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 유성
[요한계시록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주님이 재림하시면 믿는 우리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되는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유황불이 펄펄 끓는 지옥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맞이하는 새해가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들은 스스로 죄 가운데서 지구 종말을 재촉해 놓고 한편으로는 종말을 피하고자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서 살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화성과 같은 다른 행성에서 산다고 종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안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지금 보이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다가올 것입니다. 악인들의 심판과 함께 말입니다. 당신의 백성들만이 살 수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말입니다.
굳이 악인들이 화성까지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도 멸망의 잔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화성의 대기온도가 평균기온이 –63도, 최저 온도가 –140도라고 인터넷에 나와 있습니다. 산소가 극히 적고 대부분 co2입니다. 태양, 은하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우주복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악 조건에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최적의 조건으로 주신 이 지구를 보전해야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지구를 멸망시키지 말고 말입니다.
지금 매년 인간들에게 새해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지구를 아끼고 지키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의 생일 만큼 새해를 맞이하게 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금년 새해도 이런 사랑을 깨달으며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3. 유대인들의 유월절과 나팔절을 통한 새해의 시작
유대인들은 종교력에 의한 새해와 민간력에 의한 새해를 두 번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월절이요, 하나는 나팔절입니다. 나팔절은 종교력 7월 1일을 민간력으로 새해라고 하여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음력설이 한번 더 있는 것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많은 절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절기인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은 종교력 1월 (니산원, 아빕월)에 있고, 칠칠절(오순절)은 3월에,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은 7월에, 수전절은 9월에, 부림절은 12월에 있습니다.
그들은 절기가 마치 계절처럼 다가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절기”라는 단어는 “하그 또는 모에드” 인데, 오늘 말씀에서 “계절”이 히브리어로 바로 “모에드”입니다.
모에드는 “정한 때, 정한 것”의 의미가 있습니다. 계절이 정한 때에 정한 것으로 오듯이 절기도 그렇게 어김없이 정한 때에 정한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계절이 어김이 없이 오듯이 절기도 어김없이 지켜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그들에게는 유월절이 있는 달이 새해의 시작입니다.
출애굽시 하나님께서 출애굽이 있는 달을 달의 시작으로 해의 첫 달이 되게 하셨습니다.
[출 12: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출애굽이 있었던 달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한 것은 출애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는 죄에서의 구원, 정치적으로는 애굽의 종에서의 해방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두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새로운 역사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는 역사의 시작인 것입니다.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여 새로운 주권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시작함으로 광복절을 지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출애굽이 있는 그달을 새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새해의 시작은 구원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종에서 벗어남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진정한 유월절적인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관련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인 구원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사탄의 종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금년 한해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고, 이미 받은 자들에게는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고 여전히 역사하는 사탄을 결박하여 승리하면서 살아야 진정한 새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저 달력 하나 넘긴 것으로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으로 한 학년 올라간 것으로 새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출애굽을 통한 구원의 의미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니산월 (아빕월, 양력으로 3~4월)을 달의 시작, 해의 첫달이 되게 하셨고 유월절을 영원한 규레로 대대로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출 12:14).
종말의 때까지 영원히 지켜야할 규례입니다. 그래야 새해가 영원히 다가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하기에 종말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크게는 우주적인 종말과 국가적으로는 민족이 포로로 잡혀가 나라가 없어지고 다시 종이 되는 종말과 작게는 개인적인 멸망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적인 참 다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한 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탄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될 때 진정한 새해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② 나팔절에 의한 새해의 시작과 의미
유대인들의 또 하나의 신년은 바로 7.1일에 있는 나팔절입니다. 양력으로 9~10월에 있습니다.
나팔절은 “로쉬 하샤나”라고 부릅니다. 해의 머리, 해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종교력 7.1일에 있는 나팔절을 민간력으로 또 다시 신년으로 삼아 명절로 보냅니다.
나팔을 불고, 사과와 빵 같은 것들을 꿀에 찍어 단 음식을 먹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날이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날로 보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년의 의미는 혼인의 날과 같은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신약적으로도 나팔절은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와 관련되어 있는 절기입니다.
공중에서 나팔소리가 나면 주님이 재림하시고 공중 혼인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 혼인잔치로 비유한다면 신랑이 신부를 데리려 오는 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그토록 오래동안 고통 가운데서 신부 단장하고 기다린 자신의 신부를 취하기 위하여 오시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휴거되는 신부는 신랑과 혼인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악한 세력은 심판을 받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신랑되신 주님으로부터 기인된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금년이 참다운 신년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 혼인잔치와 같은 친밀감이 있을 때 참 신년이 되는 것입니다.
나팔소리는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전 15:52, 출 19:6)
그러므로 진정한 나팔절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신랑되신 주님이 함께 해야 진정한 나팔절을 보내는 것입니다. 주님 없는 새해는 나팔절의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육신적으로 나팔을 불고 단 음식을 먹어도 그들에게는 단지 새로운 날과 년도가 시작된 것에 불가합니다.
사람들은 신년 인사로 “Happy New Year”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New“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헬라어로는 ”네오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는 New 차원 곧 네오스의 차원이 아니라 ”카이노스“의 새로운 신년을 보내길 원하십니다. 이것은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카이노스“는 가전제품의 새로운 모델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새로움과 질적 변화입니다. 새 사람 (엡 4:24), 새 피조물(고후 5:17)은 모두 카이노스의 새로움입니다.
이것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가능합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년이 되기위해서는 금년에 각자의 삶 가운데서 성령님의 역사로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될 때 진정한 나팔절적인 신년이 되는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개인적으로도 AD와 BC로 나뉘어지는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아무런 변화없다면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거저 한 살 더 먹는 의미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이번 금년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포도원지기가 말한 “금년”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튼 이번 금년, 새해를 그저 시간만 보내지 마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워지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기원의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AD의 시대가 열리는 한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