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서 본 명재고택 전경]
니산(尼山)아래 아늑한 집을 보다 - 2007 추계 현장학습 명재고택 답사-이번 가을이 좀 일찍 쌀쌀해져서 혹시 이번 답사일에 추우면 어쩌나 하고 옷차림을 따뜻하게 하고 나왔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한 것이 무척 상쾌하였다. 한낮에는 초여름 날씨처럼 무덥기까지 하였으니 택일은 잘 되 었던 하루였다. 바빠서 못 나온 회원들이 많아서 인원은 조촐하였지만 마침 갔던 곳이 송길용교수님의 고향이라서 더욱 뜻있는 답사가 되었다. 예상외로 교통이 혼잡하지 않아서 갈 때나 올 때나 시간은 충분했고 일찍 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명재고택 사랑채] 먼저 간 곳은 노성면 교촌리의 명재(明齋) 윤증(尹拯)선생 고택(古宅) 이었다. 문성공(文成公) 윤증선생은 조선 중기 현종 숙종 때에 성리학의 예학(禮學)에 정통한 학자로 나라에서 여러 벼슬을 내렸지만 한번도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에 매진하신 분이시다. 배롱나무를 심은 큰 연못옆 주차장에 내려서 안으로 들어갈 때에 고택의 등뒤로 서있 는 니산(尼山)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숲이 넉넉한 품으로 팔을 벌리고 감싸안는 듯한 분위기가 과연 아늑하고 포근하였다. 앞으로 시원하게 나앉은 사랑채는 누구든 여기 찾아오는 사람은 자연을 노래하고 시를 지어부르며 학문을 토론하면서 사방의 경치를 볼 수 있도 록 되어있는 중후한 기상이 서린 집이었다. 왼편의 방문위에 붙은 현판을 보니 離隱時舍(리은시사) 桃源人家(도원인가)라 쓰여있다. 여기를 도화원(桃花源)으로 삼아 숨어지내는 집이라는 뜻인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調和)를 생각하며 자연에 일치시키는 삶을 위해 벼슬에 나가기를 자제했던 선생의 깊은 뜻을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마루에 걸린 액자에는 달필로 흘려써서 내가 맞게 읽는지는 모르겠으나 君閑寓臥(군한 우와)라 쓰여있다. 아마도 -군자가 한가하면 이집에 눕노라- 라는 내용인가? 한가롭고 여유로움을 한껏 드러내는 글씨였다. 이집에 [고택에 서의 하루]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니 언제 한가하면 다시 와서 하루밤을 지내면서 그 운치를 맛보고 싶다.
[고택 안채] 안채로 들어서니 따뜻한 날씨와 어울려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는데 여기 에 살고계시는 나이지긋한 종부(宗婦)님과 상냥한 며느님이 친철히 맞아주시기 때문이었다. 시집오셔서 70년동안 이 고택에 살으셨다는 고령의 양씨는 아직도 정정한 혈색이 이 집터가 바로 건강을 지켜주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했다. 우리들에게 일일이 책자를 한권씩 나눠주셨는데 그것은 마침 2007년 11월 2일자에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의 가을학술대회로 출간한 [명재 윤증의 학풍과 전개]라는 내용이었다. 잠깐 넘겨보았더니 참으로 귀중한 자료를 담고 있었다. 너무나 시의적절한 방문이 아닌가? 며느님은 이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간장의 독특한 맛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었고 준비해놓은 선물세트도 보여주었다. 간장을 손가락에 찍어 맛보니 예전에 먹던 고향집의 토종간장의 순수한 맛이었다. 대청에 걸어놓은 액자에는 歸隱在淸(귀은재청)이라 쓰여있고 마루바닥에 놓여있는 액자에는 淸白傳家(청백전가)라는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모두 가 이집에 은거하였던 청백(淸白)한 선비를 존숭(尊崇)하는 글들이었다. 원래 이 고택은 초라한 누옥(陋屋)이었는데 제자들이 안쓰럽게 생각하여 나중에 이렇게 멋있게 지어드린 것이라 한다. 왼쪽으로 작은문을 통해서 주방채를 구경하고 뒤쪽으로 나와 커다란 장독들이 놓인 뒤란을 보았다. 울타리 넘어 니산의 수려한 기운이 울창한 소나무들의 향기를 싣고 이 집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용(龍)이 내려오는 바로 아래에 子坐午向 (자좌오향)으로 지은 집이니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典型)이었다. 안채 오른쪽 뒤로 별채가 하나 있었다. 여기가 윤증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유봉영당(酉峰靈堂)인 듯 한데 올라가지는 못하고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예를 올렸다. 그 앞으로는 마치 제자들이 도열한 듯이 장독들이 즐비하게 놓여져서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평온한 이집의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집을 나오면서 연못안에 배롱나무를 심은 작은섬 쉼터 속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유봉영당 전경]
[고택 뒤란]
[고택 뒤란 장독대] 다음 볼 곳은 고택 왼편에 나란히 자리한 노성향교(魯城鄕校)다. 이 향교(鄕校)는 건물의 규모와 격식이 잘 갖춰진 모습이었다. 앞에 서있는 높다란 홍살문이 우리에게 경건한 자세로 들어오기를 이르는 듯 했다. 향교(鄕校)의 입구 솟을삼문에는 화려한 색채로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명륜당(明倫堂)이고 그 뒤로는 대성전(大成殿) 이었다. 문이 모두 잠겨져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그 성행하던 유학(儒學)이 이처럼 쇠퇴하게 된 것은 우리처럼 동양학을 연구하는 어른들과 유학을 주관하는 성균관(成均館)이 이처럼 좋은 터전의 향교(鄕校)를 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하지 못한채 문을 걸어놓고 오는 사람들을 아무도 마중하지 않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명륜당 댓돌에 앉아서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나왔다.
[노성향교 전경]
[노성향교 대성전] 다시 오른쪽으로 고택을 가로질러서 언덕너머에 있다는 궐리사(闕里祠)로 향했다. 나지막한 언덕에 올라서니 니산(尼山)쪽으로 구절초(九節草)가 흐드러지게 핀 꽃밭이 붉은 단풍이 타올라가는 산록을 배경으로 아름다웠다. 서리를 맞고서 피는 국화과 꽃들은 모진 숙살(肅殺)의 기(氣)를 인내하는 군자(君子)의 모습이니 이곳에서 벼슬길에 나감을 자제하고 참된 선비의 길을 고집했던 윤증선생을 추모해서 처음에 여기 심은 것인가? 아니면 한약재로 쓰기 위해 농사(農事)로 기르는 것인가?. 여하튼 그 흥취를 맛보려고 꽃밭속으로 들어가 사진 한 장을 찍고 이 가을의 정표로 간직하기로 하였다. 옆에 초가집 한 채가 차를 대접하고 있었지만 회원들이 모두 앞서 가기에 그냥 지나쳐갔다.
[구절초 꽃밭언덕] 궐리사(闕里祠) 초입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고 바로 뒤로 높이 솟은 홍살문이 있으며 그 안 저만치에 현송당(絃誦堂)이 있는데 건물위로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공자님의 영정을 모신 사당(祠堂)이라는데 태극기는 왜 올려두고 있는 것일까? 역시 안내하는 사람이 없어서 알 수 없었다. 왼편으로 돌모자를 쓴 높다란 석주(石柱)에는 궐리(闕里)라 는 글을 허리춤에 새겨놓고 있었다. 공자님이 태어난 마을 이름이 궐리(闕里)라서 거기에 유래한 것이라 한다. 영정(影幀)을 모셔놓고 있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낸다고 하며 나중에 송조(宋祖) 오현(五賢: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주희)을 추가로 배향하였다고 한다. 그 왼편 너른 터에 공자님의 석고상(石膏像)을 모셔놓았다. 그 토대에는 사면(四面)의 석판(石板)에 한시(漢詩)와 그림을 그려 공자님의 행적과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모두가 함께 경배(敬拜)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자료에 보면 이 아래 향교마을에 윤증선생의 부인 권(權)씨의 열녀문(烈女門)이 있다고 했는데 내려가 보지는 못했다.
[궐리 석주]
[공자님 성상앞에 모인 경기대사교원 생활역학회 회원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이곳 윤씨 문중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종학당(宗學堂)이다. 윤증선생의 백부이신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에 의해 파평(坡平) 윤씨 종중(宗中)의 교육숙사(敎育宿舍)로 건립된 곳이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70년 동토선생의 5대손인 과천(果川) 윤정규가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일반서원이나 서당과는 달리 교육의 목표,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을 정하여 시행하였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시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덕위 너른 터전에 자리잡은 백록당(白鹿堂)과 정수루(淨水樓)는 아래로 멀리 저수지를 내려다보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학문에 심취할 수 있는 분위 기를 자아내였다. 그러니 이곳에서 공부한 파평 윤씨중에 42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수루(淨水樓)에 걸린 현판에는 오른편에 香遠盖淸(향원개청) 왼편에 吾家白鹿(오가백록)이라 쓰여있다. 누(樓)에 들어가 내려다보는 경치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확 트 여 시원하였다. 그리고 왼쪽에 보이는 보인당(輔仁堂)이 뜨거운 햇살속에 잠시 책읽는 소리를 멈춘 듯 조용하였다. 가운데 연못을 돌아서 오른편 돌담옆에 이르니 한그루 모과나무에서 익은 열매가 떨어져 잔디위에 뒹굴고 썩고 있는 게 보였다. 회원들이 너나없이 떨어진 모과 를 한움큼씩 주어서 가슴에 품었다. 모과향이 진동하여 우리 모두의 얼굴에 웃음을 가득 안겨주었다.
[종학당 홍살문]
[종학당 안내문]
[정수루안에서 최기식여사님과 중급총무 김경화님]
[모과를 줍고 정수루옆에 서서]
[종학당앞 잔디밭] 차에 올라 이번에는 인근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송길용교수님의 가족묘역으로 향했다. 위로 오르는데 묘지에서 놀던 노루 한 마리가 산위로 불쑥 뛰어 사라져갔다. 포근한 묘지에서 햇볕이라도 쬐고 있었는지, "묘터가 길지(吉地)라서 사슴이 깃들이고 사는가 봐요~." 했더니, 송교수님 얼굴에도 희색이 만면하셨다. 조상의 봉분아래에 자신이 들어가 누울 자리를 만들어놓으시고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시는 모습이 인생을 달관하신 위치에 계신 분으로 느껴졌다. 묘좌유향(卯坐酉向)으로 좌우청백(靑白)이 위요하였는데 멀리 조산(朝山)이 울창하게 바라보였다. 이곳에 우리 회원들이 언젠가는 다시 오게 되겠지, 한번 오며는 한번은 꼭 가야 하니까, 그게 인생이니까, 누구에게나 곧 다가올 그날을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왔다. 밭두렁에 감나무들이 몇구루 있 는데 감은 익어도 따가는 사람이 없었는지 홍시가 다 되어 누군가 따주기만을 기다리는 듯 처량하다. "이리 와서 감 좀 따먹고들 가요~" 하고 노만석부회장님이 앞장서니 여럿이 또 달려와 감나무에 매달렸다.감이 너무 익어서 땅에 떨어지는 대로 상해버려서 몇개 건지지는 못했지만, 이 가을 시골들녘 임자모를 밭두렁에 와서 감을 따는 정취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송길용교수 가족묘역]
[송길용교수 가족묘역 전망] 부여시내로 들어와 점심 먹을 식당을 물색하였다. 길옆에 한식집이 마침 있어서 갈비탕을 시켜 들면서 우리 동우회의 회원들 모두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 한잔씩 따르고 건배하였다. 식사시간이 늦어진 때문인지 모두가 맛있다고 식당주인을 칭찬하면서 잘 먹고 잠시 쉬었다.마지막으로 간 곳은 부여군 임천면의 칠산서원(七山書院)이었다. 임천 향교에서 나오신 전교(典敎)직함의 유병호선생이 서원의 내력을 안내해주셨다. 인조(仁祖)때에 청나라가 침입해오자 척화를 주장하다가 이곳 에 유배되어 후학들을 가르치신 문충공(文忠公) 시남(市南) 유계(兪棨)선생을 모신 곳이다. 선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성 리학을 수학하여 예학(禮學)과 역사학(歷史學)에 정통하셨던 분으로 윤증선생의 스승이시다. 주자의 가례(家禮) 본문을 기본으로 예의 원류를 종합 한 가례원류(家禮源流)를 지으셨다고 한다.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우리의 회장이 들어가 향을 사르고 절을 할 때에 우리들도 밖에서 도열하여 경배하였다. 사당의 층층대를 올라갈 때는 오른발을 먼저 내디디며 한발씩 올라가야 하고 내려올 때는 왼발을 먼저 내디디며 한발씩 내려오는 것이 예법이라고 했다. 여기서 정해년(丁亥年) 춘형(春亨)을 지냈던 직제 소임판을 보여주셨는데 거기 쓰인 직일(直日)이라는 직함은 그날의 총감독을 말한다고 알려주셨다. 서원 왼편으로는 강당이 있고 오른편에는 장판각이 있는데 도둑이 들어서 경판을 비롯해서 문화재를 훔쳐가기 때문에 다른 장소로 옮겨 보관중이라고 했다. 서원의 뒤로는 영남산이 울창한 솔숲으로 편안하게 받쳐주고 좌우로 감싸안은 산세와 물이 돌아나가는 형국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명당자리였다. 서원의 규모는 작았지만 법도와 경계가 살아있으니 조만간 사람들이 많이 참배하러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칠산서원 전경]
[칠산서원 기념] 돌아나오는 초입 채전에 한 농부가 울타리를 다듬고 있었다. 차나무로 두른 울타리인데 꽃이 만발하였고 일부는 씨앗이 되어 땅에 소복이 쌓여있었다. 우리에게 이 차씨앗을 가지고 가서 심어보라고 선뜻 인심좋 게 권하기에 우리 몇몇이 고맙다는 말을 연신 드리면서 다투어 봉투에 담았다. 차향기가 참으로 그윽하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벌새는 사람들 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꿀을 따느라고 날개를 벌처럼 바삐 저었다. 오늘의 답사여행은 이렇게 차향을 맡으며 흐믓한 마음으로 아름답게 끝낼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고 즐거운 하루였다. 2007. 11. 4. 비전 丕荃
| |
첫댓글 [생활역학교실]에 올렸던 것을 여기로 옮겼습니다.
집이랑 일터만 쫒아 다니다보니, 이런곳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ㅎ 고운밤 되세요.
단합대회의 뜻있는 만남을 너무 정성스레 좋은 음악과 같이 올려 주심에 감탄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