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살며 생각하며)
장 영 주
요즘 아파트 창밖의 나무들이 푸르르다. 아침에 남편은 모임에 가고 혼자 커피 한 잔 할까 하다가 작은 물병 하나 들고 산에 오른다. 등산이 아니라 산책 수준의 산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날씨가 봄은 어데로 가고 여름과 겨울만 있다고들 말한다. 봄비가 와야 할 때 눈송이가 하얗게 날리고 꽃을 활짝 피워야 할 시기에도 날씨가 추워 눈이 내리니....... 봄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 버리고 수은주가 갑자기 여름 날씨를 웃돌고 이러다 정말 살기 좋은 우리 나라가 아열대로 가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
산을 오르며 주위를 찬찬히 살펴본다 키 큰 나무 밑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풀들은 나름대로 잘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엉키고 설키며 그렇게 살아간다
잠시 숨을 고르며 등산로 옆 벤취에 앉아서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본다 꿈이 컸던 이십대 결혼하고 삼년 후 남편은 사업을 시작했었다. 데모가 심했던 80년대 기동순찰대원으로 지구대 음주단속을 보조 해주다가 도리어 음주차량에 교통사고가 났다. 남편을 대신해 납품과 자재 구입 차 서울에 가면 대규모 데모행렬과 최루탄 냄새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조용한 봉담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였다. 정치적인 이슈로 데모가 심하니 거래처 회사에 바이어가 오질 않고 주문이 끊기니 부도가 나면서 우리도 수금이 안되고 투자한 돈은 회수가 안됐다. 다른 사람 일만 같았던 일이 내 일이 되고 순서대로 우리는 부도가 나고 그대로 빚더미에 앉았다. 이십명이 넘는 종업원을 다 내보내고 정리를 했다. 소규모로 전자 부품을 남편과 둘이 만들며 밤을 말 그대로 낮 삼아 일하며 삼사십대를 그렇게 앞만 보고 숨차게 달려왔다 .덕분에 빚도 다 갚고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고 대학을 마치고 취업도 잘해 직장에 잘 다녀주니 고맙다.
큰 대과 없이 지내는 요즘은 내 마음이 평온하다. 이제 내 나이 지천명의 중간에 서서 숨을 고르며 내 주위를 살펴본다. 마음에 여력없이 살아온 나날들 이제 나보다 어려운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 미력한 작은 힘이지만 그들이 한 발 내딛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한다.
얼마 전 장애우 아동들을 데리고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갔었다. 의용 소방대원 열명이 보건소에서 하는 행사에 선생님 보조 역할이였다. 아이들은 서너 살에서 열일곱 살까지 였는데 명랑하고 쾌활했다. 몇 명의 아이들을 빼고는 다들 선생님을 잘 따라 다녔다. 그 중 눈에 띄는 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는 멀미를 해 차에 토하고 떼를 쓰고 가만있지를 않아 엄마를 힘들게 하였다. 신기한 물고기나 예쁜 고기도 좋아하질 않고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를 잠시 쉬라하고 우리가 달래니 웃는 모습이 예쁘고 귀여웠다. 남을 돕는다는 것, 보듬는다는 것, 돌본다는게 토한 걸 치우면서, 음료수 엎지른 걸 닦으면서, 소변 본 걸 갈아주며, 보통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 날 장애 아들 딸들 기분을 맞추고 달래느라 애쓰는 따라 온 일부 엄마들을 보며 우리는 하루 보조로 끝나지만 그 부모들과 선생님들은 날마다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측은하기도 했다. 일정을 마치고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자라주기를 마음으로 응원하며 돌아오는 마음은 힘들었지만 뿌듯 했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이고 며느리이자 딸인 동시에 나 자신이다. 과연 나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 좋은 딸 노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 자신을 메마르지 않게 잘 가꾸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하나도 자신이 없고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더 열심히 노력하며 애쓰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남편과 함께 일하느라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 이것 저것 하고 싶은 열정이 많지만 생활은 날 놓아 주질 않는다. 틈틈이 하고픈 걸 하며 그래도 건강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하면서 열심히 산다.
벤취에서 일어나 걸으며 보는 숲에 풍경들이 새롭다. 소나무 새순들이 물이 올라 윤기가 자르르 하고 참나무, 상수리, 찔레 나무도 연두잎을 피워 올리며 나름 노력하고 있다. 봄을 놓치지 않고 결실을 맺으려고, 나무들도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려고 애쓰는데 나 또한 나의 바다를 잘 보고, 잘 가꾸고, 잘 마무리 하며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다. 쭉 기지개를 펴본다. 어디선가 뻐꾸기가 가는 봄이 아쉬운지 아님 제 주어진 몫을 다 하려는지 뻐꾹 뻐꾹 운다. 화창한 봄날이다. -끝-
-화성기예경진대회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