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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캠핑 "캠프리카" 원문보기 글쓴이: 김폼
땅끝으로 가는 행렬은 끝이 없었다. 송지면소재지를 지나면서 차량이 꼬리를 물더니 송지호해수욕장을 앞두고는 꼼짝도 안했다. 땅끝까지는 적어도 4km는 남은 거리였다. 은근히 부아가 치솟았다. 부산도 아닌, 남도의 외진 곳까지 와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들 땅끝에 가려고 이 북새통을 이루는 걸까. 여름만 되면 해남 땅끝이 달아오른다. 날씨 때문이 아니다. 뜨거운 조국애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땅의 끝에 서서 진한 조국애를 느끼고 싶어한다. 머리가 여물기 시작하는 대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샐러리맨에서 온종일 기계와 씨름하는 노동자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땅끝을 찾아 나선다. 땅끝은 연령과 계층을 불문하고, 조국애를 길어내는 깊은 우물로 통한다. |
땅끝을 찾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밑도 끝도 없이 걸어서 온다. 부르트도록 하염없이 걸어서 땅끝까지 온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온다. 또 누군가는 차를 타고 온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땅끝을 찾아 창끝처럼 솟은 토말탑 앞에 서서 감격해 한다. 땅의 끝에 섰노라고, 나의 조국을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땅끝을 향한 사람들의 열풍을 부추긴 사건이 몇 차례 있었다. 그 중 한 사건의 주인공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다. 그가 쓴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는 1990년대 서점가를 강타했다. 그의 책에 영향을 받아 답사여행이 새로운 여행의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그 책의 가장 첫 머리를 장식하는 것이 '남도 답사 1번지 해남과 강진' 이었다.
두 번째 땅끝 열풍을 불러온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카스'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박카스의 국토대장정은 내나라 내 땅을 자신의 두 발로 밟아보려는 대학생들의 도전의식에 불을 질렀다. 그 후 다양한 단체가 나서서 국토대장정을 벌이고 있고, 개인이 단독으로 시도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쨌든, 땅끝 열풍은 여름마다 계속된다. 여름이 오기 전 빼먹지 않고 찾아오는 장마처럼, 여름이면 사람들이 시선이 땅끝으로 고정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땅끝 캠핑장에 닿았다. 사이트는 만원이었다. 다행히 캠핑장 가장 안쪽에 자리가 하나 났다. 먼저 캠핑을 했던 사람들이 장비를 챙겨 떠날 때까지 꼬박 곁에 지키고 섰다가 사이트를 차지했다. 부산서 땅끝까지, 힘든 하루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심이 됐다. 며칠간은 텐트를 치거나 접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휴식의 시간을 가질 일만 남았다.
땅끝에서의 일정을 곰곰이 따져봤다. 하루쯤은 아이와 함께 물놀이를 하며 지낼 것이다. 잔잔한 물살에 몸을 맡긴 채 파도 소리를 들을 것이다. 썰물이 지고 나면 조개나 소라게를 찾아 나설 것이다. 한국인의 채집 본능은 유별나다. 어디를 가도 무엇인가를 뜯고, 줍고, 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특히, 조개나 게를 잡자고 하면 아이들은 눈이 별빛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아빠로서는 점수를 딸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하루쯤은 낚시에 도전할 것이다. 자연과 교감하는데 낚시만큼 좋은 것은 없다. 낚싯대 초리가 까닥이며 입질이 올 때의 긴장감은 첫 번째 데이트의 설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잽싸게 챔질을 하고 난 후 묵직하게 전해지는 고기의 저항은 희열 그 자체다. 운이 좋아 횟감이나 매운탕을 끓일 만큼 잡을 수도 있지만, 살림망이 다 차지 않아도 좋다. 그저 몇 번의 손맛으로 충분하다.
또 하루는 보길도로 갈 것이다. 땅끝에서 40분이면 닿는 섬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섬이다. 국문학의 비조로 평가받는 고산이 말년에 온 가족을 솔거해 이 섬에 칩거하며 '어부사시사'와 같은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고산이 주안상을 차려놓고 무희들이 어부사시사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감상했던 세연정에서 그만큼의 풍류를 느껴볼 것이다. 동천석실에 올라서는 격자봉 위로 흘러가는 구름과 눈을 맞출 것이고, 샛바우재에서는 예송리에 떠 있는 고깃배들의 아름다운 행렬도 감상할 것이다. 또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제주로 귀향 가던 우암 송시열이 잠시 들러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글로 써놓았다는 글씐바위에서 그의 고독과 서글픔에도 눈길을 줄 것이다.
땅끝에 서는 것은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처음 땅끝에 서던 날을 기억한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쓰라인 마음을 안고 떠난 길이었다. 생에 절망한 시인 김지하가 자살을 결심하고 찾았다가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안고 돌아섰다는 그곳에서 나도 위로받고 싶었다. 나에게도 땅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인 이 외진 반도가 용기를 불어넣어주기를 바랐다. 그 때 땅끝은 나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토말탑에 적혀 있던 손광은 시인의 시를 지금도 기억한다.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발치로
백두에서 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십수년 지켜온 땅끝에서
수만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일 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그날, 몇 번이고 이 시를 읽으며 마음속에 잔뜩 도사리고 있는 미움과 원망을 녹였다. 서럽고 서운한 마음을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울 수 있었던 것은 땅끝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더는 갈 수 없는 세상의 끝. 여기는 절망하는 모든 이의 터닝 포인트였던 것이다. 땅끝은 그렇게 상처받고 지친 이들을 제 품으로 안아 희망과 용기를 채워서 돌려보낸다.
참, 빼먹어서는 안 될 곳이 있다. 미황사다. 나는 이 절만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바다를 정원처럼 끌어다 지은 절이라니. 절의 배경은 또 얼마나 황홀한가. 미황사 대웅전 너머로 창검처럼 도열한 바위병풍ㄹ의 자태는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한 폭의 산수화 그 자체다. 여기에 대웅전은 들보가 훤히 보이도록 팔각지붕을 하늘로 활짝 열었으니, 화려한 산세에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을 짓는 조상들의 슬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부도밭은 혼자 갈 예정이다. 산자락 두 개를 넘어가는 길은 혼자 걷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녹음은 짙어 사위를 휘감고, 산비둘기의 구수한 울음소리가 동행을 자처한다. 산비두릭 울음소리가 희미해지고, 녹음이 열리면 거기 부도밭이 있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부도 가운데 나를 신화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몇 기 있다. 하늘로 머리를 둔 물고기와 발가락 여덟 개가 선명한 꽃게, 이것들이 왜 부도에 새겨져 있을까. 눈치 빠른 이들은 미황사 대웅전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 새겨진 꽃게를 보았을 것이다. 왜 이런 바다생물이 조각되어 있을까. 답은 하나다. 불교의 남방전래설이다. 땅끝에 닿은 배에 금합이 있었고, 그 금합을 열자 검은 소가 나왔다. 그 검은 소가 걸어가다 크게 울음을 울고 쓰러진 자리에 지은 절, 그게 미황사다. 창건설화는 그렇게 부처가 바다를 건너왔음을 보여주고, 그 상징으로 바다생물을 주춧돌에, 부도에 남긴 것이다. 부도밭에서 그 설화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을 것이다.
아침에는 더치 오븐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베이글을 드리퍼에 내린 공정무역 원두커피와 함께 먹을 것이다.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감자와 옥수수 버터구이로 아이의 입맛도 사로잡아야 한다. 해질녘에는 랜턴을 들고 해변을 산책할 것이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지? 아! 왜 이리 할 게 많은 걸까. 나는 그저 여름휴가를 떠난 것이고, 몸과 마음을 조이던 모든 긴장을 풀고 그저 쉬고 싶을 뿐인데…
그러나 여기는 해남 땅끝이다. 한 곳에 붙받아 있기에는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삶의 에너지가 용솟음치는 희망의 땅에 있다.
땅끝 오토캠핑장
지난해 7월 개장한 캠핑장으로 최근 조성되는 캠핑장의 추세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독립된 캠핑 사이트와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 화장실, 카라반을 이용한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캠핑장의 입지가 탁월하다. 캠핑장이 자리한 곳은 송지호해수욕장의 왼편. 캠핑장에서 바다가 훤히 보인다. 분주한 한 낮에는 느낄 수 없지만 밤이 되면 조용조용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소리가 친근하게 들린다. 큰 도로에서 가깝지만 한 밤에도 정숙성이 보장된다. 최근에는 사이트마다 전기 시설을 확충, 자유롭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다만 사이트가 조금 작은 게 흠이다. 리빙쉘과 타프를 동시에 칠 경우에는 연구가 필요하다. 단, 캠핑장 하단 왼편은 캠핑 사이트를 별도로 구획해 놓지 않아 대형 사이트를 꾸려도 넉넉하다. 솔숲도 있어 그늘을 제공한다. 최고의 사이트는 캠핑장 가장 안쪽 길 좌우에 있다. 이곳은 솔밭 너머로 바다가 훤히 보이고, 샤워장과 음수대와 가깝다. 장작도 판매한다.
위치 :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산 14-1 전화 : 061-530-5258, 5544 이용료 : 텐트 1동 평일 1만5,000원, 주중(금·토·일) 2만원, 캠핑 트레일러 - 성수기(7~8월) 주중 7만원, 주말 8만원, 비수기 주중 3만원 캠핑사이트 : 50개 부대시설 : 샤워장(온수가능), 세탁기, 취사장(가스렌지 설치), 음수대, 카라반 추천 시즌 : 여름 > 봄 > 가을 ? 겨울 주차대수 : 100대 개장 : 연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