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 제 5 장 유형실체세계와 무형실체세계
48 천 - 문 죽음에 대한 이해 1.mp3
죽음에 대한 이해
이 땅 위에는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고, 친척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그런 인연을 맺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영계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영계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위치가 전부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사람이 밑에 올 수도 없고, 밑에 있는 사람이 위에 가기도 어렵습니다.
본래는 지상에서 완성해야 영계에 갈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한번 저세상에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 것입니다.
생애(生涯)의 노정은 너무 짧습니다. 일생은 너무 짧은 것입니다.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고 하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시간으로는 여덟 시간도 안 되는 시간입니다.
즉 영원한 세계의 시간으로는 생각하면 여덟 시간도 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참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인식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작용합니다. (205-65,1990.7.7)
틀림없이 영계는 있습니다. 영계는 틀림없이 실재하고, 우리 인간은 어차피 영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영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말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어디로 돌아갑니까? 공동묘지로 가는 것은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출발했던 본처(本處)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출발이 공동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멀고 먼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돌아간다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사람으로 죽었지만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 조상의 근원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 창조주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출발했으니 거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순환작용을 합니다.
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게 되면 조그만 계곡을 통해서 흘러가고, 많은 지류를 통해서 대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대해로 들어가게 되면 그것이 수증기가 돼서 다시 돌아갑니다.
순환운동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돌아가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더 높을 수 있는 곳으로, 더 좋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더 작아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계의 운동법칙이라는 것은 작용하면 작아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작용하면 점점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굴려 보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구르지 않습니다.
빨리 구르다가 점점 약해져 정지하게 됩니다.(141-269, 1896.3.2)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상계와 영계는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그곳이 어디일까요?
물론 우리는 육신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10대. 20대. 30대. 중년. 장년. 노년시대를 거쳐갑니다.
청춘시대를 지나 장년시대로 들어가게 되면 한 고개를 넘고, 그다음엔 노년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것이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인 것을 알고 준비하는 생을 사는 것입니다. (140-121, 1986.2.9)
죽음이라는 낱말을 쓴 목적은 삶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삶의 가치는 누가 잘 아는 것입니까?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죽을 경지에 들어가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을 붙들고 삶의 가치를 타진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것입니다.( 74-243, 1974.12.31)
그러면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겠습니까, 환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환영해야 됩니다.
죽는 데는 무엇 때문에 죽을 것이냐 할 때 '하나님의 참사랑을 위해서 죽겠다'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내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구, 죽는다!'하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사랑권 내에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을 수 있는 순간이 죽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순간이 제2의 출생의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육신의 난 날을 기뻐하겠어요, 제2의 무한세계의 사랑을 위해서 활동할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기뻐하겠어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16-172, 1982.1.1)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gmS/5