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3-6 (수요저녁예배)
3절: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절: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괴로운 마음, 불쌍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바울이 빌리보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어떤 마음이 다가왔습니까?
① 감사하는 마음
② 기쁜 마음이 가득찹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남에게 감사와 기쁨을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누가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변함없이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합니다.
착하다:
(1) 영어 → good
(2) 우리말로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 착하다. ⓑ 선하다. ⓒ 좋다.
(3) 헬라어로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 아가쏘스 (착하다) → 도덕적으로 착하다는 말.
ⓑ 칼로스 (선하다) → 도덕적으로도 착하고 하는 행실이 보기에도 아름답다는 말.
예수님이 목자로서 양떼들이 인도하실 때 우리는 선한 목자라고 합니다. 이는 헬라어로 "칼로스"입니다.
예수님은 목자시고 우리는 양들입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모습을 보실 때 "좋다" 혹은 "착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라고 말합니다.(헬라어→칼로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무슨 착한 일을 하셨습니까?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착하다"는 헬라어로 "아가쏘스"도 아니고 "칼로스"도 아니며 "좋다"입니다.
본문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착하다"는 말입니다. 즉 도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착하다"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1)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 성도들은 착한 행실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빛입니다. 착한 행실을 가지고 살면 세상이 밝아지고 못된 행실을 하면 세상이 캄캄해지고 암흑 속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악한 일, 부정부패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하나님의 일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해야 복을 받습니다. 바깥 사람들은 남을 속이고 거짓말 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하면 처음에는 안 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잘 됩니다.
젊어서 남을 속이고 거짓말 하고 간교하게 살면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은데 나이가 먹으면 망합니다. 인생이 비참하게 됩니다. 젊어서 정직하게 살고 좀 손해보고 살면 나이가 먹으면 빛을 발합니다. 만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동행하기를 기뻐하고 원하십니다.
(4)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는 자기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5)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보고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6)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믿음만 가지지 말고 착한 양심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좋은데 성질이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을 악하게 쓰지 말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복 받습니다.
(7)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선한 양심"을 헬라어로 "아가쏘스"라고 합니다.
선한 양심 → 착한 양심
우리속에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세례입니다. 예수님은 착하게 사셨습니다. 손해 보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착한 양심을 가질 때 착한 일을 한 예수님께 달려갈 수 있습니다.
① 거듭나게 하십니다.
② 악한 마음을 뽑아내시고 선한 마음을 넣어주십니다.
③ 죄 짓는 못된 마음을 뽑아내시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넣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속에 이런 일을 하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이런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속에 착한 일을 넣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영과 마음을 바꾸어주십니다.
6절: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사람은 무슨 일을 결심해놓고 끝까지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자꾸 변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인간은 은혜를 받아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에는 사랑이 식어지고 사람들의 배신이 더욱 심해집니다.
주님은 한 번 약속하시면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만 의지하고 믿고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변함이 없으시고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생각할 때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